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녀 지우가 탈장 수술을 받고난 후
처음 병원에 가는 날이다.
오늘의 미션은 배에 차있는 물을
주사기로 뽑아내는 일.
그런데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큰 두살바기 아기가 침대에 얌전히 누워서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
나는 가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오겠다던 딸은
사정이 있어 못 오고
양쪽 할머니(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함께 나서야 했다.
그래서 불안이 더 컸다.
딸은 계속 문자를 보내왔고
의사에게 물어보라는 주문도 많았다.
아이가 왜 갑자기 먹는 양이 줄었는지,
이제 통 목욕을 시켜도 되는지,
수술부위 매듭은 저절로 없어지는지 등등...
아마도 워킹맘들이 가장 가슴 아플 때가 이런 때이리라.
아무리 사회적 소신이 확고한 엄마들이라도
이렇게 아이가 아플 때에 함께 해주지 못한다는 시점에서는
갈등과 회한 속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무튼 걱정을 해도 병원엔 도착했고,
담당의사의 수술 관계로 진료는 예약된 시간보다 30분 이상 늦어졌다.
한창 걸음마에 재미를 붙인 아이가 가만히 앉아있을 리가 없다.
고 짧은 다리로 종종거리며 병원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그러다가 저를 쳐다보는 어른들에게는 빠이빠이 하며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이날 소아과 외래에는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힘없고 축 늘어진 모습이었다.
우리 지우가 제일 발랄해 보였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1년4개월,
아이의 인지구조에는 세상 사람들은
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굳게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든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애착형성이 잘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에서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만 3세까지 형성된 안정된 애착형성이 평생을 간다고 하지 않던가.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다.
그런데 병실 문을 채 들어서기도 전에
아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한다.
자지러지듯 우는 아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
두 할머니는 같이 우는 형색이었는데 의사는 아무 표정 없이
간호사에게 물 뽑을 주사기를 가져오라고 주문한다.
그때 안사돈이 말했다.
“선생님, 오늘 꼭 물을 빼야 하나요? 다음에 하면 안 될까요?”
“그러시겠어요? 그럼 일주일 후에 다시 나오세요.
그동안 물이 몸 안으로 조금씩 흡수될 수도 있으니까요.”
의사는 선선히 허락했다.
나도 안도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너무 가여워서 다음으로 미뤘는데
마음 약한 할머니들이 일처리를 야무지게 못했다고
혹시 딸이 뭐라 하지는 않을까.
만일 딸이 같이 왔다면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하라고 했겠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병실 문을 나서니 아이는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명랑해졌다.
울음 끝이 짧은 아이,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눈을 닦아주고
바나나 한 개를 까주었더니 단숨에 먹어치운다.
곁들인 우유 한 병도 원샷! 그리고는 몇 개 안 되는 앞니를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다.
너무 귀엽다.
세상 어느 화가의 어떤 그림을 가져다 놓아도
이만큼 행복하고 평화로운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모유를 먹어서인지 한 점 물살이라곤 없는
탱탱함으로 똘똘 뭉친 작은 아이, 제 어미를 쏙 빼닮았다.
되돌아 온 자리는 어디던가, 내 작은 몸으로 낳은 딸이
또 딸을 낳아 이렇게 세월의 산맥을 이루었구나.
요즘 와서 지우 덕분에 미소 짓는 날이 많아졌는데
아이와 함께 책 볼 때가 더욱 그렇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한다면 틀림없이
총명한 아이가 될 거라는 믿음 때문에
갓난아기 때부터 책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다행히 아이는 책 보는 시간을 좋아했다.
책 볼 때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하여 다 읽을 때까지 지그시 앉아 있는다.
또 어떤 책을 가져오라고 주문하면 제 책이 꽂혀있는 곳으로 가서
그 책을 용케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벌써부터 책을 밝히다니, 우리 지우는 천재인가 봐!”하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지우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죤 두이의 ‘공유된 경험’이 참으로 중요한 개념임을 깨닫는다.
지금은 모든 학습이 반복된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이니까...
그래서 오뉴월 하루 빛이 무서운 아이 시절에 가슴 속 환희를 공유하는 기쁨을
지우와 더 많이 나누고 싶다.
지우가 빨리 커서 공원도 가고 전시회도 가고 연극도 함께 보러 가는 날을
나는 손꼽아 기다린다.
어차피 제 엄마는 직장에 가서 할 수가 없을 테니
그 역할을 할머니가 맡을 수밖에.
그런데 아침에 엄마가 회사에 가고난 후부터 저녁 퇴근시간까지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는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따라 다니고는
저녁에 엄마가 돌아와 초인종을 누르는 시점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제 엄마만 쫓아다닌다.
할머니는 안중에도 없다.
역시 엄마는 엄마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은 퇴근 시간과 맞물려 무척 복잡했다.
그러나 추운 거리의 어수선함과는 상관없이
지우는 친할머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동요메들리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씩 율동(?)도 곁들인다.
그런 귀염둥이 손녀를 안고 있는 나는
온기 가득한 난로를 안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아플 때 옛날에는 친정어머니가
‘네 배는 똥배, 내 손은 약손.’ 하면서 배를 문질러 주셨는데
아이의 수술 부위가 하필이면 배꼽자리인지라 그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지우에게 속삭여 주었다.
“지우야, 세상은 경이롭고 신기한 것 천지란다.
그래서 끊임없이 도전하며 사는 거란다.
두드려보고, 눌러보고, 던져보고, 밟아보고, 하고 또 하고 해도 해도 또 하고 싶은...
하지만 병원 가는 일은 도전 하지 않아도 된단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크렴. 힘내라 아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