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중 가장 동화같은 날을 꼽으라면,

바로 크리스마스가 아닐까?

어릴적 크리스마스는

동화책 속에 나오는 꿈 같은 풍경과

유쾌한 캐롤이 흘러나오는

무척 설레이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어릴적의 추억으로

평생을 산다.

그것이 그들의 꿈이 되고,

잔잔하고 따뜻한 행복이 된다.

 

 

아이들과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나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준비물은 간단하다.

종이와 물감, 가위, 풀...

그리고 손과 발만 있으면 된다.

 

 

 

 

 

손과 발을 움직이고,

눈으로 색과 모양을 고르고,

뇌를 자극하는 활동에

부모가 재미있는 스토리를 더해주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준비를

온몸으로 하게 된다.

 

 

 

 

손과 발을 이용해

루돌프 카드를 만들었다.

무척 큰 대형카드!

초록색 손을 동크랗게 붙이고

리본을 달았을 뿐인데

멋진 크리스마스 리스가 완성되었다.

 

 

 

 

 

 

 

 

 

 

 

 

 

 

손과 발은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되고!

 

 

 

 

 

 

크리스마스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매우 즐거운 축제이다.

 

 

 

이 기회에

가족들의 손과 발을 만지며 스킨십하고

서로의 창의력을 칭찬해주는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길....!

 

 

 

 

Merry Christmas!

 

 

 

 

[사진 및 활동제안 출처: http://heymommychocolatemilk.blogspot.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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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 아이는 애착을 통해 성숙하고,

그 다음에서야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애착의 단계없이 사회성으로 건너뛸 수는 없다.

 

아이의 사회성 계발을 맹신하는 부모들은

너무 일찍 아이들을 자신의 품에서 떨어내려 한다.

 

 

그런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상처받고

또래에게로 애착과 의존성을 옮기게 된다.

애착의 대상이 바뀌는 순간

부모의 권위와 힘도 사라진다.

 

 

애착이란?

볼비의 책에서 가장먼저 소개되었다.

유아와 부모 간의 애정의 끈.

생명의 존귀함과 특별한 개인으로 인정해주는 것으로

접촉을 유지하고 애정을 나타내는 행동을 통해 애착이 형상된다.

 

ex)

어머니가 유아에게- 귀여워하기, 꼭 껴안기, 뽀뽀하기, 응시하기 (미소, 뽀뽀)

유아가 어머니에게- 미소, 울음, 옹알이, 잡기, 추종반응 (아버지와 딸)

 

[출처: EBS 60분부모]

 

애착의 일곱가지 역할

1. 애착은 부모와 아이 사이의 위계를 잡아준다.

2. 애착은 부모역할의 본능을 깨우고,  아이를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며,

   부모의 참을성을 키워준다.

3. 애착은 아이의 주의를 기울이게 한다.

4. 애착은 아이와 부모의 친밀감을 유지시킨다.

5. 애착은 부모에게서 모범을 찾게 만든다.

6. 애착은 부모를 주요 본보기로지정해준다.

7. 애착은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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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결혼도 선택인 시대이다.

경제력만 있으면 혼자 살아 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마트에 가면 혼자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먹을 거리와 용품들이 넘쳐나고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나

여가생활도 얼마든지 많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지 않거나

경제적 자립이 가능하다면

결혼했던 사람들도 쉽게 이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결혼은 성공적 인생을 위한

훌륭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영국 끝에서 런던까지 가는 가장 빠는 방법은?’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독자들을 상대로

 큰 상금을 걸고 했던 유명한 현상 공모이다..

유레일을 타라’, ‘콩코드 비행기가 빠르다’,

수천 통의 응모작이 신문사로 들어왔다    

 

 

그런데 당선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좋은 동반자와 함께 가는 것!’.  

정말 공감이 가고 교훈적인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길고 긴 인생의 여정을 성공적으로 마치는데 있어

돈이나 지위 혹은 직업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지지해 주고 인정해 주고 믿어주고

사랑해 주는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동반자와 함께 하는

결혼생활이야말로 행복한 인생의 여행에서 더욱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한국 부부의 행복지수는?

누구나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소망하며

시작하는 결혼생활 이지만,

실제 행복한 결혼은 어느 정도 되는 것일까?

 

 

매년 5월이 되면 가정의 달을 맞아 각종 기업과 단체 에서

 행복한 가정 만들기혹은 효과 적인 부부 의사소통등에 대한

강연 요청이 많이 들어온다.

 

 

강의 중에 청중들에게 행복 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손 들어 보세요라고 요청하면

대략 20%이내의 청중들이 손을 드는 것 같다 

 

 

몇 년 전 미국에서 한 결혼 문제 전문가가 했던 비슷한 조사에서는

5%의 사람이 자신의 결혼생활에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대답했고

10%는 결혼생활을 긍정적으로 생각했고,

그저 그런 결혼과 어쩔 수 없이 참고 사는 결혼생활의 비율이 85%로 나왔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조사에 의하면

부부의 행복지수가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라고 한다.

겨우 낙제점을 면한 정도인데,

연령대 별로 살펴보면 30대는 78%, 

4-50대는 95%가 부부로서의 행복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수치로 보면 중년의 부부에게 행복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보일 정도다.

결혼 생활 을 한 기간에 비례해

부부의 행복지수가 떨어 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 부부의 자화상 이다.

 

결혼식 준비는 하지만 결혼생활준비는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모 국내은행에 토요일에 강의 갔다가

교육담당자에게 왜 평일에 하시지 토요일에 교육을 하십니까?

직원들도 좋아하니 않을 텐데요..”라고 물어 봤다가 의외의 대답을 들었었다.

 

 

  5일제 근무를 도입하고 나서 직원들이 주말에

부부싸움이 늘었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도입 초기에는 여행도 가고 했겠지만 경비 때문에

매주 여행 다닐 수도 없고 그러다 보니

부부가 주말 이틀을 함께 보내야 하는데 부부가

 여가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도 모르고 익숙하지 않으니

서로 싫은 모습만 보게 되니 부부싸움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부싸움하느니 자기계발을 하라는 취지에서

토요일에 연수원에 과정개설을 했는데

 직원들이 예상을 뛰어 넘는 호응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였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주말 이틀도 가족과 함께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 가는 것이 우리의 실상인 것이다.

그러니 긴 인생의 여정을 함께 해야 할 결혼생활은 말할 것도 없지 않겠는가?

 

 

주변을 둘러 보면 결혼을 앞둔 사람들이 집이나

 가전제품, 예단이나 예물, 결혼식장과 신혼 여행 등 물질적 준비는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정작 중요한 새로운 관계에 대한 준비

즉 결혼 생활에 대한 준비는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진학이나 취업, 승진은 매 단계마다 치열하게 준비하고 공부하면서

왜 결혼에 대해선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까?

직장에서 경영자나 관리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리더십을 공부하고

훈련 하면서, 한 사람의 배우자로서의 역할,

좋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혼으로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 지면

 당연히 부부간에 말하는 방법과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가 따라야 하는 것이다.

 

 

2007년 한국 미혼 남녀들에게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남녀 모두 각각 58.4%, 61.0%의 비율로

배우자와 조화롭게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흔히 결혼비용에 대한 부담이나 육아에 대한

부담감이 결혼을 망설이게 하는 주요인으로 꼽히지만

부부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는 데서 오는

 두려움도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부 사이에 대화하는 방법,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 등 부부가 상대를 이해하고

더 나은 관계를 만드는데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소통의 기술들을 배우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 또한 좋은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부부 관계는

 아이들 장래와 정서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정서적 만족감을 얻지 못하는 여성일수록

아이들에게만 매달리는 의존적인 사람이 되기 쉽고,

모든 걸 다 바친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품을 떠나면

허무함, 배신감, 쓸쓸함으로 인해서 마음에 상처를 입게 된다.

 

 

또한 아이들도 스스로 성숙할 자유를 경험하지 못해서

마마보이나 공주병에 걸린 아이로 성장하고 커서도

독립된 인격체가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다가 결혼한 자녀들을 자신의 절대적인

영향권 안에 두려는 부모들은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부부관계까지 망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결국 부부가 서로 믿고 사랑하며 부부관계를 행복하게

영위해 가는 일은 자라나는 자녀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실질적 유산을 물려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좋은 부모 되기에서 행복한 부부 되기를 위한 교육을

확산시켜야 할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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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햇살도 따뜻해지고,
꽃들도 노랗게~ 빨갛게~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봄입니다.

초여름날씨인데

한겨울 얼음같은 오해와 갈등을 녹이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는건 아닌지?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가족을 대하고 있는지?

아래는 4년 전 KACE부모리더십센터 주최로 열린
 '좋은부모대회'때 한 가족 발표사례입니다.
사춘기를 겪은 딸이 엄마와 아빠에게 쓴 편지인데
어떤 봄소식보다는 아름답습니다.

오늘 가족에게 편지를 써보는 건 어떨까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유난히 가족을 생각나게하는 계절입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이렇게 엄마 아빠께 편지를 쓰려니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지난날들이 생각나요.
동생이 태어난 후 갑작스런 부도로 우리 가족이 시골로 이사를 가야했던 일은 제게 큰 충격이었어요.
아빠는 툭하면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셨고, 몸이 불편한 엄마는 이런 상황을 너무나 힘겨워 하셨죠.
다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부모님에 대한 저의 원망은 최고로 치달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가출을 해버렸죠.
그때는 아빠보다 엄마를 더 용서할 수 없었어요.
저는 어린 동생의 손을 잡고 거리를 방황하며, 모든 어른들을 미워했어요.
학교 때문에 어린 동생을 작은댁에 맡긴 후 매일 엄마, 아빠를 참 많이도 원망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엄마가 다시 집으로 오시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 집은 전쟁의 연속이었죠.

그러던 중 엄마가 <좋은부모 프로그램>에 16주 동안 참석하신다고 하셨죠.
놀랍게도 엄마에게는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어느날 엄마가 저에게 말씀하셨죠.

"우리가 아빠를 이해해드리자"
아빠를 그렇게 미워하던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신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어요.

그렇게 엄마로부터 시작된 부모교육이라는 씨앗은
우리 가정의 행복이라는 탐스러운 꽃을 피워냈습니다. 
엄마는 가족의 말을 잘 들어주셨고,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하는듯했어요.
그러면서도 우리가족의 미래를 위해 서로 아껴야한다며
서로 어긋나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게 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흐른 후,
우리집은 가랑비에 옷 젖듯
대화가 많아지고, 서로의 애정을 느끼게 되면서
사랑이란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린 어느 집보다도 행복해요.

엄마, 아빠!
사춘기 때 방황하던 못난 딸을 믿어주시고,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내 동생 나눔아.
모두모두 내 온 마음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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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 아침. 엄마들이 책을 들고 학교로 갑니다. 안양의 부림중학교 학부모들로 구성된 12명의 코피스(coffice) 회원들이 함께 공부하는 날. “아니 공부가 그렇게 좋아요? 어쩌면 그렇게 꼬박꼬박 학교를 가요?” 주변에서 신기하듯 쳐다보지만 코피스 회원들은 입 모아 말합니다. "좋은엄마가 되기위한 노력은 함께일 때 행복해"라구요.

 
코피스 회원들은 2008년 봄,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열린 <KACE 부모자녀의 대화법> 강의를 시작으로 함께 공부하기 시작했다고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자녀들의 성적과 학교생활이 비교되어 서로 간에 보이지 않는 경쟁심리가 작용하기도 하고, 부모들의 나이와 성격, 가정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웠다고 해요. 하지만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준 건 딱 하나. ‘우리 자녀들을 함께 잘 키워보자’라는 부모의 마음이었죠.


부모교육을 통해 함께 웃고 울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열려라 참깨가 아니라, 열려라 대화"
이분들도 각자 ‘자녀를 키우는 것이 왜 나에게는 이렇게 힘겨운 것일까?’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족이야기와 자녀양육의 고민을 진솔하게 나누고, 이의 해결책을 찾는 토론을 진행하면서도, 그것은 부모로서 느끼는 당연한 과정이었음을 알았으며, 그것을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공부하면서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이들은 부모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있어 서로 힘이 되어주는 탄탄한 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었지요.


김수정 코피스 회장은 “부모교육이 어느 날 갑자기 나와 자녀, 가족을 바꿔놓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학습으로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회원들을 변하게 했고, 이어서 자녀와 가족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어려움과 힘들었던 사례들을 내놓으며 토론을 했었는데 공부를 하면서는 어느덧 긍정적으로 변화된 사례들로 이야기 꽃을 피우기 시작했지요. 좋은부모되기가 어려운 일이지만 함께 한다면 훨씬 수월해지고, 즐거워지기까지 해요”라며 학습동아리 자랑을 늘어놓습니다.
 

이들은 평범한 대한민국 어머니입니다. 다만 아이들 학원보내기와 사교육 열풍에 휩싸이기 보다는 배움과 성장, 그리고 나눔을  스스로 먼저 실천하며 그들의 영역을 넓혀 나가는 모습이 자녀들에게도 살아있는 本을 보이는 부모라는 거죠. 그들의 아이들은 이제 하나 둘씩 중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하지만 학습동아리는 계속 이어집니다. 부모는 평생교사라는데 이 부담스러운 역할을 행복으로 승화하려면 바로 든든한 동반자들 학습동아리 회원들이 함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요즘 시청률 높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자주 나오는 말이 있죠. "나만 아니면 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만'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코피스 회원들처럼...나만의 아이를 나의 생각과 방식으로 키우기 보다는 우리의 아이로 함께 보고, 그들이 조화롭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서로에게 지혜가 되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공동체. 진정한 ‘같이’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부모들이 아닐까요? 공부는 평생해야지요. 끝이 없습니다. 그 공부의 영역 또한 넓고 깊어야 합니다. 교육은 이런 자세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엄마들이 나서야 교육이 바뀝니다. 물론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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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하왕십리 방화사건을 알리는 기사 제목을 보고 애써 외면했습니다. 아침에 기사를 찾아 읽어보니 암담해집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인가요? 사건이 일어나면 요란하게 언론에서 떠들어대지만, 다시 무감각해집니다.

 

방화사건을 저지른 사람은 고입 진학을 앞 둔 중학생. 언론보도에 따르면, 학교 진학문제로 아버지와 다툰 것 같습니다. 학생은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어했고, 반대하는 아버지와 화가 났겠지요. 말다툼 끝에 아버지에게 몇 대 맞은 아들. 그 울분에 중학생은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불을 저지른 거지요. 찰나의 순간. 자신의 부모님과 형제 일가족 4명이 불에 타 숨져버렸습니다.

 

학생은 CCTV에 녹화된 영상자료를 근거로 경찰이 추궁하자, 자백을 했다고 합니다. 인륜을 파괴할 범죄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지만. 이 중학생은 얼마나 괴로울까요. 순간의 화가 한 가족의 인생을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살아있는 학생의 정신도 타 버린 거지요. 그 상처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잊혀 지지 않겠지요.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학생의 범죄행위는 지탄 받고 처벌받아야겠지만, 과연 이 사건을 방화를 저지른 중학생 개인의 탓으로 다 돌려야 하는 걸까요?

 

하왕십리 방화사건을 지켜보면서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대화의 부족과 비폭력 대화법.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선택해야 할 협소한 인생행로. 최근 한 방송국 프로그램(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오늘을 즐겨라)에서 공개된 초등학교 2년생이 쓴 시가 대한민국 아버지들에게 작은 파문을 일으켰지요.

 

아빠는 왜?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무뚝뚝하고, 가족을 꾸려 나가기 위해 여유 없는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가족들과 대화시간이 부족 하겠지요.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는 말할 나위 없지요. 가족들이 함께 있는 시간에도 다들 바빠 보입니다. 휴식을 취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대화 시간은 부족하지요. 그렇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게 되고, 서로에게 작은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대화에 서툰 사람들이 되어 버린 거지요. 그렇다 보니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말을 전해 주게 되고, 오해가 생기고, 대화는 끊겨버립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지요. 그렇다 보니 자녀들은 다른 세계에서 대화 상대를 찾게 됩니다. 조용한 가족, 침묵의 가족. 서로가 대화할 때마다 애민해지고, 말이 거칠어지게 됩니다. 부모는 위계를 따지게 되고, 권위 아닌 권위를 내세우게 되지요. 그런 측면에서 대화의 복원이야 말로 가정교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부모님들 중에 자녀가 잘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출세라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지만, 성공하기를 바라지요. 좋은 분야, 좋은 대학, 좋은 직업을 가지길 바랍니다. 한국처럼 교육열이 놓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자신은 희생하더라도 자식만큼은 잘 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지요. 그렇다 보니 자녀의 적성보다는 성적을 더 중요시 하게 됩니다. 결국 학업성적이 대학, 직장으로 연결되는 첫 고리라고 생각하니까요. 참 많은 공부분야가 있고 직업이 있는 것 같지만, 협소해 보입니다. 예술분야도 예전처럼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공부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요. 개인의 선호도와 능력에 관계없이 경제 여건이 따라 주어야 되니까요. 예술분야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 예술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창시절에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공부한 사람 중에 세계적인 경제학자가 되거나 법률가가 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결국 청소년기에 공부는 자신의 인생행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번 하왕십리 방화사건은 한국 사회가 빚어낸 문제점이 응축된 결과라고 보고 싶습니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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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한 방송국 프로그램(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 오늘을 즐겨라)에서 공개된 초등학교 2년생이 쓴 시가 새삼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시를 다시 읽어보면서 '남자의 자격'이 아니라 '아빠의 자격'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아빠는 왜?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을 즐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아빠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 아빠분이 '아버지교육'을 받고 쓰신 글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처음 큰 아들이 태어나 내질렀던 울음소리,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처음 눈을 뜨던 그 모습은 신기하고 또 신기했습니다. 생명은 정말 아름답고 고귀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아들은 쉴새 없이 먹고, 자고, 싸며 칭얼댔고 아버지가 된 저는 한숨도 못 자는 피곤한 날이 늘어갔습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종종 했는데 사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큰 아들은 자라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츰 아들의 공부와 성적에 대해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하루에 12시간 이상을 공부만 했고, 그렇게 공부해서 대학을 나왔지만 세상을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아들에게 저는 그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훈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점점 아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게 되었고, 그게 먹히지 않자 야단을 하고 매도 대며 공부를 시키고자 했지만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계속 잔소리와 야단을 듣던 아들도 서서히 반발하고 대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홧김에 내민 손찌검이 아들의 코뼈를 상하게 하였고 아들은 많은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이로 인해 코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아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아 더 반항적이 되어갔습니다. 전 이런 아들이 못마땅했고 동생에게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심하게 꾸중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럴수록 더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어려서부터 다니던 교회도 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교회에서 만나 기독교신앙을 기초로 결혼을 했고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녀왔기 때문에 아들의 이런 행동은 우리의 근심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었습니다.

 

큰 아들로 인한 근심이 깊어가고 있을 때, 아내가 제게 성남지역교육협의회에서 개설하는 “좋은 아버지 교실” 을 수강해보라고 권유했습니다

 

교육을 수강하면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시작한 고민과 노력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 대한 문제로 수렴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답을 찾고 현재 당면한 자녀와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볼 때 아이들은 제가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부딪히며 지나온 갈등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 동안 만나게 될 어려움들 또한 많을 것인데 그때마다 앞서 해결해주고자 하기보다 지혜롭게. 위로와 격려의 말,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말, 칭찬의 말, 긍정의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사랑하며 살아야지... 두 아들이 힘들 때마다 힘을 얻으려고 찾는 아버지가 되어야지..’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을 함께 겪으며 노력해온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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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외진 골목 안 소문난 칼국수집. 칼국수에 곁들여 나오는 이곳 무생채는 새콤달콤하고 아삭해서 ‘리필’이 필수다. 집에서는 절대로 낼 수 없는 맛. 역시 할머니 손맛이야, 라며 오물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가 들려준 맛의 비밀은? “식초도 좀 넣고… 마지막으로 사카린을 꼭 넣어. 아주 조금만 넣으면 돼. 그래도 맛이 나. 많이 넣으면 못써. 너무 달거든. 내가 이렇게 자세히 얘기를 해줘도 집에서 만들면 그 맛이 안 난대. 내가 손맛이 있나봐.” 흐흐… 사카린? 아, 그 사카린?! 정 많은 할머니의 사카린, 엄마의 올리고당, 짐승 아이돌이 선전하는 콜라 속 액상과당, 껌 속 자일리톨, 소주 속 스테비오사이드… 음식 속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들어있는 단맛의 정체가 모두 설탕인 것은 아니다. 만약 어떤 이유로 단맛을 멀리하고자 한다면 단맛에 씌워진 가면들도 낱낱이 익혀두어야 한다.


옛날 옛적 천연의 달콤한 영양 덩어리 꿀에서부터 비롯된 단맛의 역사는 지독하게 달기만 한, 난해한 화학기호 덩어리 인공감미료로까지 진화(혹은 퇴보)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첨가물 용어집 용어 설명에 의하면 감미료는 ‘식품에 단맛을 부여하는 식품첨가물’이라고 되어 있다. 전 세계에는 6천여 가지의 감미료가 존재한다. 감미료는 원료가 어디서 왔는지에 따라 자연에서 얻어진 천연감미료와 화학적 기술을 이용해 얻어진 인공감미료(정식 명칭은 화학적 합성품), 가공 과정에서의 정제 여부에 따라 정제당과 비정제당, 탄수화물계냐 아니냐에 따라 탄수화물계 감미료(설탕 등)와 당뇨병 환자들이 주로 섭취하는 당알코올계 감미료(자일리톨 등), 체내에서 단백질처럼 소화 흡수되는 아미노산계(아스파탐 등) 같은 비탄수화물계 감미료, 설탕을 기준으로 한 단맛의 정도에 따라 저감미 감미료와 고감미 감미료, 영양성분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영양적 감미료와 비영양적 감미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꿀이나 설탕 같은 천연감미료는 대부분 영양적 감미료로, 먹으면 체내에서 대사되어 에너지를 만든다. 화학적 합성품인 인공감미료는 대부분 비영양적 감미료다. 비정제당에는 꿀, 엿, 조청, 비정제 설탕 등이, 정제당에는 정제 설탕(백설탕, 황설탕, 흑설탕), 물엿, 올리고당, 액상과당 등이 있다. 정제당은 사탕수수, 사탕무와 옥수수 전분 등이 원료인 천연감미료이지만 꽤 길고 복잡한 정제 과정을 통해 단맛만 빼낸 것이기 때문에 영양은 거의 없고 단맛만 있다는 점에서 인공감미료와 닮았다.


천연감미료에는 꿀과 사탕수수(무)로 만든 설탕, 곡식으로 만드는 엿, 뿌리에서 단맛이 나는 식물인 감초 외에도 당류인 포도당, 과당, 이성화당, 젖당 등이 있다. 인류가 맛본 최초의 단맛은 꿀이나 과일 같은 식물의 열매였을 것이다. 꿀이 얼마나 귀했는고 하니 일본의 옛 문헌에 따르면 백제의 왕자가 일본에 와서 직접 양봉을 가르쳤고, 《삼국사기》에는 신라 신문왕이 왕비를 맞을 적에 보낸 폐백에 꿀이 들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꿀과 과일을 대신해 인간의 단맛 욕구를 충족시켜준 것이 엿과 설탕이다. 서양이 사탕수수(무)에서 설탕을 얻기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전락시키고 사탕수수 즙을 끓이기 위해 나무를 마구 벌목해 숲을 파괴한데 반해 동양의 엿은 그 생산과정이 비교적 소박하고 평화롭다.

엿은 밥(곡식)에 엿기름물을 섞어 약한 불에서 오래도록 뭉근하게 고아(당화) 졸인 것이다. 엿기름은 보리에 물을 부어 싹을 틔운(발아) 다음 말려 가루를 낸 것이다. 싹이 틀 때 생긴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쌀의 전분과 반응하여 전분을 제일 작은 분자(단당류)로 쪼개어 달게 변화(당화)하도록 만든다. 밥이 몸속으로 들어가면 포도당으로 분해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엿의 원료는 찹쌀, 멥쌀, 보리, 조, 수수, 옥수수, 고구마 등 전분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친환경 식품을 만드는 곳에서는 보리, 멥쌀, 찹쌀을 주로 쓰지만 보통 식품업체들은 값싼 옥수수가 대세다. 엿기름 대신 미생물에서 대량으로 뽑아낸 효소(아밀라아제)를 당화의 원료로 쓰는 곳도 늘고 있다.


굳은 형태로 되어 있는 엿을 과자처럼 먹었다면, 묽게 고아서 굳지 않은 엿인 조청은 설탕처럼 음식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감미료의 역할을 담당했다. 짙은 갈색으로 설탕처럼 정제나 표백과정을 거치지 않아 각종 영양성분이 살아 있고 단맛이 온화한 것이 특징이다. 단맛이 조금 무겁고 음식의 색이 어두워지는 단점이 있지만 조림이나 고기를 재울 때 넣으면 윤기를 더해주고, 무침이나 볶음 요리를 만들 때 맨 나중에 조금 넣으면 오래 두고 먹어도 풍미와 빛깔이 유지된다.

조청은 묽은 엿이라는 의미에서 물엿이라고도 불리지만 현재 시중에서 팔리고 있는 물엿과  조청은 엄연히 다르다. 조청을 닮은 물엿 옆에는 요리당, 올리고당들도 나란히 놓여 있다.

묽은 엿의 형태(물엿)인 전통적인 ‘조청’과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물엿’ 제품의 가장 큰 차이는 원료와 묽기, 정제 여부다. 조청은 대개 쌀 등의 곡식으로 만드는데 비해 ‘물엿’은 값싼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고 있다. ‘조청물엿’이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으로 유통되는 제품의 원료 역시 100% 옥수수이다.

제조과정으로 보면 원래 물엿은 조청의 전 단계로 물엿을 조금 더 오래 졸이면 조청이 되는 것이지만 시중의 물엿은 잘 굳고 끈적임이 심한 조청보다 농도가 묽어 사용이 간편하고, 표백이나 정제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색이 맑고 투명해 음식에 넣어도 음식 본래의 색이 그대로 유지된다. 볶음이나 구이, 무침 요리를 할 때 마지막에 넣으면 윤기가 나고 깔끔한 단맛을 더할 수 있어 많이 쓰인다. 과자회사들도 설탕 다음으로 물엿을 많이 쓴다.
요리당은 주재료가 설탕의 원료이다. 제품에 따라 올리고당이나 물엿이 더 들어가기도 하고 캐러멜 색소를 섞어 진한 색을 내기도 한다. 맑은 갈색으로 조청과 물엿보다는 달고 농도가 묽어 두루두루 사용하기 편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물엿이나 올리고당에 비해 뒷맛이 개운하지 않고 음식에 넣었을 때 윤기도 덜하다. 역시 정제과정을 거친 정제당이다.


올리고당은 설탕보다 덜 달다는 단점을 ‘건강한 단맛’으로 내세우며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감미료 중 하나다. 부엌에서의 쓰임이나 효능도 설탕, 조청, 물엿, 요리당을 아우른다. 식품회사에서도 앞 다투어 커피에 넣는 커피용 올리고당, 잼이나 시럽 대신 발라먹고 섞어먹는 어린이용 올리고당까지 내놓고 있다. 올리고당은 과자, 음료, 심지어 분유에도 들어있다. ‘섬유질과 영양분이 제거된 칼로리 덩어리’로 지탄받고 있는 설탕을 대신해 올리고당은 칼로리가 낮고 체내에서 수용성 식이섬유와 같은 작용을 한다는 점을 내세운다. 프락토 올리고당의 경우 비피더스 유산균의 먹이가 되어 균을 증식시킨다는 점도 올리고당의 이름값을 높이는 데 한 몫한다. 올리고당은 체내에서 소화효소에 반응하지 않는다. 소화 흡수율이 떨어진다. 올리고당을 저칼로리 식품으로 광고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섭취가 더디면 혈당치도 덜 올리고 충치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면, 올리고당은 과연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무결점 단맛일까. 프락토 올리고당의 원료는 아이러니하게도 원당이고 이소말토 올리고당은 간혹 쌀이거나 역시 옥수수다. 이들은 모두 소화가 되지 않는 탄수화물 덩어리일 뿐 비타민이나 미네랄 같은 영양성분은 전무한 정제당이다.


올리고당은 양파, 우엉, 마늘 등에도 들었지만 그 양이 극히 적어 우리 몸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사람의 몸속에서 가까스로 만들어지는  올리고당이 인위적으로 갑자기 듬뿍 들어오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올리고당을 과량 섭취했을 때 소화가 잘 되지 않거나 설사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식품학자들이 챙겨먹으라고 권하지도 않고, 효능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올리고당을 고집할 요량이면 올리고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제품들이 정말 ‘순수’ 올리고당인지 따져봐야 한다. 다른 값싼 당류가 더 많이 들어간 경우도 꽤 있다. 또 설탕보다 단맛이 덜해 자칫 지나치게 많은 양을 섭취하고도 덜 달게 먹었다고 착각하며 내심 흐뭇해할 수 있으니 먹는 동안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원료들이 수입해온 원당이나 옥수수 등인 점도 생각해볼 대목이다.


설탕을 대신해 소비자에게 인기 있는 정제당이 올리고당이라면, 가공식품 회사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정제당은 액상과당이다. 거의 대부분의 음료에 액상과당이 들어간다.  과당은 과일 속에 많이 들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류 중 가장 달고, 차가울수록 단맛이 더 강해진다. 첫맛은 상쾌하고 뒷맛은 깔끔하다. 결정 혹은 액상 형태로 팔리고 있는데 결정과당(꿀이나 과일에서 추출한 순수과당)은 우리가 직접 살 수 있지만 액상과당은 주로 가공식품 업체에 팔린다.


이쯤 보면 설탕의 대체당으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이지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 안병수 씨는 그의 책에서 ‘설탕보다 더 해롭다’고 단언한다. 과일이나 꿀이 아닌 옥수수에서 뽑아낸(또 옥수수!) 액상과당(HFCS: High Fructose Corn Syrup: 고과당 옥수수 시럽)은 설탕보다 6배쯤 더 달면서도 값은 훨씬 싸다. 액상과당은 식욕억제호르몬 분비를 줄이기 때문에 액상과당이 든 음식을 먹으면 배부른 것을 잘 느끼지 못해 과식을 하게 된다. 설탕이 든 콜라를 한 번에 많이 마시는 건 한계가 있지만, 액상과당이 든 콜라는 훨씬 많은 양을 마실 수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먹고 싶어진다. 액상과당 섭취량과 비만율이 거의 동일하게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간에 지방이 쌓이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액상과당이 눈총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옥수수에서 뽑아낸 전분당이기 때문이다. 옥수수는 콩과 함께 세계에서 유전자 조작이 가장 많이 되고 있는 식품 가운데 하나다. 액상과당은 과자, 빵,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주스, 드링크제 등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고과당 액상과당, 고과당시럽, 고순도과당, 옥수수시럽, 과당 함유 포도당 시럽은 모두 액상과당을 이르는 말이다. 간혹 물엿이라고 표기되는 경우도 있다.


정제당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비정제 설탕과 천연감미료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었다. 메이플 시럽, 아가베 시럽, 꿀가루 등의 천연감미료로는 가공 과정이 비교적 단순해 정제당에 비해 영양이 살아있다. 메이플 시럽은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먹었다는 단풍나무 수액을 원료로 한 것이다. 꿀가루는 꿀을 건조시켜 만든 것으로 천연감미료, 설탕보다 조금 낮은 칼로리, 알칼리성 식품으로 선전되지만 꿀 외에 다른 당류가 섞인 경우도 있으니 꼼꼼히 살펴야 한다. 멕시코에서 나는 아가베 선인장(용설란의 일종)에서 추출한 아가베 시럽도 인기다. 설탕보다 달지만 칼로리며 당지수가 낮아 당뇨병 환자들도 이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당이 70~90%에 달해 역시 주의가 필요하다. 과당은 포도당처럼 혈당을 급격하게 올리지는 않지만 지나치면 간에 지방이 쌓이게 할 수 있다.


언젠가부터 ‘천연감미료를 사용한 웰빙식품’이란 홍보문구 아래 자일리톨이 든 껌, 스테비오사이드가 든 소주, 에리스리톨이 든 커피믹스도 등장했다. 소주에 들어가 단맛을 내는 스테비오사이드(Stevioside)는 국화과 식물인 스테비아 잎에서 얻어지며 설탕보다 300배 강한 단맛을 낸다. 남아메리카 파라과이 주변이 원산지로 이곳 원주민들이 400년 이상 사용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일본은 1970년대에 세계 최초로 스테비아 잎에서 쓴맛을 빼고 단맛만 나는 스테비오사이드를 추출하는 화학적인 방법을 알아내고 30년 이상 감미료로 사용해오고 있다. 하지만 스테비오사이드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은 아직 어지럽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러시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는 허용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식품원료가 아닌 식이보조제로 허용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는 허가를 보류한 상태다. 실험에서 매우 낮기는 하지만 급성 독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음료, 술 등에 사용되고 있다. 청량음료, 커피, 홍차는 물론 어묵이나 소시지, 건어물에도 들어간다. 간장에도 넣어 구수한 맛을 더 한다. 인체에서 대사되지 않고 그대로 배출되기에(한편에서는 체내에서 분해되어 해로운 물질로 바뀐다는 의견도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빙과류에 설탕 대신 넣어 칼로리는 줄이고 청량감을 높인다.


청량감을 내는 당알코올의 일종인 자일리톨(Xylitol)은 자일로스라는 천연 당류에 수소첨가 반응을 시켜서 얻는다. 식품위생법에서는 자일로스를 화학첨가물로 분류한다. 자일리톨은 충치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일리톨을 먹지 않는 충치균은 번식을 할 수 없고 결국 굶어(?) 죽는다. 몸속에서 정상적으로 대사되지 않는 것도 우리 몸이 자일리톨이라는 물질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칼로리는 낮지만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날 수도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커피믹스에 설탕 대신 들어가 ‘칼로리는 반으로 커피 맛은 그대로’ 유지시켜 준다는 에리스리톨(Erythritol), 1일 섭취 허용량이 특별히 제한되어 있지는 않지만 유기가공식품에는 사용할 수 없는 소르비톨(D-Sorbitol)을 비롯해 이노시톨, 말티톨, 만니톨, 락티톨, 이소말트 등 자일리톨과 같은 당알코올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과량 섭취 시 설사를 유발할 수 있다.


인공감미료는 ‘단맛이 나는 화학적 합성품’으로 합성감미료, (설탕을 대신한) 대체감미료로도 불린다. 대부분의 인공감미료는 고감도 저칼로리 감미료로 뇌를 자극해 설탕의 수백 배나 되는 강한 단맛을 느끼게 하지만 영양소는 제로에 가까워 주로 당뇨병 환자와 비만 환자용으로 이용되었다. 인공감미료는 식품포장지에 용도와 명칭(예를 들어 합성감미료(수크랄로스))이 표시된다.


인류 최초의 인공감미료는 로마인이 만든 사파(Sapa)였다. 당시 포도주는 신맛이 무척 강했기 때문에 제조업자들은 포도주에 단맛 나는 사파를 넣어 팔았다. 사파는 포도주스를 납주전자에 넣고 거의 말라붙을 때까지 졸여 만든 것으로 주성분이 아세트산납이라는 독성이 강한 중금속 화합물이다. 사파에서 비롯된 납중독은 정신 불안증과 불임 등을 불러 왔고 결국 이것이 로마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공감미료는 처음부터 식품첨가물로 연구·개발되기보다는 화학자들이 다른 연구 도중 우연히 발견한 경우가 많다. 현대의 인공감미료들이 갖는 공통점은 대개 이렇다. 첫째, 설탕과 같은 무색무취의 가루이거나 가루에 가깝다. 그래야 운반, 보관, 사용이 간편하다. 꿀이 가공식품에 좀 더 적극적으로 쓰이지 못한 것은 값도 값이려니와 꿀 고유의 빛깔과 맛, 향이 있고 액상형태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둘째, 지독하게 달다. 달면 달수록 좋다. 단맛이 강할수록 아주 조금만 넣어도 되니 제품 원가를 줄일 수 있고 칼로리도 최대한 낮출 수 있다. 셋째, 그저 달기만 하다. 어느 식품에나 두루 넣으려면 자칫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영양 성분은 모조리 사라지고 오직 단맛만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맛이 중립적”이라고 표현한다. 넷째, 소화 흡수가 되지 않고 그대로 몸 밖으로 배출되어 칼로리가 거의 없다. 당뇨병과 체중 감량을 평생의 숙제로 삼고 있는 현대인들의 요구에 맞춘 것이다.


인공감미료의 유해성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2006년 국제 식품첨가물전문가위원회를 열어 그때까지의 연구 결과들을 모두 재검토한 뒤 식품첨가물로 안전하다,고 공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분자니까 괜찮다’는 가공식품 회사와 ‘한 분자라도 해롭다’는 학자들의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자료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안병수, 국일미디어), 《설탕》(박은주, 김영사),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아베 쓰카사, 국일미디어),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 : 질병을 키우는 모든 음식에 관한 충격보고서》(윌리엄 레이몽, 랜덤하우스), 《비만의 제국》(그렉 크리처, 한스미디어) 《식품진단서》(조 슈워츠, 바다출판사), 《탄수화물 중독증》(잭 컬럼, 북라인), 식품의약안전청 식품첨가물 정보망(fa.kfd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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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항상 무엇인가를 쫒기는 듯한 기분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아도 늘 모자란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잘된 것은 다 내 탓이고 잘못된 일은 다 남의 탓으로 돌리는 아주 못된 이기주의적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나의 어둡고 탁한 마음에 남편과 아이들은 답답해 하였고 막연하게나마 돌파구를 찾고 있을 때 7habits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글로 적기도 창피하고 부끄러울 만큼 남편과 아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기대를 하며 살았고, 제 기대에 못 미쳤을 때는 그들을 프라이팬에 기름도 두르지 않고 콩 볶듯 달달, 바짝바짝 볶아 댔었습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힘들어했을까를 생각하면 참회의 눈물만 나옵니다. 남편에 대한 큰 욕심과 기대와 의존성을 조금은 떨쳐버리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신 탓이 아닌 내 탓으로 생각하고, 나를 이해시키기보다는 남편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늘 끝을 생각하며 소중한 것부터 먼저 생각하였고 감정계좌에 인출보다는 예입이 되도록 애쓰고 노력하였습니다. 남편은 서서히 저에게 고마워했고 아내인 내가 어항 속의 물이라며, 어항속의 물이 점점 맑아지니 물고기들이 잘 자란다고 해주었습니다. 조금 노력했을 뿐인데, 제게 다가온 행복과 보람은 너무나도 컸습니다.


또 아이들에게도 욕심을 버리고 인격체로 대해주고자 다짐하며 다가서기로 했습니다. 큰 아들이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벌써 공부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을 푹푹 쉬었습니다. 남자 아이이고 12월생이라 조금 더디고 그래서 아이를 늘 달달달 잡았는데, 서서히 주도적으로 하게끔 유도하였고 결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습니다. 어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반에서 흥부와 놀부 연극이 있었습니다. 1주일 전부터 알았던 저는 이번에야말로 우리 아이를 주도적이고 자신감 있는 아이로 향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매일매일 숙제로 대본을 완벽히 외우라는 선생님 지시가 나왔고, 예전 같았으면 밤을 세워 서라도 TV에 나오는 아역배우들처럼 아이를 극기 훈련을 시켰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엔 간섭이 아닌 함께 해주면서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소품을 만들어 오라는 이야기에도 예전 같으면 세탁소에 가서 흥부의 누더기 옷을 다 만들어 입혔을 텐데, 이번엔 아들과 함께 아이가 원하는 데로 색종이를 오리고 붙이고. 조금 서툴고 모양은 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편안하였고, 아이 역시 편안해 보였습니다.


드디어 연극 발표회 날. 기대와 두려운 마음을 안고 학교를 가면서 많은 생각이 떠오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괜히 연습을 더 열심히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감과 의상 준비며 소품 준비를 아이 생각대로만 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생각은 완전히 180˚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들 재하는 너무나 리얼하게 대사도 틀리지 않고 제 기대보다 훨씬 더 훌륭히 잘 해냈습니다. 저는 제 아들이 자랑스러웠고 한편으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직까지도 아이를 제 손으로 마음대로 하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미안했고 창피했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어떻게 그렇게 잘 할 수 있냐고 물으니, 재하는 조금 떨렸지만 엄마랑 연습한데로 열심히 했다고, 씨익 웃으며 대답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시키는 대로가 아닌 엄마랑 연습한대로 했다는 소리에 가슴이 따뜻해지고, 아이에게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변화된 엄마의 모습이 좋은지 요즘도 성당에서 7H 공부하면서 재하는 끝날 시간쯤에 저를 성당으로 마중나옵니다. 그러면서 엄마, 좋은 엄마 되기 힘들지 않냐고.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 더, 더, 좋은 엄마가 되는 것 같다는 극찬을 해 주곤 합니다. 명령과 지시, 간섭이 아닌 관심과 사랑으로 제 욕심을 조금 버렸을 뿐인데 우리는 너무나 행복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가끔씩 사명서를 읽어 본 후 다시 정신을 차리고 원칙에 의하여 살도록 노력합니다. 때론 마음가는대로 나 편한 생각대로 하고 싶은 유혹도 생기지만 사명서대로 사는 삶이 가져다 준 행복은 샘물처럼 계속 졸졸졸 흐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아직도 너무나 많이 모자란 저이지만 계속 공부하고 노력해서 보다 더 많은 어항 속의 물로, 물고기들을 잘 키우고 잘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

이젠 세상이 즐겁고 집안일을 할 때도 절로 콧노래가 나오며, 남편과 아이들이 얼른 집으로, 저의 품으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너무나도 고맙고, 주위의 모든 분들이 왜 이렇게 고맙고, 소중한지. 저는 너무나 복 많은 행복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게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선생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여보!!! 이 편지가 반갑기 보단 당황스러울 것이라는 걸 짐작합니다.

너무나 모자란 아내, 엄마, 며느리로서 나름대로 공부해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데 나는 내 마음 그릇이 너무나 작은 듯싶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당신에게 늘 사랑만 요구하고 내 기준점에 당신을 옭아매었던 것 같습니다.

나 같은 여자와 살아주면서 토끼 같은 아이들까지 만들어 준 당신에게.

여보! 우리가 함께 하는 순간이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는 당신께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고 당신과 욕심 없는 행복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당신에 대한 사랑이 너무나 부족할 지라도 당신의 그 큰 가슴으로 다시 한번 저를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해받기 보단 이해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사랑받기 보단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당신의 여왕이 아닌 당신의 친구가 되겠습니다. 당신을 10년 전에 사랑했던 것처럼 다시 한 번 뜨겁게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내 어찌 같이 살면서 이 은혜와 사랑을 잡을 수 있을까요. 늘 공부하면서 노력하겠습니다.

센스있는 아내, 좋은 아내가 되겠습니다. 또 영리하고 똑똑한 엄마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함께 하는 순간순간에 사랑하고 노력하며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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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에듀앤스토리







초등학생을 키우는 엄마로 이 시기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평생학습자로 살아갈 것인가 고민해 볼 때가 있다. 그런데 <유능감을 키우는 교실>이란 책을 읽고 아! 이거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것을 다른 엄마들에게도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유능감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의 성적이 좀 낮더라도 언젠가는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유능감을 키우기 위해 엄마들이 도와주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유능감의 반대개념인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어제 수업에서 한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들이 어떨 때 무기력에 빠질까요?”

그 엄마는 아이가 하던 일에 성취감을 못 느끼면 무기력에 빠지지 않겠냐는 거였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 엄마들은 자신이 아이들에게 무기력에 빠지게 한다는 가능성조차도 생각지 않고 있구나”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언제 무기력에 빠질 수 있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우리 엄마들은 어떻게 아이를 도와야 하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울음

2. 즐거운 사회적 응답

3. 물리적 응답

 

아이들이 태어나면 먹고, 자고, 싸고 하는 생리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울음으로 표현한다. 그러면 울음이란 아이들에게 단순히 욕구충족적 표현일 뿐 일까? 아이들은 자신의 울음에 누군가가 반응하며 달려올 때, 중요한 타인(엄마) 즉 환경을 조정하고 통제한다는 느낌을 갖게 되며, 이것이 아이들이 유능감을 형성하게 되는 첫경험인 것이다. 이에 유능감을 느낀 아이는 다시 한번 해보고픈 의욕이 생기며, 또한 울음을 통해 반응을 많이 받아 유능감을 느낀 아이는 반응을 받지 못했던 아이보다 울음의 횟수가 더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우는 데 반응을 해주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 것을 두려워하는 엄마들의 생각과는 반대라는 것이다. 또 반응을 잘 받은 아이들은 울음보다는 다른 기제 즉 옹알이나 시선 맞추기, 웃음 등 즐거운 사회적 응답을 개발해 나간다. 여기에 엄마의 반응이 만족스러우면 유능감을 그렇지 못할 경우 무감동, 무기력이 나타난다.

여기에서 무기력을 강조하는 것은 일단 무기력이 하나의 경험에서 형성되면 그것이 삶의 전반에 일반화되기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에게 학습에 문제가 생기면 학습에서 원인을 찾으려 하지만, 현명한 엄마라면 그 이전의 아이의 삶을 돌아보아야 한다. 원인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말이다.

학습에서 동기만 갖는다면 반은 성공한 셈이라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우리가 반응을 주던 안주던 너무 고맙게 성숙에 따른 발달을 시기에 맞추어 해나간다. 그런데 문제는 발달은 제대로 하지만 하고 싶은 의욕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모든 아이가 설 수는 있지만 반응을 잘 받은 아이는 또 서고픈 마음이 생기는 반면, 제대로 반응을 못 받은 아이는 서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발달지체 까지도 발전하게 된다.

 

그러면 아이에게 잘 반응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이에게 영향을 줄까?

 

첫째, 아이는 자신이 싸인을 보낼 때 엄마가 반응을 보이고 바로 달려와 도와준다는 느낌 이 들었을 때 안도감, 즉 정서가 안정된다는 것이다. 정서가 안정된다는 것은 이 아이가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놀이도 학습도 일도 정서가 안정될 때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둘째, 자신이 환경(엄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능을 사용하고픈 의욕을 느끼게 된다.

셋째, 이 의욕으로 새로운 전달수단을 발달시킴으로 지적능력의 발달을 가져온다.

넷째, 이 의욕으로 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끈기있게 노력하게 된다.

다섯째, 발달초기 "나는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험 즉 유능감은 어른이 되어 실패 장면에 부딪쳐도 무력감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반응 외에 과업과 관련된 물리적 응답이 있다. 이는 아이들이 하는 행동 즉 놀이나 학습과 관련이 있다.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고픈 마음과 알고 싶었던 것을 재현해 보고픈 마음 그리고 그것을 함께 느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왓슨의 모빌실험이나 최근의 심리학을 보면 인간은 원래 자신의 행동으로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고, 환경을 이해해서 통제하고픈 욕구를 가지고 끊임없이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임이 밝혀졌다. 또 이런 욕구가 충족된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며, 인생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이들을 키울 때 경험한 것처럼 아이는 자신의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싱크대로 달려갔다. 왜 그리로 갔을까? 모든 아이가 그리로 간다는 것은 우연만은 아니다. 그럼 무엇 때문일까?

그곳은 아이가 태어나 움직이지 못하고 귀만 열려있을 때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던 곳이고, 엄마가 이유식을 가져오던 곳이며, 보행기를 타고 엄마를 볼 때 엄마가 그곳에서 언젠가는 음식을 하기도 하고, 개수대에서는 거품을 보글보글 피어나게도 했으며, 가스위에서는 불꽃이 일며 냄비뚜껑이 달그락거리던 즉 아이에게 그곳은 호기심 덩어리였고, 학습동기를 유발하던 곳이었다. 그러니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처음으로 찾는 곳이 되었고 아이는 그곳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다.

이 때 엄마의 행동이 어땠느냐가 중요하다. 실컷 놀 때까지 여유롭게 놔두었는지 아니면 싱크대 문을 탁 닫고 덥석 안아다 텔레비전 앞에 앉혔는지. 아마 여유롭게 봐주던 엄마는 이런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아이가 싱크대 문을 열고 그 안에 있는 냄비며, 프라이팬, 바가지 등을 끄집어내어 늘어놓는다던지 아니면 머리에 써본다던지, 뚜껑을 맞추어본다던지 등등 그리고 나서 한참을 연구한 연후에 그것을 크기 순서대로 늘어놓고, 뚜껑을 제대로 맞춘 후에 아이가 한 행동을 생각해보면 엄마를 부르고 박수를 친다던지 무언가 자신이 해냈다, 자랑스럽다, 칭찬받고 싶다는 듯한 표정으로 엄마를 보았을 것이다. 이때 우리 엄마는 아이와 함께 기뻐하며 아이가 보낸 호기심에 찬사와 격려를 보내야 했다.

요즘 부모교육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나를 포함하여 우리 엄마들은 교육을 다 따로 하려 한다는 생각이다. 학습도와주기 교재에 보면 자녀가 공부할 때 엄마가 모르는 것을 물어오면 어떻게 반응할 것이냐는 물음이 있다. 이때 많은 어머니들이 우리가 대화법에 나오는 방해되는 말로 "이따가 알아서 얘기해 줄께, 공부하고 있어"라고 둘러대던가. 아니면 "넌 그것도 모르니"라고 비난을 한다던지, " 열심히 안해서 그래 계속해봐, 사전 찾아봐" 등 명령과 지시만 한다던지 한다. 그러나 아이가 나도 모르는 것을 물어올 때 아이와 나에게 굉장히 좋은 교육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이 때“엄마도 잘 모르겠네. 그런데 엄마도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 우리 함께 생각해 볼까? 그러면 어디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을까? 백과사전을 찾아볼까? 백과사전은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것들을 기록하고 있거든.”등등.

이 때 엄마는 모르는 문제 뿐 아니라 많은 것들을 교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즉 엄마도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솔직히 말함으로써 아이에게 정직함을 가르칠 수 있었다. 또 모르는 것을 알고자 하는 학습의욕도 보여주었다. 아이에게 아무리 평생학습시대를 강조하여도 아이는 실감이 나지 않지만 나이든 엄마가 모르는 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아이는 평생학습자의 자세를 배우게 된다. 함께 생각해보자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맞아. 엄마는 나의 든든한 울타리야’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꾸짖기보다는 함께 평생학습의 길에 서 있는 고마운 동반자로 여기지 않을 런지. 이보다 더 많은 교육적 메시지가 아이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의 문제로 많을 것을 가르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놓치고 나서는 후에 정직을 가르치려 들고, 학습의욕을 고취시키고자 하며, 평생학습자의 자세가 안 되어있다고 나무라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아이는 엄마를 어떻게 느끼게 될까?

그래서 엄마의 역할이 힘든 것 아닐까? 엄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이 아닌 아이의 정서를 돌보아야 한다. 또 그 관심 속에는 아이가 준비가 되었는지 아직 더 기다려야 할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도 포함된다. 또한 엄마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 것에 반응해야 하며, 진정으로 함께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감정을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한다.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어머니들이 혹시 나는 벌써 아이를 무기력에 빠지게 한 것은 아닌가

자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고마운 우리의 아이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엄마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울음으로 나타내지만 아이들이 크고 나면 대화에서 모든 것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화를 잘 함으로써 더 이상 아이들을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한다.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말을 걸어올 때 성실하게 반응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인 엄마를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는 유능감을 맛볼 것이다.

학습장면에서 아이들이 무기력에 빠졌다면 다른 장면에서 유능감을 길러주면 어떨까? 엄마들은 아이들이 학습장면에서 유능감을 갖길 원하지만 모든 아이가 똑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나 체험 등을 통해 유능감을 길러주면 어떨까한다. 즉 아이가 곤충에 관심을 갖는다면 엄마가 든든한 후원자가 돼주어 함께 박물관을 간다던지 집에서 곤충을 기르며 관찰할 수 있도록 애벌레를 사준다던지, 아이에게 여러 지식을 배우며 곤충의 신비로운 세계로 함께 들어가면 어떨까? 그것이 마술이면 어떻고, 그것이 축구면 어떨까? 무기력이 그렇듯 유능감도 한곳에서 생기면 다른 곳까지 일반화가 되기 때문이다.

학습장면에서 키워주고 싶다면 엄마의 욕심을 조금은 낮추어 아이가 도달할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여 작은 성취감을 맛보게 하면 어떨까? 이렇게 작은 성취감이 모이고 모여 유능감이 되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엄마의 잘못을 덮어주고 기회의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는 아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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