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 던져놓고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은 계절.

벌써 산간지방에는 첫얼음이 얼었다는데

더 늦기 전에 단풍 구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풍과 낙엽과 추억이 함께 머문 곳,

나의 모교를 찾아 나섰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

늦은 오후 시간의 대학로 거리는

젊은이들로 초만원이었고

수많은 공연장과 카페와 어지러운 간판들도 여전했다.

 

 

 더구나 이날이 빼빼로 데이라나 뭐라나.

편의점과 빵집 앞은 화려한 포장의 특정과자들로 넘쳐났으며

젊은 연인들을 향한 호객행위도 맹렬했다.

그러나 서운하게도 나에게 판촉활동을 벌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리 과자 회사의 얄팍한 상혼이라 비난해도

이날만큼은 나도 충분히 구매의사를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것도 젊은 사람한테만 해당된다 이거지.

그래, 젊음도 낭만도 다 때가 있거늘 실컷 즐기려무나.’

 

 

애써 담담한 듯 걸어가는데

거리를 오가는 젊은이들의 발랄하고 거침없는 몸짓이

그들과 나의 연령차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갑자기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에

자연스레 ‘카사노바’를 떠올렸다.

그곳은 우리 과 친구들의 아지트라 할 만큼

 거의 매일 들렀던 찻집인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간 다방, 야간 호프집이었다.

 

 

당시에는 명동이나 대학가에 통기타 문화를 대변하는

그런 형태의 라이브 카페가 대유행이었다.

우리들은 ‘카사노바’에서 자주 차와 맥주를 마시고

신청곡도 주문했지만 아주 가끔씩은 그래도

국문과 티를 낸다고 문학과 실존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그러나 십여 년 만에 찾아간 그 찻집은 CGV 영화관으로 바뀌었고

학교 바로 앞 ‘명륜 다방’ 역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이 변해버렸다.

 

 

차 마시기를 포기하고 교정으로 들어섰다.

내 젊음이 녹아있는 그리운 곳.

성균관이라는 교패를 보자 콘크리트 같던 마음에 비로소 피가 도는 것 같았다.

교문 입구에서부터 겨자색, 주황색, 밤색 등 형형색색의 나뭇잎이 어우러져

 캠퍼스 전체가 애니메이션 화면처럼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위에서부터 붉은 물이 들어 아랫부분의 초록과 대비를 이루는데

빨강도 아니고 초록도 아닌 중간 톤이 어찌 그리도 곱던지...

정녕 사람을 숙연하게 만드는 가을의 빛!

이보다 더 조화로운 색조를 그 누가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오랜 만에 가져보는 이 여유.

살아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무리지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낙엽들이,

살아있다는 기쁨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화단에는 황국(黃菊)도 피어 있었다.

그 옆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동아리 모임 후 뒤풀이라도 하는 걸까?

여남은 명의 남녀가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이 봄날처럼 싱그럽고 정다워 보였다.

여름에 무성했던 풀들이 쇠락하여 누런빛을 띠는 것처럼

나 또한 저들처럼 번성한 시절이 있었거늘,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이제는 세상의 모든 사태를 조금 떨어져서 관조할 뿐이다.

 

 

쇠락과 번영은 고정된 바가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아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초입에서부터 더 이상 어슬렁거렸다가는 금세 날이 어두워질 것 같아

이번에는 마사이족처럼 빠른 걸음으로 문과대학과 여학생 회관을 찾았다.

 그러나 그곳 역시 건물이 바뀌었거나 리모델링해서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넓디넓던 금잔디 광장도 광장이라고 부르기엔 형편없이 작아 보였다.

대신 중앙도서관은 늠름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 캠퍼스 한가운데 턱 버티고 있었다.

 

 

잠시 은행나무 아래 걸음을 멈추고 호젓한 나만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은행잎 천지였다.

샛노란 은행잎은 사랑을 간직한 엽서 같았고 황금빛 축제장 같기도 했다.

나는 바람에 업혀 요리저리 맴돌다 떨어지는 은행잎을 몇 장 주워 수첩에 끼워 넣었다.

“잘 왔지?” 은행잎이 나긋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이 포근한 낙엽의 잔치가 끝나면 머지않아

나무에는 눈꽃이 피어나고 매서운 바람이 불 것이며

어렵디 어렵게 봄이 찾아와 또 한바탕 꽃 잔치를 치르게 되겠지.

 

 

멀리 커피 자판기가 보였다.

반가웠다.

늦가을 오후에 캠퍼스 벤치에서 홀로 마시는 커피.

그런데 커피를 마시다가 나는 문득 지나온 기억의 아픈 계단을 밟아버린 듯 신음을 쏟았다.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이름, 그리운 친구 경순이.

많은 세월이 갔어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히 나의 화두로 출렁거렸다.

 

 

강의실, 도서관, 식당, 그리고 학교 운동장에서

 삼청공원 넘어가는 후문 앞 오솔길까지 친구와의 추억은 캠퍼스 곳곳에 서려 있었다.

나는 혼자서 걷고 또 걸었다. 경순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대학에서 처음 만나 연인들처럼 서로가 반해 버렸다.

학교 가는 목적이 공부보다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주저 없이 말하였고

하루라도 못 보면 궁금하고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 요즘 같으면 동성애자로 오해 받을 수도 있었겠다.

얼굴이 하얗고 가녀린 외모의 그녀는 특히 복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덕분에 나도 그녀와 붙어 다니면서 남학생들에게 공짜 밥과 차를 많이 얻어먹었다.

 

 

더욱 기막힌 일은 졸업 후에 서로가 다른 사람을 통해서 각각 남자친구를 소개 받았는데,

나중에 보니 두 사람은 동갑내기에다 같은 직장 동료였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맞아 떨어져서 아마 우린 전생에 부부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혼해서도 일주 일이 멀다고 느낄 만큼 자주 만났다.

 

 

그랬었는데, 부부끼리의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예기치 않게 찾아든 불행의 그림자가 그녀의 안락한 삶은 물론

우리의 오랜 우정까지도 송두리째 앗아갔다.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첫아들,

남편의 방황, 별거, 이혼,

끝도 없이 잇따른 절망의 늪은 연약한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깊고 험했다.

 

 

결국 친구는 주변의 모든 인연과 손을 끊고 연락 두절 상태로 들어갔다.

백방으로 찾아 다녔지만 허사였다.

나중에는 친구가 극단적인 선택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너무 커서 배신감마저 들었다.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한테만은 그럴 수 없다고,

도저히 그럴 수는 없노라고!

 

 

다시금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20대 초반에서 몇십 년에 또 몇십 년이 더해진 고목 같은 우리들 나이를 생각할 때,

이제 다시 만난다면 세상 가운데 우뚝 서서 서로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나무 같은 사랑을

할 수 있으련만...

 

 

사랑도 우정도 끝내는 다 놓고 갈 것이지만

사는 동안 나는 얼마나 더 간절하고 연연해할 것인가.

깊어가는 이 가을, 그리움의 빈 잔에 사랑의 열매를 채우기 위해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허영자 시인의 ‘가을 기도’를 나직이 읊조렸다.

 

 

가을기도

 

이 쓸쓸한 땅에서

울지 않게 해 주십시오.

뜨거운 쓸개 입에 물고서

배반자를

미워하지 않게 해주십시오.

나날이 높아가는 하늘처럼

맑은 물처럼

소슬한 기운으로 살게 해 주십시오.

먼 산에 타는 뜨거운 단풍

그렇게 눈멀어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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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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