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로 자신을 새롭게 구조조정 하라

 

 

 

신묘(辛卯)년 새해가 밝았다. 저마다 올 한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신년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열심히 일해서 원하는 승진을 하고, 부지런히 뛰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소망을 가질 수도 있다. 가족의 건강과 집안의 화목 역시 빠져서는 안 될 연초 계획이다.
 
공자삼계도(孔子三計圖云)에서 공자는 인생 계획을 3가지로 나눠 이야기하고 있다.
 
‘일생의 계획은 어려서 세운다(一生之計在於幼).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세운다(一年之計在於春).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운다(一日之計在於寅). 어려서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幼而不學老無所知), 봄에 밭을 부지런히 갈지 않으면 가을에 거둬들일 것이 없다(春若不耕秋無所望). 새벽에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寅若不起日無所辦).’
 
일생의 계획은 어렸을 때 세우고, 한 해의 계획은 봄에 세우고,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고, 성실한 인생을 살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온다는 교훈도 준다.
 
한해 계획을 세우면서 무엇보다도 챙겨야 할 일 년 계획 중 하나가 공부 계획이다. 올 한해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무슨 공부를 할 것인지, 어떤 책을 선정해 내 인생을 새롭게 무장할지를 고민해 보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부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어제와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것도 공부의 결과다. 성공하는 사람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을 공부에 두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은 그의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신년에 가장 먼저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을 공부라고 강조하고 있다. 신년을 맞이하여 내 마음가짐과 앞으로의 행동을 일신해야 하며, 특히 일 년 동안 무엇을 배우고 익힐지 공부계획을 자세하게 짜야 한다고 충고했다.
 
‘새해가 밝아오는 때에(歲新) 군자는 새롭게 자신을 구조조정 해야 한다(君子履新). 특히 마음가짐과 행동에 있어서 새로운 면모로 한해를 시작해야 한다(必其心與行亦要一新).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신정을 맞이할 때마다(吾少時每遇新正) 일 년 동안 무슨 공부를 할 것인가를 반드시 제일 먼저 생각했다(必豫定一年工課).’
 
정말 다산다운 연초 계획이다. 한해를 시작하면서 마음과 행동을 새롭게 먹고, 특히 일 년 공부의 분야와 내용을 고민한다는 것은 새로운 나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논어(論語)>에서 공자는 공부하는 자세로 두 가지 항목을 제시한다. 첫째는 민이호학(敏而好學)의 자세고, 둘째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태도다. 배우되 민첩하게 배우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움은 게을러서는 안 된다. 배움은 나이가 개재(介在)돼서도 안 된다. 배움은 묵묵히 기록하고 익혀야 한다(默而識之). 배움에 실증내서도 안 되며(學而不厭), 배운 것을 남에게 가르치는 것(誨人不倦)도 공부의 한 방법이다. 특히 공부의 목표는 남에게 지식을 자랑하거나 지식을 권위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나를 위한 공부가 돼야 한다. 그래서 공자는 옛날에 배우는 사람들은 나를 위한 공부인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했지만 요즘 배우는 자들의 목표는 오로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부는 한때 잘하거나 많이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획해야 할 인생의 평생 프로젝트다. 공부에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고 최우선 순위를 매기는 것, 진정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다. 올 한 해, 공부 많이 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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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 있는 리더는 국가의 보배

 

 

 

 

 

수도권 교통 동맥인 외곽순환도로가 하부 도로에 불법 주차된 유조차량에 의해 번진 화재로 끊겼다. 임시로 통로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불타버린 현장 주변은 ‘차산차해(車山車海)’가 됐다. 완전한 복구까지 4개월이 걸린다는 소식에 매일 이 도로를 이용하는 시민들은 한숨만 내쉰다.
 
평소 하부도로에 주차된 빽빽한 차들과 여기저기 방치된 물건들을 보며 도대체 허가도 받지 않고 불법적인 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 궁금했었다. 이런 일이 오랜 기간 지속된 걸 보면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유관기관에 이 불법을 적법으로 돌려놓을 용기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화재와 사고 위험의 불씨인 불법행위가 그렇게 10년간 지속된 것이다. 이름도 모호한 단체의 저항에 속수무책으로 공권력이 잠자고 있었다. 더욱 슬픈 일은 결과적으로 소신을 갖고 불법을 시정하려고 최선을 다한 리더가 없었다는 점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보면 장군이 전장에서 진격과 후퇴를 명령하는 판단 기준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진격을 명령함에 칭찬과 명예를 구하고자 하지 마라(進不求名)! 후퇴를 명령함에 나중에 문책과 죄를 피하려 하지 마라(退不避罪)! 진격과 후퇴의 판단 기준은 오로지 백성들을 보호하는 데 있으며(惟民是保), 그 결과가 조국의 이익에 부합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利合於主). 이렇게 진퇴를 결정하는 장군이 진정 국가의 보배인 것이다(國之寶也).’
 
국보(國寶)는 건물이나 문화재에만 있는 게 아니다. 소신 있는 리더도 국보다. 국민의 안정과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일선에서 소신껏 책임을 수행하는 리더가 많은 나라는 국보가 많은 나라다. 현장을 책임진 리더가 누구의 문책이나 칭찬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보낸 조국과 자신이 맡고 있는 국민을 대신해 책임 있고 적절한 판단을 내린다면, 그는 진정 나라의 보물이라 할 수 있다. 남에게 칭찬 받으려고 무리한 진격 명령을 내리고, 문책을 받을까 두려워 후퇴를 결정하지 못한다면 조직을 대신해 현장 리더로 있을 자격이 없다.
 
누군가 불법을 적법으로 돌려놓기 위해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용기있고 과감하게 노력했다면 지금의 혼란과 천문학적인 사회적 낭비는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진정한 용기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옳은 것을 보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용기가 없는 것이다(見義不爲無勇也)!’ <논어(論語)>에서 말하는 용기 있는 군자(君子)의 모습이다.
 
조선이 무능한 관리들과 부패한 조정이 있었음에도 500년 이상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옳음을 실천하고자 한 의로운 사회적 리더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지위에 눈이 가려져 있고, 권력에 용기가 꺾여 있을 때 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질 수 있는 용기 있는 선비들이 있었기에 그 사회는 지속될 수 있었다. 불의(不義)는 바로 시정돼야 한다. 아무도 불의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영원히 공정(公正)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바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知其非義斯速已矣).’<맹자(孟子)>에 나오는 대장부(大丈夫)의 철학이다. 진격과 후퇴의 기로에서 자리와 문책에 연연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 보신(保身)과 안신(安身)보다는 확신(確信)과 소신(所信)을 갖고 조직과 조직원의 생존을 기준으로 진퇴를 결정하는 국보급 리더가 절실하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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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고궁(君子固窮), 어려울수록 단단해진다

 

 

연평도 사태로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어디까지 갈지 지금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아이들은 전쟁에 대한 공포심에 빠져있고, 어른들 역시 그 불안과 위기 앞에 초연하기 쉽지 않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불안과 초조감이 아니라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빛나는 강한 정신력이다. 평소에는 잘 구별할 수 없는 인간의 정신적 역경지수는 위기가 다가와야 명확히 드러난다. 추운 겨울이 와서 세상이 모두 눈 속에 덮여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푸르다는 것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조선시대의 서화가이자 실학자였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선생은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예술가이자 문학가였다. 특히 서화에 능했던 김정희 선생은 추사체라는 독특한 서체를 대성시켰으며 예서 행서의 새로운 전형을 남긴 분으로도 유명하다. 제주도 유배를 포함해 다양한 인생 역정을 겪었던 그가 1844년 제주도 유배 시절,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 ‘세한도(歲寒圖)’는 국보 180호로 지정돼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엄동설한에도 시들지 않고 서있는 소나무()와 잣나무() 그림은 우리에게 어려운 시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한도 왼쪽에는 추사가 직접 쓴 글이 있다. 바로 논어의 한 구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가 들어있는 글이다, 뜻은 다음과 같다. ‘세월이 추워진 연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 세상이 추워지고 온통 눈으로 뒤덮여 추위와 바람만이 가득할 때 푸름을 잊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의 기상을 그린 세한도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위기가 닥쳐봐야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평소에 그렇게 자신만만하고 정감 많은 사람이 위기가 닥치면 전전긍긍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의리와 신념을 쉽게 포기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에 어떤 나무가 정말 강한 나무인지 알듯이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은 그 사람의 정신력과 위기 대응 지수를 알게 해 주는 좋은 기회다.
 
<논어(論語)>는 군자(君子)를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사람(君子固窮)’, 소인(小人)을 ‘어려움이 닥치면 쉽게 포기하고 넘쳐버리는 사람(小人窮濫)’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와 세상을 주유(周遊)할 때의 일이다. 그들은 진()나라에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아무 것도 먹지 못해 많은 제자들이 병들고 몸을 일으킬 힘조차 없을 때였다. 다혈질로 유명한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공자에게 따졌다. “선생님! 군자가 이렇게 궁한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까?” 공자를 믿고 따르는 아무 죄 없는 제자들이 왜 이런 힘든 상황에 처해야 하는지를 따지고 든 셈이다.
 
공자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군자는 어려울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사람이다(君子固窮). 그러나 소인은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곧 원칙을 버리고 넘치고 만다(小人窮斯濫).” 이 말은 어려움에 대처하는 인간의 두 가지 형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있다. 즉 어려움() 그 자체보다 그 상황에 대처하는 인간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 궁()한 상황에서 더욱 단단해()질 것인가? 아니면 넘쳐() 흘러 이성을 잃고 우왕좌왕 할 것인가?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버텨낸 고궁(固窮)의 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성공할 수 있었다. 국민도 마찬가지다. 위기 때 애국심을 발휘해 자신의 조국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반면 평소에 조국의 혜택만 받고 조국의 위기 앞에서는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에게는 고국(故國)이 더 이상 그들의 나라가 될 수 없다. 어려운 상황에 더욱 강해지는 군자(君子)들이 많은 나라를 꿈꿔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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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전 황하유역 회맹의 교훈

 

서울에서 열린 이번 G20 정상회담은 자국의 이익과 권익을 위한 국가 간 치열한 경쟁의 무대였다. 경상수지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상대국에 개방과 관세인하를 요구하거나, 환율방어를 위한 치열한 공방이 벌어져 마치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도 이렇게 각국의 정상들이 국제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결론을 내리는 모임이 있었다. 이를 회맹(會盟)이라고 했다. <춘추(春秋)>에는 회맹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남아 있다.
 
기원전 651년 하남(河南)성 규구(葵丘)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황하 유역 나라들의 정상들은 공동의 과제에 대해 회담했고 공동선언문까지 발표했다. 이 정상회담은 당시 국제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떨치던 제()나라 환공(()의 주재 하에 열렸다. 환공은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문공(文公), 송()나라 양공(襄公), 진()나라 목공(穆公), 초()나라 장공(莊公)과 함께 5명의 패자(覇者). 즉 오패(五覇) 중 가장 먼저 패자가 된 인물로 당시 황하유역 국제 사회를 좌지우지했다. 정상들의 만남, 회맹은 당시 각 지역을 통치하던 제후들이 모여 국제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회맹은 소와 양, 돼지를 희생(犧牲)으로 바치고 그들의 피를 나누어 마심으로써 만남의 의미를 더했다.
 
이 회맹의 주체는 원래 천자(天子)였으나 천자가 더는 이런 국제회의를 이끌 능력이 없자 패자(覇者)들이 천자를 대신했다. 기원전 651년에 있었던 제나라 환공 주재 하의 규구의 회맹에서는 다음과 같은 5가지 항목의 공동합의문을 채택하며 끝을 맺었다.
 
첫째, 부모에게 불효한 자는 처벌해야 한다(誅不孝). 한번 정해진 후계자를 바꿔서는 안 된다(無易樹子). 첩을 처의 자리에 올려서는 안 된다(無以妾爲妻). 부모와 자식, 부인 관계 등 가정사에 관한 합의다.
 
둘째, 현명한 사람을 우대하고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尊賢育才). 인격이 된 사람을 표창해야 한다(以彰有德). 인재를 키우고 인성 함양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제도에 관한 합의다.
 
셋째,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들을 사랑해야 한다(敬老慈幼). 떠돌이들과 나그네들을 빠뜨리지 말고 우대해야 한다(無忘賓旅). 노인, 어린이, 노숙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합의다.
 
넷째, 관리들이 벼슬을 세습해서는 안 된다(士無世官). 여러 관직을 한 사람이 총괄해서는 안 된다(官事無攝). 관리들을 뽑을 때는 반드시 그 능력을 보고 선발해야 한다(取士必得). 대부들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無專殺大夫). 관직은 세습돼서는 안 되며, 권력은 분산돼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함부로 제거해서는 안 된다는 인사제도와 관련된 합의다.
 
다섯째, 황하의 물줄기를 자신의 나라에 유리하게 구부려 제방을 쌓으면 안 된다(無曲防). 흉년이 든 나라로 이동되는 곡물을 막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도시를 만들 때 보고 없이 해서는 안 된다(無有封而不告). 당시 황하의 물줄기는 농업경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신의 나라에만 유리하게 물줄기를 틀어서는 안 되며, 곡물의 국제적 이동을 보장해야 하고 도시 개발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경제와 관련된 합의 사항이다.
 
그리고 합의문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삽입했다. ‘우리 동맹국 정상들은(我同盟之人) 이번 동맹 후에(旣盟之後)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言歸于好).’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를 지켜보면서 2600여 년 전 열린 규구지회가 떠오른다. 당시의 회맹은 오로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한 치의 양보 없이 각을 세우는 오늘날의 모습과는 달랐다. 이번 회의에서도 반듯한 가정 가꾸기 선언이 나오고, 자유롭고도 공정한 거래를 하자는 합의가 도출되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기업의 역할이 거론되며, 공정한 인사제도에 대한 공감대를 이루려는 노력을 했다면 그 의미는 후세에 길이 전해졌을 것이다. 훗날 자손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하면 더욱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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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이 멋있으면 이가 시원찮다

 

 

어느 대형은행 지주회사 회장이 50년간 몸담았던 은행계를 떠나면서 각자무치(
角者無齒)란 말을 남겼다. 뿔이 멋있는 순록이나 사슴은 날카로운 이빨이 없다는 뜻으로 한 사람이 모든 재주를 두루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사자성어다. 사슴의 뿔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이빨은 풀 정도 뜯어 먹을 기능 밖에 안 된다. 단 세 개의 점포로 시작했던 신생은행을 전국 규모의 우량 은행으로 일군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 회장의 마지막은 초라해보였다. 참으로 성공을 이루는 것도 힘들지만, 그 성공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가도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퇴임하는 회장은 심경을 토로하는 기자 간담회에서 작년에 연임을 재고해보라는 측근의 충고에 귀 기울이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고도 했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대목이다.
 
노자 도덕경에도 공을 이루었다면 몸을 물러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공성신퇴(功成身退). 공을 이루었다면 몸은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 성공을 어떻게 영원한 성공으로 남게 하느냐다. 노자는 물에서 그 답을 찾고 있다.
 
‘물을 보라! 세상에 가장 위대한 것은 물처럼 사는 것이다(上善若水).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한다(水善利萬物). 그러나 남과 그 공을 다투려 하지 않는다(不爭).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임한다(處衆人之所惡). 그래서 진정 위대한 도와 가장 닮아있다(故幾於道). 낮은 곳으로 임하고(居善地), 못처럼 깊은 마음을 가졌다(心善淵). 남에게 인정을 아낌없이 베풀고(與善仁), 신뢰를 갖고 흐른다(言善信). 세상을 깨끗하게 씻어주고(正善治), 어떤 일이든 능력을 발휘하고(事善能), 얼고 녹을 때를 알아 처신한다(動善時). 아! 남과 공을 다투지 아니하니(夫唯不爭), 누구에게도 원망을 듣지 않는다(故無尤).’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세상 모든 생명체를 길러내는 물은 오히려 그 공()을 버리고 낮은 곳으로 임한다. 그러기에 강이 되고 바다가 돼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물이 만약 자신의 공을 주장해 위로 흐른다면 산 속 웅덩이가 돼 결국 썩은 물로 변할 것이다. 어느 은행가도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노욕을 줄이며 조금만 겸손하게 처신했다면 그 성공은 위대한 성공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 통일의 주역이었던 한 고조의 오른팔 장량(張良)은 킹메이커로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홀연히 떠났고 그 공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었다. 반면 한신(韓信)은 자신의 공을 주장하고 무리하게 머물러 결국 토사구팽의 불운한 종말을 맞았다. 성공을 과신하면 그 성공의 덫에 빠져 결국 파멸에 이른다.
 
‘만물을 만들어도 말로 자랑하지 마라(萬物作焉而不辭). 내가 만들었어도 소유하려 하지 마라(生而不有). 내가 했어도 과시하지 마라(爲而不恃). 공을 이루었다면 그곳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功成而弗居). 그것이 내가 버림당하지 않는 방법인 것이다(是以不去).’
 
노자 <도덕경(道德經)>의 생존 철학이다.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아름다운 짐승은 이빨이 시원찮다는 어느 은행가의 사퇴의 변을 들으면서 인생은 결국 더하고 합하면 제로섬이 된다는 인생무상의 생각에 잠시 젖어본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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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먼 이익은 나를 굶주리게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이윤추구에만 몰두하지 않고 사회공헌과 환경보호, 소비자 권익, 근로자의 인권 등 다양한 방면에 신경을 써야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미래 기업의 방향이다. 어느 재벌 그룹 회장이 불법으로 증여 받은 재산을 다시 어린 자식에게 불법으로 증여하는 것이 심각하게 비난받는 가운데 과연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고 개인이 재산을 증식하는 것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도 일어나고 있다. 일부 기업의 일탈 행위는 이()에 대한 본능적인 욕심에 기인한다. 기업은 진정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인가? 개인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이익을 획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적어도 조선시대 개성상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장사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지 이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이익은 내가 남긴 사람이 나에게 주는 것이다.’ 조선 개성상인의 경영철학인 상도(商道)를 설명해 주는 유명한 말이다. 이익을 남기기 전에 고객과의 의리를 먼저 고민하라는 이 철학적 화두는 어쩌면 요즘 기업 현실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듯 보인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목표이며,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익을 탐한다고 배워왔던 상식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맹자(孟子)가 양혜왕(梁惠王)을 만났을 때 왕이 맹자에게 질문한 내용은 오로지 이()였다. ‘천리가 멀다 않고 우리나라에 오셨으니 어떻게 내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을지를 나에게 말해주오!’ 맹자는 단호하게 왕에게 말했다. ‘왕이시여! 어찌 입만 열면 이익만 말하십니까(王何必曰利)? 인의(仁義)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亦有仁義而已矣)!’ 맹자의 논리는 간단하다. 적어도 한 조직의 리더라면 이익에 앞서 의()를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명 선의후리(先義後利)의 철학이다. ‘왕의 입에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가를 말하면(王曰何以利吾國) 밑에 있는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만 말할 것이오(大夫曰何以利吾家), 그 밑에 있는 사람들 역시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만 말할 것이니(士庶人曰何以利吾身), 온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입만 열면 오로지 이익을 말하면 결국 나라는 위기에 빠질 것입니다(上下交征利而國危矣).’
 
회장과 사장, 임원과 직원들이 오로지 이익만 입에 달고 살면 당장은 성과를 얻을지 몰라도 그 성과는 결국 모래 위에 쌓여진 것일 뿐이다. 의()를 먼저하고 이익()을 나중에 할 때 그 이익은 단단한 기반을 갖게 돼 오래 지속될 것이다.
 
이런 선의후리(先義後利)의 철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 맹자는 두 가지 기업가정신을 말한다. 하나는 부동심(不動心)의 철학이다.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다. 공자는 이익 앞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불혹(不惑)이라고 정의하였고 맹자는 부동심(不動心)으로 계승했다. 또 하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다. 의()를 실천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정신적 충만감이다. 내가 하는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한 믿음이 축적되면 호연지기의 정신적 만족감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돈을 벌고 지위가 높아져도 그것이 불의(不義)에 의해 얻어진 것이라면 정신적 굶주림()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더는 이익이 아니라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족쇄일 뿐이다. 이익을 위해 고객을 속이고, 부를 축적하고 대물림하기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는 부도덕한 기업가들은 자숙해야 한다. 몇 년 존속했다 사라지는 기업이 아니라 역사 속에 떳떳하고 후손에게 당당히 물려줄 기업이 되려면 이익에 앞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 우선적으로 고민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박재희 철학박사·민족문화컨텐츠연구원장 taoy2k@empal.com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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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에게 배우는 리더의 도(道)

 

 

 

 

 

‘기업은 반드시 이윤을 창출해야 하며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 때로는 불의(不義)와 타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인들이 있다. 얼핏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러나 원칙과 정도(正道)를 부정하고 이익과 불의(不義)와 타협할 때 그 성과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금 이룬 성공이 반칙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승리를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원칙을 어기고 반칙을 통해 이긴 승리, 그것은 한때의 승리일 뿐 영원한 승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늘 가르쳐 주는 교훈이다.
 
난세를 살았던 맹자(孟子)는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반칙을 강요하더라도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원칙을 포기하고 반칙까지 써가며 자신을 섬긴다면 부와 명예를 주겠다”는 유력 지도자의 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맹자는 다음과 같은 우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조(趙)나라에 유능한 사냥꾼 왕량(王良)이란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함께 나간 사람이 누구든지 최고의 사냥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능한 사냥꾼이었다. 조나라 모든 귀족은 왕량과 함께 사냥을 나가는 것을 꿈꿨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사냥에 능한 그는 1순위 사냥 파트너였다. 당시 조나라 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 폐해(嬖奚)가 왕에게 그를 데리고 사냥을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조나라 왕은 총애하는 신하의 청을 들어주며 왕량에게 그를 도와 사냥을 나가도록 명했다. 그런데 폐해는 종일토록 그와 사냥을 다녔지만 웬 일인지 단 한 마리의 사냥감도 잡지 못했다. 폐해가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기를 “왕량이란 사람은 천하의 수준 낮은 사냥꾼이다(天下之賤工也)”라고 했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 왕량에게 전했다. 왕량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조나라 왕에게 나아가 “폐해와 한 번 더 사냥을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청했다. 그런데 이번 사냥에서는 아침나절이 지나기도 전에 폐해가 잡은 사냥감이 10마리가 넘었다. 폐해는 이번에는 임금에게 다시 나아가 “천하 최고 수준의 사냥전문가라(天下之良工也)!”하며 왕량을 칭찬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속 사냥꾼으로 지정해달라고 간청했다. 왕이 왕량을 불러 폐해의 전속 사냥꾼이 되기를 명했으나 왕량은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나는 처음 폐해란 신하와 사냥을 나갔을 때 원칙대로 수레를 몰아 사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루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더군요. 그 다음 사냥에서는 온갖 변칙으로 수레를 몰아주었는데 한나절에 10마리의 사냥감을 잡았습니다. 저 사람은 원칙대로 모시면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로지 반칙으로 모셔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반칙으로 모셔야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주인으로 모시고 싶지 않습니다.” 왕량은 이렇게 대답하며 부귀가 보장된 실세의 하수인이 되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맹자>는 이런 우화를 예로 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일개 사냥꾼도 반칙으로 일관하여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 꺼리는데 하물며 내가 원칙을 버리고 반칙을 강요하는 주군을 모실 수는 없는 것이다.”
 
맹자가 참으로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칙을 일삼는 리더는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맹자의 외침 역시 그대로 흘려보낼 소리는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나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인생이라면 그렇게 암담하지만은 않다. 아무리 세상이 난세고, 모든 사람이 반칙을 통해 성과를 내더라도 결국은 원칙과 기본이 승리할 것이란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 DBR

http://www.dongabiz.com/Business/General/article_content.php?atno=1206022001&chap_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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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숲 불, 그리고 산처럼...

 

 

 

일본에서 한때 ‘풍림화산(風林火山)’이란 드라마가 유행했다. 16세기 중엽 활약했던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집안의 한 사무라이의 이야기를 그린 이 연속극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며 인기몰이를 했다. 요즘에는 온라인 게임으로도 개발됐다.
 
다케다 신겐은 일본 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최강의 다이묘(大名)였다. 일본은 전국시대(1467∼1573년) 100여 년 동안 각 지역을 다스리는 다이묘들이 권력을 놓고 혈투를 벌이는 바람에 혼란에 빠졌다. 이 전쟁의 시대에 열세 살의 신겐은 처음 전투에 나섰다. 열여섯에 부하 300명을 거느리고 적의 큰 성을 점령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물한 살 때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축출하고 가이(甲斐)지방의 성주가 됐다. 이후 일본 동쪽 지방까지 장악했다. 일본은 관서와 관동지역으로 나뉘는데, 예부터 관동지역의 무사가 용맹하고 싸움에 능하기로 유명했다. 다케다(武田) 가문도 이 관동무사에 해당한다.
 
일본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영화 ‘가케무샤(影武者)’에서 당시 전국 시대를 주름잡던 무장 신겐을 등장시켰다. 영화 속에서 병사들을 지휘하는 그가 앉은 장군 자리 뒤에 나열한 깃발 속에 바로 풍림화산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휘날린다.
 
일본 무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풍림화산은 <손자병법>의 한 구절에서 유래됐다. 손자는 전쟁을 할 때는 바람(風)처럼 빠르게 공격했다가 때론 숲(林)처럼 고요해질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때는 불(火)처럼 활활 타 오르다가도 산(山)처럼 쉽사리 움직이지 않고 무거워야 한다고 설파했다.
 
병이사립(兵以詐立)군대는 속임을 통해 적보다 우위에 서야 하며
이리동(以利動)이익이 있을 때 기동해야 하며
이분합위변(以分合爲變)분산과 집중을 통해 상황 변화에 적절히 대처해야 한다.
기질여풍(其疾如風)빠르기는 바람처럼 빨라야 하고
기서여림(其徐如林)느릴 때는 숲처럼 고요해야 하고
침략여화(侵掠如火)공격할 때는 불처럼 거세야 하고
부동여산(不動如山)움직이지 않을 때는 산처럼 무거워야 하고
난지여음(難知如陰)숨을 때는 칠흑 같은 어둠과 같아야 하고
동여뢰정(動如雷霆)움직일 때는 우레나 천둥과 같아야 한다.
 
바람처럼! 숲처럼! 불처럼! 산처럼! 단어의 뜻만 떠올려도 가슴 속에 확 당기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빠른 조직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며, 고요한 군대가 항상 지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바람처럼 빠르게, 때로는 숲처럼 고요하게 완급을 조절할 줄 알고, 필요하다면 불처럼 거침없이, 산처럼 무겁게 처신할 줄도 알아야 한다. 풍림화산은 전쟁의 승리를 위해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화두다.
 
얼마 전 우리은행 이종휘 행장이 풍림화산(風林火山)을 하반기 경영전략의 화두로 제시하고 민첩하고 강건한 자세로 영업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재일동포 기업가 손정의 씨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고 정의했다. 자신의 철학 기반이 <손자병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판단과 결정은 역사 속의 ‘전신(戰神)’이나 현대 기업가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덕목이라 할 만한다.


 

 

 

 

출처: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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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비(口勝碑)의 지혜

 

 

요즘 퇴임하는 지방자치단체장 중 송덕비를 세워 자신의 업적을 기리는 사람이 있다고 하여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의 이름과 업적을 돌에 새겨 자손만대에 알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나 무리하게 추진할 일은 아니다. 송덕비는 옛날 목민관들이 자신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백성들의 이름으로 세워놓은 기념물이다. 그러나 이 중에는 억지로 세운 것도 많다하니, 일부는 송덕비가 아니라 악덕비인 셈이다. 비석만 보고 옥석을 가릴 일은 아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전해오는 것을 봐도 이름 석 자를 어딘가에 남기고자 하는 욕망은 무척 오래된 인류의 습속인 듯하다. 명산대천(名山大川)에 빨간 색까지 넣어가며 자신의 이름을 돌에 새기는 것은 명욕(名慾)에 물든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옹색한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세월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을.영원할 것만 같던 돌도 시간이 흐르면 마모돼 사라지고 만다.
 
그래서 뜻있는 조상들은 자신의 이름을 돌에다 새기는 대신 사람들의 입에다 새기는 구승비(口勝碑)를 소중히 여겼다. 돌이나 쇠에 자신의 이름과 업적을 새기기보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름과 업적이 오르내리는 것이 더 영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격양시(擊壤詩)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평생(平生)에 부작추미사(不作皺眉事)하라! 평생에 남의 눈 찡그릴 만한 일 하지 말고 살아라! 세상(世上)에 응무절치인(應無切齒人)이라! 세상에는 나를 향해 이()를 가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대명(大名)을 기유전완석(豈有鐫頑石)이런가? 당신의 이름을 어찌 그 큰 돌에 크게 새기려 하는가? 노상행인(路上行人)이 구승비(口勝碑)니라. 길 가는 행인의 입에 당신 이름을 새기는 것이 돌에다 새기는 것보다 훨씬 오래갈 것이다.’
 
구승비(口勝碑), 즉 사람의 입()이 돌()보다 더 낫다()는 뜻이다. 이 구절은 <서재야화(書齋夜話)>에도 비슷하게 나오는 구절로 결국 사람들의 입에 칭찬과 존경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이 돌에다 새겨 넣은 명성보다 훨씬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명예는 다른 어떤 것보다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내 이름을 누군가 불러주고,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 남들의 기억 속에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 내 이름을 자주 불러주면 행복해지고, 거꾸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무리하게 돌에다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어떤 평가에도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며 묵묵히 길을 가는 군자의 모습은 아름답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으며, 남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우울해 하지도 않는 그런 인생철학 말이다. 정신적인 우울과 황폐함으로 고통 받는 요즘의 시대, 다른 어떤 처방보다도 자신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 든든한 자아가 시급하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마라(不患莫己知)! 내가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기를 먼저 구하라(求爲可知也)!’ 송덕비를 세우기보다 송덕비를 세울 만한 사람이 먼저 되라는 <논어(論語)>의 충고다. 이름을 남기고 가는 것보다 내 주변 사람의 가슴 속에 좋은 사람으로 오랫동안 기억되는 삶이 진정 위대한 인생이다. 구승비(口勝碑), 사람의 마음에 새기는 영원불멸의 기념비다.
 
필자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경영전쟁 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출처 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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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원망않는 자득(自得)의 경지

 

 

 

 

유명 연예인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잘생기고 인기도 있고,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왜 자살을 했을까? 의구심을 넘어 안타까움이 교차한다. 지위와 부를 모두 가진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자살했다는 소식이 요즘 자주 들린다. 이런 연예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자살에는 우울증, 상실감 등의 이유가 따라다닌다. 모두 정신적인 문제와 관여돼있다.
 
세상을 살다보면 정신을 힘들게 하는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부귀(富貴)와 빈천(貧賤), 환난(患難)과 두려움(恐懼)은 모두 나의 정신적 안정감을 깨고 무너뜨리는 요소다. <중용(中庸)>에는 인생을 살면서 다가오는 외부적 충격에 대한 든든한 방어망으로 ‘자득(自得)의 정신경계’를 제시하고 있다.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나()만의 답을 얻어내는() 정신적 방어체계다. 자득(自得), 스스로 답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윗자리에 있든, 아랫자리에 있든 자득의 경지에 이르면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원망하는 자는 자득의 경지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이다. 운명을 원망하지 마라! 두려운 것은 가혹한 운명이 아니라 그 운명에 굴복당하는 자의 마음이다.
 
“군자는 자신의 운명에 합당한 행동을 하나니 그 밖에 것을 원하지 않는다(君子素其位而行不願乎其外). 부귀한 운명이 오면 부귀한 자의 행동을 하고(素富貴行乎富貴), 빈천한 운명이 오면 빈천한 자로서 합당한 행동을 하고(素貧賤行乎貧賤), 오지의 운명에 처하면 오지의 문화를 즐기고(素夷狄行乎夷狄), 환난의 운명을 당하면 환난의 길을 걸으리라(素患難行乎患難). 군자는 어떤 상황이 다가오든 그 상황에서 답을 찾는다(君子無入而不自得焉).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上不怨天), 아래로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下不尤人). 군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운명을 기다리고(君子居易以俟命), 소인은 조급하게 요행을 바란다(小人行險以幸).” 필자가 늘 외고 다니는 <중용>의 구절이다.
 
다산(茶山) 정약용은 정조 대왕이 승하하자 나이 40에 전남 강진 해남 등지로 18년간 유배당하는 환난을 당했다. 그러나 다산은 무너지지 않았다. 비록 궁벽한 곳에 있더라도 정신적인 충만감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리고 300여 권의 책을 저술하고 주변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들여 자신의 철학을 공유하는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모두 환난과 빈천에 무너지지 않는 자득(自得)의 정신 경계가 피워낸 문명(文明)이었다. 역경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자득은 새로운 문명과 꽃을 피워낸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긍정의 힘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처지와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반드시 새로운 답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과 긍정의 힘만 있다면 그 어려움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논어(論語)>에 군자에 대한 정의 중 ‘부지불온(不知不)’이 있다. 이는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니, 진정 군자의 모습이 아니런가(人不知不不亦君子乎)’라는 구절에서 왔다. 어떤 사람의 어떤 평가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군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칭찬한다고 해서 흥분하지 않으며, 남들이 나를 비난한다고 해서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반성해서 옳다고 생각하면 천만 명 앞에서라도 당당히 맞설 수 있고, 스스로 반성해서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저 저잣거리의 걸인 앞에서라도 무릎을 꿇을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중용>에서 말하는 자득(自得)의 인간형과 닮아있다. 죽을 용기와 힘이 있다면 그 용기와 힘으로 새로운 꽃을 피워낼 수도 있다. 계속되는 안타까운 죽음의 소식을 들으며 자득(自得)의 처방(處方)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출처:동아비지니스리뷰D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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