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동네로 돌아와야 한다

 

아이들로부터 아버지가 멀어지는 것 개인, 가정이 아닌 사회문제 될 수도

자신을 위해서라도 집으로 돌아와야

 

 

 

 

 

 

생활속에 숨어있는 즐거움을 찾아주는 TV예능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에서 배드민턴을 다룬 적이 있다. 진행자 강호동씨가 “(배드민턴만 하면 되니까) 앞으로 따로 운동걱정 안해도 되겠다”고 할 정도로 배드민턴은 재미있는 운동이다. 동네 배드민턴 클럽에서 ‘감사’까지 맡았었던 나도 격하게 동의한다. 그런데 동네 배드민턴 클럽을 다니는 재미는 셔틀콕을 좇아 땀흘리는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동네 그리고 사람들의 재발견’이 또 다른 맛이다. 배드민턴을 알기 전에는 시장에서 두부파는 OO여사가 나보다 배드민턴을 훨씬 잘치는 줄도, 나보다 돈을 많이 버는 줄도 몰랐다. 또 추어탕 장사를 하는 OO형님과 막걸리 잔을 나누는 것이 이렇게 알콩달콩 재미있을 줄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살림사는 엄마들은 이웃과 학교 학부모회 등을 통해 OO엄마로 통하는 동네 네트워크 속에서 지낼 기회가 많다. 그에 반해 동네에서 아버지들을 발견하기란 쉽지않다. 대부분의 ‘월급쟁이’ 아버지들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 동네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겨를이 없기 때문이다. 자연히 동네는 ‘아줌마’들이 접수한다. 학교에는 자모회가, 아파트에는 부녀회만 보인다. 그래서일까? 동네에는 이른바 ‘(남자)어른’이 실종된 지 오래고, 아이들의 불량기를 제어할 수 있는 거라곤 경찰 순찰차 밖에 남지 않은 것 같다.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 미체를리히는 ‘현대 사회는 아버지없는 사회’라고 갈파한 바 있는데, 권위이자 질서를 의미하는 ‘꼰대’가 없으니 동네와 사회는 당연히 불안해진다.

개별 가정에서 아버지의 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1차적 아버지 부재’라면, 그것에서 파생되는 ‘2차적 아버지 부재’는 동네에서 아버지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2011년 여름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일어났던 ‘런던 폭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폭동이 일어나고 21명의 사상자와 200만 파운드의 재산손실을 내고 3100명이 구속된 폭동이 발생한 이유에 대해, 내로라하던 영국의 전문가들조차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시 폭동에 가담하고 주도했던 사람들 대부분이 거리의 청소년들이었고, 이들 대부분이 아버지가 없는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점이 밝혀졌다. 당시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급속도로 가족이 해체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에 따라 폭동의 주요 원인으로 집안에 긍정적인 롤모델로 삼을 성인남자가 없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유력해졌다. 아이들로부터 아버지가 멀어지는 것은 개인의 행복 그리고 개별 가정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이처럼 사회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아버지들이 몸은 멀쩡하게 있으되 정신적으로 부재한 예가 적지 않다. 이렇게 아버지들이 가정과 동네를 겉돌게 될 때, 아버지들이 사회생활을 통해 체득한 지혜와 전통을 가정교육에는 물론 자녀들의 학교생활과 아파트 운영에도 활용하기 어렵다. 사실 과거에는 아버지들이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지킬 수 있었다.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가장으로서, 또 산업역군으로서 몸과 마음이 집을 떠나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심지어 박수까지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어림도 없다. 밖으로만 나돌다가는 한순간에 ‘훅 가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아버지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 ‘슈퍼 앞 평상에서 장기두는 할아버지들’ ‘동네 운동장에서 땀흘리는 아버지’가 더 많아질 때, 얼마전 학교폭력 때문에 울산의 한 여고생이 자살하는 것 같은 비극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가을의 저녁이 깊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여름이 좋다.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 산보하는 부부의 발자국 소리, 초저녁에 모녀가 줄넘기하는 소리들을 통해 사람사는 동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추위 때문에 현관문을 꼭꼭 닫고 있더라도 마음만은 늘 여름이었으면 좋겠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연구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66838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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