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김혜준| 아버지다움 2015. 7. 7. 09:57
동상이몽
공부만 하다간 뒤늦게 방황할 수도, 다양한 현실과 부딪혀 볼 필요 있어
놀아보면 세상 사는 지혜 깨우칠 수도
그제 저녁 ‘동상이몽’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춘기 초중고 일반인 10대 자녀와 부모가 갖고 있는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삐까번쩍한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어서 우선 맘에 들었다. ‘저 친구들 참 많이도 나오네…’ 싶은 유재석, 김구라, 서장훈 등이 출연하고 있던 점은 좀 거시기했지만 재미있게 봤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딸과 가수로서 자질이 부족하니 대학부터 가라는 아빠의 동상이몽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아빠와 딸의 갈등이 심해 아빠가 가출을 한 보기드문 경우였다. 그 딸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노래까지 불렀고, 아이돌 가수를 키워낸 기획사대표의 작심 충고를 듣게 된다. 결국 그 딸은 꿈을 접고(?) 일단은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하면서 나름 해피엔딩(?)이 됐다.
그런데 저 부녀, 그리고 시청자들은 과연 해피할까? 뭔가 찝찝한 뒷맛이 남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가수냐 아니면 공부냐?’라는 구도가 잘못된 것 같다. 좀 따져보자.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무엇인가?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아니다.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입시공부’이다. 따라서 그건 대학가기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하는 고역쯤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그 고역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면 그 다음은? 그건 모르겠고 우선 대학부터 가라는 거다. 반면 ‘가수’는 어떤가? 그 아이의 꿈이고 로망이다. 그래서 억지로 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명확하다. 또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결론은 그 아이에게 명확함 대신 흐리멍텅함을, 목적 대신 수단을, 자율 대신 타율을 선택하라고 말한 꼴이 돼버렸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성공가능성도 낮은 선택인데…. 전국의 무수한 아이들도 그 프로그램을 지켜봤을텐데 말이다.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중학교 한 학기를 시험없이 토론·실습 또는 직장체험 등 진로교육을 받도록 한 ‘자유학기제’의 취지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다. ‘가수냐 공부냐?’가 아니라 ‘가수의 꿈이냐 다른 꿈이냐? 그리고 다른 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되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딸과 내가 ‘동상이몽’을 보고 나니 아내가 동창생 모임에서 돌아왔다. ’학창시절, 공부보다 이것저것 쑤시고 다니면서 ‘잘’ 놀았던 친구들이 지금도 ‘잘’ 살고 있더라”면서 어쩌구 저쩌구 수다가 시작되었다. 평소 자기 말할 때 딴 짓한다고 불평하는 아내에게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던 중 잘 놀던 친구들이 잘 사는 현상이 ‘흔히’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찌보면 학생이 ‘논다’는 건 입시공부 이외의 다양한 현실과 부닥쳐 보는 것이다. 그러니 ‘잘’ 놀아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더 빨리 깨우칠 수도 있고, 그것이 진정한 공부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겪어보지 못하고 독서실 칸막이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뒤늦게’ 방황하는 건 사필귀정이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6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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