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즈음이 되면서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는 나를 발견한다.

당혹스럽다.

거울을 본다.

눈 밑에 기미가 아메리카 대륙처럼 넓적하다.

코 밑으로 파이기 시작한 팔자주름이 잔뜩 심술이 났다.

피부는 푸석푸석 가뭄이들었다.

한 뼘은 내려앉은 듯한 엉덩이 때문일까 유독 허리가 길쭉하게 보인다.

성질이 난다.

힘껏 브레이지어 끈을 동강 조이며 가슴을 쓸어 올려본다.

턱과 가슴사이가 구만리, 멀다 참 멀다.

거울에 있는 내가 정말로 나란 말인가?

내가 낯설다. 꼴 보기 싫다.

아~우울하다!!!

 

 

책을 펴 든다. 안보 인다. 침침하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본다.

작은글씨가 이제야 선명해진다.

속상하다. 만사가 귀찮고 짜증난다.

오늘 낮에 아파트 단지 앞에서 만난 민지엄마가 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갑장인데...

그 여편네는 뭘 먹은 거람?

궁금하고 부러워진다.

“내일 모임에서는 나가지 말아야지.” 머리가 복잡하다. 아~서글프다!!!

 

 

모자를 눌러쓰고 장을 본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큰 수레가 가득 차 앞이 안 보인다.

내가 웃고 있다. 아~속이 후련하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다.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아이가 들어온다.

배고프다며 밥을 빨리 달라 성화다. 또 시작이다.

밥통이 비어있다.

조금 기다리라는 말에 아이가 화를 낸다.

나도 참고 싶지 않다. 화가 치밀어 오른다.

더 크게 소리를 지른다.

아이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근다. 쾅, 철컥.

나쁜 놈. 사춘기면 다냐! 아~쓸쓸하고 외롭다!!!

 

 

내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눈가가 뜨겁다.

눈물이 흐른다.

멈추질 않는다. 꺼이꺼이~~~

지금까지 나는 무엇을 하면 산걸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싫다. 이런 내가 사추기란다. 아~기가막힌다!!!

 

 


 

자녀가 성장통을 겪으며 방황하는 사춘기 동안

대부분의 부모들도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사추기를 겪는다.

방황기가 겹치는 이 시기에는 부모와 자녀는 모두 예민하고 불안정하다.

이 시기에 부모의 역할이 특히 중요하다.

 

부모가 신체적 심리적 변화를 잘 이겨내어야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어야

자녀를 안정적이고, 이성적으로 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020 부모교육은 사춘기 자녀와 사추기 부모가

이 시기의 변화를 이해하고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이 방황기를 성장기로 발돋음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다.

 


 

www.kace.or.kr

사춘기자녀를 둔 가족의 행복찾기 프로젝트

1020부모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웃음 넘치는 가정만들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호한 사랑이 아이를 키운다  (0) 2014.07.07
성장한 아들에게  (0) 2014.07.02
Angry MOM  (0) 2014.04.22
생기있는 봄샐러드  (0) 2014.03.18
겨울=가족  (0) 2013.12.20
자장자장~ 우리아가~  (0) 2013.11.04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줄리엣 중2병의 증세


 

 

로미오와 사랑에 빠질 때, 줄리엣의 나이는 열 네 살이었다.

우리 기준으로는 중학교 2학년인 셈이다.

 

 

 

 

로미오가 몇 살인지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맥락을 짚어보면 아마도 그 또한 ‘십대 청소년’인 듯싶다.

로미오와 줄리엣, 어린 연인의 사랑은 불 같았다.

부모도, 미래도, 사랑을 위해서는 모두 던져버릴 기세였다.

 

 

만약 줄리엣이 이 땅의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어떨까?

그대가 만약 줄리엣의 ‘담임교사’라고 생각해보라.

등골이 오싹할지도 모르겠다.

줄리엣의 모습을 꼼꼼히 뜯어보면, ‘중2병’의 특징이 오롯이 드러나는 탓이다.

중2병은 나라님도 못 고치며, 김정은도 중학교 2학년이 무서워서 남침을 못한다고 하지 않던가.

중2병은 질풍노도, 안하무인, 후안무치의 절정을 보여준다.

 

 

줄리엣은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본다.

로미오 집안이 자기네와 원수라고? 무슨 문제란 말인가?

로미오와 결혼을 하면 두 가문은 화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연인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이 뿐 아니다.

 

 

줄리엣은 열렬한 감정을 억누르려고도, 추스르려고도 하지 않는다.

줄리엣은 이 땅에 흔한 중2 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늘 감정이 먼저고 머리는 나중이다.

줄리엣들의 부모는 속이 터질 노릇이다.

 

 

줄리엣의 중2병은 독약을 먹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이틀 동안 시체처럼 잠만 자게 되고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는, 말 그대로 ‘독약’이다.

그럼에도 줄리엣은 거침없이 이를 받아 삼킨다.

마치 오토바이 폭주족을 해도, 자신만은 죽지 않을 거라 굳게 믿는 비행청소년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여전히 아름답고 감동 깊게 다가온다.

왜 그럴까?

 

 

중2병은 스쳐 지나가는 열병인 까닭이다.

영혼이 자라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세월이 흐르면 중2병은 부끄럽지만 풋풋했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중2병 한복판에서 있는 당사자에게 이런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을 테다.

 되레 ‘속 터지는 소리’로 다가올지 모르겠다.

이들과 씨름해야 할 부모와 선생님들은 더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중2병 시기를 현명하게 넘길 수 있을까?

 

 


줄리엣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학자들은 청소년기의 특징으로 ‘상상의 관중’을 꼽곤 한다.

이는 자신은 특별한 존재이며,

세상의 모든 이들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을 말한다.

그래서 사춘기 아이들은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하다.

 

 

이런 모습은 인격이 자라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비출지 생각하고,

진짜 그런지를 친구나 부모,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가운데 잘못 생각한 부분은 깨우치고 받아들여야 할 측면은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공평한 관찰자는 마음속에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어떤가?

요새 아이들은 정말 시간이 없다.

 

 

“새 학기가 시작되었으니/ 넌 우정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질 거야/ 그럴 때마다/ 네가 계획한 공부는/ 하루하루 뒤로 밀리겠지/

근데 어쩌지?/ 수능 날짜는 뒤로 밀리지 않아/ 벌써부터 흔들리지 마/

 친구는 너의 공부를 대신해주지 않아.”

 

 

어느 학원에서 버스 광고판에 크게 실은 카피 문구다.

왜 지금 아이들이 부모세대보다 사춘기를 더 심하게 앓는지는 분명해 보인다.

자신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할 능력이 생길 때, 중2병은 치유되어 사라진다.

이러기 위해서는 숱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꾸준한 반성이 필요하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귀면서,

어떤 점이 칭찬받았고 무엇 때문에 비난을 샀는지를 떠올리며 인격을 가다듬게 된다는 뜻이다.

 

 

경쟁에 쫓기는 고립된 영혼들은 제대로 된 관계를 맺기 어렵다.

사회는 상처를 심하게 받은 아이들이

영혼이 건강한 친구를 만나는 일을 두렵게 만들기까지 한다.

 

 

‘경쟁 제일주의’ 사회에서 학생들은

이마저도 자신을 ‘인격에서도 열등한 패배자’로 낙인 찍는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답답하고 또 답답한 노릇이다.

열 네 살의 사랑에 빠진 줄리엣은 ‘중2병’의 희생자라 할만하다.

그녀의 영혼에 ‘공평한 관찰자’가 자리를 잡았다면,

로미오와 오래도록 아름다운 사랑을 꾸려나갔을지도 모른다.

 

 

줄리엣의 비극을 이 땅의 청소년들이 반복하게 해서는 안 된다.

 

 


 

 

출처 네이버케스트/철학의 숲/성장을 위한 철학노트 中에서 

전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213&contents_id=24990&leafId=213 

글   안광복 : 홈페이지 http://www.joongdong.hs.kr

       소크라테스처럼 일상에서 철학하기를 실천하고자 하는 철학 교사.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인생에서 가장 철학적인 시기는 언제일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친구와 가족,

학교와 사회에 대해

마음속으로 수없이 많은 질문을 던지게되는

청소년기가 아닐까?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매고 학교에 간다.

정문을 지나 교실에 들어서서 친구들과 인사를 한다.

책상에 앉아 가방 안에 있는 교과서와 필기구를 꺼낸다.

앞자리에 앉은 친구와 어제 봤던 TV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

교실 뒤에서는 일진 애들이 새로 전학 온 녀석을 괴롭히고 있다.

카톡으로 옆 반 친구와 잡담을 한다.

…  늘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아이들은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며,

마음속으로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을까?

 

 

학교에는 왜 가야 하는 걸까?

공부는 왜 해야 하는 걸까?

왕따당하는 친구를 모른 척해도 될까?

수학 시간은 왜 천천히 흘러갈까?

사랑의 매는 허용해도 될까?

자살은 왜 하는 걸까?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가는 생각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어떤 문제들은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문제들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짐이 되기도 한다.

 

사춘기, 십대, 청소년 ― 철학하기에 가장 좋은,

아니 인생에서 가장 철학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문제적인 시기,

이 책에서는 청소년들에게

15가지 철학적인 질문과 함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 보자고 제안한다.

 

 

<나>, <나와 우리>, <나와 세계>로 넓어지고 깊어지는 철학 여행

 

철학이란 무엇일까? 철학이란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의 출발은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은 결코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품을 수도 없다.

내 삶의 주인으로 살 것인지,

시스템의 노예로 살 것인지는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다.

 

 이 책은 ‘나는 누구인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죽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며 청소년들을 끝없는 물음으로 이끌어 간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서 어떻게 앎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무조건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따지며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 생각하는 것.

그것이 진짜 배움이며, 자신의 앎과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

많은 청소년들이 이 책을 통해

철학과 사랑에 빠지는 달콤한 연애를 해보길 기대하면서

책 속의 일부를 아래와 같이 발췌해본다.

=======================================

 

 

여기 일흔 살 먹은 노인이 있습니다.

말기 암 환자인 이 노인은 앞으로 3개월 남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갓 스무 살이 지난 청년이 있습니다.

신체 건강한 청년으로 활력 넘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청년은 앞으로 두 시간 뒤에

교통사고로 죽을 운명입니다.

 

자, 질문입니다.

노인과 청년 중에 누가 더 늙었을까요?

 

― <두 번째 이야기, 시간 : 노인과 청년 중에 누가 더 늙었을까?> 중에서

 

 

 

한 도둑이 귀중품을 훔치러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갔습니다.

도둑은 평소처럼 조용히 집 안을 뒤졌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실수로 꽃병을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쨍그랑 소리가 났지요.

그런데도 아무도 나와 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서 방문을 열었더니

온 가족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습니다.

보일러에서 새어 나온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것입니다.

그는 잠시 자신의 본분(?)을 잊고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잠시 후 구급 대원들이 도착했고,

도둑의 신고 덕분에 가족들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자, 이 도둑에게 상을 줘야 할까요, 벌을 줘야 할까요?

 

― <여섯 번째 이야기, 윤리 : 살인을 저지른 아들을 숨겨 줘도 될까?> 중에서

 

 

 

 

앞에서 왜 남자와 여자의 단추 위치가 다른지 물었지요?

단추는 중세 시대 발명품으로 당시에는 귀족들만 쓸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남자들은 ‘자립적’인 존재이므로

당연히 스스로 옷을 입고 단추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입는 사람의 입장에서 오른쪽에 단추를 달았던 거죠.

대부분 오른손잡이니까요.

 

반면에 여성은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고 여겼어요.

(이것을 교묘하게 포장한 게 바로 기사도였답니다.)

그래서 입혀 주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여 왼쪽에 단추를 달았던 거죠.

여자들의 옷에만 등에 단추나 지퍼가 달린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여덟 번째 이야기, 남녀 : 남자와 여자,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인가?> 중에서

 

 

 

 

다음은 TV에 나왔던 참치 통조림 CF의 몇 장면입니다.

돼지 한 마리가 욕조에 앉아 우아하게 반신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바다 위를 헤엄치는 참치 떼를 바라보며

“나도 참치처럼 되고 말 거야!”라고 간절히 외칩니다.

 

맛도 좋고 영양가도 높은 참치처럼,

자기도 인간들이 좋아하는 먹거리가 되고 싶다는 것이죠.

진짜 돼지가 이 CF를 보고 뭐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 <아홉 번째 이야기, 동물 : 우리는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가?> 중에서

 

 

 

최근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들이 도심에 출몰한다는 뉴스가 자주 나옵니다.

그러나 멧돼지를 도심으로 내몬 것은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산을 깎아 도로나 건물을 짓는 바람에 멧돼지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풍요롭던 먹이까지 잃어버린 거죠.

 

배고픈 멧돼지가 먹이를 찾아 산 아래로 내려오는 건 당연한 순서입니다.

멧돼지가 마을을 습격한 게 아니라,

사람들이 멧돼지의 보금자리를 빼앗은 것입니다.

 

― <열한 번째 이야기, 과학 : 인간과 과학> 중에서

 

 

 

블로그의 영향력은 최근 들어 트위터나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등장으로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예전에는 블로그에 자신이 생산한 정보를 그냥 늘어놓기만 했는데,

이제는 블로그 콘텐츠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 널리 알리고,

불특정 다수의 독자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

 

블로그에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개인 미디어의 형식이 바뀌어 가는 건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미디어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소통의 욕구입니다.

 

― <열세 번째 이야기, 미디어 : 트위터와 페이스북, 그다음은?> 중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책, 함께 읽어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을 위한 동화  (0) 2015.06.18
초등맘 고민 해법서  (0) 2013.07.16
철학과 사랑에 빠지다  (0) 2012.12.03
건강의 재발견 벗겨봐  (0) 2012.10.08
1만시간의 법칙  (0) 2012.10.05
새로운 미래가 온다  (0) 2012.08.27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김수철 아동성폭력과 최근 청소년 성범죄를 보면서 걱정이 앞섭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참 무섭고 각박한 세상이니까요. ‘아이들은 부모에게 배운다’라는 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섭니다. 학교 밖 위기에 처한 청소년 숫자가 7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가정의 탓인가, 학교 교육의 문제인가, 사회 문제인가. 개인의 탓으로 돌리 수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엄마와 딸이 함께 쓴 그림 책 <100% 엔젤 - 나는 머리냄새 나는 아이예요>를 읽어보니, 서로 다름의 인정, 대화, 배려, 평등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결함이 있지요. 가난, 신체 부자유, 성격 등등. 하지만 결함을 결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름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완벽함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나도 머리카락 냄새가 나는 것처럼 누구나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고, 결함을 결함으로 보지 않는 시선. 존중 받고 싶으면 존중해주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편향되고 차별적 시각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스웨덴 기자 출신 무명작가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1954-2004)을 하루아침에 유명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소설 ‘밀레니엄’. 소설에는 트랜스젠더와 아동성폭력, 성범죄, 근친상간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기자와 남성을 위장한 한 여성입니다. 여성을 증오한 남자들이 아니라 여성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여겼던 여성을 착취했던 남성들의 이야기와 담겨있지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족사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낳는지 알 수 있습니다.

 

지난 밀레니엄의 역사는 억압과 착취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여성과 환경의 세기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기를 열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마련되어 있는가 진단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적 시선과 불균형한 시선, 말의 폭력은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분노로 표출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교육은 이제 부모들도 다시 받아야 합니다. 범죄의 대부분은 차별과 억압이 낳은 결과입니다.

 

히틀러는요

엄마가 말해줬는데요.
히틀러는 단 한 번도 여자를 사랑한 적이 없대요.
왜냐하면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는
남자와 동등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그는 어떤 여자와도 동등해지기 싫어서
절대로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대요.

 
히틀러는요.
아무리 친한 사람도 자기 어깨를 못치게 했대요.
그러면 자기와 동등해지니까요.
또 아무도 자기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했대요.
이름을 부르면 동등해지기 때문에
항상 각하라고 부르게 했답니다.
아무래도 히틀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나봐요.
(100% 엔젤- 나는 머리냄새나는 아이예요 중에서)

 

 권위를 위한 권위는 억압을 낳고 불평등한 시선을 낳고, 도덕을 무너뜨립니다. 관용과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 지금 사회 밖에는 다양한 성교육과 부모교육, 민간차원의 대안적인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너무나 경쟁만 부추기는 교육환경에 젖어 있지 않았는가. 차별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았는가, 제도적 문제점을 지적하기에 앞서, 스스로 반추해보는 시간을 갖고, 이 땅에 폭력이 사라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밀레니엄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때입니다.

 

 

  공감하시면 아래 손가락 모양 클릭 (정기 구독도 + ^ ^) -
더 많은 사람들과 관련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