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교육청이 체벌을 금지한다고 발표하자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제주도에서 한 선생이 "나랑 맞짱 뜰래?" 라고 말하면 여학생에게 심한 구타와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체벌과 폭행은 구분되어야 하는데, 왜 빈번하게 폭력이 발생할까요? 공권력의 남용이 아니라 교권의 남용이라 불러야 합니까? 체벌의 사전적 의미는 ‘신체에 직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벌’입니다. 교육학용어사전(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 1999)에서는 체벌을 훈육의 한 방법으로서 특정의 행동을 중단하도록 하기 위해 신체적 고통을 가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요.

 

오죽하면 선생이 학생을 때릴까? 이런 생각도 해보지만, 모든 폭력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체벌을 폐지한다는 쪽에서는 체벌 금지가 ‘인권 교육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 반대하는 쪽에서는 체벌은 최소한의 학생지도권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에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는 법령 및 학칙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지요. 바로 기타의 방법이 체벌인 셈입니다. 조금 모호하지요.

 

훈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덕육(德育)에 해당합니다.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대표적인 방법은 상과 벌입니다. 벌이 바로 체벌. 학생을 가르치다보면 야단도 칠 수 있고 벌을 줄 수 있습니다. 다만 신체에 가하는 벌의 범위가 모호합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체벌의 가이드라인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체벌은 폭력으로 갈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벌과 폭력을 구분할 수 있지요. 가르치는 입장이나 배우는 입장에서 다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스트레스가 과해지면 폭력을 유발할 수 있지요. 한국의 교육환경은 어떤가요? 자율과 규제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습니다. 선생과 학생이 서로 지식과 지혜를 주고받는 교육풍토가 정착되어 있다면, 굳이 체벌의 존폐문제를 거론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왜 많은 국가에서 체벌을 금지하고 있는지 그 이유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폭력은 근절될 수 없지만, 폭력은 절대 인정 되어서는 안 됩니다.

 

체벌을 유지한다면 신체에 직접적으로 가하는 벌의 범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체벌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체벌을 대체 할만한, 문제 학생에 대한 심리, 정신교육프로그램이 광범위하게 도입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체벌 금지냐 유지냐 라고 대립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다보면 원론적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겠지요. 인성교육(전인교육)이 상실된 교육환경에서 교육제도를 계획 하기 앞서, 선생 스스로도 되물어 보아야 합니다. 결국 모범을 보여 할 사람은 선생입니다. 선생은 모범을 제시해야 하며,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먼저 사랑을 받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선생의 길은 어렵고 중요합니다. 만인의 선생이 되어야지 아이의 선생도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학생 체벌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과연 중용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학교문화에 녹아 들어가 있는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체벌을 금지 하건 하지 않건 폭력은 재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체벌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대책 또한 필요합니다. 또한 육체적 체벌이 아니라 말의 폭력도 체벌의 범주에 넣어야 합니다.

 

이렇듯 체벌 문제 하나를 보더라도 교육 전체의 관점에서 풀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국의 교육정책이 10년을 내다보면서 참고, 지속성을 가지고 시행된 적이 있나요? 핀란드 교육 이야기를 할 때, 체벌을 금지할 것이냐 반대할 것이냐 처럼 의견이 반 반 갈립니다. 그래서 핀란드 교육을 ‘뜨거운 감자’라고 표현하지요. 한국 사회 실정에 맞지 않다. 무조건 도입해야 한다보다, 그 내면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왜 핀란드 만의 교육체제를 만들었는지. 그것은 바로 지속성입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통한 교육체제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 그걸 통해 교육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넓은 그림을 그린 것이지요. 교육개혁조급증도 경계해야 하지만, 방어적인 자세도 지양되어야 합니다. 한국만의 풍토에 맞는 여야, 좌우를 떠난 10년 대계의 교육개혁 청사진이라도 합의해 만들어서 실천했으면 합니다.

 


나는 때로 ‘처벌과 자유방임의 싸움이 영원히 지속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극단적인 방법만 존재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흔히 처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것 외에 유일한 대안은 자유방임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벌을 사용한다. 반대로 처벌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자유방임의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의 훈육은 처벌도 아니고 자유방임도 아닌 중간지대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긍정의 훈육은 부모나 교사가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아이들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자세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들을 옹호한다. (긍정의 훈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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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일년에 폐휴대폰이 1500만대.
그 중에서 재활용,재사용 비율은 20%.
이른바 장롱폰(사용하지 않고, 집에서 보관하고 있는 휴대폰) 숫자는 1,000만대 정도.
휴대폰에는 금, 은, 구리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요.
중국에는 폐휴대폰 처리만 전담하는 도시가 있을 정도 입니다.
신제품 주기도 빠르고, 사용 주기도 너무 빨라진 것 같습니다.


폐휴대폰을 활용, 생활용품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뭐가 있을까요?



 

폴더형 폐 휴대폰으로 만든 지갑^^
휴대폰 지갑입니다. 지폐와 동전을 분리해서....
너무 개성적인가요?^^
더위 탓이 아니니 이해 바랍니다.
고무줄이 너무 튀지요^^
조그만 더 투자하면 괜찮은 지갑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폐휴대폰으로 지갑 만들 생각말고
휴대폰 고장 날때까지 오래 오래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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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인류가 발명한 유산 중에 하나를 손꼽으라면 카메라를 들고 싶습니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이제는 사진의 영역도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미 무너졌지요. 그렇지만 이런 시각도 우리 사회 구성원의 20%가 80%를 바라보는 것처럼, 북반구에서 남반구(제 3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닐까요. 남반구(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의 많은 나라의 사람들은 해외언론과 관광객들의 가십거리까지는 아니어도 찍히는 주요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 단정적인 시각인가요? 각 종 사고 현장과 빈곤에 늪에 빠져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뉴스거리이자 쉽게 담을 수 없는 일상과 벗어난 '낯선 풍경'이어서 그럴까요.

 

오늘은 찍힘의 대상이 되었던 남반구의 아이들이 자기들 세상을 자기의 눈으로 카메라에 담은 이야기입니다. 이런 프로젝트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몇 개만 소개할 까 합니다. 프랑스의 사진가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은 1997년 '이미지의 종말'을 선언하며 사진 찍기를 중단하며 아프리카의 모르코 아이들에게 1회용 카메라를 나누어 주면 마음껏 사진을 찍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찍은 사진 중에서 60장을 골라 2000년도에 전시를 엽니다. 사진가이기를 포기한 셈이지요.

 

또 하나의 프로젝트는 사진가 자나 부리스키(Zana Briski, photographer and co-director of Born into Brothels)가 인도 캘커타 홍등가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나누어 주고 사진을 찍게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찍은 사진을 전시하며, 이런 과정을 촬영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듭니다. 제목은 '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카메라를 통해서 아이들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아이들이 찍은 사진들은 전문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잠시 사진가가 되었던 아이들이 모두다 캘커타 홍등가를 벗어 날 수는 없었고,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유명한 사진작가나 관광객들이 피사체가 되었던 아이들이 잠시 세상을 보는 주체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영화의 찬, 반을 떠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꿈꾸는 카메라 - 사창가에서 태어나

 

포스터에 찍힌 아이들, 많이 컸지요

 

오른쪽으로 좌측: Puja, Kochi, Avijit, Tapasi, Gour, Manik, Shanti

공식사이트http://kids-with-cameras.org

 

마지막으로 소개드릴 내용은 소니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실시된 'EYE SEE Ⅲ'프로그램입니다. 소니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어쨌든 소니는 유니세프와 함께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내전지역이자 말라리아 등 여러 질병으로 많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르완다와 라이베리아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제공하고 사진을 찍게 해서 전시회를 개최했습니다. 사진의 주제는 '빈곤', '아프리카', '환경', '아이들이 노는 권리' 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담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프로 사진가의 작품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40명이 담은 사진들이 '아프리카가 처해 있는 현실을 다 말해 주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눈을 통해 본 아프리카의 현실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YE SEE Ⅲ' 홈페이지

 

 

 

그러면 아이들이 찍은 사진 몇 작품을 감상해  볼까요!!

 

A young boy in Liberia learns how to use a camera as part of UNICEF’s Eye See III project.

 

This photo was taken in Liberia by 13-year-old Melville Harris

 

This photo was taken in Rwanda by Joseph Ganza.

 

This photo was taken in Rwanda by Lucien Megisha.

 

A Liberian or Rwandan child is captured in this image, taken as part of UNICEF's EYE SEE III project.

 

This photo was taken in Rwanda by Jean Claude Mutabazi.

 

This photo was taken in Liberia by Johnny Lard, who is 12-years-old.

 

This close-up was taken by a young photographer in Rwanda.

 

사진출처http://www.ctv.ca/gallery/html/AM_malaria_080425/photo_7.html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주변환경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시다.

 

마음을 열고, 사진을 찍는 다는 것에 대해..... 카메라 한 대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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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의 성희롱 발언이 인터넷 공간에 도배되고 있네요. 중앙일보에 의해 첫 보도된 강용석 의원 발언이 조선일보, 매일경제를 통해 추가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강용석 의원이 발언한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참 부끄럽네요. 아이들 보기에 민망할 정도입니다. 한나라당이냐 민주당이냐 정치적 색깔을 떠나 왜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성추행 발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강용석 의원은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에서 법학 석사를 받은, 그야말로 한국사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재원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성비하, 성희롱 발언을 쉽게 했을까요? 강 의원이 발언 내용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가릴 때까지는 쉽게 비판해서는 안 되지만, 지금까지 정황으로 미루어 본다면, 발언 내용이 사실 인 것 같습니다. 한나라당에서 급히 제명 조치를 내린 걸 보면.

 

강용석 의원뿐만 아니라, 과거를 돌아다보면 한국 사회 성추행, 성 비하 발언과 사건은 부지기수입니다. 여성을 상품화하거나, 비하하는 것은 분명 차별입니다. 성차별문제지요. 성차별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그 뿌리는 가정입니다. 물론 가정교육이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참 중요하지요. 엄마 아빠는 자녀의 바로미터. 부부가 인격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보고 자란 자녀들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한국에는 남존여비사상의 잔재가 남아있지요. 아내를 시중꾼처럼 대하는 아빠의 발언과 자세야 말로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요.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부부는 서로 인격적으로 대우해주어야 합니다.

 
딸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 세계의 모습을 담은 ‘100% 엔젤’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아빠가 엄마에게 이것저것 시킵니다. 엄마는 말합니다. “이것 봐요. 나 남편 필요 없어요. 나도 아내를 구해줘요!” “한국 땅에서 제일 살기 좋은 사람은 아내있는 사람이예요. 밥해줘, 양말 빨아줘, 재떨이 갖다줘,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어줘, 혼 내키면 야단맞아줘, 자식 키워줘, 부모 모셔줘, 나도 남편 필요 없어요, 아내 하나 구해줘요”

 
예전에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안상수 교수. 안상수 교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존칭을 쓰지요. 형식적인 존칭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난 존칭.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차별의 근본 뿌리는 가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합니다. 마치 교육이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출세가 보장된 직장을 얻는 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지요. 평생교육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극단을 달리는 말, 싸움을 위한 말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과 평화를 위한 말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모도 이제 교육을 지속적으로 받아야 합니다.

 
강용석 의원의 성추행 발언을 통해, 한국 사회의 성에 대한 인식과 성문화, 인권교육이 어느 수준인지 반성하고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일상에서 남을 차별하고 상처를 주는 발언을 하지 않았는지....'불완전 한 것이 비로서 인생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완전 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끝임없이 배우고, 인성을 가다듬는 교육이 절실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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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사람은 부모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지요. 가볍게 던진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하나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자녀들에게 부모는 세상을 보는 바로미터. 요즘 학교 체벌 때문에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폭력은 근절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어느 한편에서 바라 볼 문제는 아닙니다. 선생, 학생, 학부모가 같이 고민해서 풀 문제입니다. 체벌은 내재적 처벌과, 외형적 처벌 두개가 존재합니다. 외형적 체벌은 육체적 벌이 있고, 내재적 체벌은 말의 폭력, 멸시와 혐오 차별의 시선입니다. 폭력은 내재적 체벌에 통해 주로 발생합니다. 말의 폭력은 육체적 폭력으로 연결되지요. 화를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폭력으로 이어지니까요. 체벌은 금지되어야 하지만, 그 전제는 과연 가정과 학교에서 비폭력 대화법에 익숙한지, 토론과 대화문화가 성숙되어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오늘 소개시켜 드릴 시계는 폭력 금지 시계입니다.
물론 이 시계가 폭력을 막지는 못합니다.
필리핀에서 제작한 "여성 학대 시계'는 꼭 여성에게만 국한된 시계가 아닙니다.
필리핀에서는 한 시간 마다 여성 폭력이 발생합니다. 필리핀만의 현황이 아닙니다. 






바로 이 시계입니다.
한 시간이 다 되어 가면 분침(남자)가 시침(여성)을 향해 주먹질을....




   







직장과 학교, 공공시설에 시계를 설치해 놓았네요.

이런 시계가 제작 되지 않는 사회가 오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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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입니다. 잠시 장맛비가 멈추었네요. 그래서 그런가요? 습기 때문인지 너무 무덥네요. 덥다고 늘어질 수는 업고^^ 오늘은 상상력 놀이터에서 놀아보지요. 휴대폰. 세계 인구 다섯 명 중에 2명이 사용할 정도이니, 엄청난 숫자입니다. 최근 미국 드라마를 보았습니다. 한 변호사가 뇌(유전성 희귀 질병)에 이상이 생겨, 잠시 환각에 빠져 미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 변호사는 미래에 노벨화학상을 받는 한 여성을 환각상태에서 보게됩니다. 이름을 추적해서 현실에서 여성분을 발견하게 되는데, 전문 대학교도 중퇴한 분이 집에서 핵융합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FBI가 체포합니다. 변호사는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를 위해 변호를 맡게 됩니다. 만약 여성의 상상력이 인정이 되지 않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면, 전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버리게 되는 거지요. 황당한 내용이지만, 상상력이라는 것이 조금 엉뚱한 생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이들이 내 놓은 아이디어가 엉뚱한 것 같지만, 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핀잔을 주게 되면, 상상력은 물거품 처럼 날아가 버릴 수 있으니깡까요. 

오늘 소개시켜 드릴 '꽃과 나무가 자라는 휴대폰'은 일본의 식물조각가인 마코토 아즈마가 디자인한 휴대폰입니다. 휴대폰에서 꽃과 나무가 자랄 수 있을까요? 발상 자체가 대단한 것 같습니다. 휴대폰은 현대 물질문명 사회의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지요. 하지만, 휴대폰 또한 많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휴대폰 때문에 숨진 사람들, 우리들의 자녀가 길거리에서 휴대폰을 받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는 경우,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휴대폰은 하루에도 엄청난 숫자가 폐기되고, 한달에 하나씩 새로운 이름으로 만들어 집니다. 휴대폰을 전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은 분명합니다. 휴대폰 때문에 행복해지셨나요? 아니면 옛날 분들은 휴대폰이 없어 불행했나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휴대폰에서 꽃과 나무가 자라는 상상력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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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그리스어로 멀리서 보다라는 뜻인데 너무 가깝게 보고 있지 않으신가요? 영국 출신의 대표적인 현대 사진작가 중에 한사람인 폴 그레이엄(Paul Graham,1956~). 그레이엄이 렌즈에 담은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대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인 텔레비전. 텔레비전에 너무 중독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텔레비전으로 인해 가정에서. 대화의 벽이 생긴 것은 아닌지....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인 매기잭슨은 텔레비전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이리저리 흔들며 쥐었다 놓았다 하는 텔레비전은 알고 보면 인간을 방해하는 데 전문인 기계로, 인간의 집중력을 잘개 쪼개는 힘이 이만큼 막강한 장치는 이제까지 없었다". 미국의 한 연구진(앤더슨팀)은 tv를 시청하지 않고 있는 순간조차도 tv가 가정생활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최근 밝혀내었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1~3세 아기들은 텔레비전이 켜져있을 때 놀이에 대한 집중력이 25%나 떨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tv를 볼 때는 아이들과의 교류가 20퍼센트 줄어들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수동적은 반응을 보인다고 하네요.("귀찮게 하지마, tv 보는 중이잖이" 하는 식으로)

텔레비전은 결국 자라나는 아이들의 주의력결핍장애를 일으키는 셈이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미국에서는 매년 4월 마지막 주에 텔레비전 끄기 운동을 전개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중산층 가정마다 보통 n+1대의 텔레비전이 있다고 하지요. 여기에서 n은 각 가정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수 그러면 +1은? 스포츠 방송을 시청하디 위한 별도의 텔레비전이 한 대 더 있다는 말.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야 말로 가정에서  대화를 복원하는 가장 중요한 바탕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니면 한 달에 한번이라도 텔레비전 보지 않는 날을 만들어 보면 어떨지요.


< 폴 그레이엄의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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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인간이 본래 가지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인 능력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텔레비전은 자연과 타인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자신마저 소외시키고 인간의 감각구조를 혼란스럽게 한다. - 제리 맨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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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학생,교사, 학부모)

 

자라온 성장배경과 세대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다들 선생님한테 맞거나, 벌주는 모습을 당하거나 본 기억이 있을 것 같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이 학생을 때리는 동영상이 공개되자, 다시 체벌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필자가 학교(70년대 초)에 다닐 때는 체벌이 심했을 때다. 맞는 게 일상다반사였다고 할까? 선생한테 벌 받고, 선배한테 벌 받고 이중고를 겪었다. 아침마다 학교 교문 앞에서 완장 찬 이른바 규율 선생(체육, 교련 선생)과 선배들에게 복장에서부터, 하나하나 점검을 받아야 했다. 운이 없으면 벌이었다. 벌의 종류도 참 다양했던 것 같다. 그당시 대부분 체육선생들은  ROTC 출신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군대식 얼 차례가 적용되었다. 빰 맞는 것은 부지기수, 별의 별 벌칙이 다 적용되었다. 분명 폭력이었지만, 학생들은 규칙을 어기면  당연 맞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폭력에 길들여진 것이다.  집단체벌도 심했다. 한 학생이 자신의 소지품이라도 분실했을 경우, 범인(?)이 잡힐 때까지 함께 벌을 받았으니까. 그뿐이랴?

 

교육과학기술부 홈페이지에 외국 체벌 현황 자료가 있는지 검색해보니 2002년도 자료가 있어서 살펴보았다. 한국의 경우 대법원 판례를 보면 '교육상 필요가 있는 경우 교정이 불가능해 보이는 경우‘ 제한적 체벌을 허용하고 있다. 나라마다 체벌에 대한 법적용과 기준은 다르다. 최근 영국에서는 불량학생에 대한 체벌을 대폭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불량학생이라는 기준이 참 모호하지만. 그렇다면 불량선생은 누가 체벌해야 하는가? 불량학부모는? 사람마다 체벌에 대한 생각이 다르겠지만, 모든 폭력은 근절되어야 한다. 체벌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체벌의 범위를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도를 넘어선 체벌은 폭력이다. 물론 폭력은 물리적 폭력만 의미하지 않는다. 말의 폭력 또한 마찬가지. <소유냐 존재냐>의 저자이자 독일출신의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체벌을 권력에 빗대어 표현했다. 공공연하게 드러나는 권력과 숨겨져 있는 권력. 드러나는 권력은 강압적인 조치다. 규칙을 어겼으니 너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 숨겨져 있는 권력은 물리적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교육자 자신이 괴로운 표정을 지으면서 학생(어린이)들에게 부적응자로 멸시하는 것. 체벌은 두 가지가 존재하는 셈이다.



도를 넘어선 물리적 체벌도 문제지만 말의 폭력, 멸시 또한 체벌이다. 예전에는 휴대폰(동영상)도 CCTV도 없었다. 맞으면 그뿐. 맞아도 내가 잘못했으니 맞았지 시인하거나 혹은 폭력을 묵인했다. 하지만 요즘 시대는 어떤가. 체벌로써 아이들을 바꾼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말의 폭력과 폭행은 폭력을 키울 뿐이다. 맞는 사람이 때려 본다고, 폭력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될 수 있다. 폭력바이러스가 퍼져 나갈 수 있다.

 

한국도 이제 체벌(벌)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필요하다. 매번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법적 대응 혹은 폭력교사 처벌 등 이야기가 나오는 것 보다는, 세부적으로 체벌의 항목을 마련해야 한다. 아니면 체벌을 아예 없애버리던지. 아울러 학생뿐만 아니라 선생 학부모들도 비폭력 대화법을 배워야 한다. 비폭력 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가능하다. 어느 한 쪽의 교육만으로는 폭력은 근절되지 않는다. 체벌의 관점을 넓게 크게 보아야 한다.


<외국의 체벌 규제 현황>


*출처: 교육과학기술부



체벌도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연구해야 한다. 왜 체벌이 나왔고, 체벌이 폭력적 양상을 띄게 된 배경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 다음에 어느 한편의 교육이 아니라, 쌍방향 비폭력 교육, 대화법을 학습 받아야 한다. 학생도 마찬가지지만, 선생이나 학부모도 완전한 인간이 아니다. 한편에만 전달하는 일반적 교육이 더 문제가 아닐까? 이번에 초등학교에서 폭력을 행사한 교사도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왜 폭력교사가 탄생되었는가라는 물음에 고민해 보아야 한다. 그 해결의 실마리또한 교육(비폭력대화법과 인권교육)과 학습으로 풀어야 한다. 교사도, 학부모도 '나는 학생이다'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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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전에, 더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나 천식으로 고생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알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뿐인 듯하다."

 

 

미나리 밭에 대한 기억

 

지리산에 있는 교육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리산 골짜기라 사용되는 모든 물은 지하수였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들어야 했던 이야기는 물이 부족하니 물을 아껴 쓰라는 말과 샴푸나 치약 등 합성세제 사용은 안 된다는 말이었다. 물이 부족한 건 알겠지만 사용하는 세제 종류까지 까다롭게 제한한다고 생각하는 동안 세면장 옆에 있는 미나리 밭이 눈에 띄었다. 부엌과 세면장에서 쓰고 버린 물은 모두 미나리 밭으로 흘러들어 일차적으로 정화를 마치고 다시 계곡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합성세제는 미나리 밭이 소화할 수 없는 이물질이었기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아무리 미나리가 자라고 있어도 밭으로 구정물이 흘러드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쓰고 버린 물이 밭으로 모여드는 모습은 내가 얼마만큼의 물을 쓰고 더럽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오늘 아침 버린 세숫물이 어디로 갔는지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 더러운 미나리 밭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미나리 밭을 핑계로 씻기를 게을리 했지만 모두들 비슷한 처지였으므로 기름진 머리를 탓하는 사람도, 깨끗하기를 강요하는 사람도 없었던 기억이다.

 

수돗물도 생수도 믿을 수 없어

 

이제 우리나라에서 수질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몇 없다. 당연히 수돗물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드물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사람이 전 국민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용인에 사는 박미정 씨는 결혼 9년차 주부다. 황토옹기로 정수한 물을 먹는 박미정 씨에게 수돗물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느냐 물었더니 단호하게 아니란다.

 

“염소 소독 등을 하니까 믿지 못하겠어요. 그리고 다른 화학적 처리방법도 안전하다고 할 수 없고. 음식도 조리 과정이 길어질수록 영양성분이 파괴되는데 물도 그런 처리 방법들이 늘어날수록 좋지 않은 거 아닐까요? 생수도 믿을 만하지 않아요. 생수도 유통기간이 있는데 소비자에게까지 오는 동안 시간이 많이 걸리잖아요. 할인점이나 식당 정수기에서 대장균이 나왔다는 보도를 보니 정수기도 못 믿겠더라고요.”

 

집에서 알칼리 정수기를 사용하는 정영희 씨도 비슷한 생각이다.

“수돗물은 정수장에서는 깨끗할지 모르겠지만 오래된 수도관을 지나오니까 불순물이 남아있을 거 같아요. 수도관 단면을 보여준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정말 말도 아니더라고요. 생수요? 생수는 거의 플라스틱 병에 담기는데 오래되면 환경호르몬이 나와서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요.”

수돗물, 생수, 지하수 모두 정말 안심하고 먹을 만한 물이 아니란다. 그럼 정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물은 뭐냐는 질문에 대답은 확신이 없다. 정영희 씨는 정수한 물을 끓여 먹으면 좀 안전할 것 같다고 대답을 했지만 여전히 자신이 없는 얼굴이다. 우리는 물에 대한, 특히 마시는 물에 대한 깊은 불신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황토구슬을 넣은 옹기를 사용하는 박미정 씨

 

 

이 물을 마시는 까닭

 

박미정 씨 집에 찾아가니 대나무 소쿠리에 황토구슬을 담아놓고 햇볕에 말리고 있다. 이렇게 말린 황토구슬을 옹기에 담고 그 안에 수돗물을 담아 24시간이 지나면 따라 마신다. 수돗물을 이렇게 마시게 된 이유를 물었다.

 

“어떤 할머니가 과일은 빛깔이 달라지면 버려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과일도 물을 먹고 자라는데 그 안에서 얼마나 썩었으면 빛깔이 달라지겠냐고, 그 말을 듣고 나니까 내 몸에 들어가는 물도 좋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미정 씨 가족이 황토구슬로 정수한 물, 즉 황토지장수를 마시기 전에는 보리차도 끓이고 정수기도 사용했었단다. 그러나 그 때는 물이 안전한지 늘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아이가 아토피와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먹는 물에 대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할머니 이야기를 듣게 되고 인터넷을 뒤지다 지장수에 대한 정보를 만난 뒤 물 마시는 방법을 바꾸게 된 것이다.

알칼리 정수기를 사용하는 정영희 씨

 

지장수를 마시기 시작한 지는 3~4년이 지났다. 이젠 일주일에 한 번씩 황토구슬을 삶고 말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여겨질 만큼 익숙해졌다. 물을 바꾸고 난 뒤 특별한 변화가 있었을까. 박미정 씨는 물맛이 특별히 좋아졌다고 느껴지진 않는단다. 예민한 사람들은 물에서 황토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자신은 물이 약간 부드럽게 넘어간다는 것 빼곤 어떤 특별한 변화를 느끼진 못한다고. 다만 물을 바꾸고 난 뒤 아이의 아토피와 천식이 좋아졌으니 아무래도 수돗물이나 정수기물보다는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알칼리 정수기를 사용하고 있는 정영희 씨 가족이 마시는 물을 바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영희 씨 가족은 신혼 초부터 정수기를 사용했는데 처음엔 건강보다는 친한 친구의 권유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그러다 알칼리 정수기로 바꾸게 된 것은 딸아이의 아토피 때문이었다. 아픈 아이 때문에 먹을거리와 건강의 연관성에 눈뜨다 보니 자연스럽게 물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정영희 씨가 수돗물을 믿지 못한 것은 지은 지 15년이 넘은 아파트의 낡은 수도관 때문이었다. 정수장에선 깨끗할지 몰라도 수도관을 타고 집에 도착하는 동안 물이 오염되진 않을지 불안했던 것이다. 가족들의 노력 덕분에 딸아이의 아토피는 많이 좋아졌지만 알칼리 정수기를 사용하는 지금도 물맛이 특별히 좋다거나 하는 건 잘 모르겠단다.

 

정영희 씨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정수기를 이용하거나 생수를 사다 먹는다고 한다. 예민한 집은 정수기물을 끓여먹기도 한다고. 정부에서 온갖 실험 수치들을 들이대며 물이 안전하다고 강조해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수돗물은 못미더운 존재다. 한때는 근대국가의 상징이기도 했으며 무수한 의사들도 해내지 못한 건강지킴이 역할을 해냈다는 찬사를 들었던 수도시설이 이제는 마시기에 부적합한 물이라는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수돗물을 대신하는 정수기물도, 생수도 안심하고 먹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여전히 이게 정말 안전할까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는다. 물을 가지고 하는 갖가지 실험과 시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미 세상이 오염될 대로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서울의 하천 중에는 발 담그고 물장구칠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으며 강원도 산골에도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장마가 지난 다음 떠밀려온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팔당호가 물에 대한 불안감을 더욱 크게 만들어낸다. 물에 대한 불신은 바로 세상이 그만큼 더렵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인 것이다.

 

 

세숫물에 발 씻고 걸레 빨고

 

환경문제의 특이한 점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라는 점이다. 서울에서 하루에 배출되는 하수 중 98%를 생활하수가 차지하고 있다. 과거에는 공장폐수가 수질오염의 주된 오염원이었다면 이제는 생활하수도 주된 오염원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더구나 물은 한 번 쓰고 버리면 더럽건 깨끗하건 바로 하수가 된다. 10,051km의 하수관을 통해 하수처리장에 모인 물을 정화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하루에 3억 원. 돈도 돈이지만 정화시킨 물을 한강에 흘려보낼수록 물은 더욱 오염되니 수질오염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물을 적게 쓰는 것일 게다.

 

미국이나 영국민들은 변기에 내리는 물로만 하루에 50ℓ를 사용하는 데 반해 빈곤층들은 하루 5ℓ도 안 되는 오염된 물로 연명하고 있다.

우리 가정에서는 물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궁금해서 박미정 씨와 정영희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박미정 씨 가족이 한 달에 쓰는 물의 양은 20여 톤(약 2만ℓ)이다. 일인당 하루 평균 166.6ℓ를 사용하는 셈이다. 이중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목욕물. 온 집안 식구가 하루에 한 번씩 목욕을 하기 때문에 목욕하는 데 가장 많은 물이 사용된다. 박미정 씨 가족과는 달리 실제 우리나라 생활하수 양을 비교해 보면 부엌에서 나오는 하수가 가장 많고 다음이 화장실, 목욕탕, 세탁 순이다.

 

박미정 씨는 허드렛물을 빨래하는 데 재사용하여 물을 아끼려고 노력한다. 아이들 목욕물이나 채소 씻은 물을 세탁기에 넣거나 빨래 삶은 물로 화장실을 청소하는 등 사용한 물을 한 번 더 재사용 한다. 애벌빨래를 해서 세제사용량도 줄이는데 그런 때면 왠지 뿌듯한 것이 ‘이 정도면 나도 착실한 주부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경상도 문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는 더욱더 물을 아껴서 사용했었단다.

 

“집에 수도시설이 설치된 게 초등학교 3학년 때였어요. 그 전에는 우물에서 물 길어다 쓰고 우물가에서 빨래하고 그랬어요. 엄마가 빗물을 받아서 그 물로 빨래를 하기도 했죠. 세숫물 안 버리고 놔두면 그 물에 발 닦고 다시 걸레를 빨곤 했어요. 예전엔 하수구에 물을 버리면 그대로 동네 냇가로 흘러들어 가니까 물이 오염되는 게 보이잖아요. 누가 말 안 해도 자연스럽게 물을 아껴 써야겠구나, 더럽히면 안 되겠구나 알았던 거 같아요.”

 

그러나 요즘은 자신도 그렇지만 아이들에게 물을 아껴 쓰라고 하기가 힘들다고 한다. 정영희 씨 이야기 속에서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 집은 세탁에 쓰이는 물이 가장 많고 다음이 목욕물인 거 같아요. 가족이 중학교,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 포함 네 명인데 10kg짜리 세탁기를 일주일에 두 번 돌려요. 아이들은 보통 하루에 한 번 옷을 갈아입는데, 초등학생인 아들 녀석은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는 하루에 두세 번도 갈아입죠. 남편 와이셔츠도 하루에 한 번씩 갈아입고, 가족들이 속옷도 매일 갈아입으니까 일주일에 두 번씩은 세탁을 해야 돼요. 목욕물은 가족들이 반신욕을 좋아해서 사용되는 물이 많아요. 머리도 매일 감으니까 양이 많겠죠. 사실 아프리카 같은 데서 물 부족 이야기가 나오면 아끼고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수도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나오고 버리면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도 않으니까 물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아요. 아이들도 그런 거 같고요. 깨끗하고 청결한 걸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물 사용량을 줄여보겠다고 씻는 걸 줄인다거나 청소를 덜 한다거나 하기는 힘든 거 같아요.”

 

정영희 씨는 궁여지책으로 아이들에게 물이 돈이니 아끼라고 한다지만 그다지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

 

양변기 문화 위에서

 

정영희 씨와 마지막에 나눈 이야기다. 한 친구가 ‘현대문명은 양변기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화장실 변기 손잡이를 누르는 순간 내가 쌓아놓은 똥 덩어리는 물과 함께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처리되는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없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똥 덩어리와 나 사이에 놓인 순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다. 삶의 전 과정을 유기적인 관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단절로 만들어가는 문명, 우리의 하루하루는 좋던 싫던 이 속에 엮여 돌아가고 있다. 이 속에서 혼자 물을 아끼겠다고 궁상을 떨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안심하고 먹을 물도 없는 시대에 왜 물을 아끼지 못하느냐고 구박하기엔 우리는 너무 풍족하다. 나 역시 물 오염을 생각해 쓰고 있는 세제 종류를 줄여보려고 궁리했지만 어느 것 하나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주방세제를 없앨 수도, 세탁세제를 없앨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수를 빨래비누로 하기도 힘들고. 결국 세제종류를 더 늘이지 않는 것으로 슬그머니 타협해 버리고 말았다.

 

세상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전에, 더 많은 아이들이 아토피나 천식으로 고생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알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하는 것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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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은 현재 중학교 2학년 남학생입니다.

현재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께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봅니다.

 

제 아들은 2학년 초만 해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친구들과 뛰어노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학교에서도 왠만한 아이들이나 선생님은 이름만 들어도 까불대는 녀석이라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공부에 열을 내더니, 외고를 가겠다고 의지에 불타고 있습니다.

놀기만 하던 아이가 공부를 갑자기 하자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옆에서 지켜보는 저는 차라리 나랑 놀자며 유혹하며 달래줍니다.

 

영어는 초등 3학년부터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원을 다니다가

6학년이 되면서 제법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을 선택해서 다녔는데 열심히 했습니다.

다른 학원은 전혀 다녀 본 적이 없으며,

중학교 1학년을 앞 둔 1월에 수학 전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4 주 전에 저 몰래 외고 준비반에 시험을 치고 반 배정을 받았습니다.

어제는 학원에서 외고 설명회를 한다기에, 아들 친구 어머니와 다녀왔습니다.

설명회를 듣고나니, 마치 고3 수험 준비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기가 막혔습니다.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더니, 아들은 심장박동수가 빨라진다며 의지를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아들의 성적이 최상위권도 아닙니다.

1학년 때는 전교 30% 끝자락이었는데, 이번 시험에야 겨우 7% 정도에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좋은 외고를 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변해가는 아이를 보면서 저는 행복합니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남은 세월을 생각해보면, 외고를 못간들 어떻겠습니까.

중학교 2학년 학창시절에, 스스로 학업에 도전을 하고 실패와 성공을 번갈아 체험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자아실현의 꿈을 꾸고 실천해가며 인생의 참 맛을 배우고 말 것으로 보여서 저는 행복합니다.

 

 

 자기 주도적 학습의 시작

아들은 초등 6년 동안 성적이 학급 평균을 넘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4학년 때 국어를 100점 받아 본 경험이 100점의 전부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성적표를 받아올 때마다 아이는 죄송하다며 울었습니다.

저는 단 한번도 성적에 대해 질책하거나 실망한 적이 없습니다.

 

왜냐면,

성적표에 나와있는 다른 아이들의 성적이, 그 아이 자신만의 진정한 수치가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에 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단순 암기로 이루어진 이해력으로는 학습이 어려우며

반드시 자기주도적 이해력과 사고력만이 진짜 실력인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학습 이론에는 만 15세 전·후가 되면 자기정체성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자기주도적 학습을 여러 각도로 시도해보는 시기가 온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신감끈기 있는 사고습관을 훈련해야 합니다.

 

너무 어려서부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면, 문제를 쉽게 푸는 방법만 익히기 때문에

스스로 도전하고 실패의  쓴 경험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면 자기주도적 학습을 해야할 시기가 되었을 때,

끈기가 부족하여 깊이 있는 사고력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제 아들은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인데

수학문제 하나를 푸는데 30분을 고민하다가 답을 찾지 못해, 얼굴이 시뻘개져서 울부짖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잠시 후 다시 안정을 찾고 오기를 가지며 책상에 앉아 다시 답을 찾기 시작하여

드디어 답을 해결했을 때 환희에 벅차서 날뛰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오늘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실패한 경험과 혼자서 그것을 이겨낸 경험이 없으면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초등학생이 갖추어야 할 항목

초등 시기에는 음악, 미술과 같은 예체능이나 영어 학습 정도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 학년 교과과정의 기본 개념만 명확하게 이해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 다음에는 열심히 책을 읽히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부모님께서 믿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헛된 광고나, 이웃 어머니의 신빙성 없는 유언비어에 불안한 부모님이라면

아이를 학습에 몰아부치지 말고, 학습에 관련한 좋은 책을 읽으시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초등학교 시기에는 논술이라는 함정에 절대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장점이 한 두 가지는 있습니다.

제 아들은 적성평가 결과에서 정열성이 상위 3%이며, 지배성, 주도성이 높았습니다.

대신 자아통제성이 매우 낮아서 문제가 많은 학생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아들은 자신의 장점을 놀기에만 집중했으며, 게임을 할 때는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몰입했습니다.

저는 게임에는 전혀 통제를 하지 않았고, 인터넷 게임은 비밀번호로 부모가 있을 때만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핸드폰은 절대로 사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아이가 자기만의 장점을,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방향에 집중하여도 칭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말을 자주 했습니다. 당연히, 제 스스로 믿음을 가진 후에 한 말이었습니다.

"놀 때도 머리를 써야 하지? 그것도 좋은 거야. 그게 결국은 나중에 너가 원하는 것을 할 때 도움이 될거야."

"너는 정열성이 뛰어나서 언젠가는 성공하고 말거야!"

물론, 사소한 일로 꾸짖은 적도 많습니다. 그러나 칭찬과 꾸짖음의 중간길을 지키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그 중간길을 교육이론에서는 황금길이라고 표현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책은 어떻게 읽히는 것이 좋은지 가까운 날에 다시 한번 글을 올리겠습니다.

예체능이나 영어는 부모님이 가르치기 어려워 학원을 이용하는 것도 좋지만

독서는 학원을 보내므로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훨씬 쉬운 영역입니다.

부모님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장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독서관련 학원을 보내더라도 부모님의 보조역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까운 날에 각 가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독서교육 방법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수술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1시간 이상을 앉아 있을 수 없는 형편인 것을 양해바랍니다.

 

위의 글은 지극히 제 개인적인 예를 든 글이므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의 교육관과 대비하여 깊이 있게 생각하다보면

각 가정마다 적합한 학습교육관이 생기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례가 있으면 답글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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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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