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먹을 것을 말리고 저장하는 행위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것은 삶에 밀착된 행위이기에 름답다.

아파트에 사는 지금 나는 늘

그 아름다운 행위를 재연해보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그래서 여름의 끝물쯤 되면 시장으로 달려가

말리고 저장해둘 거리들을 사다 나른다.

 

호박, 가지, 토란대를 사다가 쪼개서

아파트 베란다에 말린다.

그 말라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나는 평화를 만끽한다.

모든 말라가는 것들은 그렇게 평화롭다.

 

어머니, 아버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토란잎 무침도 못 먹고 살다가,

어느 해 정월 보름 저녁 고향 큰댁에 가서,

큰어머니가 내놓은 시커먼 토란잎 무침을 보고

얼마나 감격 스러웠는지.

 

큰어머니의 토란잎 무침은

내가 이 세상에서 맛본 음식 중

가장 단순한 맛과 조리법을 가진 음식이다.

 

말린 토란잎을 삶아내 마늘도 파도 없이

아무것도 안 넣고 그냥 조선간장에 살짝 무친 것이다.

간장만으로 무친 토란잎은 단순해서

깊은 안식을 주는 음식이다.

 "큰엄마" 하고 들어선 큰집 구들방에서

나는 인정 없는 도회의 거리를 떠돌다

어둠을 틈 타 돌아온 귀향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큰어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으로 무쳐낸

그 토란잎 무침을 찰밥과 함께 정신없이 목구멍 속으로 밀어넣었다.

말할 수 없는 타향살이의 회한도 토란잎과 함께 밀어 넣었다

... ...

 

- 공선옥 <행복한 만찬>중에서 -

 

 

 

‘음식향수’라고 들어보셨나요?

자라면서 먹던 음식들은 평범하지만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때 즐겨먹던 음식.

엄마가 해주던 음식.

나이가 들거나 정이 그리울 때, 외로울 때는

그 음식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큰 의미가 됩니다.

 

제가 만난 사람들이

전해준 두 가지사연을

간단하게 소개하겠습니다.

 

#1. 김장김치

평소 친하게 지내던 석이엄마네 집에 위로차 놀러갔다. 석이 엄마의 친정엄마가

얼마 전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석이 엄마는 한창 나와 대화를 나누다

김치 부침개를 해주겠다며 김치냉장고에서 묵은 김장김치를 꺼내어 도마위에

얹어놓고는 쫑쫑쫑 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석이 엄마 왜그래?"

그녀는 썰기위에 쥐고 있던 김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리엄마가 담가주신 마지막 김치야..."

우리는 그 김치부침개를 먹으면서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김치에는 그녀의 어린시절부터의 지금까지의 엄마의 사랑이 베어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음식을 통해 엄마의 마지막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2. 된장찌개

내 나이 여든. 누군가 묻는다.

"어머니가 보고싶으세요"

나는 대답한다.

"우리엄마, 너무 보고싶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참 이상한게 엄마가 보고싶어요"

그는 또 묻는다.

엄마를 단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무슨대화를 나누고 싶으세요.

나는 또 대답한다.

"엄마, 배고파요. 밥차려주세요. 특히 엄마 된장찌개가 먹고싶어요"

엄마 끓은 된장찌개는 세상에서 가장 먹고싶은...하지만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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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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