飯糗茹草:때론 찬밥에 나물 먹더라도…

 

 

 

학생들의 무상급식 문제가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더니 이제는 교육계 고위공직자가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어떤 불법적인 일을 했는지에 대해 세간이 주목하고 있다. 세상에는 희망을 걸었던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원래부터 희망을 걸지 않았던 사람은 무망(無望)이라지만 믿었던 사람이 그 희망을 저버리고 사람들을 절망(絶望)하게 만든다면 이는 실망(失望)이 된다. 특히 기업을 이끄는 리더는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실망하고, 투자자가 실망하고, 직원이 실망하고, 고객이 실망하면 그 조직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다.

 실망(失望)이란 단어의 어원은 <맹자(孟子)>에 나온다. ‘사궁불실의(士窮不失義). 선비는 힘든 상황에서도 원칙()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 달불리도(達不離道). 또한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평소 가던 길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궁불실의사득기언(窮不失義士得己焉). 힘들어도 원칙을 버리지 않기에 선비는 당당한 자신을 얻는다. 달불리도민불실망(達不離道民不失望). 지위가 높아져도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기에 백성들은 그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맹자>에 나오는실망(失望)’이란 단어의 어원이다. 어려웠던 시절에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오르고 출세를 하자 사람들의 희망을 저버리고실망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평소에 믿었던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며 부서지는 순간에 사람들은 배신감과 함께 인간의 무상함을 통감하고는 한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더욱 주변사람들이 실망하게 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리더는 주변 사람들의 희망이다. 때로는 어려움 속에서도 반듯한 몸가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얻어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더라도 평소의 모습을 잃지 않고 가던 길을 묵묵히 가야한다. 적어도 상황이 리더를 흔드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떳떳하게 내 몸을 잘 지키며 살고(窮則獨善其身), 세상에 나서면 천하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리라(達則兼善天下)’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며 원칙을 지키고 사는 리더의 당당한 모습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어려움이 닥칠 때도 있고 뜻밖의 행운이 다가올 때도 있다. 나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 앞에서 하늘을 원망해 보기도 하고, 다가온 행운을 주체하지 못하고 파멸의 길로 빠져들기도 한다. 조석으로 바뀌는 변화무쌍한 운명, 그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 리더의 모습이다. <맹자>는 리더는 다른 사람보다 인생의 부침이 더욱 심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반구여초(飯糗茹草也)! 때론 찬밥과 나물을 뜯어 먹으며 살 수도 있고, 피진의고금(被袗衣鼓琴)! 비단 옷을 입고 음악을 연주하는 안락한 생활을 누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찬밥에 나물국을 먹든, 비단옷에 화려한 음악을 듣든,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 () 임금은 초야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로 있을 때나 천자가 돼 천하의 주인이 됐을 때나 변한 것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의 원칙과 도()를 잃지 않고 살았다.

 선비는 평생 어렵게만 사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예측할 수 없는 빈천과 부귀, 불행과 행복이 다가올 수 있다. 어떤 상황이 되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의연하게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진정 위대한 성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원칙과 정도를 걸어가는 선비의 모습에서 오늘날 리더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 DBR

http://www.dongabiz.com/PersonalCapacity/Leadership/article_content.php?atno=13060272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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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同사회의 꿈, 共生

 

 

 

이명박 대통령은 8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새로운 경제모델로 공생(共生) 발전을 제시했다. 대기업의 독점적 성과독식을 비판하고 이윤과 탐욕의 경제발전에서 나눔과 상생의 경제발전으로 축을 전환하자는 게 골자였다. 이 대통령은 공생발전을 세 가지 축으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윤리적 경영, 둘째는 자본의 책임경영, 셋째는 상생 경영이다.

 

공생발전 이론은 아시아적 가치에서 바라보면 상도(商道)의 기본 철학이다. 조선의 개성상인들은 이익보다 인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간 중심의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기업은 개성상인들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었다. 일본의 오사카 상인이나 중국의 휘주 상인들 역시 상생, 신뢰, 윤리, 책임 등의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다.

 

진작 이런 공생의 경제발전 철학이 이슈화되고 논의됐어야 했다. 기업이 협력업체를 힘들게 하고 고객을 속여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나 결코 그 이익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지 못한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경제정의다. 윤리를 저버리고 탐욕에 물든 기업은 언젠가 망하고 만다는 실례는 역사적으로 무척 많다.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고, 사회와 상생을 추구하고, 자본에 대한 책임을 가졌던 기업들은 몇 백 년을 견디며 성장했다. 경주 최부잣집의 300여 년 지속성장 비결도 이른바공생(共生)’이었다. 흉년에 남의 땅을 싸게 사지 않는다는 윤리의식과 100리 이내 사람들이 굶어죽지 않게 하겠다는 부자로서의 사회적 책임, 만 석 이상 생산을 늘리지 않아 소규모 생산자들과 공생을 추구하겠다는 게 잘 알려진 그들만의 경영 노하우였다. 이는 자본을 독식하고 소사업자의 영역에까지 무차별적인 확장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대기업과는 비교되는 공생경영 철학이다.

 

선의후리(先義後利)의 윤리경영 맹자에 나오는 기본 경영철학이다. ()를 먼저 추구하면 이익은 나중에 반드시 온다는 것이다. ()는 윤리이며 도덕이다. 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며 그 사람이 나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란 생각이 선의후리(先義後利)의 경영철학이다. 한 치의 불의(不義)를 행해 이익을 탐하지 않겠다는 각오이며 내 것이 아닌 것을 구차하게 취하지 않겠다는 아시아적 가치의 상인 철학이다. ‘不義而富且貴 於我 如浮雲’, 옳지 못한 부귀라면 나에게 뜬구름과 같다는 <논어(論語)>의 구절은 홍콩의 재벌 리카싱(李嘉誠)의 경영철학이다. 가난한 완구상 점원으로 시작해 대기업의 회장이 되고 재산의 30% 6조원을 사회에 기부한 그는 선의후리의 철학으로 존경받는 대표적인 경영인이다. 돈을 벌기 위해 옳음과 윤리를 버린다면 탐욕의 끝은 너무나 자명하다.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책임경영. 화살을 쏘아서 과녁에 맞히지 못하면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는 반구제기(反求諸己)의 철학은 기업 책임론의 기반이어야 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경제현실을 내 탓이 아니고 남의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한다면 그 화()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다. 세상이 어려운 것은 하늘 탓이고 사람이 못 사는 것은 능력 탓이라고 책임을 회피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책임 있는 경영자가 돼야 한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상생경영. 입술이 없다면 이가 시리다는 말은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가 제 기능을 발휘하더라도 그 이를 지켜주는 입술이 없다면 결국 기능이 정지될 수밖에 없다는 우()나라 현인 궁지기(宮之奇)의 상생 철학이다. 나 혼자 살기 위해서 이웃나라의 침략에 길을 빌려준 우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협력업체, 중소기업, 고객, 사회, 직원, 주주는 각 경영의 주체로서 상생을 추구해야 공존할 수 있다. 누구 한 주체만 행복하다면 결국 자멸할 수밖에 없다.

 

함께 공(), 살 생(), 공생(共生)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함께 더불어 살자는 뜻이다. 공생은 우리 조상들의 기본 경영철학이었으며 아시아적 가치의 경영철학이기도 했다.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대동(大同)사회의 꿈이 공생이다. 더불어 살자는 공생의 철학,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선거용 구호가 아닌 진심어린 실행과 실천이 뒷받침된 국정과제가 되기를 희망한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http://www.dongabiz.com/Business/General/article_content.php?atno=12060359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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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聲相應:한 사람의 꿈은 꿈, 만인의 꿈은 현실

 

 

얼마 전 39층 고층건물이 10분간 진동으로 흔들렸던 원인이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의 집단 뜀뛰기로 인한 공진현상이라는 잠정 결론이 내려졌다. 운동하던 사람들의 뜀뛰기 주기와 건물의 상하 진동 주기가 완벽하게 일치해 공진(共振)현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를 주역에서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라고 한다. ‘동성(同聲)’, 즉 같은 소리는 ‘상응(相應)’, 서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개별의 소리는 약하지만 그 소리들이 반응해 집단화하면 그 소리는 빅뱅의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역(周易)> 건괘(乾卦)에 나오는 ‘동성상응’의 이론은 간단하다. ‘날고 있는 용(지도자)이 자신을 도와줄 사람(大人)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飛龍在天利見大人). 같은 소리를 가진 사람은 서로 만나면 크게 반응하고(同聲相應), 같은 기운을 가진 사람은 서로 찾을 수밖에 없다(同氣相求). 물은 습지로 흘러내려가고(水流濕), 불은 건조한 곳으로 나아간다(火就燥). 구름은 구름을 쫓아가고(雲從龍), 바람은 호랑이를 쫓아간다(風從虎).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모든 만물이 그 지도자를 바라보고(聖人作而萬物覩), 하늘에서 나온 것은 하늘을 향해 있고(本乎天者親上), 땅에서 나온 것은 땅을 향해 있다(本乎地者親下). 세상의 모든 것은 각각 자신의 짝을 찾아 만나는 것이다(各從其類也).’
 
주역의 동성상응 이론으로 고층건물의 공진 현상의 기본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어떤 마음과 주기로 뛰면 그 건물의 주기와 일치할 때 그 힘이 상상을 초월하는 힘으로 변환될 수 있는 것이다. 부분의 합은 전체가 아니라 무한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소리는 서로 반응하면 무한폭발이 일어난다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의 이론은 몽골 대제국을 일으킨 칭기즈칸이 “한 사람의 꿈은 꿈이지만 만인의 꿈은 현실이 된다”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또 손자병법에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라! 같은 꿈을 꾸는 자, 반드시 승리하리라!’의 전략과도 괘를 같이한다.
 
동성상응(同聲相應).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나와 같은 소리, 같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나의 능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다. 기존의 나와는 전혀 다른 나를 경험하는 것은 나와 같은 소리를 가진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동기상구(同氣相求). 같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서로 찾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눈에 띄는 그 사람은 나와 같은 기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명리(命理)에서는 궁합이 맞는다고 하지만 그것은 에너지가 서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견대인(利見大人). 지도자는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소인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신의 영욕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조직에 해가 된다. 대인은 같은 꿈을 꾸며 선의후리(善義後利)의 철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대장부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지도자의 행복 중에 하나다.
 
각종기류(各從其類). 세상은 각각 자신의 소리와 뜻에 맞는 사람을 쫓아야 한다. 연봉이나 자리의 안락함이 아니라 나와 함께 꿈을 꿀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은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다.
 
지도자는 소리를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다. 서로 다른 소리를 조율해 같은 소리로 만들어내고, 같은 에너지를 반응하게 해 위대한 꿈과 목표를 실현하는 리더다. 공진(共振), 공명(共鳴), 상응(相應), 상구(相求), 동욕(同欲)은 이 시대 리더가 갖춰야 할 가장 위대한 덕목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http://www.dongabiz.com/Business/General/article_content.php?atno=12060345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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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名市利: 조정에선 명예를, 시장에선 이익을

 

 

 

 

사람은 자기가 어느 자리에 있는지를 늘 고민해봐야 한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이익을 탐해 사적인 결정을 내린다거나, 성직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이 세속의 권력을 넘본다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한 행동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자리를 명확하게 판단해 명예를 소중히 여겨할 자리가 있고, 이익을 탐해야 할 자리가 있다.

 

이렇듯 자기 자리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조명시리(朝名市利)’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쓴다. 국가 조정에서는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저잣거리에서는 이익을 논한다는 뜻이다. 이 사자성어는 <전국책(全國策)>에 나오는 말로 중국 전국시대 국제적 외교관이었던 장의(張儀)가 진()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올린 진언(陳言)에서 유래됐다. 천하의 패권을 논의하면서 일부의 땅을 침략해 빼앗고자 했던 진나라 왕에게 더 큰 패업을 위해 조그만 이익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조명시리’라는 말을 올린 것이다. 세상의 큰 꿈을 도모하는 사람이 조그만 이익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맹자는 인간에게 늘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다고 전했다. 하나는 고난을 각오해야 하지만 인간이 가야 할 바른 길()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생존()이다. 이 두 가지 모두를 선택하면 좋겠지만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라면 구차한 생()을 포기하고 고난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사생취의(捨生取義)’의 결단이다. 목숨을 부지하고 어려움을 피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은 구차하게 살려고 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맹자는 생존()과 옮음()의 선택을 이렇게 비유한다.

 

‘생선 요리와 곰발바닥(熊掌) 요리가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당연히 생선요리를 포기하고 곰발바닥 요리를 선택하지 않겠는가? 살고자 하는 것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바요(生亦我所欲也), 의롭게 행동하려는 것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바인데(義亦我所欲也),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 없다면(二者不可得兼) 사는 것을 포기하고 의를 선택하겠다(舍生而取義者也).’ 곰발바닥은 맹자 시절에도 고급 요리였을 것이다. 생선 요리보다 곰발바닥 요리가 좋다는 것을 알고 선택하면서 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구차하게 사는 삶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의롭게 살고자 하는 인간의 위대한 선택이다. 세상에는 경중(輕重)이 있고 귀천(貴賤)이 있다. 중요한 것을 우선하고 귀한 것을 선택하는 게 인간의 당연한 선택 기준이다.

 

명예와 이익, 의와 생,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중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섰을 때는 반드시 잘 따져봐야 한다.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사소한 이익을 탐하고 공직에서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 퇴직 후 이익을 위해 자신의 명예에 금이 가는 일을 선택한다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모르는 적절치 못한 선택이라고 할 것이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아는 것을 지지(知止)라고 한다.

 

<도덕경(道德經)>에 ‘지지불욕(知止不辱)’이란 구절이 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제대로 선택해 그칠 줄 안다면 평생 욕을 먹지 않고 살 것이란 뜻이다. 조정에서 명예를 추구하고 저잣거리에서 이익을 추구한다는 ‘조명시리’의 인생철학이나 구차한 삶보다는 고난의 의()를 선택하겠다는 ‘사생취의’의 결단이 재조명돼야 한다. 이익이 중요하지만 탐해서는 안 될 이익이 있다. 부귀가 인간의 욕망이지만 부귀에 눈이 멀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있다.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지만 때로는 삶을 놓아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어디서 그쳐야 할지를 아는 ‘지지(知止)’는 만져서는 안 될 것을 만지려고 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수없이 들었던 위대한 가르침이었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http://www.dongabiz.com/PersonalCapacity/Self_Control/article_content.php?atno=13030240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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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山開道: 산을 만나면 길을 내라

 

 

 

 

얼마 전 열렸던 제3차 미·중 경제 전략회의에는 동양 고전에서 유래한 고사성어의 경연장이 됐다. 다이빙궈(戴秉國)를 단장으로 한 중국 대표단을 맞이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그들을 환영하는 만찬장에서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라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고사를 꺼냈다. ‘산(山)을 만나면(逢) 길(道)을 만들고(開), 물(水)을 만나면(遇) 다리(橋)를 놓자(架)’라는 뜻이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해 도망갈 때 산에 막혀 갈 곳이 없다고 보고한 장수에게 한 말인데 산과 물이 가로막아도 길을 만들고 다리를 만들면 얼마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 고사성어로 미국과 중국이 동반자가 돼 난관을 돌파하자고 역설했다. 미·중 관계에 산이 막혀 있으면 길을 내서 돌파하고, 물이 놓여 있으면 다리를 만들어 만나자는 심중(心中)의 뜻을 전한 셈이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전의 전략회의에서도 ‘인심제(人心齊), 태산이(泰山移)’라는 고사를 사용한 적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태산과 같이 높은 산도 능히 옮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 역시 양국 간의 어떤 문제든 한마음 한뜻으로 함께 풀어나가자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미국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중국 베이징대에서 어학연수를 한 경험이 있는 중국통 고위관료로 알려져 있다.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유창한 중국어로 중국 고사성어를 인용해 중국 대표단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는 이전 1차 전략회의에서 손자병법에 나오는 오월동주(吳越同舟)를 변형해 ‘풍우동주(風雨同舟)’라는 사자성어를 만들고 직접 중국어로 발음해 화제가 된 바 있다.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도 함께 험난한 환경을 극복해나가자는 화두는 중국과 미국의 동반자 인식을 기초로 한 것이다. 그가 이번 전략회의에서 던진 고전 어구 역시 ‘유복동향(有福同享), 유난동당(有難同當)’이었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누고 나쁜 일은 함께 극복하자는 뜻으로 청나라 문장가였던 황소배(黃小配)의 책에 나오는 글에 기초한 문장이다.
 
미국의 고위관리들이 동양고전을 인용한다는 사실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중국을 포함한 동양을 그들의 관점에서 봉건과 불합리로만 생각하던 서양인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편견의 종말을 고하는 듯한 분위기도 느껴진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했던 월가가 대재앙을 겪고 난 뒤에 ‘서양=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라는 틀이 깨지고 있다. 중국의 약진과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 국가의 비약을 바라보는 서양인들의 눈길도 달라지고 있다.
 
중국과 동양에 대한 서양의 관심이 고조되는 요즘 우리는 얼마나 우리 문화와 인문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지나간 과거의 유산을 기반으로 새로운 창조를 이루어내라! 동양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긴 것 같다. 동양 인문을 기반으로 조직문화를 다시 한번 점검해봐도 좋을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산이 가로 막고 물이 놓여 주춤할 때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 그 험난한 상황을 극복하자는 ‘봉산개도(逢山開道), 우수가교(遇水架橋)’ 화두는 우리에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조직이 어려움에 부닥쳐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 이런 고사를 인용해 직원들의 사기를 돋운다면 직원들의 마음을 능히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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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도 내 탓이다 -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

 

 

 

자고나면 숱한 사건이 터진다. 어김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잘못을 탓하는 공방전이 벌어진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고,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능멸하려 한다. 방관자는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고, 당사자는 상황에 모든 책임을 돌린다.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있다는 책임 전가가 만연한 시대다. 우리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군자와 선비는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사람이다. 불원천(不怨天)! 하늘을 원망하지 마라! 불우인(不尤人)! 남을 탓하지 마라! 선비들이 인생을 살다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할 때마다 외쳤던 인생의 화두였다. <중용(中庸)>에 나오는내 탓이오철학은 남 탓으로 자신의 잘못을 가리려는 오늘날의 세태에 경종을 울린다. ‘재상위불릉하(在上位不陵下)!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아랫사람을 함부로 능멸하지 마라! 재하위불원상(在下位不援上)! 아랫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여, 함부로 윗사람을 끌어내리려 하지 마라! 정기이불구어인즉무원(正己而不求於人則無怨)! 나를 먼저 바르게 하고 남을 탓하지 마라! 그러면 누구에게도 원망을 사지 않을 것이다. 상불원천(上不怨天)!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하불우인(下不尤人)! 아래로는 남을 허물하지 마라!’ <중용>에 나오는 명 구절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치기 마련이다. 그럴 때마다 조상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고, 주변 사람을 허물하면 결국 그 역경과 고통이 나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잘못은 결국 내게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아름답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것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것이 진정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당하게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내 탓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존경을 받는다. 공자는 활쏘기를 빗대 군자의 책임의식을 얘기하고 있다. 활을 쏘아 과녁을 맞히지 못했을 때 결국 모든 책임은 활 쏘는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사유사호군자(射有似乎君子), 활을 쏘는 것은 군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실제정곡(失諸正鵠), 내가 활을 쏘아 과녁을 제대로 맞히지 못하면 반구제기신(反求諸其身), 돌이켜 자신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반구제신(反求諸身)’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오는 중용의 구절이다. 얼마 전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소통을 강조하는 청와대 확대비서관 회의에서 사용해 유명해진 사자성어다.

서로에게 책임을 묻지 말고 스스로 책임지고 반성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대목에서 이 구절을 사용했다고 한다. 궁수가 활을 쏠 때 바람이 갑자기 불어 안 맞을 수도 있고, 활의 성능이 안 좋아 안 맞을 수도 있다. 옆에 사람이 성가시게 굴어서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과녁이 너무 멀어 적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활 쏘는 사수의 문제다. ‘내 탓이오!’ 라고 외치는 사수(射手)가 진정 군자의 모습과 닮아 있다. 활쏘기를 요즘으로 비유하면 골프와도 같다. 골프에서 공이 잘 안 맞는 것은 내 탓이지 다른 탓을 하지 말라는 게 골퍼들의 당연한 철학이 아닌가.

운명(運命)이란 글자 그대로 내게 다가온 상황()을 내가 통제()하는 것이다. 남을 탓하거나 원망한다고 그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가온 운명에 최선을 다하며 묵묵히 견뎌나갈 때 진정 운명은 내 손아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이해하고 내 탓으로 받아들일 때 진정 자득(自得)한 선비의 모습이 깃든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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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處無自欺: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속이지 마라

 

 

 

 

 

<논어(論語)>는 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족식(足食)’ ‘족병(足兵)’ ‘민신(民信)’을 들고 있다. ‘족식(足食)’은 경제력이고, ‘족병(足兵)’은 국방력이고, ‘민신(民信)’은 사회적 신뢰다. 공자는 가장 마지막까지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을 ‘민신(民信)’이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신뢰가 무너지면 조직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의 화두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2010년 2월15일자 DBR 51호 참조)

 
신뢰는 자신에게 얼마나 정직한가에서 시작된다.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속이지 않는 것이 신뢰의 시작이다. 우리가 은행을 믿는 것은 은행원들이 남이 보지 않아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행 직원이 자신을 속이고, 나아가 고객을 속인다면 고객들의 신뢰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자금이 모자라고 조직이 부실해진 은행은 다시 자금을 충전하고 조직을 새롭게 개선하면 일어설 수 있지만 고객들의 신뢰를 잃으면 영영 회생이 불가능하다.

 

 

 
‘홀로 있을 때라도 나를 속이지 마라!’
 

 

 

조선의 선비들이 그토록 중요시 여겼던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의 철학이다. 조선 중종 때 문신이었던 정곡(靜谷) 임권(任權) 선생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는 독처무자기의 철학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속일 수 없기에 나에게 정직한 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학(大學)>과 <중용(中庸)>도 ‘나를 속이지 않는 철학’을 신독(愼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홀로(獨) 있을 때를 삼가야(愼) 한다’는 의미다. 조선의 선비들이 어느 산 속 깊은 곳, 아무도 없는 곳에 홀로 거하더라도 자신의 마음을 단단히 지키며 정직하고 당당하게 인생을 살아갔던 것은 바로 신독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도 유배생활이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이 무자기와 신독의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군자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소인들은 남들이 안 보는 곳에서 온갖 불법을 저지른다. 남이 보고 감시하면 자신의 불법을 감추려고 애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진실은 속일 수 없다. 평소에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는 저절로 드러나게 돼 있다. 내 마음 속이 진실 되면(誠於中) 밖으로 드러난다(形於外). 그래서 군자의 삶은 남이 안 보는 곳에서 더 엄밀하고 삼간다(君子必愼其獨也).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을 속이지 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를 보고 있다. 열 사람의 눈이 너를 지켜보고, 열 사람의 손이 너를 가리키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현실이냐!”

 

 

 
눈을 가리고 자신의 불선함을 숨기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보고 있다. 오로지 자신만 모를 뿐이다. 남이 안 보는 가운데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소인(小人)들이 가득한 조직은 자금이 넘쳐나고 구조가 잘 짜여 있어도 지속가능한 생존을 얻을 수 없다. ‘나 자신을 속이지 마라(無自欺). 홀로 있을 때 더욱 삼가야 한다(愼獨). 신뢰가 없으면 존립이 불가능하다(無信不立)!’ 신뢰가 땅에 떨어진 어느 은행의 모습을 보면서 몇 번이고 다짐해야 할 도덕적 화두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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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처럼 경영하라

 

 

 

 

 

 

자연계에 존재하는 물()은 다른 농업문명 국가에서 모두 그랬듯이 중국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관찰 대상이었다. 물이 넘치면 수백만 명이 빠져 죽었고, 물이 모자라면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다. 중국 농업사회에서는 국가의 존망과 민심의 향방이 치수(治水)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나라를 세운 우() 임금도 8년간 치수의 공을 인정받아 천자(天子)가 됐다. 그래서 물은 모든 동양의 철학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비유하는 대상이었다. 철학자들은 물에게서 다양한 생각을 배웠다.
 
공자는 천하를 돌며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펼칠 지위를 줄 제후를 찾아다녔으나 마땅한 인연을 만나지 못했다. 공자는 어느 날 황하에 가서 이렇게 외쳤다. “아! 흘러가는 물이 이렇게 도도(滔滔)하구나!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르는 저 물을 보라(逝者如斯夫不舍晝夜)!” 그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정치적 이상이 밀려오는 후학(後學)들에게 계승될 것임을 물을 통해서 확신했다. 내 대()에서 큰 꿈을 이루지 못했는가? 그렇다면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라. 그리고 공자가 남긴 물의 철학을 떠올려라. 물에는 쉬지 않고 흐르는 역사성이 있다. 내가 아니어도 좋다. 나를 이어 누군가가 나의 꿈을 펼쳐 주는 것도 인생이다.
 
노자(老子)는 물을 통해 겸손과 무위(無爲)의 리더십을 설명하려고 했다. ‘세상에 물보다 연약하고 부드러운 것은 없다. 그러나 단단하고 센 것을 뚫는 데 있어서도 물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天下莫柔弱於水而攻堅强者莫之能勝).’ 노자는 물에서 겸손함을 보았던 것이다. 성공하고 이룬 자들이여, 노자의 물 철학을 생각하라.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적시고 키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승자는 군림하고 누리려는 자가 아니라 낮추고 버리는 자의 모습이어야 한다.
 
<맹자(孟子)>는 샘이 깊은 물에 대해 세 가지 철학을 설파한다. 첫째는 지속성이다. ‘샘이 깊은 물은 밤낮을 쉬지 않고 흐른다(不舍晝夜).’ 맹자에게 위대함은 천재성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군자는 쉬지 않고 스스로를 강하게 만든다(自强不息). 날마다 새로운 나를 만들기에(日新)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는 것이다.
 
둘째는 진정성이다. 물은 흐르다가 웅덩이에 갇히면 그 웅덩이를 채우고 다시 흐른다(盈科後進). 샘이 깊은 물이기에 언젠가는 웅덩이를 가득 채운다. 살다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때 불안해하거나 당황하지 말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뚝심과 근원만 깊다면, 언젠가 기회는 다시 온다. 물이 웅덩이를 비워놓고 흐르지 않는 것은 철저하게 쉼표를 찍고 가겠다는 것이다. 인생도 때로 쉬었다 가야 더 멀리 갈 수 있다.
 
셋째는 영원성이다. ‘샘이 깊은 물은 흘러서 사해로 흘러간다(放乎四海).’ 시간이 문제지 기초만 튼튼하면 결국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조급할 일도 없고, 재촉할 이유도 없다. 근원만 깊다면 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오뉴월에 내리는 장맛비는 잠깐 내려도 길을 삼키고 계곡에서 흘러넘친다. 그러나 해가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근원이 없기 때문이다.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지는 장맛비가 아니라 사해 넓은 바다로 흘러가는 샘이 깊은 물이 돼야 한다. 원천혼혼(原泉混混)! 샘이 깊은 물이 끊임없이 용솟음친다. 샘이 깊어야 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웅덩이를 만나면 당황하지 않으며, 결국 저 먼 바다로 항해할 수 있다. 비록 물에 대한 비유이지만 경영자의 철학이며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이기도 하다. 물()! 그저 물로 볼 일이 아니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 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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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의 부자론

 

 

 

사마천은 <史記(사기)>에서 재벌을 소봉(素封)이라고 했다. 이른바 무관(無冠)의 제후다. 소()는 ‘희다’는 뜻이지만 색깔 없는 모자, 즉 아무런 지위도 없지만 제후 이상의 권력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일국의 대통령이 외국을 국빈 방문할 때 함께 대동하는 대기업 회장들을 최대한 우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경제적 힘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때론 돈이 사람을 황제보다 더 위대한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사마천은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돈을 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상인이 천시 받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획기적인 발상이다.
 
사마천의 경제관을 종합하면 이렇다. 첫째, 돈이 있어야 예절도 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알고(倉實而知禮節), 의식이 족해야 명예도 안다(衣食足而知榮辱). 예는 돈이 있어야 생기고 돈이 없으면 없어진다(禮生於有而廢於無).’ 예절과 윤리는 경제적 기반이 튼튼해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곳간에서 인심난다. ‘군자가 부자가 되면 자신의 은혜를 베풀 수 있고(君子富好行其德), 소인이 부자가 되면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곳에서 발휘할 수 있다(小人富以適其力).’ 돈은 배려의 기초가 되고, 일반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원하는 곳에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셋째, 돈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든다. ‘연못이 깊으면 물고기가 생기고(淵深而魚生之), 산이 깊으면 짐승이 모여들고(山深而獸往之), 사람이 부자가 되면 인의가 실현된다(人富而仁義附).’ 돈은 사람에게 인정을 베푸는 도구이며, 사람들을 모으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다. 넷째, 돈을 버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희희낙락 돈을 향해 모여들고(天下熙熙皆爲利來)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이익을 향해 달려간다(天下壤壤皆爲利往).’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돈은 사람의 본능이며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할 수 있고 사람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본관이 사마천 <사기>에서 보여진다.
 
아울러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당시 성공한 재벌의 투자원칙을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첫째,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가라! ‘남들이 버리면 나는 사라(人棄我取), 남들이 사들이면 나는 판다(人取我與).’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의 투자 원칙과 같다. 남보다 반 발 앞서는 것이 투자의 원칙이다. 구체적으로 ‘가뭄이 들었을 때 배를 사고, 비가 내리면 수레를 사는 것도 역발상의 투자 원칙이다. 비쌀 때는 분뇨처럼 방출하라(貴出如糞土), 쌀 때 보석처럼 매입하라(賤取如珠玉).’ 남들과 같이 움직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둘째, 때를 놓치지 마라!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면 맹수처럼 독수리처럼 달려든다(猛獸摯鳥之發).’ 독수리가 먹이를 발견하고 수직 하강해 감아 채듯이 일단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 과감한 결단과 실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셋째, 사람을 얻어야 한다. ‘돈을 잘 버는 이는 사람을 적절하게 뽑아서 때를 타게 만든다(擇人而任時).’ 결국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해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제대로 사람을 뽑아 그 능력을 발휘하게 만들어야 한다. 결국 人事(인사)의 능력이 돈 버는 비결이다. 넷째, 내 돈을 벌어주는 사람과 동고동락한다. ‘음식을 절제하고(能薄飮食), 사치와 욕심을 참고(忍嗜欲), 의복을 간소화하고(節衣服), 노동자들과 고락을 함께 한다(與用事僕同苦樂).’ 부자는 내 돈을 벌어주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동고동락의 자세가 필요하다.
 
돈을 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돈은 잘 사용하면 사람에게 자비와 자유를 줄 수 있다. 돈은 쫓아간다고 벌리는 것도 아니다. 상황을 읽어내고 과감한 결정과 실행을 하는 이가 얻는 전리품이다. 무엇보다 부자가 되려면 내 돈을 벌어줄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 버는 방법이나 돈을 버는 이유는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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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포지교 별곡

 

 

 

친구, 가깝고도 먼 사이다. 영원히 변치 말자고 약속했던 친구가 내 인생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들고, 내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기도 한다. 친구 간의 우정에 관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자성어가 바로 관포지교(
管鮑之交)다. 춘추시대 제()나라 사람이었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兒)의 뜨거운 우정은 모두가 익히 아는 이야기지만, 요즘같이 이익과 시류에 따라 친구 간의 우정을 쉽게 버리는 시대에 다시 한번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에서 관중이 자신을 알아주고 믿어주었던 포숙의 우정을 다섯 가지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첫째, 동업자로서 가난한 친구에게 이익을 양보할 수 있는 ‘나눔의 우정’이다. 관중이 포숙과 장사를 하면서 매번 이익금을 더 많이 가져갔는데도, 포숙은 그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익을 더 가져갈 수도 있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내가 어렵던 시절(吾始困時) 일찍이 포숙과 동업을 해 장사를 했었는데(嘗與鮑叔賈), 이익을 나눌 때 내가 많이 가져가도(分財利多自與),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하지 않았다(鮑叔不以我爲貪).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주었기 때문이다(知我貧也).’
 
둘째는 일을 하다보면 때가 안 맞아서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생각해주는 ‘관용의 우정’이다. 관중이 포숙을 위해 일을 해준다고 해놓고 매번 실패를 했는데도 그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고 이해해준 일이다. ‘내가 포숙을 위해 일을 처리했는데, 그때마다 일이 꼬였다(吾嘗爲鮑叔謀事而更窮困). 그런데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으니(鮑叔不以我爲愚), 유리하고 불리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아준 것이다(知時有利不利也).’
 
셋째는 때를 못 만나면 얼마든지 주군과 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믿음의 우정’이다. 관중이 세 번 벼슬길에 올라 임금에게 세 번 쫓겨났는데도 그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은 일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 벼슬길에 올랐다가 세 번 모두 쫓겨났는데(吾嘗三仕三見逐於君),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鮑叔不以我爲不肖). 그것은 내가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준 것이다(知我不遭時也)’
 
넷째는 모든 사람들이 관중을 겁쟁이라고 욕할 때 관중에게는 모셔야 할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배려의 우정’이다. 관중이 전쟁에 나가서 세 번이나 도망쳐왔는데도 그를 겁쟁이라고 무시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옛날에 세 번 전쟁에 나가 세 번 모두 도망친 적이 있었는데(吾嘗三戰三走),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으니(鮑叔不以我爲怯),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알아준 것이다(知我有老母也).’
 
다섯 번째는 어쩌면 자기가 가야할 자리를 친구에게 양보한 포숙이 조그만 절개에 연연하지 않고 대의를 위해 살라고 관중을 격려한 ‘양보의 우정’이다. 포숙이 감옥에 있는 관중을 위해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소개해준 일이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吾幽囚受辱),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으니(鮑叔不以我爲無恥), 내가 조그만 절개에 개의치 않고 천하에 공명을 떨치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아준 것이다(知我不羞小節而恥功名不顯于天下也).’
 
관중은 자신을 알아준 평생의 친구인 포숙을 이렇게 평가한다. ‘나를 낳아준 자는 부모요(生我者父母), 나를 알아준 자는 포숙이다(知我者鮑子也).’ 세상에 포숙같은 친구 하나만 있어도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즈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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