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사라지고 있다.
이야기라는 것이 잠깐 보이다
홀연히 흩어지는 연기나 안개가 아닐 터인데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어찌 사라질 수 있겠냐마는
정확히 말한다면 이야기를 구현해줄 수 있는 스토리텔러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컴퓨터, 모바일 등등 시각매체들이 발달하기 전에는
단연코 할머니와 부모님들이 참으로 유능한 스토리텔러들이었다.
그때 할머니들은 유아들에게 이 땅에 떠도는 온갖 이야기들을
여름날 옥수수를 먹으며, 바느질을 하며, 콩밭을 매며,
길고긴 겨울밤 화로가에서 넋두리처럼 두런두런 들려주었던 것이다.
아름답고 때로는 슬픈 이야기들을.
이야기를 듣고 그것들을 조합하여 상상으로 재구성하는 감성과,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즉각 인지하는 감성의 질은 전혀 다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야기를 토대로 창의력이 무한대로 확대되지만
후자의 경우, 이야기가 시각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창의력이 제한되고 상실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유아들의 감성 뇌기능이 퇴화되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발췌: 조성황교수 칼럼 (한국유아신문) 中에서
전문보기: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babynews&logNo=10170050398
아이들을 재울 때
불을 켜고 책을 읽으면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아
언제부터인가 불을 끄고
엄마인 내가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를 꾸며
아이들에게 해주었다.
양 팔을 벌려 6살, 3살 된
두 아이의 머리를 양쪽에 안고
주저리 주저리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만들어내는 이야기니 자연스레
두 아이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매일 밤 이야기속 주인공이 되는 아이들은
잠자기 전 이야기 속 체험을 무척이나 즐거워하였다.
놀이동산 갔다가 토끼를 만나서 숨박꼭질하는 이야기,
수족관에 놀러갔다가 신기한 잠수복을 발견해
헤엄을 칠 수 있게되었고 물고기들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
꽃길을 안내하는 네비게이션을 달고 드라이브하는 이야기,
요리를 하다가 요리 재료들이 싸움이 나 화해를 도와주는 이야기 등
내가 생각해도 신기할 만큼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아이들이 흥미를 보였다.
꽃길을 드라이브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재현하기위해 큰 아이가
다음날 장난감 자동차에 폐휴대폰으로 네이게이션을 달았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고쳤으면 하는 나쁜 습관을,
어떤 날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의 말을
이야기 속에 넣어 전해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진행했을 무렵 어느 날,
6살짜리 큰 아이가 오늘은 자기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겠다고 했다.
아이는 자기가 지하철을 탔는데 길을 잃은 토끼를 만나
자기가 길을 가르쳐 주고, 그 사이에 배가 고픈 토끼에게
당근을 사주는 이야기를 엄마와 동생에게 해주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뿌듯해하는 아이를 보니
어쩐지 기특하기도 하고 감동스러워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러면서 엄마가 해주는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다며,
아이는 내 품에서 계속 조잘대다 잠이 들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유아들의 세상에도 점령한 요즘,
어쩌면 아이들은 예전 우리네 할머니들이 해주던
옛날이야기가 더 신기한 체험이고,
매체에서 느끼지 못한 엄마의 사랑을 함께 느끼는 것에
목말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고민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통해
가장 따뜻한 소통을 한다.
| 글 : KACE 회원홍보 이선애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