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만드는 사람들
문화와 교육사이 2013. 7. 31. 17:23
모처럼 시내에 가려고 마을 앞 버스 정류장에 나갔더니
벌써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먼저 나와 떠들고 있었다.
그 때 윗골목에서 정용이네 어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나온다.
“어디 가시니껴?”
누군가 그렇게 묻자
“나, 트랄레스 풀러 가니더” 한다.
모여있던 아주머니들이 왁자지껄 웃는다.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다가 가까스로 알아차렸다.
정용이네 어머니가 말한 ‘트랄레스’는 바로
요새 유행하고 있는 ‘스트레스’였다.
시골사람들은, 특히 아주머니나 할머니들은
말을 제멋대로 만든다.
창동이네 할머니는 봉고차를 꼭 ‘곰보차’라고 하고,
태진네 어머니는 경운기를 ‘제궁기’라 했다.
슬리프를 ‘딸딸이’라 하고,
크림은 ‘구라분’, 승용차를 ‘뺀질이’라했다.
한동안 비누를 가지고 ‘사분’이라고 해서
대체 ‘사분’이란 말이 한자말인지 뭔지 궁금했는데
프랑스에서 사봉(savon)이라 한 것이
우리나라에 오면서 사분이 되었단다.
‘타바코’가 ‘담방구’였다가 ‘담배’로 변했듯이
우리말로 되어가는 과정이 희한하기도 하다.
언젠가 시외버스 정류소에서
어느 할머니가 차장한테 열심히 묻고 있었다.
“이 빵스 어디 가는 빵스이껴?”
그러자 차장이 한술 더 떠서
“이 빵스 서울 가는 사리마다시더”했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말이 있기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이루어진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혼자 웃기도 한다.
발췌 :「우리말과 삶을 가꾸는 글쓰기」 2000
'문화와 교육사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죄 (0) | 2014.02.24 |
---|---|
산타할아버지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0) | 2013.12.23 |
삶과 시(詩) 책속의 행복 Plan (0) | 2013.04.23 |
시바타도요 할머니! (0) | 2013.04.17 |
그 사람의 손을 보면 (0) | 2013.04.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