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실종, 도덕적 해이 이대로 좋은가?
세계곳곳 시시각각 교육 2010. 6. 8. 06:21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고 노자는 말했습니다. 여기서 미더운 말이란 진실하고 소박한 말. 아름다운 말은 화려하고 가식적인 말을 뜻합니다. 언행일치. 말과 행동은 참 중요하지요. 요즘 한국은 어떠한가요? 사회지도층 인사 중에 하나인 검사들은 술 향응을 받고, 잘 알려진 연예인은 차사고가 나자 뺑소니를 치고, 오락 하지마라는 질타를 받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고, 정치인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얼굴 내밀기 힘들 정도의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한 명함을 꺼내들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아름다운 말의 진위를 가리기도 힘들어졌습니다.
최근 경희대 재학 중인 여학생이, 환경미화원에게 욕설 하는 장면이 공개되어 인터넷과 언론을 뜨겁게 달구었지요.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사람을 절망과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말이 무기가 될 수가 있지요. 천차만별, 인간사.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자라온 배경이 다르기에 별의 별 일들이 다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같은 사람에게 그런 욕을 할 수가 있을까요? 천륜이 무너지고 인륜이 무너진 세상. 너무 많은 정보, 물질적 풍요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정신력 분산의 시대, 집중력 결핍증에 빠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지고 있습니다. 집중이 되지 않으니, 불안하고 신경만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속도의 시대, 빠름만을 재촉하고 경쟁지상주의는 한국 사회 곳곳에 암초처럼 도사려 있어 사람의 심리 상태를 흔들어 놓고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신뢰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 사회적 쇠퇴기(도덕적 쇠퇴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정직성, 배려, 신뢰, 겸손, 도덕성입니다. 그렇지만 한국 사회의 현주소는 어떤가요?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다양할 수가 있겠지만, 인문학과 대학의 추락 때문이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문학을 협소하게 정의 내려 말씀드린다면, 교양입니다. 미국 역대 두 번 째 갑부의 아들로 태어난 미국 인기 앵커 앤더슨 쿠퍼는 아이티 지진 현장에서 생사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직접 구출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앤더슨 쿠퍼는 말합니다. “인간이 되는 게 먼저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이 갖추어야 소양을 체득하는 겁니다.
소양은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요. 가정과 학교에서입니다. 어쩌면 평생에 거쳐 인간이 인간다움을 추구해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인문학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거름 같은 존재입니다. 출세학도 필요하지만 인문학독서를 통해 사고하고 고민하고 깨닫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외국의 석학들은 지금 세계촌은 문화의 쇠퇴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런 징후들이 보이니까요. 독서의 힘과 함께 필요한 것은 대화의 복원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의 대화는 너무 중요하지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있습니다. 깊이도 없어지고 있지요. 집중력 상실의 시대는 사람들의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만듭니다. 미국인 중에 4분의 1은 마음을 터놓을 절친한 친구가 없다고 합니다. 가정에서 생활하는 6세 미만의 어린이 중 3분의 2가 깨어 있는 동안의 절반 이상을 TV를 켠 채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과학문명은 이렇게 발달되고 있는 있는데 인간은 정서를 불안하게 만드는 수많은 장치들이 삶 주변을 옥죄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관계가 점점 더 신뢰를 잃고 소모적이 되어 가는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정직성, 서두르지 않는 침착함, 그리고 배려가 아닐까요? 도덕적해이는 왜 발생할까요? 도덕성은 왜 추락하고 있는 걸까요. 대화는 막히고, 말의 폭력이 기승을 부리는 걸까요.
가정과 대화의 붕괴가 가장 큰 이유라고 꼽고 싶습니다. 비폭력 대화와 관련된 책을 쓴 분의 글이 떠오릅니다. “ 서로 존중하는 대화는 가정에서 시작해서 직장, 공동체 등에 이르기 까지 갈등을 해결하고 유지하고 화합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일 뿐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시대적 요청입니다”
억압과 저항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풍토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시나브로 도덕불감증은 더 심해질 것입니다. 건강한 공동체, 시민사회를 가로막는 벽은 먼저 대화의 회복입니다. 그런데 대화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정과 직장, 사회 곳곳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학습을 받아야 합니다.
싸움의 상대가 나에게 굴복하기를 바라지 말고, 상대가 나에게 찬사를 보내도록 마음을 써야 합니다. 상대가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도덕적 해이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습니다. 상대를 죽이고 가려하면 악순환만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도덕성과 신뢰의 추락과 사례들을 지켜 보면서, 인간의 길을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인가 절친한 선배의 아버님이 살해당하는 사건을 지켜보았습니다. 선생을 하시다가 정년퇴직한 이후 소일삼아 경비 일을 하셨던 아버님은 저녁 무렵, 한 젊은이가 술을 먹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을 보고 말기다가, 칼에 찔려 숨졌습니다. 대학생이었지요. 언론에서나 가끔 듣던 이야기인데... 가까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선배에게는 딸 같은 동생이 있었습니다. 아들만 셋 두다가 힘겹게 얻은 어린 딸을 위해 평생을 교육계에 종사하고, 딸 시집보낼 때까지 살아야겠다고 야밤 경비 일을 하셨는데..
개인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범죄를 어떻게 다 예방 하겠습니까. 하지만 소중한 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옛날에는 동네방네 어르신들이 다 스승이었지요. 핵가족화 된지 오래된 오늘은 어떠한가요.
평생 학습하는 마음으로 어른들도 공부를 할 때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를 배우고 나눌 때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언어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도덕성을 실추하게 만듭니다. 폭로나 비판 가지고는 이제 변화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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