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를 알아보는 5가지 관찰법

 

 

 

 

사람을 알아보고 인재를 뽑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이다. 특히 19대 총선에서 누구를 뽑아 국회로 보내느냐는 유권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인물을 뽑을 때 학력을 보기도 하고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어떤 학교를 나왔고, 어떤 지위에 올랐고, 어떤 일을 하며 살았는지는 사람을 선별하고 알아보는 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것만으로 사람을 뽑았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학교, 높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이며 국회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민을 우롱한, 일명 무늬만 좋은 국회의원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을 ‘one shot society’라고 표현했다. 젊었을 때 학력 한방(one shot)이 그 사람의 평생을 결정하는 고착화된 사회라는 것이다. 젊었을 때 공부 잘해 좋은 대학만 들어가면 그 사람이 그 뒤 어떻게 살았든 그리 중요하지 않다. 명문대라는 무늬가 그 사람의 평가를 좌우하는 것이다. 골프에서 드라이브 한 방 잘 쳤다고 해서 마지막 결과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비록 드라이브 한 방은 잘못 날렸어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버디도 할 수 있다는 것은 골프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보면 춘추전국시대 위()나라 신하 이극(李克)의 인재를 선발하는 다섯 가지 관찰법이 있다. 일명 사람을 알아보는 오시법(五視法)이다. 위나라 문후(文侯)는 이극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에 선생은 집안이 가난해지면 어진 부인이 필요하고(家貧則思良妻), 나라가 혼란해지면 유능한 재상이 필요하다(國亂則思良相)고 하였소. 지금 나라의 재상을 선발하려 하는데 어떤 사람을 재상으로 등용했으면 좋겠소?” 문후의 물음에 이극은 이오시법을 제시하며 인재를 등용해야 한다고 간언했다.

 

첫째, 거시기소친(居視其所親). 평소에 그가 누구와 친하게 지내는지를 관찰하라!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주변 사람을 먼저 보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과 친분을 맺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부시기소여(富視其所與). 그가 만약 부자라면 누구에게 자신의 부를 베풀고 있는지를 관찰하라! 그 사람이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치장하고 오로지 가족만을 위해 돈을 쓰는지, 아니면 어려운 사람에게 자신의 부를 나누고 있는지를 보라는 것이다. 셋째, 원시기소거(遠視其所擧). 그가 만약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사람을 채용하여 쓰고 있는지를 관찰하라! 그 사람이 뽑아 쓴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인재를 보는 눈을 알 수 있다. 아무리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사람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넷째, 궁시기소불위(窮視其所不爲). 그가 만약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그가 어떤 일을 하지 않는지를 살펴보라! 사람이 궁해지면 해서는 안 될 일도 서슴지 않고 하게 마련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다섯째, 빈시기소불취(貧視其所不取). 그가 만약 가난하다면 그가 취하지 않는 것을 관찰하라! 가난하면 받아서는 안 될 것을 받게 된다. 비록 힘들고 어려운 생활이라도 부정한 것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극의 인재판별 요점은 그 사람의 현재 처지에서 얼마나 적절한 행동을 하며 살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주변 사람과의 교유, 부의 공유, 인재의 등용, 변치 않는 지조, 물질에 현혹되지 않는 청렴 등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다. 사람을 선별할 때 눈에 보이는 학력이나 경력을 보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무늬만 보고 잘못 결정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본질을 꿰뚫고 진실을 볼 줄 아는 인재를 보는 눈이 필요한 시기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http://www.dongabiz.com/PersonalCapacity/Leadership/article_content.php?atno=13060308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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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자여, 비단 옷 위에 삼베옷을 걸쳐라!

 

 

 

 

 

성공을 하는 것보다 성공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고 한다. 이유는 다양하다. 성공하는 순간 교만과 자만으로 으스대다 새로운 성공의 길을 못 찾고 실패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고 때로는 남의 시기와 질투로 성공의 자리에서 오래 못 있고 끌려 내려오기도 한다. 그래서 성공은 영원히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며 여러 사람이 교대로 성공의 자리에 앉았다 내려오는 일시적인 순간일 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명심보감>에는 성공과 실패는 잠시 맡는 배역일 뿐 영원하지 않다는 시()가 있다. ‘꽃이 지네, 꽃이 피네, 피었다가 또 지네(花落花開開又落), 비단옷 삼베옷 번갈아 갈아입네(錦衣布衣更換着), 부자 집도 항상 부귀하지 않고(豪家未必常富貴), 가난한 집도 항상 적막한 것은 아니네(貧家未必長寂寞).’ 꽃이 피고 지는 것이 인간의 흥망성쇠와 닮아 있다는 이 시는 지금의 성공과 실패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화려한 정치이력을 가지고 있던 성공한 정치인이 오점을 남기며 하루아침에 몰락하는 것이나 재계를 주름잡던 성공한 경제인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기업이 위기에 몰리는 것은 성공과 실패가 영원하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실례다. 그렇다면 비단 옷과 삼베옷을 번갈아 갈아입는 인생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며 살 것인가?

<중용(中庸)>이 말하는 해법은 간단하다. 비단 옷을 입었을 때 그 비단 옷 위에 삼베옷을 걸치라는 것이다. ‘의금상경(衣錦尙絅)’ ‘비단() 옷을 입고(), 삼베옷()을 걸쳐()!’ 비록 지금 비단옷을 입고 있지만 으스대거나 자랑하지 말고 삼베옷을 걸쳐 자신이 입고 있는 비단 옷을 가린다는 뜻이다. ‘의금상경(衣錦尙絅)’은 원래 <시경(詩經)>에 나오는 구절로 옛날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가사였다. ‘비단 옷을 입고 그 위에 삼 옷을 걸쳐 입어야지. 내 화려한 빛을 뽐내지 말아야지.’ 이 시()를 쓴 사람의 의도는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성공에 빠지지 말고 늘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중용>은 이 시경의 구절에 대하여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군자의 인생은 은은하게 날마다 빛이 나지만 소인의 인생은 확연히 빛나다가 점점 그 빛이 사라진다. 군자의 인생은 담박해 언제나 싫증나지 않고, 단순한 것 같으면서 빛이 나고, 온화하면서 조리가 있다. 멀리 가려면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바람이 불어오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고,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이 나중에 어떻게 변하여 드러날지 정확히 알고 있다.’ 화끈한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점점 자라는 봄 동산의 풀처럼 은은하게 빛이 발하는 성공은 오래 지속(sustainable)이 가능하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조그만 조짐 속에서 일이 어떻게 변해갈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그 조직의 흥망(興亡)이 결코 하루아침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을 무시했을 때 일어난다(天下難事必作於易). 천하의 큰일은 결국 반드시 조그만 일에서 시작된다(天下大事必作於細). 그래서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지 않아야 진정 위대한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聖人終不爲大 故能成其大).’ 노자도 성공한 사람이 어떻게 어려움을 당하고 몰락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를 크다(不大)하지 않아야 진정 크게 될 수 있다(成大)’는 노자의 성공유지 비결은 <중용>의금상경(衣錦尙絅)’과 닮아 있다.

 

난세를 살아가면서 성공에 집착하지 않고 살아야 성공을 유지할 수 있다는 철학은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인생의 화두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http://www.dongabiz.com/PersonalCapacity/Leadership/article_content.php?atno=13060307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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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성실(誠實)이다

 

 

 

주식시장이 대선테마주란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이름으로 소란스럽다. 어느 정당 비대위에 참가한 사람의 인척이 다니는 회사라는 소문만으로도 대선테마주가 돼 몇 배가 오르는 기현상은 도저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한 주식시장의 모습이다. 사회적 인기와 영합해 인지도만 높으면 하루아침에 높은 자리에 오르는 원칙 없는 발탁인사 역시 성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허탈감을 주고 있다. 도저히 성실하게 산다는 것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손해만 본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 사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성실(誠實), 정말 위대하고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오래된 가치다. 성실하게 살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는 상식이 통하고 원칙이 살아 있는 사회다. 적어도 한국의 근대화는 성실로 무장한 성실한 사람들의 위대한 결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양에서 성실은 우주의 원리이며 우주의 본질이다. 하늘은 높아서 세상을 덮어주고(天覆), 땅은 두꺼워 세상을 실어준다(地載). 그런데 그 우주는 성실로써 만들어진 것이다. 조그만 입자가 성실하게 쌓여 넓어지고(), 두터워지고(), 높아지고(). 밝아지고(). 멀어지고(), 오래된() 결과가 우주이며 천지(天地)인 것이다. 우주, 결국 성실의 위대한 결과이며 성실의 위대한 현현이다. 오늘날 위대한 기업은 성실한 자세로 묵묵히 기업이 가야 할 길을 가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객의 신뢰를 잃지 않고, 넓고 큰 시장을 확보한 기업이다. 성실은 지속적인 기업의 생존을 보장하는 위대한 가치이며 앞으로 성실함이 없다면 기업의 존립도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중용(中庸)>에 보면 성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이루는 원리이며 성실함이 없다면 어떤 존재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불성무물(不誠無物)’, 성실함이 없다면 존재()도 없다는 <중용>의 구절이다. 보이지 않는 먼지 속에도 성실이란 원리가 숨어 있다. 위대한 기업도 성실을 통해서 이뤄진 것이며 성실이 없다면 조직의 존립자체가 불가능하다. 세상의 모든 존재의 근원은 성실이며, 변화와 혁신의 기반도 성실이다. 성실은 지난 시대의 지나간 유물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또다시 안고 가야할 의미 있는 가치이다. 세상에 모든 것은 성실함을 통해 이뤄졌고, 성실함을 통해 존재하며, 성실함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 높은 산도 한 주먹의 돌이 성실하게 뭉쳐져서 만들어진 존재이며 저 넓은 바다도 한 움큼의 물이 성실하게 모여져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도 역시 이 우주의 성실함을 본받아야 한다. 요즘 성실함을 멀리하고 오로지 한탕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거머쥐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공천을 잘 얻어 국회위원만 되면 된다고 생각하며 한탕을 노리는 선량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한탕 잘해서 평생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기업인들, 이런 사람들의 불성실한 삶은 결국 온전하게 끝나지 못할 것이다.

 

‘지성감천(至誠感天)’은 우리 한국인의 인문학적 유전자 속에 깊이 박혀 있는 철학인자다. 지극한 성실은 하늘이 감동하고 결국 꿈과 희망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철학으로 우린 몇 천 년의 역사를 면면히 써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지성능동(至誠能動)’은 성실은 감동을 낳는다는 뜻이다. 성실함은 상대방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다고 해도 성실한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다. 잠깐은 능력이 먼저갈 수 는 있어도 결국 성실에는 지고 말기 때문이다. ‘성실은 우주의 원리다(誠者 天之道也).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이다(思誠者 人之道也).’ <맹자>에서 말하는 성실의 정의다. 우주가 돌아가는 원리는 성실이며 인간은 그 성실함을 늘 생각하고 닮으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재주가 덕을 이기(才勝德)는 전도된 사회현실 속에 묵묵히 성실함으로 일관된 길을 가고 있는 사람과 기업은 반드시 승리한다. 성실은 하늘의 원리이자, 인간이 가야할 위대한 길이며, 성실이 없다면 어떤 존재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성실이 답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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孝의 재해석

 

 

 

세상에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인간관계라고 한다. 인생을 살면서 주변과 조화로운 상태를 유지하며 서로 배려하고 존경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녹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과의 원만한 관계(父子有親), 부부 간의 역할과 애정(夫婦有別), 회사와 직원과의 화합과 의리(君臣有義), 노인과 젊은이들 간의 아름다운 양보와 형제 간의 우애(長幼有序), 그리고 동료와 친구들 사이의 믿음과 우정(朋友有信), 이 모든 덕목들은 결국 좋은 인간관계에서 시작된다. 아무리 출세를 하고 돈을 벌어도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성공이 아름답지 않게 보인다. 결국 인간은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가치에서 보면 아름다운 인간관계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부터 잘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기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효()는 나와 가장 가까운 부모와 자식 간의 인간관계 덕목이며 모든 관계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부모와 사이가 원만하지 못한 사람이 밖에 나가 아무리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유지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조직에서 훌륭한 리더가 된다는 것은 가정에서 얼마나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돈돈히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었고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는 결국 위대한 리더가 치국(治國)과 평천하(平天下)를 하기 위한 기반이 됐던 것이다.

 

문제는 효도의 개념이다. 효도가 역사 속에서 부모의 병환을 낫게 하기 위해 찬 겨울에 얼음물 속으로 뛰어들어 잉어를 잡는 것이나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부모에게 드리는 이상하고 엽기적인 형태로 오도됐지만 그것은 왕권 차원에서 효도를 조직적으로 왜곡한 모습이다. 효도는 부모와 자식과의 원활한 세대교체와 문화의 계승 및 발전의 측면에서 다시 고찰돼야 한다.

 

<중용(中庸)>에 보면 인간관계의 시작인 효()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다. ‘효도는 조상의 뜻을 잘 계승해(孝者 善繼人之志), 그분들이 하고자 했던 사업을 내 시대에 잘 펼치는 것이다(善述人之事者也).’ 일명계지술사(繼志述事)’라는 사자성어가 나오는 구절이다. 조상의 뜻()을 잘 계승해(),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가는 계지술사(繼志述事)가 효라는 정의다. 효는 부모에게 맛있는 음식을 올리고 편안히 모시는 것도 있지만 다음 세대가 전 세대가 가졌던 꿈을 이어받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펼쳐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다. 일명 세대의 계승과 발전 차원에서 효를 논한 것이다.

 

가정이라는 조직이 계지술사(繼志述事)의 효를 통해 발전해 나가듯이 조직도 역시 계승과 발전 차원에서 효()를 논해야 한다. ()는 단순히 가정의 윤리가 아니라 조직의 꿈과 사업의 계승이라는 차원에서 다시 고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얼마 전 POSCO의 박태준 명예회장이 작고하면서 POSCO의 창립 세대들이 꾸었던 꿈을 재조명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가는 계지술사(繼志述事)의 움직임 역시 효()의 새로운 측면에서 고찰한 것이다.

 

가정은 물론 국가와 기업은 지속돼야 한다. 지속은 지나간 세대와 새로운 세대와의 아름다운 관계의 미학이며 지나간 세대의 꿈을 계승해 새로운 세대의 사업을 펼쳐나가는 것이다. 과거의 원만한 계승 없는 새로운 것은 지속할 수 없다. 아울러 새로운 발전 없는 계승 역시 지나간 시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지나간 세대의 뜻을 이어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가라! 계지술사(繼志述事). 임진년 화두로 삼고 싶은 구절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http://www.dongabiz.com/Business/General/article_content.php?atno=12060411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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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워져야 소나무의 진가를 안다

 

 

 

연말연시, 연일 모임과 술자리가 이어진다.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 이런저런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 인생을 살면서 함께 협력해야 하고 만나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관계망들이다. 우리는 이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좋은 친구를 만나면 천 잔 술도 맛있다(酒逢知己千鍾少)’는 속담이 있다. 나를 알아주는 지기(知己)와 함께 하는 술자리는 기분 좋게 취할 수 있고 술도 맛있게 잘 들어간다는 의미다. 반면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억지로 만나 술을 같이 마시면 한 잔 술도 쓰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비싼 술과 안주를 먹더라도 술맛이 나지 않다.

 

친구를 뜻하는 단어는 고전에 많이 나온다. ‘나의 소리()를 알아준다는 뜻의 지음(知音)이나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지기가 친구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말들이다. 이 밖에도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동지(同志)’, 같은 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동성(同聲)’,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동기(同氣)’ 등 친구를 의미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명심보감(明心寶鑑)>은 친구를 두 가지 유형으로 정의하고 있다. 바로주식형제(酒食兄弟)’급난지붕(急難之朋)’이다. 주식형제는 말 그대로술 마시고 밥 먹을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라는 뜻이다. ‘주식형제천개유(酒食兄弟千個有)! 술 마시고 밥 먹을 때 형 동생 하는 친구들이 천 명이나 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때는 좋을 때다. 사업도 잘되고 승승장구한다. 형 동생 하며 친구하자고 사람들이 줄을 선다. 좋을 때이니 평생 함께하자고 굳은 맹세를 한다. 때로는 의형제도 맺고 폭탄주로 재차 확인까지 들어간다.

 

주식형제는 힘들고 어려울 때 진면목이 나온다. 막상 급하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평소 내 앞에서 잘하던 사람이 안면박대(顔面薄待)를 하거나 심지어 나를 궁지에 모는 일도 있다. 그때 실망감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급난지붕은 급하고 어려울 때 나와 함께 있어 주는 친구다. 막상 어려운 일을 겪고 보면 급난지붕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절감한다. 급난지붕을 사귀려면 나이(), 지위(), 관계(兄弟)를 떠나 속을 터놓고 교류하며 마음을 나눠야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해관계를 떠나서 사귄 친구가 비로소 급난지붕이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며 겪는 우환(憂患)과 환난(患難) 속에서 내게 손을 내밀어 위로하고 고통을 나눠줄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난초를 가까이 하면 난초 향기가 내 몸에 스며들듯이 좋은 친구와 인생을 함께하면 나도 좋은 사람으로 변한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인생을 살아가는 친구들을 만나면 자신도 어느덧 날마다 발전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허나 술 좋아하고 노는 것을 즐기며 허송세월을 보내는 친구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날이 추워봐야 소나무, 잣나무가 추운 겨울에 시들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힘들고 어려워봐야 진정한 친구도 알 수 있다. 술자리가 빈번하고 저녁시간 만남이 잦은 연말에는 누굴 만날까를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 아무런 고민 없이 만나잔다고 닥치는 대로 약속을 잡아 만난다면 몸도 상하고 인생만 허비할 수도 있다. 연말연시 송년회와 신년회 일정으로 빡빡한 요즘, 오늘 저녁 만남이 주식형제를 만나는 건지, 급난지붕을 만나는 건지 한번쯤 돌이켜 봐야 할 것 같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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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참맛을 느끼려면…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그 음식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人莫不飮食也, 鮮能知味也).’ <중용(中庸)> 4()에 나오는 말이다. 일명지미(知味)’의 철학이다. 맛을 느끼지 못하고 오로지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은 인생을 살면서 삶의 참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오래 사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2040년에 이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90세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생리적으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다고 해도 인생의 맛()를 모르고 그저 나이만 많이 먹는다면 장수(長壽)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왜 인생의 맛을 모르고 사는 것일까? 똑똑하고() 잘난() 자들은 늘 넘치고, 어리석고() 못난(不肖) 자들은 늘 뒤처지기 때문이다(知者過之 愚者不及 賢者過之 不肖者不及). 유능하고 잘난 사람들은 사회적 명예와 성공을 위해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인생이 그리 맛있는 인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무능하고 어리석은 사람들 역시 인생의 제대로 된 맛을 알며 살기에는 역부족이다.

 

인생의 맛을 알며 사는 지미(知味)의 인생은 저 멀리 떨어져 있거나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서 느끼는 아주 일반적이지만 의미 있는 것들, 이런 인생의 맛을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라고 한다. ()나라 소강절(邵康節)이라는 사람은 어느 날 늦은 저녁 밤하늘의 달을 보고,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인생의 가장 맛있는 순간이라고 읊으면서 그 일상의 맛을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라고 정의했다. 그 맛은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이 느끼는 인생의 맛이라는 것이다. 맛은 비싸거나 특별하거나 기이한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에서 나만이 느끼는 맛이 지고지미(至高之味)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의 맛은 여덟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일명 인생을 맛있게 사는인생팔미(人生八味)’. 첫째는 음식지미(飮食之味)로 살기 위해서 음식을 몸속에 넣는 게 아니라 음식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맛을 느끼며 먹는 것이다. 둘째는 직업지미(職業之味)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을 통해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일하는 것이다. 셋째는 풍류지미(風流之味)로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는 여행이나 취미가 아니라 바람처럼 물처럼 나의 자유로운 영혼을 여행이나 취미를 통해 느끼는 맛이다. 넷째는 관계지미(關係之味)로 가족, 형제, 동료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갖는 게 아니라 만남 속에서 기쁨을 얻기 위해 만나는 맛이다. 다섯째는 봉사지미(奉仕之味)로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남에게 봉사함으로써 얻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여섯째는 학습지미(學習之味)로 하루하루 배움과 깨우침 속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나가면서 느끼는 맛이다. 일곱째는 건강지미(健康之味)로 그저 육체 덩어리 육신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갖춘 내 몸을 느끼는 것이다. 여덟째는 인간지미(人間之味)()’라는 존재를 규명해나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맛이다.

 

귀한 자리에 오르고 아무리 돈이 많더라도 이 인생팔미를 제대로 알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맛은 일상의 맛이며, 의미의 맛이다. 내 스스로가 느끼려고 해야 느끼는 것이며 부귀(富貴)와 빈천(貧賤), 환란(患亂)과 우환(憂患)은 인생팔미에 그리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인생의 맛을 느끼며 사는 인생팔미(人生八味), 그것은 비싸고 어렵고 높은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생각만 바꾸면 바로 우리의 일상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의 맛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http://www.dongabiz.com/PersonalCapacity/Self_Control/article_content.php?atno=13030263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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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중화전 : 때를 아는 ‘中和’의 지혜

 

 

리더에게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상황에 맞게 적절한 결정을 하는 것이다. 화를 내야할 때 적절히 화를 내거나 슬퍼해야 할 때 적절히 슬퍼할 줄 아는 것처럼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과 행동을 시중지도(時中之道)라고 한다.

 

상황()은 늘 변한다. 상황 변화에 따라 가장 균형 잡힌 최적의 황금률()을 찾아내는 것이 시중(時中)이다. 여기서 중()은 정해진 실체가 아니다(中無定體).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다(隨時而在). 내 눈앞에 음식이 맛있다고 과식하거나 운동으로 건강을 보충해야 할 때 일을 핑계로 이를 소홀히 한다면 시중지도를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한다거나 역량이 있는데도 소심하게 현실에 안주한다면 이 또한 시중지도를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시중(時中)의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이거나,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극단이 없다. 오로지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진실만이 있을 뿐이다(眞實無妄).

 

<중용(中庸)>에서는 군자와 소인의 인생을 비교하면서 군자는 시중지도를 실천하는 사람이며 소인은 시도 때도 모르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군자지중용야(君子之中庸也)는 군자이시중(君子而時中)이다!’(군자의 중용적 삶은 때를 잘 알아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중심을 잡아 사는 것이다!)

 

‘소인지반중용야(小人之反中庸也)는 소인이무기탄야(小人而無忌憚也)니라!’(소인의 반중용적 삶의 형태는 시도 때도 모르고 아무런 생각 없이 인생을 막 살아가는 것이다!)

 

옛 어른들은사람은 때()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나서야 할 때가 있고, 물러나야 할 때가 있고, 말 할 때가 있고, 침묵해야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사람은 늘 때를 알아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시중(時中)은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평형(Equilibrium)이다. 치우치지도 않고(不偏), 기울어지지도 않고(不倚), 넘치거나 모자라지도 않는(無過不及) 것이다. 둘째는 역동(Dynamic)이다. 정지된 중용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중용이다. 셋째는 지속(Maintenance)이다. 잠깐의 평형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기업이 다양한 제품을 통해 균형 잡힌 수익을 올리고(평형), 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며(역동), 지속유지가 가능하다(유지)면 시중지도(時中之道)를 실천하는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중(時中)의 극치는 중화(中和).

 

‘인간의 감정인 희노애락이 밖으로 표출되지 않은 상태를 중()이라고 한다(喜怒哀樂未發 謂之中). 그 희노애락의 감정이 밖으로 표출돼 적절한 시중(時中)의 원칙에 맞을 때를 화()라고 한다(發而皆中節謂之和).’

 

덕수궁에 있는 중화전(中和殿)이란 전각의 이름도 바로 이 구절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한 나라를 책임진 국왕은 감정의 표현에 있어서 늘 시중을 유지해야 하고 함부로 노하거나 기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중지도(時中之道)는 리더에게 늘 요구되던 덕목이었다. 보민(保民)과 보국(保國)의 관점에서 보면 리더의 개인적 감정과 명예, 타인의 비난은 어떤 결정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지켜야 할 사람이, 지켜야 할 조직이 있기에 리더는 늘 상황()을 읽어내고 그 상황에 기초해 가장 적절한 답()을 찾아 지속적으로 조직의 생존을 도모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시중지도(時中之道)를 실천하는 리더의 진면목(眞面目)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http://www.dongabiz.com/PersonalCapacity/Leadership/article_content.php?atno=13060285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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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hungry, Stay foolish!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의 사망 소식에 전 세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사람들이 잡스를 존경하고 애도하는 것은 그가 애플을 세워 실적을 올리고 회사를 키운 뛰어난 경영자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역경에 굴하지 않다. 그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화려한 꽃을 피워낸, 위대한 인간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은 감동하고 있는 것이다.

 

위대함은좋은 결과(Success)’만으로 달성할 수 없는 가치다. ‘이야기(Story)’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비록 힘들고 고달픈 인생의 여정이었지만 잡스의 성과 뒤에는 늘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인간이 좌절과 환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좌표가 됐다.

 

그는 2005년 스탠퍼드대 졸업식에서 한 연설 중에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영원히 기억될 화두(話頭)를 남겼다. ‘배부름보다 배고픔에 머물러라! 그 고통이 나를 늘 깨어 있게 하리라! 늘 모자라다고 생각하라! 그 낮춤이 나를 더욱 채울 것이다!’ 참으로 동양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없다면 나오기 힘든 말이다.

 

그가 밝혔듯이 그는 동양의 참선에 심취했었다.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짧은 이 한마디에서 이런 그의 정신사적 배경을 읽을 수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지식의 교만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이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일갈(一喝)이다!

 

Stay hungry!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군자를 역경 속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일명고궁(固窮)인간이다. ()은 어려운 역경이다. 위대한 군자(君子)는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역경 속에서 오히려 더욱 단단해()진다. 추사(秋史)는 제주도 유배지에서 추사체란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다산은 강진 유배지에서 다산(茶山) 실학(實學)을 완성했다.

 

위대한 리더에게 배고픔은 더 강해지는 계기다. ‘궁즉통(窮則通)’이라! 궁한 상황은 새로운 통()으로 난 기회의 길이다. <맹자(孟子)>에는 역경이 인간을 더욱 강하게 할 것이란 뜻으로사어안락(死於安樂, 생어우환(生於憂患)’이라고 정의한다. ‘안락한 일상이 나를 죽일 것이오, 배고픈 상황이 오히려 나를 살릴 것이란 뜻이다. 안락한 삶이 나를 달콤하게 하지만 성장은 멈출 수밖에 없고 우환과 역경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새로운 성공을 찾아내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Stay foolish! <도덕경道德經>에서 노자는 지식을 비우고 어리석음으로 사는 것이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의 인생방식이라고 정의한다. ‘대지약우(大智若愚)’, 위대한 지혜를 가진 사람은 바보처럼 보인다. 바보는 늘 지식에 굶주려 있다. 새로운 지식으로 나를 무장하기 위해 교만한 천재보다 겸손한 바보가 돼야 한다. 청나라 정판교란 사람의 인생철학, ‘난득호도(難得糊塗)’ 역시 같은 맥락이다. 똑똑한 사람이 자신의 광채를 줄이고 바보처럼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강하기 때문에 낮출 수 있고, 채웠기 때문에 비울 수 있으니, 그 비움은 새로운 채움을 위한 새로운 도약이다.

 

역경()과 겸손()은 스티브 잡스 인생의 핵심가치였다. 그는 안락한 삶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선택했다. 교만한 천재보다 겸손한 바보로 남고 싶어 했다. 뭔가를 이루고도 버릴 줄 알았고 채우고 비우는 지혜가 있었다. 21세기가 지나가는 역사의 어느 한편에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우리가 늘 잊지 않아야 할 화두를 그의 삶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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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에 걸린 양머리- 양두구육(羊頭狗肉)  

 

 

Occupy Wallstreet(월가를 점령하라)!’

 

 

 

금융가의 탐욕에 반기를 든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는 부자들의 탐욕과 높은 실업률에 항의하며 미국판 촛불시위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금융가의 과도한 탐욕이 사회를 불평등하게 만들었고 빈곤층의 상대적 빈곤감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게 이들이 시위에 나선 이유다. 도덕적 해이에 빠진 금융계와 통제력을 잃은 정부에 대한 경고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경제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목표가 이윤추구라고 가르친 서양의 경제 교과서는 이제 기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려야 할 때인 것 같다. 이윤만 추구한 결과가 결국 오래가지 못한다는 게 이번 사건이 던진 교훈이다.

 

금융업은 경제 주체들을 위해 자본을 연결해주고 자본을 활성화해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해왔다. 하지만 멋진 은행 건물과 인테리어, 신사복과 정장으로 빼입은 직원들의 웃음과 매너와 같은 겉모습의 이면에는 자본에 대한 탐욕과 이윤에 대한 무차별적인 추구가 숨겨져 있었다.

 

그동안 미국 금융계의 중심 월가는 그럴 듯하게 포장해 자신들의 모습을 위장했지만 속으로는 이윤과 탐욕에 물들어 있었다는 게 시위대의 생각인 것 같다. () 머리를 걸어놓고 실제로는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사자성어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는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나 실제로는 형편없다는 뜻으로 겉과 속이 다를 때 자주 사용된다.

 

양두구육은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오는 말이다. 어떤 상품이 포장이나 사진은 훌륭해 보이지만 내용물이 형편없는 제품이거나 겉은 멀쩡한 사람이 실제로 정신적 문제와 인성의 결함을 가지고 있다면 모두 양두구육의 모습이다. <논어(論語)>에 보면 아름다운 그림은 흰 바탕이 있은 후에 그려야 한다는 공자의 말이 있다. ‘회사후소(繪事後素)!’ 그림을 아무리 예쁘게 그려도 흰 바탕의 기본이 있어야 진정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뜻이다. 바탕이 깨끗하지 않으면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듯이 인간도 기본이 돼 있지 않다면 어떤 예의와 교양도 퇴색할 수밖에 없다.

 

밖에 양머리가 걸려 있으면 실제 파는 것도 양고기여야 한다. 겉은 돈()이 잘 섞이도록() 도와준다는 뜻의금융(金融)’이라고 써놓고 실제는 이익과 탐욕만 추구한다면 돈의 야만인이란 뜻의금융(金戎)’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계를 돌아보면 키코나 엔화대출 등으로 피해를 본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번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금융기관의 실적 올리기를 위한 무분별한 캠페인, 달콤한 말과 회유, 금융 감독기관의 도덕적 해이, 금융자산가들의 음성 결탁과 사치 등이 많은 기업들과 국민들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혐의를 벗을 수 없다.

 

동양의 상도(商道)는 이윤을 추구하되 정도(正道)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귀가 인간의 모든 욕망의 대상이지만 그것이 정당한 방법()을 통하지 않는다면 거부한다는 공자의 선언은 몇 천 년간 내려온 아시아인들의 기본 가치였다. 이번 월가의 시위를 보면서 이제 양두구육의 혐의를 벗고 양두양육(羊頭羊肉)의 정의가 실천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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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보고, 뛰고, 손으로 직접 행하라

 

 

 

 

전국적인 대규모 정전사태에 온 나라가 깜짝 놀랐다. 부정확한 정보와 데이터를 믿고 잘못 판단한 결과가 예고 없는 정전으로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느닷없는 정전에 엘리베이터에 갇히거나 산업 시설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저기서 피해를 하소연하는 목소리도 줄을 잇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엔 발로 확인하고 뛰는 현장주의 문화가 없어지고 그저 귀로 듣고 잘못된 정보만 가지고 판단하는책상물림문화가 만연해 있다. 조직을 책임지는 관리자들이 귀로 듣는 것만 아니고 나가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업무를 챙겨왔다면 이런 후진국형 정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여러 조직의 관리자 자리에 현장에 나가본 적도 없고, 현장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저 잠깐 머물렀다 가는 자리에 연연하며 다음은 어디로 가서 생업을 도모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는 이들도 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게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아무리 많은 정보와 데이터를 갖고 있어도 현장에 가서 한 번 눈으로 확인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한다. <한서(漢書)> ‘조충국(趙充國)을 보면 한나라 9대 황제였던 선제의 명을 받아 서역을 토벌하는 임무를 받은 조충국 장군이 현장을 제대로 살펴보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상대방보다 우위에 설 수 있다는 현장중심의 철학을 가진 조 장군의 경쟁전략이었다. 유향(劉向)이 쓴 <설원(說苑)> ‘정리(政理)’편에 보면 위()나라 문후가 그의 신하 서문표(西門豹)를 업()땅의 지방장관에 임명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책상에 앉아서 귀로만 듣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라는 것이다. ‘이문지불여목견지(耳聞之不如目見之). 귀로 듣는 것은 눈으로 보는 것만 못하다! 목견지불여족천지(目見之不如足踐之). 눈으로 보는 것은 발로 뛰는 것만 못하다. 족천지불여수변지(足踐之不如手辨之). 발로 뛰는 것은 손으로 직접 처리하는 것만 못하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대안을 내서 다스리라는 당부였다. 업지역은 황하의 물이 범람해 늘 수재로 고통받고 있었다. 그곳의 관리는 지역 향리(鄕吏), 무당과 결탁해 황하의 신에게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의 고혈을 빨고 있었다. 서문표는 업()땅에 부임해 직접 눈으로 보고 발로 뛰어 백성들의 고통을 확인했다. 그는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했고 정밀하고 현실적인 치수(治水)를 위해 노력했다. 이 결과 이 지역은 수재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풍요로운 곳으로 탈바꿈했다.

 

귀로 듣지 말고 눈으로 보라(目見)! 눈으로 보지 말고 발로 뛰어라(足踐)! 발로 뛰지 말고 손으로 직접 하라(手辨)! 리더가 돼 조직에 부임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할 화두(話頭). 그저 월급이나 타고 생계나 유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조직의 관리자가 된다면 이것은 하늘의 재앙을 부르는 일이다.

 

현장에는 나가보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서 귀로만 듣고 판단하는 것은 조직을 위태롭게 하고 나아가 조직의 존망까지도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번 대규모 정전사태나 부실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오로지 귀로만 정보를 듣고 있었던 관리자들의 부실임에 분명하다. 눈으로 보고 발로 뛰고 손으로 직접 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높은 자리를 사양하고 그저 조그만 자리에 머무는 게 국가를 위해 애국하는 일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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