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철학적인 시기는 언제일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친구와 가족,

학교와 사회에 대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게되는

청소년기가 아닐까?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간다.

정문을 지나 교실에 들어서서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책상에 앉아 가방 안에 있는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낸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어제 봤던 TV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교실 뒤에서는 일진 애들이 새로 전학 온 녀석을 괴롭히고 있다.

카톡으로 옆 반 친구와 잡담을 한다.

…  늘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학교에는 왜 가야 하는 걸까?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걸까?

왕따당하는 친구를 모른 척해도 될까?

수학 시간은 왜 천천히 흘러갈까?

사랑의 매는 허용해도 될까?

자살은 왜 하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어떤 문제들은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짐이 되기도 한다.

 

사춘기, 십대, 청소년 ― 철학하기에 가장 좋은,

아니 인생에서 가장 철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제적인 시기,

이 책에서는 청소년들에게

15가지 철학적인 질문과 함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 보자고 제안한다.

 

 

<나>, <나와 우리>, <나와 세계>로 넓어지고 깊어지는 철학 여행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이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출발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결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품을 수도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 것인지,

시스템의 노예로 살 것인지는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청소년들을 끝없는 물음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서 어떻게 앎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따지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짜 배움이며, 자신의 앎과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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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철학과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연애를 해보길 기대하면서

책 속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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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일흔 살 먹은 노인이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인 이 노인은 앞으로 3개월 남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갓 스무 살이 지난 청년이 있습니다.

신체 건강한 청년으로 활력 넘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앞으로 두 시간 뒤에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입니다.

 

자, 질문입니다.

노인과 청년 중에 누가 더 늙었을까요?

 

― <두 번째 이야기, 시간 : 노인과 청년 중에 누가 더 늙었을까?> 중에서

 

 

 

한 도둑이 귀중품을 훔치러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갔습니다.

도둑은 평소처럼 조용히 집 안을 뒤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실수로 꽃병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쨍그랑 소리가 났지요.

그런데도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방문을 열었더니

온 가족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보일러에서 새어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입니다.

그는 잠시 자신의 본분(?)을 잊고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잠시 후 구급 대원들이 도착했고,

도둑의 신고 덕분에 가족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자, 이 도둑에게 상을 줘야 할까요, 벌을 줘야 할까요?

 

― <여섯 번째 이야기, 윤리 :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숨겨 줘도 될까?> 중에서

 

 

 

 

앞에서 왜 남자와 여자의 단추 위치가 다른지 물었지요?

단추는 중세 시대 발명품으로 당시에는 귀족들만 쓸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남자들은 ‘자립적’인 존재이므로

당연히 스스로 옷을 입고 단추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오른쪽에 단추를 달았던 거죠.

대부분 오른손잡이니까요.

 

반면에 여성은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고 여겼어요.

(이것을 교묘하게 포장한 게 바로 기사도였답니다.)

그래서 입혀 주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왼쪽에 단추를 달았던 거죠.

여자들의 옷에만 등에 단추나 지퍼가 달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여덟 번째 이야기, 남녀 : 남자와 여자,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인가?> 중에서

 

 

 

 

다음은 TV에 나왔던 참치 통조림 CF의 몇 장면입니다.

돼지 한 마리가 욕조에 앉아 우아하게 반신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바다 위를 헤엄치는 참치 떼를 바라보며

“나도 참치처럼 되고 말 거야!”라고 간절히 외칩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은 참치처럼,

자기도 인간들이 좋아하는 먹거리가 되고 싶다는 것이죠.

진짜 돼지가 이 CF를 보고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 <아홉 번째 이야기, 동물 : 우리는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가?> 중에서

 

 

 

최근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들이 도심에 출몰한다는 뉴스가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멧돼지를 도심으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산을 깎아 도로나 건물을 짓는 바람에 멧돼지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풍요롭던 먹이까지 잃어버린 거죠.

 

배고픈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오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멧돼지가 마을을 습격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멧돼지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 <열한 번째 이야기, 과학 : 인간과 과학> 중에서

 

 

 

블로그의 영향력은 최근 들어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으로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자신이 생산한 정보를 그냥 늘어놓기만 했는데,

이제는 블로그 콘텐츠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널리 알리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블로그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개인 미디어의 형식이 바뀌어 가는 건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소통의 욕구입니다.

 

― <열세 번째 이야기, 미디어 :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다음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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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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