“할머니, 지우아빠 없으니까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지우가 맛있는 샌드위치 만들어 줄게요.”

 

나른한 일요일 오후, 손녀가 전화를 했다.

“지우가 엄마하고 할머니 집으로 오면 안 될까?”

“우린 차도 없어요.”

 

아빠가 차를 갖고 나가서 올 수가 없다며 난데없이 차 타령을 한다.

오늘도 모녀가 짝짜궁이 되어 그럴싸한 콩트 한 편 엮어서 나를 오라고 유혹한다.

모처럼 맞는 나만의 달콤한 휴식을 반납해야 되나? 잠시 고민했다.

아이는 전화 통화할 때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며 울먹인다.

 

영상 통화하며 눈물 그렁그렁한 얼굴을 보면

그 애처러움에 나도 목이 메곤 한다.

그러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이날은 눈물 대신 샌드위치로 나를 꼬드겼다.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나서니 남편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따라 나선다.

딸네 집까지는 불과 20분 남짓, 애인 만나러 가는 길만큼 마음이 설렌다.

도착하니 식탁에는 샌드위치 재료가 한가득.

감자와 달걀은 미리 삶아 놓았고,

오이와 당근은 깨끗이 씻겨져 도마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아이와 함께 썰었다.

단단한 당근은 내가 썰고 아이는 케잌 자르는 칼로 오이를 썰었다.

이어 삶은 달걀과 감자를 으깨고 얇게 썬 오이와 당근을 넣어 마요네즈에 버무렸다.

마지막으로 모닝빵에 버무린 재료를 집어넣으니 미니 샌드위치 완성!

이 모든 과정에 아이의 고사리 손이 보태졌다.

 

완성된 빵을 지우가 차례차례 돌린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으흠, 맛있다! 지우가 만든 거 겁나게 맛있다.”

“김지우 표 샌드위치가 짱이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칭찬을 하자 아이는 신바람이 났다.

이른 바 ‘헐리우드 액션’까지 동원해가며 기분을 맞춰주니 더없이 행복해한다.

의기양양한 저 표정!

 

“지우가 만든 샌드위치 진짜 맛있지요?”

네 살배기 손녀의 말 한 마디에 웃음꽃이 만발한다.

어쩌면 이런 오붓한 시간은 내가 꿈꾸어오던 안온한 노년의 한 장면이 아니던가,

그런데 저 작은 머릿속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어서 이 할미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지...

손녀와 함께 하는 시간, 이 작고 조용한 평화를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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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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