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들만 셋 있는 목 메달 엄마이다.

남들은 하나도 키우기 힘든 아들 셋에

남의 아들 (남편)까지 건사하느라

내 인생의 반은 눈물과 한숨으로 보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아들 녀석들 덕분에

소중한 인연들을 만나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냄새

진하게 풍기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

 

 

나는 방이동에서만 15년째 살고 있다.

함께 지내던 친구들이 이사를 가고

이민을 떠나서 가끔 전화를 하면

 

 

"아직도 거기 사니? 네가 방이동 지킴이냐" 고 놀린다.

그럴 때 마다 나는 일 년에 열 번도 안 가지만

올림픽 공원을 떠날 수 없다는 핑계를 댔었는데

 요즘은 당당하게 말한다.

 

 

"우리 동네에 얼마나 좋은 이웃이 있는데,

 서울 하늘에 나보다 인복 많은 사람 있을까?"

하고 그들에게 되묻곤 한다.

 

 

'그래 나는 참 복 많은 사람이다'

11년 전 늦둥이 임신하고 심난해할 때

누구보다 먼저 축하해 주시고

산모가 잘 먹어야 아가야가 피부 좋아진다고

킹크랩에 생선회 등.....,

남편보다, 부모님보다 더 많이 챙겨주시고,

막둥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크리스마스 때면 산타가 되어 주시던

아래층 언니와 아저씨가 계신다.

나에게는 부모님 같은 분들이시다.

 

 

또 7년 전 둘째가 학교 특별활동을 하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있다.

동아리 이름이 "오발탄"이다.

다섯 명의 발명 영재 탄생이라는 뜻이다.

우리 다섯 가족들은

겨울에는 스키를 타러 가고

여름에는 통통배 타고 낚시질하고

가을에는 별 보고 야영하며

참 많은 추억들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함께

사춘기를 별탈없이 잘 넘기고 있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있으면

서로 손잡고 가서 청하고,

배고프면 어느 집 가리지 않고

밥 한 그릇 뚝딱 하고 간다.

 

 

지난겨울에는 남자 녀석 세 놈을 함께 포경수술을 시켰다.

공동으로 하면 할인해 준다기에 한꺼번에 묶어서 갔는데

세 녀석들이 차례로 수술하느라

지루하고 아팠을 텐데도

한날한시에 진정한 남자로 태어났다며 좋아들 했었다.

 

 

나는 세 녀석들을 병원 앞에 세워 두고

기념촬영도 하고 엉거주춤 걷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놓았다.

이담에 너희들 아들 수술하러 갈 때 보여준다고 했더니

아픔을 참고 애써 반듯이 걷던 모습도 생각난다.

 

 

요즘은 막내친구 성현이네가

우리 옆집으로 이사를 와서 너무 좋다.

무뚝뚝한 네 남자들 속에 두 명의 예쁜 공주들이 다녀가면

왠지 집안 분위기도 밝아지고 명랑해진다.

 

 

그리고 소심하고 여린 우리 막내 옆에

신발을 잃어버려도 맨발로 시청역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오는 배짱 있는 성현이가 있기에 나는 참 다행으로 생각한다.

 

 

전혀 다른 두 녀석이 함께 다니면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선생님들께서 의아해 하신단다.

만약 이 아이들이 이웃이 아니고 이런 인연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사랑하는 내 아이들이

그들의 친구와 이웃과 함께 웃으며 추억을 나눌 수 있음이 참 좋다

 

 

우리 두 가족은 아침이면 문 열고 함께 음악도 듣고

맛있는 냄새나면 수저 들고 뛰어가고,

늦은 시간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누가 귀가 하는지 알 수 있다.

 

 

“일어났니? 밥 먹자.”

오늘아침에는 지난밤 늦게 귀가한 여은 엄마의 소식이 궁금해서

밥 먹자는 핑계로 전화를 했다.

반찬은 아이들이 먹다 남긴 계란말이 세 조각, 짠지,

그리고 김치 뿐 따로 준비한 것이라곤

수저 한 벌과 밥 한 공기뿐이다.

그동안 바빠서 소홀했던 우리는 수다 한 숟가락에

짠지 한 조각을 깨물고 서로의 삶을 살폈다.

 

 

나는 오늘 따라 유난히 한 숨이 많았던 여은 맘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애꿎은 짠지를 여러 조각 먹은 탓에 물 생각이 간절했다.

버스가 오길 기다리는데 눈치 빠른 여은 맘이

아이스커피를 두 잔 사들고 왔다.

나는 단숨에 내 잔을 비웠고

여은 맘은 내릴 때가 다 되어가도록 그대로 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성 이것도 마셔, 그리고 잘 다녀와" 하며

커피를 건넸다.

말 안 해도 내 갈증을 알아챈 이웃동생,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내 목줄기를 타고 내려갔지만

왠지 내 가슴은 따뜻했다.

 

 

산다는 것, 행복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 2012 제17회 여성주간기념 수기공모(송파구․ KACE서울3) 우수작

    글 = 전미순(서울 송파구 방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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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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