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뀔 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게 한 해의 어느 다른 날과

 무에 그리 다를 까닭이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새로운 해를 열면서

아무런 바람도 다짐도 없이 지나는 것은

 좀 허허로운 일이지요.

 

 

 

저는 늘 새해 첫날 첫 새벽에 유서를 써왔습니다.

조금 섬뜩하고 엽기적이라 여기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십년 넘게 그렇게 해왔습니다.

 

 혹여 갑자기 저의 삶이 마감되면 어찌 해야 할지,

 저의 죽음에 대한 바람은 어떤지를

적어두어야 아이들이 당황하지 않겠다 싶어서

시작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진짜 속내는 그런 순간이 결국 찾아왔을 때

최소한 부끄럽지 않게 받아들이기 위한

 저 나름의 약속입니다.

 

올해도 첫날, 유서를 썼습니다.

그 전날, 그러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 작년 첫날에 썼던

유서를 차분히 읽었습니다.

받을 일보다 갚아야 일과 빚이 더 많으니

여전히 부끄러운 삶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조금이라도 좋은 일 하려고 애쓰며 살았던 것 같아

스스로에게 애썼다며 위무도 했습니다.

 

작년 마지막 날, 눈이 가득 내린 서오릉을 걸으면서

허물은 반성하고 애쓴 보람의 일에는 감사했습니다.

물론 이 한 해가 마감되는 날,

다시 그 순례를 하고 싶은 건 여전합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설렘과 긴장이 함께 찾아옵니다.

금연이니 금주니 하는 다짐은 고작 사흘도 넘긴 적이 없어서

이젠 아예 그런 다짐은 내밀지도 않을 만큼 노회해진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다짐과 바람을 세워봅니다.

 

비록 그 다짐이 금세 무너진다고 해도

그러한 다짐을 세운 것은 이미 살아오면서

스스로 느낀 바 있고 값을 속으로 매겼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니 설령 그 다짐을 끝까지 실천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런 인식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다 여길 수 있는 아량도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다짐도 자꾸만 소박해져갑니다.

건강을 유지하고 싶고, 자리에서 떨려나지 않기를 바라고,

자식들 다치지 않고 제 길 잘 나아가 주기만 빌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건강은 작년과 다르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배 무서워서가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살림살이가 갈수록 으스스해지니

아무리 버티려 해도 재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는 자식들 다치지 않고 커주는 것만으로도

대견하고 행복했습니다.

나무처럼 자라나는 그 녀석들의 성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먹지 않고도 배가 불렀습니다.

 

하지만 자꾸만 더 차가워지는 세상은

녀석들이 제 앞가림조차 하기 어렵게 돌아갑니다.

아비들이 누렸던 젊은 시절의 낭만과 호기는

이미 구석기 시대의 신화처럼 화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혼과 출산은커녕 마음 놓고 낭만적인 연애조차도 사치고

공포인 이 젊은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못난 선배인 우리가 세상 잘못 살아서 그런 거지요.

그렇다고 어찌 우리가 허튼 삶을 살기나 했습니까?

 

그야말로 전투적으로 살았지요.

우리의 부모 세대보다는 안락한 삶을 누렸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훌쩍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우리의 아이들이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상태로 엎어져있습니다.

눈물조차 흘릴 여유마저 없이 말입니다.

 

새해의 문을 열면서 저의 가장 큰 바람은

젊은이들이 숨이나마 제대로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저라고 무슨 용빼는 재주 있겠으며,

나라가 못하는 걸 무슨 힘으로 그리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어설프게 달래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적어도 그들로 하여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을

억울하게 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올 한해는 인문학자로서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세대의 각성을 인문학을 통해

일깨워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고 젊은이들과 우리의 미래에 대해

성숙한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 합니다.

 

그건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이고 사명이겠습니다.

정말 우리의 아이들이 자존감과 주체성을 가지고

무릎을 곧추 세우고 일어설 수 있어야

우리가 행복하게 자리를 비워줄 수 있겠지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라는 유명한 사진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사진을 찍을 때 한 쪽 눈을 감는 이유는 마음의 눈을 뜨기 위해서이다.”

이제 우리가 한 쪽 눈을 감아야겠습니다.

그게 인문 정신입니다.

 

올 한 해는 그 바람을 실천할 수 있는 글을 쓰고

가르칠 수 있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정말 하고 싶고 쓰고 싶은 일은 따로 있지만

 명색이 인문학자로서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외면할 수는 없겠다 싶습니다.

 

그 일이 바람대로 이루어질지는 저도 모릅니다.

세상일이라는 게 어디 제 맘먹은 대로 이뤄지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늘 그런 바람 지니고 살다보면 조금은 그 뜻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겠지요.

 

금연이니 금주니 하는 다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자신도 없거니와

그것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맵고 어렵다는 걸 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한 해를 마감할 때 새해 첫날 써둔 유서를 다시 읽어보면서

그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대견해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적 몫을 묵묵히 해야겠습니다.

 

속고 또 속은, 절망 속에서

다시 선택한 비극을 탓하기보다는

다시는 그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밝은 눈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여깁니다.

 

살다보면 꺾이는 일도 있을 것이고

생각지도 못했던 구렁에 빠지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래도 그걸 이겨내고 버텨낼 수 있는 힘은

 단단한 다짐에서 오는 것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우리가 새해 첫날 나름대로 그런 다짐을 하는 것이겠지요.

똑같은 하루의 몫일 뿐이지만 그래도 따사로운 것은 바로

그런 다짐을 세울 수 있는 각별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첫 문을 열었습니다.

다시 길을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 길이 외롭지 않은 것은 첫날 다짐해둔

 바람의 견고한 힘 덕분이라는 것을 일찌감치 짐작해봅니다.

 

올 한 해도 여러분들의 바람과 다짐이

모두 이루어지고 그 행복을 두루 누리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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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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