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스승이 두 사람에게 한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칼 두자루를 주면서 그 칼이 잘 들도록

길들이는 사람을 당신의 제자로 삼겠다고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날마다 열심히 칼을 갈았습니다.

 

마침내 검사를 받는 날,

한 사람의 칼은 바람에 스치는 옷깃마저 그대로 잘라낼 만큼

날카롭게 날이 섰지만,

다른 한 사람의 칼은

오히려 내 준 칼보다 더 무뎌지다 못해

뭉툭한 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스승은

날이 무딘 칼을 내놓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칼을 갈다가 칼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그 사람은

일부러 칼을 무디게 만들었던 겁니다.

 

어렸을 때에는 열심히 칼을 갈았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때 날이 잘 선 칼로

누구든 맞서는 사람과

억압하는 못된 사람을 베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정의에 대한 열정은 있었지만

자비와 용서는 미처 배우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꺾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내 칼보다 더 예리한 칼이있다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칼을 거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칼의 진정한 의미를 꺠닫는

지혜는 그렇게 늦게 찾아왔습니다.

이제는 입보다 귀를 더 많이 열어두는 법도 알게되었습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을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면서

삶의 진지함과 성숙함을 겨우 알게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더 너그러워지기 위해

애쓰며 사는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 김경집 [나이 듦의 즐거움] 中에서

'|김경집| 완보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맞이  (0) 2013.03.22
새해 첫 날마다 쓰는 유서  (0) 2013.01.23
왜 성찰이 요구되는가?  (0) 2012.11.30
엄마, 학교 가고 싶어요!  (0) 2012.11.01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0) 2012.08.17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인격은 주체적이고 자율적이며

능동적일 때 존립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교육이 비주체적이고, 타율적이며,

수동적이기 때문입니다.

12년 넘게 그렇게 교육받았고,

학교 밖으로 나온 세상 또한 그렇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거기에 잘 적응된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 ‘적응’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철저하게 텍스트 추종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의심도 질문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것을 불필요하고 오히려 짐만 된다고 여길 뿐입니다.

 

 

텍스트는 분명 그럴만한 가치와 용도가 있습니다.

인류의 지성이 오랫동안 축적해온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 체계입니다.

 

 

그것이 지적 바탕을 마련하여 보다 나은

지식을 생산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그것만을 요구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로지 텍스트 추종에만 매달리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하나는 텍스트 자체가 권력이 되어

갈수록 텍스트 의존이 높아지고,

그 텍스트를 차지한 사람이 권력과 부를 쥐고

텍스트를 통해 지배하려 합니다.

 

 

텍스트는 기존의 질서와 가치체계입니다.

그러므로 텍스트 추종의 교육은 자칫 기존의 체제에

순응하게 만드는 독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힘 있는 사람들은 결코 텍스트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 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교육을 망친 진짜 이유입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주체성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텍스트는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놓은 지식체계입니다.

내가 그 텍스트 생산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텍스트는 그 자체가 답이기 때문에 그냥 수동적으로 따르기만을 요구합니다.

그 답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세상에 답은 하나뿐이라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이렇게 하나의 답만 추종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질문은 끝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질문은 바로 나 자신이 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질문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유로운 개인’, ‘주체적 자아’를

원천적으로 포기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 교육에서 이렇게 질문을 말살한 것은

결국 자유롭고 주체적인 인격으로서의 나를 억압하고 있는 셈입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바로 참된 나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오늘 이 발표의 중심주제로 들어가보겠습니다.

성찰은 근사하게 느껴집니다.

사전적 의미에서 성찰은 자기의 마음을 반성하고 살피는 것입니다.

다른 이의 마음이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적어도 오늘 우리의 전체 주제에 비추어볼 때,

바로 주체적 인격의 회복입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인문학적 가치이기도 합니다.

앞서 우리의 시끄러움과 요란함을 무한도전을 빗대 말씀드린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주체적 인격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성찰을 위해서는

차분하고 조용하게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고독은 ‘자발적 고립’이라고 말씀드렸던 것처럼,

성찰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자아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익명의 타자 속에 아무리 함께 묻혀 있는 한 진정한 자아는 결코 만날 수 없습니다.

 

 

사전적 의미로서의 성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면

성찰은 바로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종일 뛰기만 하는 사람은 자신을 만날 수 없습니다.

 

 

그는 도달해야 할 목적지만 생각할 뿐 정작 누가, 왜 달리고 있는지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달리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에도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가끔은 천천히 걸을 수 있어야 비로소 자신의 그림자도 살갑게 만나게 됩니다.

세상을 우리에게 무조건 달리라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약간의 보상도 마련합니다.

그렇게 달려서 얻은 게 한 뼘이라도 넓은 집, 좀 더 크고 성능 좋은 차,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지위입니다.

 

 

그러나 그게 진짜 우리가 원하는 삶의 목적일까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뿌듯하고 대견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 삶에 대한 성찰조차 마련하지 못하면서

달려간 사람이 끝내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서,

인격의 주체로서 성취했는지는 의문입니다.

 

 

성찰은 내가 나 자신이 되는 중요한 과정이고 정신행위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인격으로 대면하고 인격으로 대화하고 고민함으로써

부족한 삶을 반성하고 보다 참된 나를 지향하는 힘의 바탕입니다.

 

 

조용히 물러나 자신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요?

 

 

 

'|김경집| 완보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해 첫 날마다 쓰는 유서  (0) 2013.01.23
뭉뚝한 칼의 지혜  (0) 2013.01.16
엄마, 학교 가고 싶어요!  (0) 2012.11.01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0) 2012.08.17
비가 그립다  (0) 2012.07.02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얘야, 어서 아침 먹고 학교 가야지.”

“엄마, 나 학교 가기 싫어요. 애들이 다 나를 싫어한단 말이야.”

“그래도 가야지. 너는 교장이잖니.”

 

 

아이들도 선생님도 학교 가기 싫어하는 모양이다.

즐거워야 가고 싶은데 즐겁지 않으니 누가 가고 싶을까.

그저 합격과 성공만이 유일한 목적인, 철저하게 경쟁적인 틀 속에 몰아넣고

견뎌내라고 하는 건 폭력이다.

주먹질하는 것만 폭력이 아니다.

그러니 전쟁터 같은 학교 자체가 이미 폭력이다.

교육의 내용이나 방법도 폭력적(?)이다.

질문도 발칙한 상상도 허용하지 않는 건 이미 폭력이다.

오로지 텍스트 추종만 요구할 뿐이다.

아무리 제도를 바꾸고 온갖 연수니 교육이니

마련하지만 변하는 건 없고 오직 자조와 체념만 남는다.

 

 

텍스트 추종의 일방적 교육이 본격적으로 공고하게 되는 건 중학교부터이다.

모든 수업은 각각의 전공 담당 교사가 맡는다.

수학 시간에는 오직 수학만, 미술 시간에는 오직 그림만 배운다.

그러면서 전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야,

즉 텍스트 추종 능력을 확실하게 보여야 합격하고 성공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은 텍스트에 대한 더 높은 충성을 요구한다.

그들에게 자기 성공과 권위는 오로지 텍스트에 대한 충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기존의 인식과 가치 규범이다.

따라서 그걸 따르는 사회구조는 오로지 그것에 대한 순응만 요구할 뿐이다.

 그게 우리 학교 교육의 폭력성이다.

 

 

그 무모한 틀을 깨고 ‘전문적 바보’나 ‘텍스트 권력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인가?

통합교육이니 전인교육이니 하는 것들은

 그저 선언적 가치에만 머물고 있을 뿐이다.

교육은 ‘자유로운 개인’을 배양하고 텍스트를 통해 보편적이고

검증된 지식을 배우되 그 틀 안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콘텍스트로 확장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깰 수 있는 가장 좋은 여건은 초등학교에 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거의 전 과목을 다 가르치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새로운 르네상스맨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에서의 통합수업은 의외로 간단(?)하다.

40분 수업 10분 휴식인 까닭은 교육과학기술부의 수업지침에 따르기 위해서고,

그것은 균형 잡힌 수업 체계를 위해서이다.

하지만 꼭 그걸 고수할 까닭은 없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한 번쯤은 그런 시간의 구획 틀 없이 수업을 해보는 거다.

 

 

모든 책상을 뒤로 물려놓고 바닥에 둘러 앉는다.

 “우물가에 올챙이 한 마리~” 신나게 노래 부른다. 음악 수업이다.

 노래만 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들썩들썩 몸을 움직이며 율동이 따른다.

무용 수업이고 체육 수업이다.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그리고 외워야 한다는 강박은 전혀 없다.

 

 

노래와 율동이 끝나면 올챙이와 개구리의 생태에 대해 배운다.

자연이고 과학수업이다.

이번에는 “개구리 두 마리와 올챙이 네 마리가 있어요.

다리는 모두 몇 개일까요?”라고 묻는다.

그게 산수고 수학수업이다.

 “그런데 왜 우리 동네 개울에는 올챙이가 없을까요?”라는 질문이 이어진다.

 

사회수업이 될 수 있다.

올챙이와 개구리의 특성을 살리는 그림을 그려보게 할 수도 있다.

미술수업이다.

마지막에는 올챙이나 개구리가 등장하는 동화, 애니메이션, 영화, 소설 등을 찾아본다.

이때도 아이들 스스로 그 자료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도서관, 컴퓨터실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자료를 찾아서 모인다.

 

 

어떤 책은 함께 읽고(이때 간단하게 읽기, 듣기, 받아쓰기 등을 실시할 수 있다),

 만화영화도 보며 각기 느낀 바를 설명한다.

발표와 토론이다.

그건 바로 국어수업이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우리 오늘 이 중에 하나 골라서 연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작품을 고르고 조를 짜서 연습하도록 시간과 장소를 배정한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의상도 만들어보고(종이건 뭐건 상관없다.

보자기 하나만으로도 의상도 되고, 막도 될 수 있다.

그걸 활용하는 창의력을 계발시킬 수 있다),

때론 적절한 음향효과(깡통이나 빗자루만으로도 멋지게 해낸다!) 등도 곁들인다.

최대한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다.

그게 연극이 되고 누군가 그걸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영화가 될 수 있다.

 

 

굳이 40분 하고 10분 쉬는 틀을 따를 필요도 없다.

전적으로 아이들에게 맡기면 된다.

지치면 쉬자고 할 거고, 재미있으면 몰입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것이다.

아이들은 그 수업을 통해 자신들이 주인공이고 주체라는 걸 저절로 깨닫게 될 것이다.

올챙이 하나를 가지고 전 과목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게 바로 통합적 수업이고 좀 고상하게 말하면 학제적(學際的) 수업이다.

모든 걸 다 잘하지 않아도 서로 칭찬할 게 있다는 걸 익힌다.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춤에는 천부적인 아이, 목소리가 좋아 읽기를 잘하는 아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장점을 알게 된다.

선생님은 그 아이의 장점을 이끌어내주고 자신감을 키워주면 된다.

다른 수업 못할까 걱정할 것도 없다.

 이미 아이는 자신의 장점이 수업 전체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이 즐거워서

즐겁게 다른 방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다른 방면에 뛰어난 아이들에 대해서도 칭찬하고 격려하는 배려도 배운다.

 

 

초등학교에서 이런 학습을 경험한 아이들은 중고등학교에서도

그런 수업을 그리워하거나 선생님께 요청할 수 있다.

아이들을 통해 통합교육의 힘을 깨달은 학부모들도 학교 일에 참여하여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만드는 데에 공헌할 수 있다.

그게 제대로 된 학부모의 역할이다.

그저 돈 모아 에어컨 사주고 커튼 달아주는 게 학부모회의 일이 아니다.

 

 

텍스트만 강요하는 학교, 따돌림과 폭력이 암약하는 학교,

쉬는 시간 잠시 앉아 휴식할 나무 그늘 변변치 않은 학교.

그런 학교가 즐거울 리 있을까?

 

 

우리는 가난한 시절 그렇게 그런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 새끼들은 그보다는 나은 학교에 다녀야 하지 않을까?

그 ‘새끼’들이 내가 낳은 자식만이어서는 안 된다.

 

 

내 자식이 아무리 훌륭하게 자라도 우리 새끼들이 험하고 아프게 자랐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교가 살아야 사회가 산다.

내 새끼만 다른 아이들 밟고 넘어가

 텍스트의 ‘변종’ 트로피를 차지하는 게 행복이어서는 안 된다.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그게 우리 부모들의 책임이고 사명이다.

 

 

위에서 대책을 만들고 지침을 내려 보내는 방식으로는

결코 학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제는 현장에서, 그것도 첫 단추인 초등학교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걸 존중하고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행복이다.

그 행복이 학교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길러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한다.

 

 

학교와 교육 그 자체가 이미 폭력인 상황을 거부해야 한다.

아이들 주먹질만 막으면 될 일이 아니다.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른들이 망쳐놓은 것이다.

텍스트에 순응하는 법만 강요하는 교육은 폭력이다.

 

 

그걸 깨야 한다. 누가? ‘새끼들’의 부모인 우리가 해야 한다.

 내 새끼들이 아파한다. 학교 때문에 아파한다.

그렇게 아파하는 새끼들을 둔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우리 새끼들이 진짜 행복하도록 해야 한다.

 

 

“천천히 가도 되잖니. 지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넌 교장이잖니.”

“안 돼요. 빨리 가야 해요. 아이들이 함께 놀자고 기다린단 말이에요.”

그런 학교를 꿈꾸는 것은 너무 발칙한 일일까?

 

 

 

'|김경집| 완보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뭉뚝한 칼의 지혜  (0) 2013.01.16
왜 성찰이 요구되는가?  (0) 2012.11.30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0) 2012.08.17
비가 그립다  (0) 2012.07.02
책 한권 챙기셨나요?  (0) 2012.06.19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누구나 겪어야 하는 일입니다.

만나고 헤어짐은 삶의 필연입니다.

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는 불가의 가르침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피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삶은 가족과의 첫 만남으로 시작해서

가족과의 작별로 마감되는 것이라지요.

그러니 받아들여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온전하게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은

쉰네 해를 함께 살아온 때문만은 아닌 듯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정확히 열흘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실감이 되지 않습니다.

아직도 전화하면 받으실 것만 같고,

찾아가면 손을 잡아주실 것만 같습니다.

아흔의 수(壽)를 누리셨고 다행히

마지막 순간을 평안하게 삶을 마감하셨으니 복된 일입니다.

문상객들도 호상이라고 위로했습니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아픈 마음 덜라고 하는

 위로의 말이지만 저도 그렇게 여겼습니다.

어느 죽음인들 호상이 있겠으면 하물며 나아주신 어머니의 죽음에

호상이라는 객쩍은 말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만

그래도 저와 함께 쉰네 해를 마련해주셨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고작 열셋의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무섭고 서럽기만 했습니다.

유난하게 막내아들을 사랑해주셨고 다섯 살 때부터

당신의 다방 순례에 동반자로 데리고 다니시며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던 아버지였기에 그 부재를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대여섯 살 때쯤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갑자기

 “저 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너보다 아름답진 않단다. 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단다.”

하시면 제 머리를 꼭 껴안아주셨던, 그래서 그 때는 그저 닭살스럽다고만 여겼던

그런 아버지였기에 더더욱 그랬습니다.

 

 

그 시절에도 다정다감했고 어머니를 끔찍이 사랑했던,

그리고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진보적 생각을 지니셨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부재가 어린 저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하지만 그 날 별을 보며 제게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 이 나이까지 저를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아버지는 저의 가슴에 살아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깊이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두 분이 다투시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빼어난 미인이셨던 어머니가 홀로 남아 여섯 남매를 거둬야 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던 외삼촌은

어머니께 재가하라고 여러 차례 설득했습니다.

 

 

지금도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였지요.

외삼촌은 그날 밤도 어머니께 간곡하게 설득했습니다.

저는 자는 척하고 있었지요.

어머니가 뭐라 응답할지 어린 저로서는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마디로 그 두려움이 사위었습니다.

“오빠, 나는 김 서방하고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요.

남들 백 년 함께 살아도 그런 행복 못 누려요.

남은 삶 그 행복을 되새기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러니 다시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는 외삼촌도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도 매제인 아버지를 존경하고 좋아하셨던 분입니다.

하지만 누이동생이 겪어야 할 삶의 신난(辛難)이 안쓰러워

그러셨음을 알기에 아무도 당신을 야속하게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다행히 저희 남매가 큰 허물없이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의 깊은 사랑 덕분이었을 겁니다.

당신들의 바람대로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이 나이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두 말의 힘 때문이었다고 늘 기억합니다.

 

 

개성이 다른 남매들이 제 나름의 삶을 선택할 때마다

반대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였습니다.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하겠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 그러시더군요.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해야지.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너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다.”

그렇게 당신 속에는 늘 아버지가 함께 계셨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쉰 해 넘게 혼자 사시면서도

외롭지 않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야속하고 미울 때가 어찌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늘 저희들의 의사를 먼저 존중해주셨지요.

그리고 그 판단은 아버지와 함께였음을 저는 압니다.

 

 

저도 어른이 되어 두 아이를 키우다보니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당신 혼자 힘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때론 매섭게 때론 자애롭게, 당신 힘들 때마다 그만큼 자식들이 큰다는 걸

 유일한 위안이자 힘으로 여기며 살아오셨음을 압니다.

 

 

그런 어머니가 여러 해 자리보전 하시다가

저희들과 작별하셨습니다.

고맙고 행복한 작별이었습니다.

당신과 쉰네 해를 함께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한 일입니다.

 

 

한 줌의 작은 재로 마감한 어머니.

그러나 이제 당신이 늘 가슴 속 깊은 곳에

 함께 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제는 전화를 드려도 응답할 수 없고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요.

그립고 서럽고 고마운 마음이겠지요.

‘살아계실 때 조금 더 잘 해 드릴 걸’ 하는 회한은 품지 않으렵니다.

어차피 눈멀어도 못 다 갚을 고마움입니다.

그래도 우리와 작별한 어머니가 그토록 사랑하시던 아버지와

따뜻한 해후를 누리셨을 거라는 안도가 저희를 행복하게 합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여전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당신이 떠나셔서

제 마음 깊이 아름답게 살아계시게 되었으니

행복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러운 행복, 아쉬운 기쁨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립니다.

 

 

그런데도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이

유난스러운 이 여름의 염천(炎天) 때문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스무 날 뒤 당신의 생신에는 당신의 자식들이 대신 촛불을 불어드릴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엄마, 고맙습니다.

당신과 함께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김경집| 완보완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성찰이 요구되는가?  (0) 2012.11.30
엄마, 학교 가고 싶어요!  (0) 2012.11.01
비가 그립다  (0) 2012.07.02
책 한권 챙기셨나요?  (0) 2012.06.19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너나 혼자 아파보세요!  (0) 2012.05.07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도무지 끝 모를 가뭄에

대부분의 저수지까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심지어 아주 예전

물을 가둬두기 전에

사람이 살던 마을의 잔해까지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쬘 만큼

최악의 가뭄입니다.

 

 

나무는 그래도 단단하게

땅 속 깊이 박은 뿌리 덕택에

아직은 가까스로 버티고 있지만

풀들은 이미 다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해미 근처에 있는 너른 목장의 초지도 마치 늦가을처럼 노랗게 변했습니다.

아마도 올 여름은 푸른 풀밭은 끝내 보지 못하고 넘어갈지 모르겠습니다.

 스프링클러로 보살핌 받는 골프장을 제외하곤 말입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지 못해서 강물도 정의처럼 말라버린 것은 아닌가 두렵습니다.

어쨌거나 푸른 강물이 도도히 흐르는 모습을 빨리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타는 농심을 뒤늦게라도 위로해줄 수 있는 하늘의 자비를 빌 뿐입니다.

 

 

푸른색 하니 몇 해 전 인사동 선화랑에서 김춘수의 개인전을 감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미 ‘수상한 혀’ 시리즈로 저를 홀딱 반하게 했던 화가여서

없는 시간 쪼개서 갤러리에 갔습니다.

당시 전시되었던 작품들은 거의 하나 같이 푸른색 일색이었지요.

이른바 ‘울트라 마린 시리즈’였습니다.

서양화가이면서 동양적 색채를 추구하는 김춘수의 작품 앞에 서있으면

청색의 단색조에 빠져 자연스럽게 명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당시 개인전의 그림들은 붓이 아니라 손과 손바닥을 사용해서

그린 까닭인지 화가의 호흡까지 그대로 묻어나는 느낌이 들었는데,

화면이 숨 쉬고 생기가 분수처럼 솟아나는 듯했습니다.

 

 

이전의 그림이 수로 수직의 선을 촘촘하게 그려내서 빡빡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 전시회의 그림은 가로 방향의 유동적인 선들을 통해 하늘, 구름, 바다 등이 연상되었습니다.

기존의 아크릴이 아니라 유화여서 그런지 약간의 윤택함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그도 쉰을 넘으면서 40대의 치열함보다는 한결 너그러운 관조와 여유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싶어서 그와 비슷한 연배로서 반가움도 깃들었습니다.

 

 

그 이전, 그러니까 ‘수상한 혀’ 시리즈 전시회에서

어떤 이가 내뱉던 탄식이 기억납니다.

“아니, 도대체 혀는 어디에 있지? 게다가 무슨 혀가 이렇게 퍼래?”

그 말을 듣고 웃음이 절로 났습니다.

그런데 압권은 그이와 함께 온 사람의 대답이었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저렇게 무수한 돌기가 있잖니.

그리고 ‘조스바’를 먹어봐라. 혀가 저렇게 되지 않고는 못 배기지.”

 

 

그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김춘수의 ‘수상한 혀’를 볼 때마다

이상하게도 자꾸만 ‘조스바’가 떠오릅니다.

이른바 추상화라는 게 참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어떻게 표현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가는 뒤에 숨어서 혹은 관람객의 등 뒤에서 얄밉게 웃고 있는 듯한

낭패감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인상파전에는 사람들이 득시글 모여도 현대미술 전시회는 썰렁할 때가 많습니다.

아마도 현대미술에서 느끼는 낭패감의 주된 원인은 형태가 사라진 까닭이겠지요.

우리의 감상 기준이 재현미와 표현미에서 머물러 있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사실 추상 혹은 비구상계열의 그림들이 형태를 버리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그리고 나름대로의 의도와 목적이 있겠지만 그 바탕은

‘나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인식적 표상일 겁니다.

 

 

예를 들어 책을 그린다고 했을 때 대상으로서의 책이 아니라

그 책이 나와 세상에 어떻게 작동되는지, 책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등을

화가의 눈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만약 사물로서의 책이 있다면 관람자의 눈도 자꾸만 책이라는 대상에만 머물기 쉽지요.

그러니 화가로서는 책을 제거해야만 자신과 세계를 이어주고

해석해주는 책의 역할을 오히려 제대로 표상할 수 있겠지요.

다만 그것을 관람자가 공유할 수 있는 인식의 틀이나

감성의 공감대를 갖느냐의 문제는 별개입니다.

그러니까 현대미술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을

다른 눈으로 다른 각도로 해석해보라고 이끌어가는 겁니다.

새로운 세상은 늘 그렇게 낯설게 다가옵니다.

 

 

추상표현과 색면회화의 대표적 인물을 꼽으라면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관람자와 내 작품 사이에는 아무것도 놓여서는 안 된다.

 작품에 어떠한 설명을 달아서도 안 된다.

 그야말로 관객의 정신을 마비시킬 뿐이다.

 내 작품 앞에서 해야 할 일은 침묵이다.”

 

 

오로지 색면만으로 충분히 자신이 원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음을 깨달은

로스코의 작품은 그 색면의 크기, 농도, 색채 모두를 새롭게 분배하여

새로운 공간, 새로운 생명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그 단순한 색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지요.

 

 

여러 겹으로 겹친 면과 거기에 가득 드러난 색은 공간과 시각을 다양하게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명상으로 이어지는 힘을 지녔습니다.

그건 일반적인 회화, 즉 형태를 재현하거나 표현하는

전통적 미술에서는 맛볼 수 없는 힘이며 가치입니다.

때론 형태를 벗어날 때 본질을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게 바로 현대미술의 매력이겠지요.

뜬금없이 미술에 대해 짧은 이해를 주절대는 건 너무나 비가 그리운 까닭입니다.

참 엉뚱한 일이지요.

파란색에 대한 갈증이 갑자기 김춘수와 로스코를 떠올리게 한 모양입니다.

어쩌면 저 나름의 방식으로 지내는 기우제라고 여겨주셔도 좋겠습니다.

피상적인 현상에만 휘둘려 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고작해야 우리네 삶의 거죽일 뿐이니까요.

다만 현상이어도 좋고 피상이어도 좋으니 제발 비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마당에 쏟아지는 작달비를 무념무상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

 

 

* 로스코의 그림 한 점을 덤으로 선물합니다.

   오늘의 그림은 거창한 해석 다 떨구고 그냥 기우제의 부적쯤으로만 여겨도 좋겠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15년쯤 몰던 차를 없앤 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느낌입니다.

오가는 4시간 정도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상에 앉아 보기에는 아까운(?) 책을

그 시간에 읽습니다.

그러면 한 주에 두세 권쯤 읽으니

이젠 그 시간이 오히려 즐겁습니다.

놀랍게도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사실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으면 참 어색한 게,

상대를 빤히 바라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억지로 눈을 감을 수도 없어서

어디 마땅하게 시선을 두기가 곤혹스럽기 짝이 없지요.

어떤 이는 음악을 듣고 어떤 이는

모자란 잠을 토막잠으로 보충합니다.

신문을 보는 이들도 있고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시청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도 저도 할 게 없으면

휴대전화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이것저것 들여다봅니다.

그렇게 앉아서 서로 상대를

멀뚱멀뚱 쳐다보는 건 누구에게나 어색합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게 독서입니다.

책을 읽는 모습은 보기에도 흐뭇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유심히 관찰해 보면

책을 읽는 이는 가뭄에 콩 나듯, 희귀 종족처럼 보일 지경입니다.

한 칸에서 책 읽는 사람을 몇 명이나 목격할 수 있을까요.

10%를 넘지 못할 겁니다.

하기야 한 해에 책 한 권 읽지 않는 서울 사람만도

3분의 1이 넘는다니 할 말은 없습니다만 안타깝고 답답하기만 합니다.

그렇게 오가며 책을 읽고 있던 중에

EBS FM에서 ‘대한민국 성공시대’라는 프로그램의

‘책 읽는 마을’이라는 꼭지를 담당하면서

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서점에 가득 쌓인 책 가운데 어떤 걸 골라 읽어야 할지

난감하긴 하겠지요.

책을 고를 안목이 없거나 평소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아서

흔히 말하는 베스트셀러에만 눈길이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책장에 꽂힌 채 등뼈만 드러낸 책을 고르기가 어렵기는 하겠지요.


지하철 타면서 얻게 된 횡재

저는 책을 읽을 때 가능하면 지(知) 감(感) 용(用)을 조화롭게 하라고 권합니다.

지식과 감성 그리고 실용에 해당하는 책을

한 권씩 골고루 적어도 한 달에 그렇게 3권은 읽어야 하겠습니다.

세상과 삶에 대해 더 너르고 깊은 지평을 마련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입니다.

일본인은 한 해에 10권쯤 읽는다고 합니다.

우리는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특정한 몇몇 분야에서는 거의 따라잡거나 추월해서 우리를 뿌듯하게 합니다.

그러나 훨씬 많은 부분은 아직도 멀었다는 게 냉정한 평가입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열심히 실천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제라도 세계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민족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논어’ ‘위정(爲政)편’에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우되 생각하지 (혹은 실천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입니다.

책은 배움과 생각을 함께 얻을 수 있는 보석입니다.

또한 책은 지성과 감성, 그리고 실용에 도움을 줍니다.

단순히 지식과 정보에 그치는 게 아닙니다.

거기에서 다양한 삶과 무수한 사람, 너른 세상을 만나고 배우고 느낍니다.

그 자양분이 내 삶을 튼실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도 책을 외면합니다.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댑니다만

출퇴근이나 기다리는 시간에 짬짬이 책을 읽으면

충분히 가능하니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지하철에서 맞은편 사람과 시선 부딪치는 게 부담스럽고 계면쩍어

어쩔 줄 몰라 하기보다 책 한 권 꺼내 읽는다면 일석이조겠지요.

지하철에서 좀 더 많은 사람이 책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발전할 겁니다. 틀림없이.

무엇보다 개개인 모두에게 유익한 일입니다.

가방에 책 한 권을 늘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자투리 시간 낭비하지 않고 독서하는 일만으로도 삶이 훨씬 더 농밀해질 수 있을 겁니다.

독서는 최고의 ‘상상력 창고’
이제 문맹인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컴맹인 사람도 줄어듭니다.

그런데 책을 읽지 않는 ‘책맹(冊盲)’은 오히려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비주얼시대라서 그렇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책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만 주는 게 아니라

삶의 긴 호흡과 너른 시야를 마련해 줍니다.

그것이 쌓이고 숙성되면 상상력도 창의력도 저절로 자라납니다.

책이야말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가장 경제적인 활동이기도 한 셈이지요.


가방에 책 한 권씩은 넣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책을 읽으면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고 무료하지 않게 지낼 수 있습니다.

시집 한 권 들고 다니면서 지하철이나 버스 한 구간 지날 때마다 한 편씩 읽어도,

사람 기다리는 시간 카페 의자에서 한 편씩 읽어도

우리의 삶은 조금씩 달라지겠지요. 아니, 훨씬 더 달라질 겁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50대 중반의 친구 네댓이 대학로에서 만났다.

서른 해 넘게 알고 지내온 사이라서

서로 나이 들어가는 걸 제대로 실감하지 못한다.

 

예전의 시간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재의 서로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가다가 자연스럽게 젊은 친구들에게 시선이 쏠렸고

(거기서는 어디에 눈을 두건 그 친구들밖에 더 보이랴!)

부러운 눈길로 한참을 바라봤다.

 

“야, 나는 단 하루라도 저 나이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부럽기도 하겠지.

어찌 저 싱싱한 날것의 생동감을 모른 척 할 수 있으랴.

 

 

 

 

 

 

 

“내가 저 나이로 돌아간다면 죽자 사자 멋진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볼 거야.”

 

그렇게 말하는 너는 그런 연애 안 해봤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남의 일 시시콜콜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나도 노랗게 염색하고 귀에 구멍 뚫어 귀고리도 한 번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마음속으로야 뭔들 안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며 또 뭔들 못하겠니.

 

“나는 단 하루도 저 나이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도 모르게 흥취 다 깨먹는 어깃장을 놨다.

그 말에 이놈 저놈 입대기 시작했다.

마치 내가 끔찍한 염세주의자가 아닌지,

내 인생이 그렇게 팍팍한지 몰랐다는 투요 눈치다.

 

 

“난 쟤들의 고민을 떠안고 살 자신이 없다.”

친구들은 내가 젊은 대학생들과 섞여 살아서 철딱서니가 없어서라거나

부럽다 못해 증오를 키워온 것 아니냐며

내 정신분석이라도 할 것처럼 득달같이 몰아세웠다.

 

 

“여기 대학로 근처에라도 얼씬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얼마나 많은데.

 용돈이라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해야지 영어 학원 다녀야지,

제 살 길 찾는 일에 치여 사는데 걔들이 불쌍하지 부럽냐?

우리 20대 때와 혼동하지 마.

 우리라고 뭐 딱히 멋진 청춘 보낸 건 아니다만.

쟤들 사는 거 보면 우리는 용꿈 꾸며 산 거야.”

 

 

누군들 젊음이 부럽지 않을 수 있으며

어느 누가 그 시절을 꿈꾸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 하루도 그런 부러움 없이 살아본 적 있을까?

그러나, 정말 그러나 내가 지금의 청춘들처럼 살라고 하면 솔직히 난 자신이 없다.

 

젊음은 무모함과 열정과 실험정신으로 사는 것이라고

누구나 떠들지만 그건 최소한 삶에 대한 존중과 희망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오죽하면 그 아까운 목숨까지 포기할까!

우리 때라고 자살하는 청춘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아주 드물었을 뿐이다.

그나마도 집안에서 결혼을 반대해서,

혹은 실연의 상처 때문에 그런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걸 낭만이라거나 순진함 때문이라고

폄하하는 것도 고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자식들 후배들인 청춘들은 인생이 힘들어서,

도대체 앞으로의 살길도 막막하고 지금 당장의 삶이 너무 힘들고 견딜 수 없어서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그게 하도 흔해서 이젠 뉴스 거리도 되지 않는다.

 

이들의 가슴이 얼마나 시렸으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초베스트셀러가 되었을까!

 

청춘은 약동하고 저항하고 스스로를 시험하는 도약의 시기다.

그런데 아픔은 먼저 겪는다.

그런 청춘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란다.

 물론 그 책의 저자는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격려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과연 그게 위로가 될까?

 

암에 걸린 환자에게 소화제를 주면서

더부룩한 속은 가라앉지 않았느냐고 묻는 꼴이다.

지금의 청춘들을 보면 억만금을 줘도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자신들은 더 힘든 시절을 견디고

이만큼 성장했다며 힘내라고 떠밀고, 때론 왜 그리 나약하냐고 질책한다.

 

우리는 과연 그 질곡을 견뎌낼 자신이 있는가?

나는 싫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면 당신이나 혼자 실컷 아파 보라! 청춘이 울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정말 그렇게 살 자신이 없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나는 지금도 둘째 아들 녀석이 중학교 2학년 때

무심코 내뱉었던 말을 가슴에 박힌 비수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녀석과 동네 산책 중이었는데

놀이터에서 네댓 살 아이 둘이 신나게 놀고 있었다.

 

 

그 아이들을 보더니 아들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좋은 나이다. 실컷 놀아라. 언제 또 그렇게 놀 수 있겠냐. 저 나이가 인생의 황금기야, 황금기.”

 

 

그 말에 숨이 콱 막히고 등골이 서늘했다.

그런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아들 녀석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지겨웠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싶어 민망했다.

 

 

 과외 공부하러 보낸 적도 없고 어쩌다 방학 때면

모자란 공부 채우러 학원에 보냈을 뿐인 녀석의 입에서 그런 한탄이 나오다니.

 

 

도대체 어째서 아비가 자랐던 그 끔찍했던 중고등학교 시절보다

 내 사랑하는 아이가 더 혹독하게 살아야 하는가 말이다.

이건 어른들이 뭔가 큰 죄를 저지르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녀석들이 힘겹게 대학에 진학한들 뭐가 변할까?

대학의 낭만은 이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전설의 고향에서나 간혹 나왔던 이야기일 뿐이다.

 대학생이 되는 순간 그들은 빚쟁이가 된다.

엄청난 액수의 등록금은 그야말로 등골을 부러지게 만든다.

아르바이트로 용돈이라도 마련하기 위해 공부는 뒷전이고 일하느라 날 지샌다.

아무리 쌓아도 모자라기만 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

 학원에 다니느니 어쩌니 하면서 지내다보면

도대체 이게 대학생 생활인지 잡부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하도 뻔한 말이고 누구나 아는 세태라서 굳이 말할 의미도 없고 지껄일 힘도 없다.

 

 

그렇게 가장 아름다워야 할 사춘기와 청년기를 몽땅 쏟아 붓고

 대학에 진학한 뒤에는 다시 취업의 단단한 문 앞에서 좌절하는 걸 보면

 참담함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이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그렇게 혹독한 시절을 지내야 하는지!

19세기말 영국 맨체스터의 공장과 광산에서 겪었던 절망이나

20세기 초반 미국 전역을 휩쓴 대공황 시절의 참담함보다는 그래도 낫다고 위로할 것인가?

 

 

그러기에는 지금이 21세기라는 것이 부끄럽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지금 우리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단순히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그의 미래의 삶을 결정하는 모멘텀으로서의 직업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더욱 안타깝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에 따르면,

2010년 2월 졸업한 대학생 10명 가운데 7명이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이들의 1인 평균 부채 규모는 1,125만 원에 달한다.

등록금 때문이라는 응답이 무려 84.3%에 달했다.

게다가 가계 생활비라는 응답도 29.0%였다.

 

그런데 2년 뒤 같은 곳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졸업생 10명 중 7명이 1인당 평균 1,300만 원 넘는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전보다 무려 11.4%가 증가했다.

 

여전히 등록금 때문이라는 응답이 84.4%로 가장 많았고,

가정생활이 35.7%, 어학연수비 16.4%였다.

어학연수는 중산층 이상이나 되어야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면

이미 중산층 자녀들도 빚더미에 올라선 것이라고 봐야 한다.

 

 돈을 빌린 곳을 보면 제1금융권이 59%, 제2금융권이 14.3%, 학교 11.3%였으면

심지어 사금융권에서 돈을 빌린 경우도 3%에 달했다.

 제2금융권 이율에 버금가는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이것마저 적용하면 그 내용은 더 암담해진다.

 

 

그렇다고 이들이 취업이라도 되면 열심히 절약해서(그야말로 누구 말마따나 ‘숨만 쉬고 산다면’)

부채를 갚을 수 있겠지만,

취업은 대학 입학보다 몇 배나 힘들다.

 

 

무슨 희망이 있을 것이며 무슨 청춘의 낭만 따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행여 빈말로라도 내게 20대로 돌아가지 않겠느냐고 묻지 마시라!

도저히 그 압박과 체념을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런 세상을 우리 자식들에게 떠안기고 있으니........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우리와 자식들은 반대로 살고 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만나면서 난 죄인이 된 느낌이 든다.

아니 느낌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

나는 죄인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 어른들은 모두 죄인이다.

적어도 지금 이 나라의 어른들은 죄인이다.

저 피 끓어야 하는 청춘들이 좌절과 체념을 먼저 몸으로 받아들이고 절망하고 있는 한 죄인이다.

 

 

지금의 4,50대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은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도 모두 마음먹은 대로 원하는 직장을 골라 간 건 아니었지만

어지간한 직장은 얻을 수 있었다.

그때는 대부분이 가난했다.

집에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TV도 없어서 만날 골목에서 떼 지어 놀다가

국가대표 청룡팀의 축구경기나 김일의 레슬링 시합이라도 보려면 만화가게로 달려가야 했다.

 

그래도 70년대는 보릿고개를 넘어 기아와 가난의 질곡을 막 벗어났다.

모두 열심히 살았다.

우리의 부모들은 평균 대여섯 명 되는 자식들 굶기지는 않으려고

정말 뼈가 으스러지게 일했다.

그래서 중고등학교는 무사히 다닐 수 있었고,

 공부 열심히 하면 대학도 갈 수 있었다.

물론 그 뒷바라지 위해 소 팔고 논 팔며, 누이는 공장에 다니고 온 가족이 헌신했다.

 

 

그렇게 성장한 청춘들은 가진 것 없어도 미래의 희망이 보였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다가가 사귀자고 뻔뻔하게 제안할 수도 있었다.

개뿔 가진 것 없어도 취직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미래를 보고 수작도 부렸다.

결혼 때가 되면 여자 집에 가서 “결혼을 허락해주시면 굶기지는 않고 잘 살겠습니다.”

(40대는 이 진부한 대사에 익숙하지 않겠지만)라는 ‘대사’를 외워댔다.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고 승진도 하면서

가난과 작별하고 조금씩 풍요를 누리기 시작했다.

내 집도 마련하고, 꿈과 같던 자가용도 굴리게 되었다.

자가용이라니! 언감생심 꿈도 꿔보지 못하던 그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물론 그들이라고 다 평탄하게 살진 못했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했다.

부모들처럼 뼈가 으스러지게 일하지는 않았지만

전투와 다름없는 삶을 살기는 매한가지였다.

다만 부모 세대들보다는 훨씬 더 풍요로워졌고,

좀 더 문화적 혜택을 많이 누렸을 뿐이었다.

 

 

 ‘하면 된다.’는 저돌적인(사실은 무모한) 슬로건을 내걸고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조금씩 커지는 풍요가 거의 유일한 위로였다.

 

 

그러나 우리의 자식들은 어떤가.

그들은 태어났을 때는 풍요로운 환경이었다.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었다.

때 되면 유원지에 놀러가고 여름이면 온 가족이 여름휴가를 당연한 절차라며 즐겼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자유는 없었다.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살아온 부모들은

일찌감치 경쟁의 틀에 아이들을 가뒀다.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하던 과외도 시켰다.

학원은 필수 코스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몰아댔다.

 

 

조금이라도 낙오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양 아이들을 닦달했다.

사춘기를 겪을 틈조차 주지 않고 ‘사육’했다.

그러면서 그걸 교육이라고,

교육비 대는 부모 둬서 고마운 줄 알라며 볶아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묻는 일 자체가 민망한 일이다.

우리 자식들은 갈수록 자신들의 삶이 빈곤해지는 삶을 뼈 시리게 느낀다.

 

 

취업의 문은 꽁꽁 닫혀 있고,

아주 부유한 집 자녀 아니고서는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그러니 공부하러 대학 가서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장학금? 돈 없는 학생들 열심히 공부하라고 주는 돈이 아니라

팔자 좋아서 일 하지 않고 공부만 해도 되는 부잣집 아이들 차지가 되기 십상이다.

 

 

물론 가난해도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는 학생들도 있지만.

 대학에서는 당국도 교수도 학생들의 처지를 일일이 헤아리기 귀찮으니

성적 순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려 한다.

그게 말썽도 없고 객관적이니까.

그러나 속내는 자기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별로 없어서다.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따위는 제 소관이 아니다.

어차피 내 새끼도 아니다.

그저 내 새끼만 잘 키우면 될 뿐이다.

이미 이전부터 교육에 의한 사회적 양극화가 대학에 오면

그 꽃을 만개한다.

식충식물의 비겁한 향기를 폴폴 풍기며.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나보다 못한 삶을 다음 세대가 누리지 못하는 걸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만 있다.

나는 했는데 너희들은 왜 하지 못하느냐,

나약해서 그런 거 아니냐며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그러면서 그저 수수방관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세대는 역사의 죄인이다.

아무리 더 큰 집 더 멋진 자동차 더 높은 자리 차지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니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청춘들이여, 미안하다.

부끄럽다.

 

청춘들이 나보다 못한 세상에서 살게 하는 건 어른들의 죄악이다.

 

===============================================================================================================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 . .

2011년 대한민국은 갑자기 급식 문제로 들끓었다.

. . .

 

 교육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무상급식과 관련된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이른바 보수는 유상급식을, 진보는 무상급식을 지지했다.

 그 와중에 어떤 논객은 “아이들 급식 못 주겠다며 울먹이는 어른들은 처음 본다”며 혀를 찾다.

결국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며

승부수를 띄었고 최종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결국 시장직을 버려야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사건은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투표 참가로 박원순 시장을 새로 뽑았다.

 

단순히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끝난 게 아니라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투표권 행사 권리의 힘을 객관적으로 스스로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질 선거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단순히 서울의 시장을 새로 뽑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정치 전반에 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제 더 이상 무상급식 문제를 따지지 않는다.

무상급식 하면 나라가 절단 날 듯 떠들던 여당조차 자신들의 정책과

 선거 공약에 그 문제를 태연히 내세운다.

이전의 반대에 대한 자기비판은 물론 없다.

가히 ‘이미 끝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끝난 문제가 결코 아니다. 끝난 문제여서도 안 된다.

그 논쟁의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난무했다.

 

그러나 그 논쟁의 과정을 보면 척박하고 천박한

우리 시대의 이성적 논리적 허약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반드시 되돌아봐야 한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 따른 견해를 주장할 수 있다.

그건 건강한 시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몰이해적인 판단 근거에 휘둘리지는 않았는가?

나는 정치적 스텐스나 경제적 태도 여하를 떠나 한 인문학자로서

이 문제를 지켜보면서 우리 시대의 사유와 소양이 부박하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소소한 주장과 그 논거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것들이니 여기에서는 재론하지 말자.

찬반 논리의 핵심만 다시 따져보자.

 

첫째,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 라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돈 있는 사람들이 밥값 내는 건 마땅해 보인다. 그렇다면 수업료도 내는가?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이다. 교육은 단순히 수업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교육은 학교에서의 일 전체를 뜻한다. 그게 최소화 의미로서의 교육이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른바 선별복지 혹은 부분적 무상급식 논리다.

이 주장은 얼핏 그럴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며

단지 감성적 동조만 이끌어낼 뿐인 빈약한 논리다.

왜 그런가? 돈 있는 사람은 제 돈 내고 밥 먹도록 해야 한다는 걸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숨어있다.

첫째, 그런 주장을 펴던 사람들이 평소에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자기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했다.

종합부동산세를 폐지시켰던 사람들이 국가재정 악화를 초래했다느니

하는 문제는 차치하자. 그들이 내세우는 이건희 회장이 제대로 상속세를 냈는가? 아니다.

탈세와 감세와 불법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제 새끼들 밥값은 내겠단다.

얼핏 보면 참 가상한 태도다.

하지만 ‘고작’ 몇 천 원 밥값 내는 일일 뿐이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건전한 부자들의 건전한 사회적 역할과 의무의 수행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수 우파 진영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논리는 과도한 복지가 국가 재정을 뒤흔들고 건강한 근로 의욕마저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도한’ 복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부분적 문제점만 침소봉대하여 자신의 논거로 삼았다.

그러나 수출 1조 달러를 돌파한 OECD 국가인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최소한의 복지마저 외면해야 하는 당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립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일 뿐이다.

 

 31개 OECD 회원국 가운데 20개 나라, 그러니까 65%의 나라가

공립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논거는 부분적인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또한 복지가 건강한 근로 의욕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역사적으로 복지는 재정이 남아돌아서 퍼준 게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들 때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실시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복지는 근로의욕을 상실시키거나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호신뢰와 인간에 대한 가치의 연대로 사회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 . .

거죽만 보는 눈들

. . .

 

둘째, “경제적 능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밥값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건 훨씬 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부자 아이는 돈 내고 먹는다는 게 그럴싸한 논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기는 제 돈 내고 밥 먹는다는 차별성과 자기합리화를 이끌어낸다.

고작(?) 제 새끼 밥값이나 내면서 자신은 사회적 책무에 아주 충실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게다가 자기는 밥값 냈으니 그 문제가 야기할 모든 사안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여길 수 있다.

모든 사회적 책무와 연대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우려했던 것은 이른바 진보세력이 내세운 논리의 한계였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그것도 죄 없고 애꿎은 아이들이 눈칫밥 먹게 하는 건 부끄러운 논리다.

하지만 이 주장의 근원적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다.

문제를 더 파고들면 본질과 핵심이 보인다.

그런데도 거죽만 보니 그 논리만 내세운다.

 

“부자 아이들에게도 공짜 밥을 먹여야 한다”라는 논리를 내세워야 했다.

이건 단순한 평등의 논리나 개념이 아니다.

물론 무상교육의 큰 틀 안에서 무상급식은 당연하게 따라하는 목록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교육은 단순히 수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적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산 운운하는 자들의 논리는 오히려 정반대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수출 1조 달러에 세계 무역 순위 10위권이라고 선전만 해댈 게 아니라

그 정도의 경제력이면 이미 진작부터 무상급식이 시행되었어야 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돈 타령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이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자.

진보세력의 논리였던 ‘가난한 아이들 눈칫밥 먹이지 않기’가 아니라

‘부자 아이들 눈칫밥 먹이기’다. 이건 무슨 봉창 뜯는 소리냐고? 아니다.

부자 아이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

그 아이들이 공짜로 밥을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쪽 팔린다고 여길까? 조금은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교육을 통해 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이끌 수 있다.

 

부자 아이들이 공짜 밥을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바로 ‘사회적 연대감’이다.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만 공짜로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통해

 체득하게 되는 건 바로 사회적 비용으로 자신들도 무료로 밥을 먹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유기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노블리세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가장 확실한 교육 방법이다.

지금의 시대에 계급이 있어서 귀족들이 전쟁터에 솔선해서 나가 전투하는 따위의 현실은 없다.

대신 사회적 직위와 경제적 능력 등에 따라 그런 역할이 수행되어야 한다.

 

‘왜 우리 할아버지와 아빠가 부자인데 내가 공짜 밥을 먹을까?’

 이렇게 스스로 자문하면서 ‘이게 바로 어른들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구나.

 많이 벌면 많은 세금을 내서 이렇게 쓰이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혹은 스스로 그런 자각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교육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적 효과요 의미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적 연대감과 책무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을 마다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진보 진영의 논리에서 이런 걸 찾기 어려웠다.

보수의 논리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혹은 그것을 포용하면서

 더 큰 것을 뱉어낼 수 있는 그릇을 보여줬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그만큼 우리의 사고가 좁다는 방증이다.

보수에게 필요한 건 용기고,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부당한 이익을 포기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른 합법적인 결과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기득권은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안을 보다 넓게 그리고 근원적으로 살피고 따지며 반대편도 수긍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그게 되지 않으니 아까운 100분을 전파 낭비할 뿐이다.

 

김창완의 <<인동일기>>에 나오는 시구 ‘만나서 재어보는 우리들의 거리감’이란

대목처럼 편협하게 자기편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천박함과 척박함이

무상급식에 관한 토론에서 그대로 보여졌다는 게 참 안타깝다.

 

. . .

그것 자체가 훌륭한 교육 과정이다

. . .

 

미술 시간마다 준비물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미술 시간에 개인이 따로 준비물을 마련하지 않는다.

미술실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데, 거기에는 도화지, 물감, 붓, 크레파스, 종이 등

다양한 미술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공짜다.

 

공짜로 제공되는 미술 교육 재료들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할 것이다.

당연히 내 것 아니니 낭비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생각이 머물고 말면 이 프로그램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이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그야말로 가장 교육적인 훈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러분, 이 모든 재료들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께서 세금으로 내신 겁니다. 공공의 자산입니다.

나 혼자 마구 쓰면 다른 사람이 쓸 수 없지요.

게다가 그냥 여러 장에 성의 없이 그린들 그게 제대로 된 그림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한 장에 열과 성을 다해 그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여러분들은 세금을 낸 어른들에게 고마워하고,

최선을 다해 그림 그리면 그것이 가장 좋은 보답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함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아껴 쓰면 허튼 세금 낭비 없을 것이고, 그러면 세금 부담도 줄어들겠지요?”

 

. . .

교육은 바로 그런 것이다.

. . .

 

그냥 책 읽고 칠판에 쓰고 그걸 공책에 받아 적고 달달 외는 게 교육이 아니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따지고 문제를 다양하게 풀어가는 방식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미술 재료가 무료로 제공된 미술실이 그렇고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엉뚱한 낭비 줄여서 제대로 교육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부분에

투자하면 훨씬 더 가치 있는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교육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힌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며 미래의 사회를 만들어 갈 학생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핵심 사항은 쏙 빼먹고 공짜 밥을 먹이느니 마느니 하는 따위의

시시한 문제로 난리법석을 떨고 정치공학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자들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런 자들이 이른바 사회지도층 운운하며 권력과 재력을 움켜쥐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거짓 언론을 앞세워 한심한 논쟁을 일삼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리와 주장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척박한 것인지 되돌아볼 때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무상급식 문제를 더 이상 떠들어대지 않는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그 과정에서 보인 우리들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 사족 하 나|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무상 급식을 해야 하는가?”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아는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사립학교 다닌다.

애당초 무상급식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논쟁을 보면서 과연 뭐라고 느꼈을까?

각자의 상상에 맡기자.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

 세상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대책 없이 버스 정류장에서 배차 간격 뜸한 버스를 기다리며 거위처럼 목을 길게 빼고 도로 왼쪽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지만(물론 저는 아직도 그러고 있지만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기다리는 버스가 정확하게 몇 분 뒤에 정류장에 오는지 알기 때문에 허튼 시간 버리지도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갈수록 그렇게 편리함의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게 마냥 부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처럼 아날로그의 끝자락과 디지털의 첫 단추를 동시에 걸쳐 있는 세대는 아날로그의 온기와 디지털의 속도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특권도 있지요. 물론 아날로그에서 온기를 누리거나 품지 못하고 디지털에서 속도를 즐기거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얼치기가 되지는 않아야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랜 동안 청산통신도 접고 마감해야 할 원고들과 새롭게 펼치기 시작한 원고들에 치대어 보내다가 갑자기 해미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머지않아 그곳에서 움터를 마련해서 그저 읽고 쓰는 일에만 파묻혀 지내고 싶은 곳이기에 항상 마음 한 켠 자리 잡고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며칠 전 길을 떠난 건 해미가 아니라 운산의 마애석불 때문입니다.

 

흔히 ‘백제의 미소’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어서 정말 그게 백제인의 모습이려니 하고 각인될 만큼 소담한 마애불입니다. 그걸 보호한답시고 닫집을 만들어 자연 채광으로 드러내는 미소의 아름다움은 박제되고 어설픈 인공조명으로 비추는, 굳은돌이어서 마음이 시렸는데, 얼마 전 마침내 그 닫집을 걷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야지, 가마 하면서도 정작 쉽게 떠나진 못했습니다.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 길이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늘 마음에만 담고 있다가 날 풀리는 봄날 몸살 하듯 내처 떠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마침 고등학교 동창이 함께 가자 해서 그 친구 차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쉼 없이 내렸지만 자동차의 편리함은 그것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얼마쯤 지나 운산의 계곡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과연 쓸데없는 옷을 뒤집어쓴 채 어색하게 웃던 부처님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한걸음에 올랐습니다. 말끔하게 닫집을 벗고 마침내 본디 모습으로 잔잔하게 웃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얼마나 반갑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해마다 들러본 곳이면서도 사뭇 달랐습니다. 정작 제 모습을 왜곡한 채 보호라는 명목으로 감금되었던 부처님도 비로소 제대로 웃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벼르고 벼른 끝에 찾아간 마애불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20여 분에 불과했습니다. 방사능비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눈맞춤했으니 그걸로 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내친 김에 개심사와 해미읍성까지 둘러볼 마음으로, 아니 모처럼 떠난 길, 본디 꽃구경 좋아하지 않지만 비인 마량포구의 동백 숲까지 가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백 숲엔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저 마음만 바쁘고 시간만 축냈을 뿐입니다. 물론 풀밭에 뚝 떨어진 동백의 자태가 흠씬 아름답긴 했지만 말입니다.

 

동행한 벗이 함께 길 떠나기에 참 좋은 친구였기에, 그 덕에 편하게 가본 참에 좋아하는 개심사와 읍성까지 안내하고 싶었기 때문이긴 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길을 걸을 수 있는 동행은 분명 고마운 복입니다. 그런 친구였기에 아마 어쩌면 더 많이 들러보게 하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쉽게 가지 못하는 길, 이왕이면 한 묶음으로 꿰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발단은 욕심에 동백 숲까지 간 데서 비롯되었던 것을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마애불까지 가려면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 한참을 기다렸다가 하루에 서너 차례만 오가는 시골 버스를 타고서야 가능합니다. 어차피 다음 버스까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에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는 심정으로 몇 시간이고 그 작은 계곡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내 마애불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것만으로 하루를 다 보내거나 운 좋아 버스 시간 맞으면 개심사까지 들르곤 했습니다.

 

여행을 나타내는 낱말 travel의 어원인 라틴어 travail의 뜻이 ‘고생하다’ 라는 걸 불현 듯 깨달았습니다. 옛사람들은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잠깐 일별하고 다시 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요. 그저 그거 하나 찾아갈 일념으로 반나절이나 한나절 내내 걸어갔을 겁니다. 다른 건 들여다볼 생각일랑 아예 품지 못했기에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걸어가지는 않아도 몇 시간 동안 버스 갈아타며 찾아간 그곳에서 그렇게 짧은 방문으로 마감하진 못했겠지요.

 

참된 사랑은 오롯하고 직수굿하게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그런 사랑은 효율도 떨어지고 다양성도 딸립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 하나에 대한 확실한 마음과 애틋함은 마음껏 누리고 채우겠지요.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다르지 않겠지요. 이것저것 들쑤시고 욕심만 내면서 정작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돌아봅니다. 마음만 앞서고 조바심만 내면서 말입니다.

 

모처럼 떠난 길 서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게 누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마애불 초입의 산중턱 관리소 기와집 마루에서 무심하게 걸터앉아 아무 말 없이 그저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수 소리에 취해서 맞은 편 산기슭의 나무들에도 눈길을 나눌 수 있어도 좋았을 것이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며 마음에 품었으면서 정작 잘 꺼내보지 않아서 조금은 낯설기도 할 이야기들도 두런두런 나누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쉽고 동행한 벗에게도 미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건 쉽게 떠날 수 있는 편리한 자동차. 그러나 정작 한 곳에 집중할 마음을 상실한 게 그런 편리함 때문이라는 걸 미련스럽게도 돌아온 뒤에 확인합니다. 여행의 본디 뜻이 고생함이라는 걸 겸손하게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조금은 미련하게 느긋하게 다가서고 지켜볼 수 있는 고생스러운 넉넉함을 생각합니다. 정말 만나고 싶은 건 꽃도 아니고 멋진 날씨도 아니며 바로 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Posted by 에듀앤스토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