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

제목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해야하는 시점에서

우리의 성찰을 돕는다.

 

 

 

운명, 가난, 용서, 사랑,

질투, 탐욕, 신앙, 양심, 정직,

희생, 혁명, 진정성

그리고 처절한 삶과 죽음.

이 모든 것이 이 영화 2시간 38분에

다 담겨져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영화라기 보다는 

오페라 공연을 보는 듯한 구성으로

스토리의 재미 보다는

인물의 감정표현이

보는 이로하여금 가슴을 후벼판다.

 

 

등장인물들은 자기 자신의 상황과 심정을

표정, 손짓, 노래로 전율이 느껴질만큼 표현한다.

 

 

 

 

가슴으로 느껴지는 이 감정들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에 대한

생각으로 승화된다.

 

 

왜 우리는 365일이라는 날을

쪼개 매해를 구분하는 걸까?

 

 

아마도 우리 삶 속에서 

해를  나누어

반성과 성찰, 새로운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희망찬 2013년을 준비하는 당신께

이 영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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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일 때 존립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교육이 비주체적이고, 타율적이며,

수동적이기 때문입니다.

12년 넘게 그렇게 교육받았고,

학교 밖으로 나온 세상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거기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적응’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철저하게 텍스트 추종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의심도 질문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불필요하고 오히려 짐만 된다고 여길 뿐입니다.

 

 

텍스트는 분명 그럴만한 가치와 용도가 있습니다.

인류의 지성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 체계입니다.

 

 

그것이 지적 바탕을 마련하여 보다 나은

지식을 생산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그것만을 요구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텍스트 추종에만 매달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는 텍스트 자체가 권력이 되어

갈수록 텍스트 의존이 높아지고,

그 텍스트를 차지한 사람이 권력과 부를 쥐고

텍스트를 통해 지배하려 합니다.

 

 

텍스트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체계입니다.

그러므로 텍스트 추종의 교육은 자칫 기존의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독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힘 있는 사람들은 결코 텍스트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교육을 망친 진짜 이유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텍스트는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지식체계입니다.

내가 그 텍스트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텍스트는 그 자체가 답이기 때문에 그냥 수동적으로 따르기만을 요구합니다.

그 답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세상에 답은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답만 추종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질문은 바로 나 자신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질문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개인’, ‘주체적 자아’를

원천적으로 포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 교육에서 이렇게 질문을 말살한 것은

결국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격으로서의 나를 억압하고 있는 셈입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이 발표의 중심주제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성찰은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성찰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마음이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적어도 오늘 우리의 전체 주제에 비추어볼 때,

바로 주체적 인격의 회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앞서 우리의 시끄러움과 요란함을 무한도전을 빗대 말씀드린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체적 인격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성찰을 위해서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고독은 ‘자발적 고립’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찰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아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익명의 타자 속에 아무리 함께 묻혀 있는 한 진정한 자아는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성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면

성찰은 바로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종일 뛰기만 하는 사람은 자신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만 생각할 뿐 정작 누가, 왜 달리고 있는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에도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가끔은 천천히 걸을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도 살갑게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우리에게 무조건 달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약간의 보상도 마련합니다.

그렇게 달려서 얻은 게 한 뼘이라도 넓은 집, 좀 더 크고 성능 좋은 차,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지위입니다.

 

 

그러나 그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목적일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대견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 삶에 대한 성찰조차 마련하지 못하면서

달려간 사람이 끝내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서,

인격의 주체로서 성취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성찰은 내가 나 자신이 되는 중요한 과정이고 정신행위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인격으로 대면하고 인격으로 대화하고 고민함으로써

부족한 삶을 반성하고 보다 참된 나를 지향하는 힘의 바탕입니다.

 

 

조용히 물러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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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臥薪嘗膽). '가시 많은 나무에 누워 자고,  곰 쓸개 핥으며 패전과 시련의 시절을 되새긴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어떤 사자성어는 한 국가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짧지만 굶고 깁니다.  그렇기에 기계적으로 뜻을 해석하기 이해하는 것 보다 그 속에 담긴 숨은 이야기와 교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역사책 한 권 읽어 보는 것이나 다름없지요. 물론 모든 사자성어를 역사책이나 대하소설 읽듯 공력을 들인다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관심 분야라면 뜻을 풍부하게 하는 책을 읽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인문학적 교양의 폭을 넓힐 수 있고 세상을 바로보는 안목이 높아질 수 있으니까요.


와신상담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의 패권다툼을 다룬 사자성어입니다. 중국에서는 <와신상담>이라는 사자성어 하나로, 51부작 방송드라마로 만들기도 했을 정도니까요. 와신상담은 전쟁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의 교훈이 담겨있습니다. 살아있는 교육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나라는 월나라에 견주어 강대국입니다. 월나라는 매 번 오나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수모를 겪지요.  하지만 오나라 왕 합려는 월나라를 얕잡아 보고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고 숨집니다. 합려는 숨지기 전 자신의 복수를 아들(부차)에게 당부합니다. 부차가 왕에 오르자 대신들은 선왕의 유지를 잊지말라면, 왕이 궁궐이 돌아다닐 때마다 "아버지의 원수를 잊지 말라"는 구호를 호위병에게 지시하지요. 부차는 가시 나무에 누워 자면서 때를 기다립니다. 언제나 약소국이었던 월나라는 한 번의 대승을 거두고 난 뒤 자만에 삐집니다. 결사항쟁,  선제공격만 생각하지요. 하지만 결국 오나라 부차왕에게 패합니다.  월나라 구천왕은 3년간 노예생활을 하면서 죽음의 벼랑 끝에 몰리지만, 이겨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부차왕의 모욕을 이겨내며, 힘을 쌓다가 다시 오나라를 공격, 패망시킵니다, 만약 부차왕이 대신들의 말을 듣고 구천왕을 죽여 화근을 없앴다면 오나라의 운명은 달라졌겠지요.


와신상담. 에서 '상담'은 3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구천왕이 겪은 시련과 고통을 잊지 않기 위해, 오나라 몰래 전쟁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숙소에 곰 쓸개를 달아놓고 앉거나 일어 설 때 쓸개를 핦는다는 뜻이지요. 와신상담은 '고통과 패배의 아픔을 생각하며 때를 기다린다'고 간단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작정 과거를 생각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행착오와 학습을 통해 준비를 하는 거지요. 사람은 살면서 급한 마음에 일을 처리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도 마찬가지지요. 너무 기다려도 좋지 않지만, 일을 처리하거나 말을 할 때 한 번 더 곰곰히 생각해보고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와신상담 사자성어는 부모님입장에서 성격이 급한  자녀가 있다면 언급해 줄 필요가 있지요. 부모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의 실수를 너무 닥달하거나 야단치기 보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와신상담의 역사를 통해서, 다섯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남의 말을 잘 경청한다 2 . 정보를 수집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관심 분야) 3. 일이나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해 본다 4 학습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5. 자신이 잘못하거나 실수 한 일에 대해 항상 기억한다. 최근 서울대에 입학한 쌍둥이 학생의 교육비법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학원도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쌍둥이 학생은 '오답노트'를 작성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틀린 문제에 대한 기록을 꾸준하게 한 것이지요. 왜 틀렸는가를 돌아보는 노트.  오답뿐만 아닙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깨닫고 시정하는 마음가짐과 성찰이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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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김제동씨의 발언을 듣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제동씨는 KBS2 ‘승승장구’에 출연해서 속내를 털어 놓았습니다. 겸손해서인지 솔직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발언만 놓고 본다면 사회지도층 인사나 일반 시민들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김제동씨는 알려지다시피 몇 몇 방송국에서 도중하차 했습니다. 그 때 외압설 등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회자되었습니다. 물론 100% 부정하기 힘든 사실도 있겠지요.

 

김제동씨는 방송 하차에 대해서, “97%는 나한테 원인이 있고, 3%만 외부적인 요인인 것 같다. 하지만 3%도 내가 내공이나 실력을 갖춰 넘어서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남의 탓이 아니라 내 탓이오. 누구나 쉽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김제동씨는 변화하는 예능 프로그램(토크에서 리얼 버라이어티로 전환)에 적응하지 못하고 거만을 부렸다고 이어 말했습니다.

 

요즘 세상이 어떻습니까. 자신이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치미 떼거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솔직한 고백이나 성찰의 목소리도 듣기 어렵습니다. 김제동씨를 아끼는 팬이 아니더라도 ‘자성의 목소리’는 아름답게 들립니다. 사람은 살면서 실수도 하고 본의 아니게 힘든 일을 당하지요. 하지만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현실을 극복하고 거듭 날 수 있습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남긴 말이 떠오릅니다. “우선 자신이 잘 못 살아온 것에 대해 반성하는 고백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넘어진 얘기, 부끄러운 얘기를 하자는 겁니다. 실수하고, 또 욕심 부린 얘기, 그래서 감추고 싶은 얘기를 고백하면 가자는 거지요. 지금은 삶이 뭐냐, 생명이 뭐냐 하는 것을 헤아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뭘 더 갖고, 꾸며야 되느냐에 몰두하는 시대는 이미 절정을 넘어섰지요. 글 쓰는 사람들이 가급적이면 고백의 글을 많이 써 줬으면 좋겠어요”

 

80년대에 이야기한 내용이지만, 가슴에 와 닿은 말씀입니다. 갈등과 반목의 시대를 넘으려면 대화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 대화의 전제는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과 고백의 시간이 필요하지요. 김제동씨 승승장구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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