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선박에서 200파운드나 되는 금을 채운 허리띠를 맨 승객이 배 밑바닥에서 발견되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부에 대해서 되묻고 있다. 어느 학자의 말처럼 ‘그렇다면 그는 금을 소유했다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금이 그를 소유한 것일까?’

부는 생명보다 중요하지 않다. 부를 적게 가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눌 때만이 진정한 부의 가치가 생길 수 있다.

 
영국의 풍자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글은 그런 의미에서 되새겨볼 만하다.

‘묻혀 있는 부는 죽음이지만 흩어져 있는 부는 생명이다. 적당한 양을 사용하면 독도 약이 되는 것처럼, 향수의 연료도 쌓아두면 악취를 풍기지만 골고루 뿌려주면 하늘 멀리 향기롭게 퍼지는 것처럼...’

 

 

나눔에는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다

요즘 각 사회단체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눔에 참여하고 있다.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더 많다. 나눔은 이렇듯 재력가나 명망가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콩까지 하나를 열 사람이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웃을 서로 배려하고 나눠먹던 우리의 전통을 말해주고 있다. 책을 펴낸 사람은 인세 1%를, 회사 사장은 자신의 월급 1%를, 심지어 가진 재능이 끼밖에 없는 사람은 자신의 재능과 시간의 1%를 나눌 수 있다. 어떤 남자 대학생은 자신은 가진 게 힘밖에 없으니 어디 힘쓸 데가 없느냐고 문의를 해와 자원봉사를 하고 있기도 하다.

 

돌아가신 아버님을 기리기 위해 조의금을 기부하신 분, 아들 돌잔치 때 받은 금반지를 아들의 이름으로 기부하신 분들도 있다. 포항에서 행상하시는 아주머니, 구두닦이 아저씨, 나아가 정부지원을 받는 장애인도 더 어려운 누군가를 위해 나눔에 참여하고 있다. 이분들을 보면서 이 세상에 나누지 못할 정도의 가난은 없다는 점을 실감하게 된다. 나눔은 크고 작음이 있을 수 없다. 물질이 아니라도 따뜻하고 평등한 시선과 관심, 마음으로도 나눌 수 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어려운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는 그 어떤 여과장치 없이 보게 된다. 눈물샘이 자극되고 동정의 손길이 이어지지만 문제는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이웃임을 먼저 느껴야 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동등한 시선으로 동정이 아닌 사랑으로 우리가 껴안아야 한다.

 

사회에는 양지와 음지가 있다. 문제는 음지를 인정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마음의 벽을 쳐버리는 것이다. 마음의 벽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주변을 돌아보면 벽들이 가로막고 있다. 영구임대아파트와 일반아파트를 가로막는 벽이 있다. 같은 초등학교를 다녀도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는 다른 친구보다 벽을 한참 돌아서 학교에 등교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벽 하나로 상처받는 학생이 있다면 우리 사회는 밝아질 수가 없다. 음지를 인정하되 차별 없이 바라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차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분배를 통해 복지환경이 좋아진다고 해도, 나눔이 이어진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부의 불평등이 해소될 수 없다. 나눔 교육과 문화가 필요할 때이다. 가정과 학교에서부터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교육이 필요하다. 아울러 기부문화에 대한 여러 제도적인 장치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내가 가진 그 무엇’을 남을 위해 나눈다는 자세 필요

뉴욕시에서 열렸던 ‘전국 기부의 날(national philanthropy day)' 집회에 들린 록펠러가의 딸이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매주 15센트의 용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상자 셋을 만들어 ’나를 위한 돈‘,’저축할 돈‘,’다른 사람을 위해 쓸 돈‘ 으로 분류하고는 매주 받은 용돈을 셋으로 나누어 상자에 넣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나눔에 대해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는 자기가 번 돈의 대부분을 자국의 복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의 빈곤퇴치를 위해 기부를 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큰돈이지만 자식에게는 일부만 남겨두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옛날부터 좋은 나눔문화가 있어왔고, 귀감이 되는 훌륭한 부의 사회환원 사례도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지도층 인사의 나눔은 부족하기만 하다.

세계적 환경문제연구소인 미국 월드워치(wwi)는 소비가 삶의 질이나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부유층이 많은 국가 중 ‘웰빙 톱5’에 든 곳은 하나도 없었다. 소비가 미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적게 쓰고 나눌 때만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빈곤의 문제들을 풀어 나갈 수 있다.

 

한 기부자의 가례는 이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올해 서른일곱 살, 한 외국계 회사에서 홍보팀장으로 일하는 그 기부자는 ‘알뜰 남편’이다. 그는 가계부를 아내에게 맡기지 않고 손수 쓴다. 특별지출이 많은 달을 미리 체크하고 자금운용 계획을 짠다. 가계 ceo인 셈이다. 그는 팀장이어서 월 25만원 정도 주차비 지원이 나온다. 하지만 차를 끌고 다니지 않는다. 신월동 집에서 지하철 5호선 신정역까지 택시 기본요금밖에 안 나오는데도 항상 버스로 다닌다. 그는 외출할 때는 꼭 신용카드와 마일리지 카드를 점검한다. 나들이 계획에 잡혀있는 음식점이나 놀이공원에서 할인혜택을 받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의 책상 서랍에는 마일리지 카드 20여 개가 잘 정리돼 있다. 그는 자신의 이같은 생활철학을 ‘신(新)자린고비’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무조건 안 먹고 안 쓰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아낄 땐 아끼지만 써야할 때는 과감히 쓴다. 현재 그는 아름다운재단에 매달 5만원씩 기부를 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나눔을 묵묵하게 실천하는 착한 이웃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변화와 대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활동하는 많은 풀뿌리단체들이 있다. 굳이 큰 모금단체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와 지역을 살펴보면 도움이 필요한 곳이 많이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내가 가진 그 무엇을 남을 위해 나눌 수 있다.

 

아울러 보다 선진적인 나눔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개인 기부자들의 세제혜택의 폭을 넓히거나, 기부해도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정기부금 단체의 선정범위를 넓혀야 한다. 모아진 돈들이 투명하게 잘 쓰일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또한 필요하다. 재원을 모으는 것도 힘들지만 제대로 필요한 곳에 쓰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함께 나누는 삶을 통해 사회가 좀 더 건강한 모습으로 바뀌어 나가기 위해서는 일상의 참여가 있어야 가능하다. 오늘부터 작은 나눔을 실천해보자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세계  교육지표와 교육 개혁을 이야기 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나라 핀란드. 핀란드 교육과 관련된 자료가 많이 소개되었지요. 전문서적도 마찬가지. 특히 한국에서도 핀란드 교육탐방을 많이 갔지요. 한 달 전 일본 교육학자 후쿠타 세이지 쓴 ‘핀란드 교실혁명’을 읽어 보았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핀란드를 다녀와서 쓴 책도 있는데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나름 균형적인 시각을 갖기 위해서 입니다. 이 책을 번역한 사람도 말했듯이, 핀란드 교육은 한국 교육현실에서 볼 때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지요.

 

교육문제에는 좌우, 보수와 진보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핀란드 교육 개혁을 이야기 할 때 어떤 이는 한국의 현실하고 맞지 않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이는 핀란드 교육이야 말로 한국이 채택할 교육시스템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참 무의미 합니다. 왜냐면 핀란드 교육 개혁에서 배울 것이 있고 받아들일 것이 있다면 한국 현실에 맞게 들여오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한국 교육개혁의 문제점은 냄비근성입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지속성이 없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지요. 끊어 올랐다가 금방 식어버립니다. 제도가 자주 바뀌다 보니, 교육철학은 빠져있고, 교육공학만 판치니, 학부모나 교사, 학생들만 힘들지요.

 

핀란드가 교육개혁이 성공한 이유는 교육철학에 기반 해서, 교육시스템을 바꾸고 지속성을 유지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지속성이 없으면 뿌리내리기 힘듭니다. 한국의 현실과는 아주 대조적이지요. 핀란드 교육의 요체는 경쟁이 없다는 것입니다. 경쟁을 가르치지 않지만, 가장 경쟁력 있는 교육 국가가 된 것이지요. 사람의 능력을 경쟁이라는 잣대로 판단하고 구분해 버리면, 능력이 없는 학생은 도태되어 버립니다. 능력이라는 것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가르칠 때 시나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기회균등의 힘이 깔려 있는 핀란드 교육. 한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 성적순으로 사람의 능력을 갈라 버리니까요. 잠재 능력이라는 것을 보지 않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기회를 자주 주어야합니다. 알려지다시피 핀란드는 교육격차가 거의 없습니다. 교육에 대한 기회균등 철학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오늘은 핀란드 교육 제도나 시스템의 세부 구조를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것 보다는 큰 가치공유가 더 중요하니까요. 핀란드 교육을 이야기 할 때 이 표현이 가장 와 닿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돕고 정부는 지원하고 부모는 협력했다. 그 결과 시험으로 몰아 붙이지 않는 교육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었다” 핀란드 교육 개혁은 이렇게 협치(교육 거버넌스)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참고 기다리면 지식을 우물 안에 넣고, 우물 안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지식도 변화하고 능력도 변화한다고 본 것이지요. 학교시설이 좋거나 번듯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 주체(학생, 교사, 학부모)가 주도적으로 교육개혁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또한 교사는 핀란드 교육방법에 대해서는 전권을 가졌습니다. 교사가 아이들의 상태를 파악하면 맞춤형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방법이라고 판단한 것이지요.

 
핀란드 교육위원회가 핀란드 학생들이 각 종 교육 지표에 1위를 달리고 상위에 랭킹 된 이유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칠까 합니다.

 

1. 가정, 성, 경제력, 모국어 관계없이 교육 기회가 평등하다.

2. 어떤 지역에서도 교육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

3. 성별에 따른 분리를 부정한다.

4. 모든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한다.

5.종합제(교과목이나 학생 등을 수준별로 가르치는 대신 통합해서 가르치는 형식)로 선별하지 않는 기초교육.

6.전체는 중앙에서 조정하지만 실행은 지역에서 맡을 수 있도록 교육행정이 유연하게 지원한다.

7. 모든 교육 단계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협력하는 점, 동료의식.

8. 학생의 학습과 복지에 대해 개인별로 맟춤 지원을 한다.

9. 시험과 서열을 없애고 발달의 관점으로 학생을 평가한다.

10.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전문성이 높은 교사

11. 사회구성주의적인 학습 개념.

 

핀란드 교육개혁은 번역자의 소개 글대로 무척 단순한 경제적 필요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적은 인구에 척박한 자연환경, 단 한 명도 버릴 수 없는 절박한 처지에서 나온 생각들을 실천한 결과지요.

한국은 핀란드와 환경이 많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한국 교육은 그 어느 나라보다 절박하지요. 그렇다면 그런 절박함을 이제 지혜로 만들어 실천할 때입니다.


* 앞으로 세 차례에 거쳐서 핀라드 교육개혁 중에 한국의 교육환경에 적용 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소개시켜 드릴까 합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아이들 얼굴만 보고 있으면, 근심 걱정이 달아납니다.
아이들 얼굴은 평화 그 자체지요.
디지털 카메라 보급으로  손쉽게 자녀들 사진을  연출해서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관이나 사진전문스튜디오에서 기념 사진을 찍는 것도 좋지만,
자녀의 일상 기록을 꾸준하게 담아서 찍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엄마 아빠가 공동으로 찍은 사진을 값어치를 어찌 견주겠습니까?
자녀가 성장해서 사진을 본다고 생각해보세요^^




012345678910111213141516

 *이미지출처>>Mila's Daydreams



아마추어 사진작가 중에, 자신들의 자녀 사진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찍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자녀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으면서 자녀에 대한 사랑과 꿈을 남겨 보십시오. 자녀가 자라면, 엄마 아빠의 글과 함이 담긴 사진집을 선물로 주셔도.....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서울시 교육청이 체벌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한 선생이 "나랑 맞짱 뜰래?" 라고 말하면 여학생에게 심한 구타와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체벌과 폭행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왜 빈번하게 폭력이 발생할까요? 공권력의 남용이 아니라 교권의 남용이라 불러야 합니까? 체벌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벌’입니다. 교육학용어사전(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9)에서는 체벌을 훈육의 한 방법으로서 특정의 행동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요.

 

오죽하면 선생이 학생을 때릴까? 이런 생각도 해보지만, 모든 폭력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체벌을 폐지한다는 쪽에서는 체벌 금지가 ‘인권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체벌은 최소한의 학생지도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바로 기타의 방법이 체벌인 셈입니다. 조금 모호하지요.

 

훈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덕육(德育)에 해당합니다.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방법은 상과 벌입니다. 벌이 바로 체벌. 학생을 가르치다보면 야단도 칠 수 있고 벌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신체에 가하는 벌의 범위가 모호합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체벌의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체벌은 폭력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벌과 폭력을 구분할 수 있지요. 가르치는 입장이나 배우는 입장에서 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가 과해지면 폭력을 유발할 수 있지요. 한국의 교육환경은 어떤가요? 자율과 규제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선생과 학생이 서로 지식과 지혜를 주고받는 교육풍토가 정착되어 있다면, 굳이 체벌의 존폐문제를 거론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왜 많은 국가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폭력은 근절될 수 없지만, 폭력은 절대 인정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체벌을 유지한다면 신체에 직접적으로 가하는 벌의 범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체벌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체벌을 대체 할만한, 문제 학생에 대한 심리, 정신교육프로그램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체벌 금지냐 유지냐 라고 대립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다보면 원론적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겠지요. 인성교육(전인교육)이 상실된 교육환경에서 교육제도를 계획 하기 앞서, 선생 스스로도 되물어 보아야 합니다. 결국 모범을 보여 할 사람은 선생입니다. 선생은 모범을 제시해야 하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먼저 사랑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선생의 길은 어렵고 중요합니다. 만인의 선생이 되어야지 아이의 선생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학생 체벌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중용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학교문화에 녹아 들어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체벌을 금지 하건 하지 않건 폭력은 재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벌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대책 또한 필요합니다. 또한 육체적 체벌이 아니라 말의 폭력도 체벌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이렇듯 체벌 문제 하나를 보더라도 교육 전체의 관점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정책이 10년을 내다보면서 참고, 지속성을 가지고 시행된 적이 있나요? 핀란드 교육 이야기를 할 때, 체벌을 금지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처럼 의견이 반 반 갈립니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을 ‘뜨거운 감자’라고 표현하지요. 한국 사회 실정에 맞지 않다. 무조건 도입해야 한다보다, 그 내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왜 핀란드 만의 교육체제를 만들었는지. 그것은 바로 지속성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교육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그걸 통해 교육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넓은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교육개혁조급증도 경계해야 하지만, 방어적인 자세도 지양되어야 합니다. 한국만의 풍토에 맞는 여야, 좌우를 떠난 10년 대계의 교육개혁 청사진이라도 합의해 만들어서 실천했으면 합니다.

 


나는 때로 ‘처벌과 자유방임의 싸움이 영원히 지속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만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흔히 처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 외에 유일한 대안은 자유방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벌을 사용한다. 반대로 처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유방임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의 훈육은 처벌도 아니고 자유방임도 아닌 중간지대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긍정의 훈육은 부모나 교사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자세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들을 옹호한다. (긍정의 훈육 중에서)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카메라.  인류가 발명한 유산 중에 하나를 손꼽으라면 카메라를 들고 싶습니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이제는 사진의 영역도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무너졌지요. 그렇지만 이런 시각도 우리 사회 구성원의 20%가 80%를 바라보는 것처럼, 북반구에서 남반구(제 3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닐까요. 남반구(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의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해외언론과 관광객들의 가십거리까지는 아니어도 찍히는 주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 단정적인 시각인가요? 각 종 사고 현장과 빈곤에 늪에 빠져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뉴스거리이자 쉽게 담을 수 없는 일상과 벗어난 '낯선 풍경'이어서 그럴까요.

 

오늘은 찍힘의 대상이 되었던 남반구의 아이들이 자기들 세상을 자기의 눈으로 카메라에 담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몇 개만 소개할 까 합니다. 프랑스의 사진가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은 1997년 '이미지의 종말'을 선언하며 사진 찍기를 중단하며 아프리카의 모르코 아이들에게 1회용 카메라를 나누어 주면 마음껏 사진을 찍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찍은 사진 중에서 60장을 골라 2000년도에 전시를 엽니다. 사진가이기를 포기한 셈이지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사진가 자나 부리스키(Zana Briski, photographer and co-director of Born into Brothels)가 인도 캘커타 홍등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나누어 주고 사진을 찍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전시하며, 이런 과정을 촬영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듭니다. 제목은 '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카메라를 통해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이들이 찍은 사진들은 전문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잠시 사진가가 되었던 아이들이 모두다 캘커타 홍등가를 벗어 날 수는 없었고,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사진작가나 관광객들이 피사체가 되었던 아이들이 잠시 세상을 보는 주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영화의 찬, 반을 떠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포스터에 찍힌 아이들, 많이 컸지요

 

오른쪽으로 좌측: Puja, Kochi, Avijit, Tapasi, Gour, Manik, Shanti

공식사이트http://kids-with-cameras.org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내용은 소니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시된 'EYE SEE Ⅲ'프로그램입니다. 소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소니는 유니세프와 함께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내전지역이자 말라리아 등 여러 질병으로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르완다와 라이베리아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제공하고 사진을 찍게 해서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사진의 주제는 '빈곤', '아프리카', '환경', '아이들이 노는 권리' 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담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 사진가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40명이 담은 사진들이 '아프리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다 말해 주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아프리카의 현실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YE SEE Ⅲ' 홈페이지

 

 

 

그러면 아이들이 찍은 사진 몇 작품을 감상해  볼까요!!

 

A young boy in Liberia learns how to use a camera as part of UNICEF’s Eye See III project.

 

This photo was taken in Liberia by 13-year-old Melville Harris

 

This photo was taken in Rwanda by Joseph Ganza.

 

This photo was taken in Rwanda by Lucien Megisha.

 

A Liberian or Rwandan child is captured in this image, taken as part of UNICEF's EYE SEE III project.

 

This photo was taken in Rwanda by Jean Claude Mutabazi.

 

This photo was taken in Liberia by Johnny Lard, who is 12-years-old.

 

This close-up was taken by a young photographer in Rwanda.

 

사진출처http://www.ctv.ca/gallery/html/AM_malaria_080425/photo_7.html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주변환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마음을 열고, 사진을 찍는 다는 것에 대해..... 카메라 한 대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인터넷 공간에 도배되고 있네요. 중앙일보에 의해 첫 보도된 강용석 의원 발언이 조선일보, 매일경제를 통해 추가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강용석 의원이 발언한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참 부끄럽네요. 아이들 보기에 민망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정치적 색깔을 떠나 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성추행 발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강용석 의원은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그야말로 한국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성비하, 성희롱 발언을 쉽게 했을까요? 강 의원이 발언 내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가릴 때까지는 쉽게 비판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까지 정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발언 내용이 사실 인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에서 급히 제명 조치를 내린 걸 보면.

 

강용석 의원뿐만 아니라, 과거를 돌아다보면 한국 사회 성추행, 성 비하 발언과 사건은 부지기수입니다. 여성을 상품화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분명 차별입니다. 성차별문제지요. 성차별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 뿌리는 가정입니다. 물론 가정교육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참 중요하지요. 엄마 아빠는 자녀의 바로미터. 부부가 인격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남존여비사상의 잔재가 남아있지요. 아내를 시중꾼처럼 대하는 아빠의 발언과 자세야 말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부는 서로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어야 합니다.

 
딸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 세계의 모습을 담은 ‘100% 엔젤’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시킵니다. 엄마는 말합니다. “이것 봐요. 나 남편 필요 없어요. 나도 아내를 구해줘요!” “한국 땅에서 제일 살기 좋은 사람은 아내있는 사람이예요. 밥해줘, 양말 빨아줘, 재떨이 갖다줘,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줘, 혼 내키면 야단맞아줘, 자식 키워줘, 부모 모셔줘, 나도 남편 필요 없어요, 아내 하나 구해줘요”

 
예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안상수 교수. 안상수 교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존칭을 쓰지요. 형식적인 존칭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존칭.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차별의 근본 뿌리는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마치 교육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세가 보장된 직장을 얻는 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평생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을 달리는 말, 싸움을 위한 말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평화를 위한 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도 이제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강용석 의원의 성추행 발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과 성문화, 인권교육이 어느 수준인지 반성하고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일상에서 남을 차별하고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하지 않았는지....'불완전 한 것이 비로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완전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끝임없이 배우고, 인성을 가다듬는 교육이 절실 할 때입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지요. 가볍게 던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세상을 보는 바로미터. 요즘 학교 체벌 때문에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폭력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편에서 바라 볼 문제는 아닙니다. 선생, 학생, 학부모가 같이 고민해서 풀 문제입니다. 체벌은 내재적 처벌과, 외형적 처벌 두개가 존재합니다. 외형적 체벌은 육체적 벌이 있고, 내재적 체벌은 말의 폭력, 멸시와 혐오 차별의 시선입니다. 폭력은 내재적 체벌에 통해 주로 발생합니다. 말의 폭력은 육체적 폭력으로 연결되지요. 화를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니까요.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그 전제는 과연 가정과 학교에서 비폭력 대화법에 익숙한지, 토론과 대화문화가 성숙되어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오늘 소개시켜 드릴 시계는 폭력 금지 시계입니다.
물론 이 시계가 폭력을 막지는 못합니다.
필리핀에서 제작한 "여성 학대 시계'는 꼭 여성에게만 국한된 시계가 아닙니다.
필리핀에서는 한 시간 마다 여성 폭력이 발생합니다. 필리핀만의 현황이 아닙니다. 






바로 이 시계입니다.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면 분침(남자)가 시침(여성)을 향해 주먹질을....




   







직장과 학교, 공공시설에 시계를 설치해 놓았네요.

이런 시계가 제작 되지 않는 사회가 오면 좋겠지요!!!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본격적인 여름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고 3 자녀를 둔 부모나 학생입장에서야 여름 방학이 방학이 아니지요. 하지만 자녀들과 함께 여름 방학을 뜻 깊게 보내기 위한 길을 함께 찾아보았으면 합니다. 시간은 쪼개어 나누어 쓸수록 더 값지니까요.

 



인생의 지혜를 찾아서.

두 권의 책!


 나는 '천재는 70퍼센트의 근면과 20~30퍼센트의 재능으로 이루어진다" 라는 말이 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지센린)

 





책 2권을 꼭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내용도 그렇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초, 중 학생들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셴린의 ‘다 지나간다’와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두 분의 책을 소개시켜 준 이유는 두 분 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것을 실천해 주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두 책 다 수필집입니다. ‘중국의 스승’이라고 불리는 지셴린이 쓴 ‘다 지나간다’는 글이 아주 쉽게 쓰여 있답니다. 대석학이 쓴 글이 이렇게 평범할 수 가 있는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쉽게 읽힌다고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인생의 가름침이 책 곳곳에 인생파노라마처럼 담겨있습니다. 98세의 나이에도 읽고 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 지셴린을 통해 평생학습과 시간 활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책 왕멍의 ‘나는 학생이다’. 책 내용을 떠나 제목이 참 마음에 듭니다. 왕멍은 노벨문학상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필력을 인정 받은 세계문학계가 인정하는 대문호입니다. 늦은 나이에 영어를 배운 왕멍은 배움에는 끝이 없고, 언어를 알아야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다면 평생 학생의 길을 걸어갈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테드(TED)에서 지혜를 찾다

 



또 하나는 테드(TED)입니다. 'TED'는 비영리 재단입니다. 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의 영문 이니셜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지요. 이 단체는 1984년에 세워져, 명실상부한 아이디어의 보고, 상상력을 키우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테드에서 하는 일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을 꼽으라면 세계 석학들과 사상가들의 생각과 만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테드 사이트에 들어가 그동안 세계 여러 영역에서 활동하는 지식인의 강의를 꼭 듣는답니다. 기술, 오락, 디자인 부문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이슈에 대해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강사이트에 공개된 동영상 강의 자료는 500건이 넘는답니다. 강연 자료는 무료로 공개되어 있지요, 지금까지 천오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1억 번 이상 조회를 거쳤다고 하니 대단하지요. 강연 내용 중에 한글자막이 나오기 동영상만 236개가 넘습니다. 영어에 자신 없는 분들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꾸 듣다보면 영어실력도 쑥쑥~~늘어나니까요.

 

테드(TED)에는 자녀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들이 아주 많습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테드에 참여한 강사들의 강의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자신들이 경험했던 것을 기초로 설명을 하고 있기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동영상을 보다 보면, 발표력이나 프레젠테이션 교육에도 아주 그만이지요.

 


* 테드는 다양한 주제의 폭 넓고 깊이 있는 강연을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다

 

이번 여름 방학, 휴가 시즌에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텔레비전. 그리스어로 멀리서 보다라는 뜻인데 너무 가깝게 보고 있지 않으신가요?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사진작가 중에 한사람인 폴 그레이엄(Paul Graham,1956~). 그레이엄이 렌즈에 담은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인 텔레비전. 텔레비전에 너무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텔레비전으로 인해 가정에서. 대화의 벽이 생긴 것은 아닌지....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매기잭슨은 텔레비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이리저리 흔들며 쥐었다 놓았다 하는 텔레비전은 알고 보면 인간을 방해하는 데 전문인 기계로, 인간의 집중력을 잘개 쪼개는 힘이 이만큼 막강한 장치는 이제까지 없었다". 미국의 한 연구진(앤더슨팀)은 tv를 시청하지 않고 있는 순간조차도 tv가 가정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최근 밝혀내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1~3세 아기들은 텔레비전이 켜져있을 때 놀이에 대한 집중력이 25%나 떨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tv를 볼 때는 아이들과의 교류가 20퍼센트 줄어들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수동적은 반응을 보인다고 하네요.("귀찮게 하지마, tv 보는 중이잖이" 하는 식으로)

텔레비전은 결국 자라나는 아이들의 주의력결핍장애를 일으키는 셈이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미국에서는 매년 4월 마지막 주에 텔레비전 끄기 운동을 전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마다 보통 n+1대의 텔레비전이 있다고 하지요. 여기에서 n은 각 가정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 그러면 +1은? 스포츠 방송을 시청하디 위한 별도의 텔레비전이 한 대 더 있다는 말.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야 말로 가정에서  대화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번이라도 텔레비전 보지 않는 날을 만들어 보면 어떨지요.


< 폴 그레이엄의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


01234567

 

"텔레비전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인 능력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텔레비전은 자연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소외시키고 인간의 감각구조를 혼란스럽게 한다. - 제리 맨더-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학생,교사, 학부모)

 

자라온 성장배경과 세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다들 선생님한테 맞거나, 벌주는 모습을 당하거나 본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다시 체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필자가 학교(70년대 초)에 다닐 때는 체벌이 심했을 때다. 맞는 게 일상다반사였다고 할까? 선생한테 벌 받고, 선배한테 벌 받고 이중고를 겪었다. 아침마다 학교 교문 앞에서 완장 찬 이른바 규율 선생(체육, 교련 선생)과 선배들에게 복장에서부터, 하나하나 점검을 받아야 했다. 운이 없으면 벌이었다. 벌의 종류도 참 다양했던 것 같다. 그당시 대부분 체육선생들은  ROTC 출신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군대식 얼 차례가 적용되었다. 빰 맞는 것은 부지기수, 별의 별 벌칙이 다 적용되었다. 분명 폭력이었지만, 학생들은 규칙을 어기면  당연 맞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에 길들여진 것이다.  집단체벌도 심했다. 한 학생이 자신의 소지품이라도 분실했을 경우, 범인(?)이 잡힐 때까지 함께 벌을 받았으니까. 그뿐이랴?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 외국 체벌 현황 자료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2002년도 자료가 있어서 살펴보았다. 한국의 경우 대법원 판례를 보면 '교육상 필요가 있는 경우 교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 제한적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나라마다 체벌에 대한 법적용과 기준은 다르다. 최근 영국에서는 불량학생에 대한 체벌을 대폭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불량학생이라는 기준이 참 모호하지만. 그렇다면 불량선생은 누가 체벌해야 하는가? 불량학부모는? 사람마다 체벌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지만, 모든 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 체벌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체벌의 범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도를 넘어선 체벌은 폭력이다. 물론 폭력은 물리적 폭력만 의미하지 않는다. 말의 폭력 또한 마찬가지. <소유냐 존재냐>의 저자이자 독일출신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체벌을 권력에 빗대어 표현했다.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권력과 숨겨져 있는 권력. 드러나는 권력은 강압적인 조치다. 규칙을 어겼으니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숨겨져 있는 권력은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 자신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학생(어린이)들에게 부적응자로 멸시하는 것. 체벌은 두 가지가 존재하는 셈이다.



도를 넘어선 물리적 체벌도 문제지만 말의 폭력, 멸시 또한 체벌이다. 예전에는 휴대폰(동영상)도 CCTV도 없었다. 맞으면 그뿐. 맞아도 내가 잘못했으니 맞았지 시인하거나 혹은 폭력을 묵인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어떤가. 체벌로써 아이들을 바꾼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의 폭력과 폭행은 폭력을 키울 뿐이다. 맞는 사람이 때려 본다고, 폭력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다. 폭력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수 있다.

 

한국도 이제 체벌(벌)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법적 대응 혹은 폭력교사 처벌 등 이야기가 나오는 것 보다는, 세부적으로 체벌의 항목을 마련해야 한다. 아니면 체벌을 아예 없애버리던지. 아울러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 학부모들도 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비폭력 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가능하다. 어느 한 쪽의 교육만으로는 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체벌의 관점을 넓게 크게 보아야 한다.


<외국의 체벌 규제 현황>


*출처: 교육과학기술부



체벌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한다. 왜 체벌이 나왔고, 체벌이 폭력적 양상을 띄게 된 배경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 어느 한편의 교육이 아니라, 쌍방향 비폭력 교육, 대화법을 학습 받아야 한다. 학생도 마찬가지지만, 선생이나 학부모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한편에만 전달하는 일반적 교육이 더 문제가 아닐까? 이번에 초등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한 교사도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왜 폭력교사가 탄생되었는가라는 물음에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 해결의 실마리또한 교육(비폭력대화법과 인권교육)과 학습으로 풀어야 한다. 교사도, 학부모도 '나는 학생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