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인성교육
|김혜준| 아버지다움 2015. 7. 28. 10:08아버지의 인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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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몽
공부만 하다간 뒤늦게 방황할 수도, 다양한 현실과 부딪혀 볼 필요 있어
놀아보면 세상 사는 지혜 깨우칠 수도
그제 저녁 ‘동상이몽’이라는 TV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사춘기 초중고 일반인 10대 자녀와 부모가 갖고 있는 고민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내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돼 있었다. 삐까번쩍한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어서 우선 맘에 들었다. ‘저 친구들 참 많이도 나오네…’ 싶은 유재석, 김구라, 서장훈 등이 출연하고 있던 점은 좀 거시기했지만 재미있게 봤다.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딸과 가수로서 자질이 부족하니 대학부터 가라는 아빠의 동상이몽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아빠와 딸의 갈등이 심해 아빠가 가출을 한 보기드문 경우였다. 그 딸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노래까지 불렀고, 아이돌 가수를 키워낸 기획사대표의 작심 충고를 듣게 된다. 결국 그 딸은 꿈을 접고(?) 일단은 대학에 진학하겠다고 하면서 나름 해피엔딩(?)이 됐다.
그런데 저 부녀, 그리고 시청자들은 과연 해피할까? 뭔가 찝찝한 뒷맛이 남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니 ‘가수냐 아니면 공부냐?’라는 구도가 잘못된 것 같다. 좀 따져보자. 여기서 말하는 ‘공부’란 무엇인가? ‘지혜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는 진정한 의미의 공부가 아니다.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입시공부’이다. 따라서 그건 대학가기 위해 억지로 해야만 하는 고역쯤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그 고역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면 그 다음은? 그건 모르겠고 우선 대학부터 가라는 거다. 반면 ‘가수’는 어떤가? 그 아이의 꿈이고 로망이다. 그래서 억지로 시킬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고 싶은지가 명확하다. 또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의 결론은 그 아이에게 명확함 대신 흐리멍텅함을, 목적 대신 수단을, 자율 대신 타율을 선택하라고 말한 꼴이 돼버렸다. 바람직하지도 않고, 성공가능성도 낮은 선택인데…. 전국의 무수한 아이들도 그 프로그램을 지켜봤을텐데 말이다.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중학교 한 학기를 시험없이 토론·실습 또는 직장체험 등 진로교육을 받도록 한 ‘자유학기제’의 취지가 얼굴을 들 수 없을 지경이다. ‘가수냐 공부냐?’가 아니라 ‘가수의 꿈이냐 다른 꿈이냐? 그리고 다른 꿈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되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딸과 내가 ‘동상이몽’을 보고 나니 아내가 동창생 모임에서 돌아왔다. ’학창시절, 공부보다 이것저것 쑤시고 다니면서 ‘잘’ 놀았던 친구들이 지금도 ‘잘’ 살고 있더라”면서 어쩌구 저쩌구 수다가 시작되었다. 평소 자기 말할 때 딴 짓한다고 불평하는 아내에게 더 집중하려고 노력하던 중 잘 놀던 친구들이 잘 사는 현상이 ‘흔히’ 발견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찌보면 학생이 ‘논다’는 건 입시공부 이외의 다양한 현실과 부닥쳐 보는 것이다. 그러니 ‘잘’ 놀아보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더 빨리 깨우칠 수도 있고, 그것이 진정한 공부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다양한 상황과 사람들을 겪어보지 못하고 독서실 칸막이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뒤늦게’ 방황하는 건 사필귀정이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506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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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CE와 한가족인 '함께하는 아버지들'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아래 보이는 사진처럼
김혜준대표님은 항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등장하시는데요
아버지들을 위한 파더후드운동을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진심을 다해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다움' 운동 펼치는 김혜준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 "아버지가 자리 잡아야 가정도 제자리 잡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들과 함께합니다."
부성 바탕 역할 모델 없으면 아이들 사회성 발달에 악영향
국회 등 정치권 활동 곧 마무리, 단체 법인화 · 전국 확대 매진할 것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파더후드'(Fatherhood:아버지다움) 운동에 매진하고 있는 김혜준(47) '함께하는 아버지들' 대표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아버지의 부재(不在)'에서 찾고 있다.
'역할 모델'이 없으면 사회성 발달에 악영향을 주고 긍정적인 '남성상'도 구축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가정의 기능 회복을 위해서는 아버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2012년부터 시민운동 단체인 '함께하는 아버지들'과 관련 연구기관인 '아버지다움 연구소'를 이끌어 온 김 대표는 정갑윤 국회 부의장실 정책실장으로 있으면서 '행복 한 통 편지공모전' 등 가족의 기능 회복을 위한 행사를 꾸준히 개최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 가족관계 개선 스토리를 발굴한 편지 공모전에는 전국에서 5천36통의 응모작이 몰려들기도 했다.
김 대표는 조만간 국회 활동을 마무리하고 '함께하는 아버지들' 활동에 전념할 계획. 290여 명의 회원이 참여한 비영리단체인 현재의 조직을 법인화해 전국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그는 1967년 부산 출생으로 브니엘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해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자유주의연대 정책실장,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거쳤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내고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를 지내는 등 정치권에서 주로 활동했다.
김 대표는 '아버지다움'과 관련된 시민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에 대해 "정치권의 거대 담론에 대해 일종의 회의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치권의 혁신 운동에서 한계를 체감했다"며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다움에 대해 고민했고 외국에서 관련 단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공동체의 문제로 접근하자는 생각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아버지재단(Fatherhood Institute)에서 '초보 아빠교실'을 운영하는 등 조직적인 부성(父性)회복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김 대표가 소속된 '함께하는 아버지들' 회원은 매달 정기 포럼을 통해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북 포항 등에 지부를 설치하는 계획도 논의하고 있다.
"아버지의 육체적인 부재뿐만 아니라 정신적 부재가 더 큰 문제"라는 그는 "매일 집에 가지만 아이들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것은 부재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아버지다움의 회복에는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면서 "'함께하는 아버지들'에 보다 많은 아버지들이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2015년 4월 1일자 기사
부산일보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함께하는 아버지들' 일명 함아들 -
함께하는 아버지들 사무실 입구엔 하마가 씨익 웃고있는데요
대한민국 모든 아빠들이
씩씩한 하마의 씨익 웃는 미소를 닮아
가정에서, 사회에서 웃음을 잃지 않는 존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족들과 삶을 함께하는,
공동체의 문제도 함께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함께하는 단체
함께하는 아버지들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홈페이지 바로가기
함께하는 아버지들
아버지다움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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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진흥법은 인성함양에 유용할까
인성은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가정교육 통해 꾸준히 형성되는 것
벼락치기식 교육으로 기를 수 없어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앵그리맘’(angry mom)이 박수를 받고 있다. 볼티모어 폭동에서 경찰에 항의하는 폭력시위에 동참하려는 16살 아들의 뺨을 때리면서 집으로 데려갔던 싱글맘, 토야 그레이엄이 워싱턴포스트 등이 선정한 ‘올해의 엄마’로 뽑혔다. 또 최근엔 13살 딸이 SNS에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사진을 올린 걸 발견한 엄마가 딸을 적나라하게 꾸짖는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공개했고, 그녀에게 찬사와 격려가 쏟아진 것이다.
미국의 앵그리맘이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려고 인터넷 검색을 하던 필자는 배우 김희선씨의 사진으로 가득찬 걸 발견했다. 왕년에 좀 놀았던 엄마가 딸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과 사학비리에 맞서 싸운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을 그린 드라마가 ‘앵그리맘’이었고, 주인공이 김희선이었던 거다. 같은 검색어에 따라 나오는 내용이 한국과 미국에서 이렇게 판이하다니, 숨기고 싶은 우리의 현실을 웅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엄부자모(嚴父慈母)가 있으니 뭐 괜찮다. 그런데… 흠… 과연 그럴까? 괜찮은 걸까?
며칠전 퇴근길 버스안이었다. 어떤 아저씨가 꾸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상대는 어떤 청년이었고, ‘발을 밟아놓고도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느냐!’는 그런 이야기였다. 상황파악을 해보니 버스에서 내리려고 출구로 다가서던 중 버스가 흔들리는 바람에 그 청년이 중년 남자의 발을 밟았던 것이다. 그 청년은 그 아저씨의 아들뻘 정도였지만 덩치가 컸고, 옆에는 여자친구인 듯한 아가씨도 같이 서있었다. 그런데 그 청춘남녀는 그 남자에게 아무런 대꾸도 안하고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중년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면서 분개하던 훈계는 웅얼웅얼 독백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곧이어 정류소에 도착했고, 그들은 함께 내렸다. 중년남자는 총총걸음으로, 무례한 그 청년은 느긋한 팔자걸음으로 뒤따라가는 풍경이 차창밖으로 펼쳐졌다. 누군가의 아버지일 그 중년남자에게 힘을 보태주는 한마디라도 하지 않았던 것이 후회가 됐다. 봉변당하기 전에 피해야 하는 대한민국 엄부(嚴父)의 알몸을 본 것 같아 안타깝고도 화가 났다.
인성교육진흥법이 7월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또 요지경이다. 교육부에 ‘인성’을 이름붙인 과(課)가 생기고, 심지어 사교육시장도 인성교육에 후끈 몸이 달아올랐다. 교육계 전체가 인성을 향해 돌진할 모양새다. 여차하면 인성 함양에 유익한 교과 내용을 달달 외워야 한다고 하지 않을지 걱정된다. 도대체 인성(人性)이란 무엇일까? 여태까지는 인성교육이 없었던 것일까?
필자는 인성을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고 정의하고 싶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자기자신의 문제가 아닌 이상은 ‘다른 사람’과 어떤 ‘일’에 얽힐 수밖에 없고, 이 때 어떤 태도로 임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인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성은 내용이 아니라 내용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면 이러한 그릇은 언제 어떻게 빚어지는 것일까? 정신분석학은 4살 이전까지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이 향후 그 아이가 맺어나갈 대인관계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물론 그 이후에도 부모의 영향력은 이어진다. 그게 바로 가정교육이다. 태도 또는 인성은 이렇게 가정에서 부모를 보고 들으면서 형성되어 가는 그릇이지, 어느 날 아이에게 주입해줄 수 있는 어떤 내용물이 아니다.
요사이 인기를 끌고 있는 TV프로, ‘아빠를 부탁해’에서 이경규씨는 “아버지는 자기 일을 정말 열심히 하시던 분이다. 아버지에게 그런 점은 물려받았다. 재산보다 어떤 재능보다 더 좋은 것을 물려주셨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자기 일을 정말 열심히 했던 아버지의 ‘태도’,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인성교육이 아닐까?
출처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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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버지와 웃는 아버지
가족 위해 희생하는 ‘좋은 아버지’ 정작 스스로는 행복하지 않을 수도
물질에 치우친 아버지상 되짚어봐야
‘수능을 마친 고3 교실에서 “앞으로 살 날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당신의 ‘꿈’을 이루는 것과 ‘5억의 돈’ 중에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던져진다. 학생들은 하나같이 꿈을 이루기 위해 1년을 보내겠다고 입을 모은다. 시한부 삶이라는 무거운 질문이었음에도 아이들 특유의 발랄함이 여기저기서 튀어 오른다. 갑자기 교실안 조명이 꺼지면서 스크린 속에 학생들의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해 하면서 눈과 귀를 쫑긋 세운다. 화면 속에서 아버지들은 같은 질문을 받게 되고, 거의 모든 아버지들은 5억원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남은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어둠속에서 학생들은 눈물을 흘린다.’
최근 필자가 본 ‘가장, 지키고 싶은 꿈’이라는 제목의 동영상 내용이다. 필자도 이걸 보면서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남성 호르몬이 줄어든 탓인지, 눈물의 치유효과를 믿고 있는 탓인지. 요새는 울보 비슷해진 것 같다. 암튼 감동의 도가니탕이었지만, 그 와중에 100% 감정의 동화를 방해하는 뭔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5억원을 선택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단 ‘돈’은 아니라고 제쳐놓은 채, 내 ‘꿈’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해 찰나적으로 고민했었던 것 같다. 이 사실을 마누라가 안다면 “당신은 역시 이기적인 사람이야!”라고 쏘아 붙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기적인(?) 아버지인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남은 1년을 ‘돈이 아닌 그 무엇으로 채우는 것이 아버지 본인을 위해서도 남아있는 가족을 위해서도 더 가치롭다’고 말이다.
우리 사회의 아버지 담론은 이른바 ‘좋은 아버지’론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인 아버지단체는 ‘웃는 아버지’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좋은’ 아버지와 ‘웃는’ 아버지는 어떻게 다를까? 우리의 ‘좋은 아버지’론에는 아버지 본인은 빠진 채, 그 누구에게 유익해서 ‘좋다’는 메시지가 강하다. 그 결과 스스로 행복한 ‘웃는 아버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어느 매우 ‘좋은’ 아버지가 하루는 퇴근해서 집에 왔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식구들을 찾아 나서는 대신 거실 소파에서 홀로 웅크리고 있는 자신을 문득 발견했고, 그동안 아버지노릇에 피로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처럼 ‘좋은 아버지’가 ‘웃는 아버지’가 되기는 쉽지 않다. ‘웃는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이기 쉽지만….
한편 2011년 여름 영국의 데일리메일지에 소개된 이야기를 보자. 평범한 교사였던 폴 플래네이건은 피부암 진단을 받은지 9개월만에 45세 나이로 사망했는데, 당시 그에겐 5살 아들 토마스와 1살 딸 루시가 있었다. 폴은 자신의 죽음을 안 순간부터 남겨진 모든 시간을 그가 죽고 난 이후에 아이들에게 아빠로서 해줄 일들을 준비하는데 보낸다. 자신이 없더라도 아이들이 받아볼 수 있도록 수십 통의 편지를 써두는 것, 동영상 찍기, 장래의 아이들 생일선물 사두기, 감명 깊게 읽었던 책에 아이들에게 줄 메모 끼우기 등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켜야 할 소소한 삶의 지침 28가지도 남겼다. “포크와 나이프를 바르게 사용하렴. 사람들은 너의 매너를 보고 너를 평가한단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 너희만 나쁘게 보인단다” “훌륭한 서비스에는 팁을 주어라, 하지만 불친절한 서비스에는 절대 팁을 주지 말아라” “파티 초대엔 언제나 응해라. 니가 원하지 않더라도 너를 원하는 사람에게 친절과 존중을 베풀어라” 등등. 이처럼 죽음을 앞둔 아버지 폴이 남긴 건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였다. 5억원의 돈이 아니라….
감동도 좋지만 기능적이고 물질에 치우친 우리의 ‘좋은 아버지’론을 되짚어 봤으면 좋겠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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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대로 배우는 우리 아이
자식들 교육에 항상 골몰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닮는’ 교육에는 무신경
‘좋은 부모’ 이전에 ‘좋은 내’가 돼야
얼마전 서울의 한 뷔페식당에서 고등학교 재경동문회가 있었다. 동문선배인 식당 사장님도 섞여 있었고 식당 문닫을 시간도 다 돼 가니, 한 선배가 종업원에게 술안주거리를 부탁했다. “묵을 거 좀 갖다 주이소!” 그러자 종업원은 순간적으로 멈칫거렸다. ‘뷔페인데 갖다달라고 하니, 기분이 상했으리라….’ 좀 미안스러운 상황이었다. 잠시 후 그 종업원은 큰 쟁반에 ‘물컵’을 잔뜩 담아 가지고 왔다. ‘먹을 것’을 ‘묵을 것’도 아닌 ‘무울 꺼’라고 말하니, 그 종업원은 ‘물컵’에 정성스럽게 물을 담아서 쟁반 가득 들고 왔던 것이다. 물컵은 안 뒤집어졌지만 사람들은 모두 뒤집어지고 말았다.
한번은 동안(童顔)으로 유명한 모 정치인과의 식사자리에서, 필자가 회심의 조크를 날린 적이 있다. “의원님은 성형수술이 필요해 보입니다. 좀 ‘늙게’ 보이는 수술 말입니다.” 폭소가 터지기는커녕 장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니,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말았다. 뒤늦게 ‘넓게’가 아니라 ‘늙어 보이게’였다고 해명을 했지만, 본전도 찾지 못했다. 이 모두가 ‘쓸개’와 ‘설계’를 구분하지 않는 사투리 덕분이었다.
이렇듯 서울에서 수십년을 살아도 참 바뀌지 않는 것이 우리네 사투리다. 생각해보면 사투리에는 정감(情感)은 기본이고 어휘력을 풍성하게 해주는 장점도 크다. 서울사람들은 버터를 빵에 발라먹을 때도 생선살을 추려먹을 때도 똑같이 ‘발라 먹는다’고 쪼들리게 말한다. ‘볼가 먹다’라는 사투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우월한 사투리는 어디서 어떻게 학습되는 걸까? 딸이 중학생이었던 오래전 휴일 아침이었다. 머리를 감는데 샴푸가 떨어졌다. 욕실 밖의 딸에게 샴푸 좀 찾아오라고 시켰다. 그러자 녀석은 “샴푸가 어디 있~노?”라며 두리번거렸다. 물칠만 해놓은 머리를 붙잡고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의 기름기가 싹 빠진, 오리지날 경상도 사람도 울고 갈, ‘자연산’ 인토네이션이었기 때문이다. ‘고향에는 기껏해야 명절 빨간 날만 잠깐씩 다녀왔고, 사투리를 따로 교습시킨 적도 없는데, ‘우찌’ ‘저리’ 사투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걸까? ‘지’ 말로는 학교에 가면 사투리 하나도 안 쓴다지만, 저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걸 보면 믿을 수가 없군….’
결국 녀석의 입에 붙은 사투리는 100% 우리 부부가 쓰는 말 덕분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 문득 ‘우리 부부에게서 배운 것이 어디 ‘사투리’ 뿐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식은 땀이 났다. 내가 그동안 별 생각없이 내뱉고 저질러 왔던 말과 행동들! 그것들이 모조리 저 녀석의 대뇌피질 어디엔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늘 자식들 교육에 골몰하지만, ‘가르치는’ 교육만 생각하지 ‘닮는’ 교육에는 무신경하다. ‘가르침’은 난무하지만 ‘교육 효과’는 별무한 까닭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부모가 암만 가르쳐도 자식이 배우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아무리 닮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배우고 마는 것이다. 한동안 ‘눈높이 교육’이 유행이었고, 지금도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가장 잘 맞는 눈높이는 바로 부모의 언행(言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최근 어떤 직장다니는 젊은 엄마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친정 엄마가 키우는 5살배기 딸아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면서 노래를 흥얼거리길래, 자세히 들어보았단다. 그것은 “… 내 나이가 어때~서 과자먹기 딱 좋은 나인~데…”였다.
아무래도 ‘좋은 부모’ 이전에 ‘좋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게 답인 것 같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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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백
현대사회의 잘못된 프레임 때문에 자신감 상실한 아버지 갈수록 늘어
자신을 믿을때 좋은 부모 될 수 있어
경북의 산골 중학생이었던 A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짬짬이 공부를 했다. 어느 여름날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벌컥 방문이 열리면서 성난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뙤약볕에서 애비는 죽어라 일하고 있는데, 아들이란 놈이 방구석에서 책이나 보고 있다’며 A가 보던 책들을 부엌 아궁이 속으로 던져 버렸다. 며칠후 A는 염소를 몰고 풀먹이러 나갔다가 염소를 나무에 묶어두고 냇가에 가서 멱을 감고 놀았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염소가 온데간데 없었다. 온 산을 헤맸지만 결국 못찾고 해질 무렵에야 털레털레 집으로 향했다. 불호령을 각오한 A에게 아버지는 말없이 이순신 장군이 그려진 오백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다. “니 오늘 마음고생 많았제? 맛있는 거 사 묵으라!”
A는 지금도 돈독한 부자유친을 유지하고 있는 선배이다.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퇴근후 강의실에서 무거운 눈꺼풀을 비벼가며 아빠 교육을 받던 젊은 아빠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A의 아버지가 다른 건 몰라도 아버지로서의 기상은 충만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왠지 자신감이 없고, 아이들 눈치보기에 바쁜 요새 젊은 아빠들과 달리 말이다.
오늘날 아빠들이 기백이 약해진 이유가 뭘까? 아버지 노릇에 대해 잘못된 프레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잘못된 프레임1은 ‘아버지를 자식을 위한 수단적 존재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식을 먹여살리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도구로만 인식하다보니 속빈 강정처럼 자아를 잃어간다. 물론 가족을 등따시고 배부르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자 최고의 보람이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란 하나의 역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남자에게는 아버지 외에도 수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다이아몬드를 평면으로만 깎으면 전혀 아름답지 않다. 수많은 각도의 컷(cut)에서 다이아몬드의 영롱함이 나오는 것이다. 아버지의 실존적 삶이 풍성해질 때 아버지 노릇도 살아나지 않을까?
게다가 아버지가 수단적 존재에 머물 때 아버지 노릇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은 노동이 된다. 희생 정신과 의무감으로 각오를 다져야 한다면 ‘자연산 좋은 아버지’는 나오기 어렵다. ‘희생정신으로 약 먹듯이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는 ‘미소지으며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를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잘못된 프레임2는 ‘돈으로 아버지 노릇을 잘할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다. 아버지노릇이란 백화점에서 카드 긁고 척하니 걸칠 수 있는 기성복이 아니며, 백화점 식당가로 올라가서 호기롭게 주문하는 코스요리도 아니다. 돈을 쓰면 쓸수록 다른 누군가가 아버지 노릇을 대신하게 된다. 영혼과 사랑이 결핍된 그리고 상혼에 물든 그 어떤 사람들에 의해 말이다. 아버지와 아이들도 그걸 느낀다. 그래서 돈으로 아버지노릇을 사는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뒹굴면서 몸으로 때우는 아버지들 앞에 서면 왠지 켕기게 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와서 처음 하신 말이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었다고 한다. 혼자 잘났다는 의미로 흔히 인용되고 있지만, 부처님이 독선을 말씀하셨을 리는 없다. 다른 존재에 기대어 비로소 내가 존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 홀로 있더라도 존귀한 존재라는 뜻으로 새겨야 한다. 그러니 가족을 위해 자신을 불태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한걸음 물러나자.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한다고 해서 너무 기죽지도 말자.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저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라도 먼저 자기자신이 충만해지자는 거다.
문득 아버지 우상화를 외치던 친구가 생각난다. 아들 둘을 둔 그는 집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하고 있고, 끊임없이 ‘아버지 우상화’ 작업에 힘쓴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하곤 한다. 언제 그가 가진 아버지로서의 기백에 대해 찬찬히 들어보고 싶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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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장 어려운 숙제
물질적 풍요 갖춰주는 것만으로 아버지 역할 다하는 것 아니야
자식의 정신 채우는 일이 가장 중요
지난해 12월30일 저녁 귀갓길이었다. 택시기사가 라디오를 들으며 한마디 했다. “매일 뜨는 해를 보러 저렇게 몰려가다니…. 해는 내일도 그 다음날에도 또 뜨는데….” 이 말에 마음 속으로 무릎을 쳤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씀이 한참 유행일 때에도 나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른다. 다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삼라만상은 무심하게 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온갖 상상을 하면서 스스로 번뇌의 바다를 헤엄치게 된다’는 뜻이라고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분별심을 그토록 경계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번뇌에 이르는 상상이 곧 ‘나누고 구별하는 마음’(分別心)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이 지어내는 것’(一切唯心造)이고, ‘착각은 번뇌를 낳는다’는 가르침을 배웠던 저녁이었다.
위대한 택시기사 한분 더 소개해야겠다. 택시기사 바로 곁에 복잡하게 생긴 피리같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클라리넷이라고 했다. 클라리넷! 이름만 들어도 ‘아! 고상하다’고 느끼는 촌스러움을 감추면서 “그걸 왜 가지고 다니시냐”고 물었다. 졸음을 쫓는 자신만의 비결이라는 뜻밖의 답이 돌아왔다. 손님을 기다릴 때나 졸릴 때마다 분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족한 연습량을 채울 수 있어 좋고, 졸음을 쫓을 수 있어 좋고…. 도무지 무료할 틈이 없단다. 한 때 기타를 배워보려고 잠깐 용을 썼었던 지라, 아무리 쉬워 보여도 악기 하나를 다루려면 일정량의 연습이 필요하고 그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음을 잘 안다. 하물며 저토록 폼나는 악기를 불어 제끼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연습이 따라야 할 것인가. 그런데 그런 인고의 과정을 일과 중에 꺼내드는 심심풀이 땅콩으로 치환시켜버리다니…. 세상에 이렇게 지혜로운 분이 또 있을까.
우리는 흔히들 무료한 시간을 보낼 때 ‘시간을 죽인다’(time killing)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노신사는 죽어가는 시간을 그렇게 살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그런데 과연 ‘오래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하루에 몇 시간씩 ‘시간을 죽이면서’ 생물학적인 수명을 늘린다면 그것이 진정 ‘오래’ 사는 것일까. 남들이 손쉽게 죽이고 말았을 시간을 살려내는 이 사람이야말로 ‘사는’ 총량으로 치면 따라올 사람이 없는 가장 ‘오래 사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런 깨달음과 교훈이 생길 때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내 딸이다. 내 자식에게 생존하는 그리고 슬기롭게 살아가는 기술과 지혜를 가르쳐주고 싶은 존재,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부정(父情)을 다룬 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의 ‘인터스텔라’가 그랬고, 지금 한창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국제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국제시장’의 영어 제목은 ‘내 아버지에게 부치는 시’(Ode to My Father)이다. ‘국제시장’에서 부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버지 덕수(황정민)를 비아냥거리는 아들딸들은 감동의 뒤 끝에 남는 안타까움이었다. 온 몸으로 가장의 책무를 다 했던 주인공이었지만 자식들을 정신적으로도 잘 키워내지 못했다는 뉘앙스가 남아서 그렇다.
사실 적잖은 아버지들이 자녀의 물질적 객관적 조건을 갖춰주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 자녀의 정신을 채우는 일은 엄마나 학교에 떠넘기고서 말이다. 딸에게 택시에서 배운 교훈을 전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서로 시간을 내야 하고 작전도 짜야 하니, 귀찮은 일이다. 그러니 자식의 정신을 채워주는 건 가장 어려운 아버지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마카데미아’라는 땅콩의 이름을 알게 해준 ‘아버지 조양호’를 봐도 그렇다.
김혜준 KACE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3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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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도 격려와 응원을
아버지 노릇하기 어려워진 오늘날
무거워진 어깨 이끌고 현관나서는 우리의 영웅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나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호떡을 좋아했다. 돌아서면 배고픈 그 시절에 뭔들 맛나지 않았을까마는 부산의 어느 버스정류장 옆에 있었던 호떡집에서 만났던 호떡과의 아찔했던 첫키스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후 어스름 무렵이면 호떡이 구워지는 냄새를 동무삼아 일 나가셨던 어머니를 거기에서 기다렸다. 그러면 번번이 따뜻한 호떡 봉지가 내 손에 쥐어졌다. 봉지 안에서 끈적끈적하게 나를 올려다 보던 호떡 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의 호떡사랑은 대학시절 하숙할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하숙집에서 큰 길가로 내려오면 버스종점이 있었는데, 그 건너편에서 호떡을 구워팔던 아저씨가 지금도 기억난다. 다른 호떡집에서는 식용유에 마치 튀기듯이 굽지만 유독 그 아저씨는 버터로 구워냈기 때문에 호떡 마니아였던 나를 단박에 매료시켰었다. 추운 겨울 저녁, 출출해지면 츄리닝 바지에 슬리퍼 바람으로 내려가 발을 동동거리면서 호떡이 봉지에 담기길 재촉하던 기억이 새롭다.
이제는 예전처럼 죽고 못사는 경지는 넘어섰다. 일단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다. 게다가 식용유가 아니라 버터로 구워야 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주는 곳도 드물다. 그래도 빵 쟁반과 집게를 들고 빵집을 누빌 때면 으레 호떡 유사품을 들었다 놨다 하는 건 여전하다.
“아버지는 딸 아이 어릴 적 퇴근길에 호떡을 사다주곤 했다. 어린 딸은 아빠가 사온 호떡이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고소하고…. 아버지는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을 했고 이젠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딸은 옛날 생각이 나서 사온 아빠의 호떡을 봉지도 안 열어본 채로 책상위에 놓아둔 지 오래다. 딸은 이제 더 이상 어리지 않아서 저녁때가 되어도 안들어 오는 아빠를 기다리지 않는다. 어린 딸에게 아빠는 점점 말이 통하지 않는 늙은이로만 변해간다. 그 딸은 ‘소통’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소통이 안되는 것이 너무 많단다. 아빠랑 왜 대화를 안하냐고 물으면 말이 안통해서란다. 딸에게 아빠는 못나게 나이들어버린 사람일 뿐이다. 겉으로 말만 안했지,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요?’ 마치 남처럼 감정도 별로 남아있지 않다. 아빠가 그렇게 못되게 군 것도 아니건만. 다만 지치도록 열심히 살았고, 그러느라 딸아이와 살갑게 놀아줄 시간도 없었고, 돈을 많이 벌지 못해 입에 돈소리를 달고 살았고, 나처럼 살지말라고 딸아이에게 근면 성실을 강조했고, 노스페이스는 못 사줘도 비슷하게 따뜻한 노드페이스는 사줬지만 딸아이는 한번도 안 입었을 뿐이고, 아직도 딸아이가 호떡을 좋아할 거라고 믿고 있을 뿐인데. 아빠는 오늘도 다 식어가는 호떡을 가슴에 품고 버스정류장에서 집으로 향한다. 이게 나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어느 아버지의 글이다. 이 쓸쓸한 독백을 보면서 ‘잇몸을 꽉 잡아준다’는 잇몸약 광고는 있어도, 부성을 꽉 잡아 지지해주던 가부장적 잇몸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음을 실감한다. 이른바 ‘좋은 시절’은 지나갔고, ‘아! 옛날이여’를 부르고 있다가는 왕따되기 꼭 알맞다. 또 설사 가능하다 해도 가부장제로 회귀하거나 독불장군식 권위를 누리는 것은 아버지 본인에게도 행복한 선택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마냥 희생하고 자상하게 대하는 것만이 정답도 아니다. 환영받지 못하거나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식에게 필요한 일이라면 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날 아버지노릇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모른다.
월요일 아침이면 현관문은 유난히 무거워진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식구들을 먹이고 아이들 등록금과 학원비를 벌기 위해 힘겹지만 현관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불우이웃도 좋지만 우리의 아버지들에게 동정이 아닌 격려와 응원을 보내보자.
김혜준 KACE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9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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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성향 존중과 결혼·입양 합법화는 별개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 대체 불가능
입양아 성 정체성·사회화 위해서라도 동성애자 입양을 인권인양 해선 안돼
역대 교황 중에 가장 대중에게 어필하는 교황을 꼽는다면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닐까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7월에 “동성애자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면 내가 어떻게 그를 판단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서 로마 교황청이 동성애를 포용할 것 같다는 추측이 난무했다. 그러다가 ‘동성결합과 이성결혼 간에는 아무런 유사점이 없지만, 동성애 성향을 가진 사람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로 내용이 최종보고서에 담기게 되었다. 이때 국내 언론의 타이틀을 살펴보자. ‘동성애 포용 일단 무산… 미·영 보수파의 벽 못넘은 교황’(조선일보), ‘미뤄진 카톨릭 혁명…’(동아일보), ‘동성애·이혼 아직은… 문닫은 바티칸’(중앙일보) 한마디로 놀라웠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좋은 뜻이 꼰대들의 벽에 부닥쳐 좌절되었다’는 뉘앙스 일색이었다. 역시 이른바 ‘먹물’들은 진보적 취향이 강한 것 같다.
지난달 캘리포니아 지역 신문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San Francisco Examiner)’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국이 아시아에서 처음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박 시장은 보도가 와전되었다고 해명했지만, 박 시장이 추진 중인 서울시민인권헌장에서는 성소수자 문제가 다루어 지고 있었다. 며칠 전에는 애플사의 최고경영자 팀 쿡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했다.
이런 일에 쯧쯧 혀를 차고 있다면 조금 경각심을 가져야 하겠다. 대한민국은 LTE급으로 변화하는 나라이니 말이다.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인 퓨리서치(Pew Research Center)에서 조사한 결과, 한국의 동성애 수용 증가율이 조사대상 39개국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다’는 응답 비율이 2007년 18%에서 2013년 39%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로마 교황청이 잘 정리한 것처럼 동성애자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동성애자들의 입양’ 문제이다. 지금 지구촌은 동성애를 인정하는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동성결혼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동성결혼은 곧 ‘입양’ 요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미 동성결혼이 인정되고 있는 영국에서는 여권 신청서의 부모 인적사항을 기재하는 란에 ‘아버지’ ‘엄마’ 대신 ‘부모1(parent1)’ ‘부모2(parent2)’로 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남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아이를 낳고 교육시킨다는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해체되고 있다.
아이에게 아버지란 아이의 전 인생에 걸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며, 아버지의 역할과 가치는 엄마가 대체할 수도 없다. 아버지와 엄마는 그 역할과 가치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독립운동가이며, 대인관계의 원형을 형성시켜주는 존재이며, 남자로서의 롤모델이 된다. 따라서 아버지와 엄마는 그 역할과 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대(大)전제를 부정하려는 생각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결국 ‘동성애자들의 입양’은 누구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볼 것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명확해진다. 동성애자 입장에서야 살다보면 아이도 키우고 싶을 테지만, 동성애자 밑에서 자라날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보라. 과연 건강한 성 정체성과 사회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지 말이다. 앞으로 점증될 동성애자들의 권리주장에 있어서도 적어도 ‘미래세대의 성장’과 관련하여서는 보다 성숙된 자세가 절실하다. 동성애자의 확산을 조장하거나 동성애자의 입양을 인권인양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이를 양육하고 교육시키는 문제는 사회적 차원에서 볼 때 사회구성원을 충원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혜준 KACE 아버지다움연구소 소장
출처 경상일보
http://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3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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