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마'와 한집 사는 베트남 새댁 '팜 옥디엠 씨'
문화와 교육사이 2011. 6. 23. 14:58"엄마, 현동이 데려올게" 유치원 끝날 시간에 맞춰 아들을 데리러 가는 베트남 새댁 팜 옥디엠 씨가 현관문을 나서며 이렇게 소리친다. 마치 친정집에 얹혀사는 막내딸 같다. 칠순이 넘은 시어머니는 늘 있는 일이라 그냥 그러라고 대답할 뿐이다. 한국에 시집온 지 5년째인 팜 옥디엠 씨는 시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 게다가 반말 투다. 하지만 이들에게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어머니란 말이 발음하기 어려워요. 그냥 엄마라고 부르면 편해요."
발음이 어렵다고 하니 격식을 따지라고 다그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며느리 변명에 시어머니는 "친정이 멀리 떨어져 있어 외로울까봐 엄마라고 부르라"고 한단다. 그이도 며느리의 베트남 이름이 발음하기 힘들어 그냥 "새아야!"하고 부른다. 사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남들이 며느리 이름을 묻기라도 하면 그저 "김옥김인가?" 한다. '팜 옥디엠'이라는 낯선 이국 이름의 '어머니'식 발음이다. 이렇게 둘 다 격식을 떠나 서로 편한 선택을 하며 산다.
▲시어머니 등에 기대는 며느리와 거뜬히 그 등이 되어주는 어머니
올해 26세인 팜 씨는 스물한 살에 지금의 남편(44, 회사원)을 만났다. 유치원에 다니는 5살배기 아들과 6개월 뒤에 태어날 둘째 아이도 있다.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첫눈에 반했고 반대가 심했던 친정부모를 졸라 허락을 얻어냈다. 신랑감이 18세 연상인데다 어린 딸이 먼 나라로 시집가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고 나니 마음을 조금 놓으셨단다. 베트남에 있는 언니들이나 친정엄마는 TV 드라마에서 구박받는 며느리를 보면 혹 자신들의 동생과 딸도 그런 대접을 받는가 하여 전화할 때마다 "시어머니가 잘 해주냐"며 꼭 한 번씩 물어본다. 친정부모의 걱정과 달리 팜 씨는 "시엄마가 없으면 살림살이나 아이 키우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시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그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는 '귀엽고 예쁜 막내며느리'가 아닐 수 없다. 시어머니는 손자가 글씨를 읽고 쓰기를 잘 한다며 "엄마를 닮아 똑똑하다"고 자랑한다. 여느 시어머니들은 잘난 건 아들 덕분이고 못난 건 며느리 탓이라고 하기 쉬운데 그이는 며느리 사랑이 남다르다.
팜 씨는 남편보다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다. 아침밥은 팜 씨가 차린다. 남편이 출근하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준다. 이때 시어머니는 청소를 한다. 청소는 거의 시어머니 담당이다. 팜 씨는 4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쓸고 닦고 정리하는 한국 집안일이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베트남 여성들 대부분 아침에 간단히 청소를 마친 후 밖에 나가 일하고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기에 하루 종일 집안에서 걸레 들고 이곳저곳을 닦는 한국 여성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한다. 낮에는 이웃 공장에서 일감을 가져와 시모와 며느리가 함께 부업을 한다. 자동차 부속품을 다듬는 일인데, 가끔 현동이도 일을 거든다. 온종일 일해서 하루 2만 원 정도 벌이를 한다. 저녁 식사 준비는 두 사람이 함께 한다. 팜 씨가 가장 잘 하는 건 매운탕과 찜류다. 시어머니에게 요리를 잘 배운 덕에 이제는 도움 없이 혼자서도 척척 해낸다.
농사철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밭일을 한다. 반찬거리를 길러 먹는 텃밭 치고는 규모가 조금 큰 편이다. 수확하면 자신들이 먹을 것에 조금 넘쳐 팔 수 있는 게 남는 정도다. 시어머니가 거의 도맡아 하지만 팜 씨는 친정에서도 농사일을 해왔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잘 해낸다. 현동이를 낳고 기를 때도 시어머니의 도움이 컸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처음 겪는 일이라 산후조리에서 아이 키우는 것까지 시어머니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만간 둘째 아이가 세상에 나올 텐데, 시어머니는 아이와 산모를 보살펴주는 일을 당연히 당신의 일이라고 말한다. 며느리의 돌봄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으련만, 며느리를 탓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 오히려 우리나라 젊은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럴 때 며느리도 "우리 엄마 정말 좋아요. 엄마 손이 닿는 음식은 신기하게 맛있어요"하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세운다. 낯선 사람들과 살면서 외로움을 탓을 법한데 오히려 시어머니에게 살림을 배우며 외로움을 덜 수 있었다.
"일 많이 하는 베트남여성에 비해 한국 여성들 여유로워요"
한국에 시집온 지 4년의 세월이 지나는데 그이는 한국 여자로 사는데 얼마나 익숙해졌을까. 이제 법적으로도 한국 사람이 되었고 한국말도 곧잘 하지만 팜 씨는 아직도 베트남 여성들과 한국 여성들의 생활을 비교하게 된다."베트남 여자들은 어릴 때부터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는다. 농촌에서는 들에 나가 일하는 시간이 길어 집안 살림은 새벽 잠깐과 저녁 이후 잠깐 해요. 베트남에선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일을 더 많이 해요." 한국 여성들이 집안 살림을 많이 하는 것에 비하면 베트남 여성들은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게 차이점이라고 한다. 팜 씨도 12세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물이나 물건을 지게에 담아 나르느라 어깨 근육이 유난히 발달해 있다. 한국에 시집와서도 다문화 공동체운동을 펼치는 <국경 없는 마을>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통역을 했다. 지금은 둘째를 임신해 그 일을 접어 두고 있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취직할 생각이다. 그동안 컴퓨터 한글 문서 작성법을 배웠고 앞으로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교육을 받으려고 한다. 팜 씨는 일에 대한 욕심이 많다. 베트남여성들이 대개 그렇다고 한다.
"유치원 숙제할 때 엄마 노릇하기 힘들어요"
하루 일과 중 팜 씨가 가장 즐거워하는 일은 아침저녁으로 아들 현동이와 함께 유치원에 오가는 일이다. 걸어서 5분만 가면 되는 곳이라 통학용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는 대신 아들 손을 잡고 유치원을 걸어서 오간다. 오후 4시 즈음.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찬바람이 매서운 날이라 아이를 일찍 데려오려고 여느 날보다 1시간 먼저 유치원에 갔다. 엄마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들 현동이는 유치원 문을 박차고 뛰어나온다. "엄마" 하며 달려오는 아들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엄마 모습이 마치 오래 떨어져 있다 다시 만난 사람들처럼 각별하게 살갑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이 고루 느껴지는 잘 생긴 아들이다. 아들을 대하는 팜 씨의 표정과 말투가 다른 때보다 정교하다. "오늘 간식은 뭐 먹었어? 재미있었어?"하며 이것저것 물어보는 엄마에게 현동이는 오늘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늘어놓는다. 엄마가 한국이 아닌 베트남 사람이고 말이 조금 어눌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현동이는 부족함이 없다. 엄마와 유치원 숙제도 하고 동화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팜 씨도 여느 엄마들처럼 직접 동화책을 읽어준다. 동화책을 읽어주면서 저절로 한글 공부가 되는 것도 있지만, 읽는 것에 자신이 있어서다. 쓰기는 팜 씨에게 아직 어렵다. 하지만 다행히 아들의 한글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부쩍 늘고 있다.
현동이는 엄마와 함께 베트남 외가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마침 이번 설에도 한 달 간 외가를 방문할 예정이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현동이에겐 이번이 세 번째 베트남 방문이다. 팜 씨는 현동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께 전할 베트남 인사말을 가르쳐주었다. 곧잘 따라하고 잘 외운다. 이번 친정 나들이는 둘째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인사하려는 것이다. 친정 엄마가 편찮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팜 씨의 마음은 벌써 베트남의 고향에 가 있다. 명절이면 보통 며느리가 시댁의 차례 상을 차려야 하지만 시어머니는 개의치 않고 며느리의 친정방문을 허락했다. 어느 해보다 추위가 매서워 더운 나라에서 자란 팜 씨가 곤혹스러워한 것도 시모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다.
팜 씨는 젊은 새댁답게 20대의 순진함과 씩씩함으로 동네에서 집안에서 재미를 찾으며 살아간다. 동네에서 현동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똘똘 굴러가는 발음으로 말을 걸기도 하고, 반말 투로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웃들과는 오랫동안 함께 지내온 사람들처럼 허물이 없다. 이국사람에게 있을 법한 서먹함이 전혀 없었다.두 시숙과 형님들에게도 그이는 스스럼없는 막내 제수고 동서일 뿐이다. 팜 씨가 베트남 요리라고 만들어 내놓는 월남 쌈과 튀김 전병인 짜요를 먹으면서도 시댁 식구들은 전혀 낯설어 하지 않는다. 지난 4년이 가족들의 사이를 그만큼 좁혀 놓았다.
팜 씨는 자신이 뿌린 내린 한국을 더 잘 알아가려고 애를 쓴다. 며느리, 아내, 엄마 노릇을 모두 제대로 하려고 고민한다. 쉼없이 부업을 하는 것도 남편에게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다. 베트남 새댁 팜 씨는 자신의 자리에 맞는 '노릇하기'에 열중하는 평범한 한국의 젊은 새댁이다.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은 얼마나 될까?
서로 다른 국적‧인종‧문화를 가진 남성과 여성이 만나 이룬 '다문화가정'이라는 용어는 이전에 쓰던 혼혈인, 혼혈 가정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대신하기 위해 2003년 건강시민연대가 제안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09년 5월 현재 결혼이민자 수는 16만 7천 명이고 이 가운데 여성이 89.7%로 전체 인구의 0.3%에 달한다. 이들 중 한국 국적을 얻은 사람은 4만 천 명으로 75.2%는 아직 외국인 신분이다. 출신 국적은 한국계를 포함한중국이 46.9%로 가장 많고, 베트남이 29.4%, 필리핀이 6.6%순이다. 다문화가정을 이룬 이들은 이제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전라남도의 경우 해마다 농어업 종사자의 50% 가까이가 이주 여성들과 다문화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취업 등의 이유로 이주해 우리 사회의 '다문화' 구성원으로 함께 살고 있는 이들은 2010년6월 현재 120만 8천 544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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