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체벌논란, 세대간 차이 급격하 등으로

그 어느때 보다 선생님들이 어깨가 축 쳐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행복한 사제간은 많답니다.

고마우신 선생님!

 

두 학생의 사연을 들어볼까요?

 

 

 

[첫번째 사연] 책임감 강한 유치원생의 고백^^

 

 

 

 

 

 

[두번째 사연] 진심으로 대해주신 선생님

 

 

“지아야, 앞으로 나오렴”

 

 

선생님께서는 아침마다 우리 반 친구들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꼭 안아주십니다.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생이 되어 학교에 처음 등교한 날,

선생님이 무서운 선생님이 아닐까 많이 건정했는데

걱정과는 달리 환하게 웃으시며

우리를 반겨주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고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급식을 먹을 때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 친구들 급식을 한 명, 한 명 챙겨주시고

선생님은 맨 나중에 식사를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밥 먹는 동안 보리차를 직접 끓여주시고

몸이 불편한 친구인 수빈이의 급식은

선생님께서 식사를 하기 전에 먼저 챙겨주십니다.

 

 

 

 

선생님은 가끔 친구들이 급식을 남기면

“먹는 음식은 소중한 거라 남기면 안 된단다”하시며

친구들이 남긴 밥을 선생님께서 드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우리 반 친구들이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해도

먼저 꼭 안아준 후에 웃는 얼굴로 조용히 잘못한 것을 알려주십니다.

 

 

장난꾸러기 남자친구들도

처음에는 선생님이 안아주면 몸부림치더니

나중에는 선생님을 먼저 안아드렸습니다.

 

 

1년이 지나 선생님과 마지막으로 수업하던 날

선생님께서는 한 명씩 안아주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선생님께 인사드리러 온 엄마들도

모두 따뜻하게 안아주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가시게 되어

우리 반 친구 모두가 울었습니다.

 

 

늘 넘치는 사랑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을

칭찬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사랑으로 1학년 때 우리 반 친구들은

2학년이 된 지금도 씩씩하고 예의바르게 잘 지낸답니다.

   

선생님께서 건강하게 잘지 냈으면 좋겠습니다.

고마우신 선생님, 사랑해요.

누구에게나 따뜻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어린이로 잘 자라겠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 : 노 희 선 / 김 지 아 (서울고일 초등학교 2학년 6반)

 

 

 

-2010년 KACE 선생님 자랑대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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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라.

누구에게서 태어났기에 모습조차 같은 것인가?

같은 젖을 먹고 자라났으니 딴 마음을 먹지 마라.

-송강 정철의 <훈민가> 중에서

 

 

 

 

 

 

5월은 가정의 달.

5월 5일 어린이 날, 5월 8일 어버이 날, 5월 21일 부부의 날

그런데......................

 

 

왜 형제의 날, 자매의 날은 없을까요?

형제, 자매 만큼...

중요한 사이도 없을텐데 말이죠.

 

 

같은 부모밑에 태어나

어릴적 부터 살 부딪히며

많은 추억을 공유하게 되는

형제 자매들...

 

 

하지만

주름진 어른이 되면

돈에 눈이 멀어...

그 추억을 잊고

얼굴을 붉히게 되는 현실이 문득...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얼마 전 대기업 형제들의 재산 싸움을 빗대어

정철선생의 글을 패러디한 시도 나왔네요.

 

 

형아, 아우야 네 돈을 만져 보아라.

누구에게서 상속 받았기에 그리 많은 것인가?

같은 젖을 먹고 자랐으니 한 푼도 줄 수 없다 하지 마라...

 

씁쓸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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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소년(빰빠바), 개구리 소년(빰빠바)

네가 울면 무지개 연못에 비가 온단다

라고 시작하는 개구리 왕눈이 노래는

사실 국민가요 수준의 애니메이션 주제곡이다.

 

 

어린시절 봤던 만화영화는

어른이 되어서 이제는 자신의 아이들이 보고 자란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신기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개구리 왕눈이는 어린이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다루는 주제가 상당히 무겁다.

계급간 갈등, 계급차이를 초월하는 사랑, 약자층에 대한 권력가의 횡포,

그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 자신의 권력 을 휘두르는 모리배,

 권력가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세력,

권력 앞에 몸을 조아리며 자신의 신변 유지에만 급급해하는

나약한 프롤레타리아 모습의 주민들.

 

 

연못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사회상을 풍자한 애니메이션.

 

 

어릴 때 이 만화를 볼 때에는 아무 생각없이 마냥 재밌게 봤는데, 이 무거운 주제들을소화할 수 있게 잘 풀어낸 개구리 왕눈이를 나는 단연 최고의 애니메이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투투            아롬이            심술이           얌술이            메기              가재             경관             전기뱀장어

 

 

개구리 왕눈이에 나오는 무지개 연못의 모습은

우리 사회와 너무 유사하다.

아롬이의 아빠인 투투. 무지개 연못을 지배하고 있는

최대의 부자이자 권력가이다.

 

 

혹독한 세금과 폭정으로마을 주민들을 억압한다.

자신의 외동딸과 서로 좋아하는 왕눈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부하 가재와 심술이 얌술이를 시켜 왕눈이를 괴롭힌다.

하나뿐인 딸 아롬이를 위하는 마음만은 지극한 걸 보면

아무리 이기적인사람도 자식에게는 이타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알고보니 투투 역시

거대한 외눈박이 메기의 협박을 받고있었던 또 다른 피해자였고,

왕눈이가 아롬이를 메기에게서 구해온 다음부터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고

착하게살 것을 다짐한다.

 

 

투투의 배후에 있는 거대악 메기.

투투를 뒤에서 조종하는 숨은 권력자이다.

 

 

왕눈이의 부탁을 받은 전기뱀장어에 의해 혼줄이 나고

인간의 그물에 걸린고 만다.

모리배 가재. 투투의 썩은 기득권 세력에 기생하면서

호가호위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나중엔 더 큰 권력자인메기에게 붙어 투투를 배반한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게 한없이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며 끝까지 반성도 안한다.

무지개 연못의 경관 새우.

법을 수호해야할 사법당국은

권력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며 허울뿐인 공권력을 보여준다.

 

 

전기뱀장어.

그는 메기 이상의 힘을 가졌음에도

이것을 남용하지 않았고 표표히 다시 바다로 떠난다.

그는 진정한 자기 역할과 책임을 완수하며

연못을 떠나는 고고한 행보에 대해서 잘 되짚어 봐야한다.

 

 

힘 없고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무지개 연못 주민들.

폐쇄적이고 외부인의 출입을 꺼린다.

왕눈이 가족들에 대한 배타적이며 직접 해를 가하진 않지만,

그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땐 주저없이 외면한다.

특히 조금이라도투투의 눈밖에 나거나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갈 만한 일이라면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

 

 

이웃의 고통스럽고억울한 상황을 목도하지만

어느 누구도 앞장서서 개혁을 외치지 않는다.

 

 

중엔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메기를 되찾으며,

자신들을 착취했던 투투이지만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는 용서해준다.

무지개 연못의 모습은 우리 사회와 유사하며,

투영할 수 있는 현실의 인물들은 아마 한 두 명이 아닐 것이다.

 

 

현실에서는 투투도 있고, 가재도 있고, 새우, 메기도 있을 것이다.

만화라하기에는 너무도 리얼한 세상의 법칙을

생생히 전파하는 교과서 같기도 했다.

 

 

어린이에게는 권선징악적 교훈을,

어른에게는 모순된 사회 시스템 철폐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었던 작품이었다.

영웅이란 것은 보통 사람들의 선택과 용기이다.

왕눈이는 어떻게 보면 무지개 연못에서 유일하게 개혁성향을 띈 인물이다.

그는 주민들에게 왕따를 당하고 아롬이와 사귄다는 이유로

투투 일행에게 온갖 고초를 다 겪지만,

자신이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절대 굽히지 않는다.

 

 

힘없고 약하지만 정의를 가진 소시민의 모습을 가진 왕눈이를 통해

불의에 맞서는 용기를볼 수 있다.

주제가처럼 왕눈이는 비바람 몰아쳐도 이겨내고,

시련이 있어도 일어나는 왕눈이다.

 

 

울지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는 가사는

왕눈이가 처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항상 비폭력주의를 고집하는 왕눈이의 무폭력 저항정신은

투투와 가재 일당의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묵사발이 되고,

런 체념과 한을 연못에 앉아서 피리로 승화하는 모습은

어린 시절 많은 느낌을 갖게 했다.

 

 

이것을 예술혼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당시 아이들로 하여금, 리코오더 연주에 박차를 가하게 만들며

사회현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피리 계명을 누나에게서 전해받고

개구리 삼단 뛰기로 기뻐했던 그 시절이 떠오른다.

 

 

상황이 암울해도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사소한 것에도 비관하고, 절망하는 이 시대의 젊은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웅이라는 것이 보통 사람들 바깥에 있는 특별한 존재나 돌연변이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선택과 용기라는 것을 왕눈이는 일갈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귀족계층의 소녀와 가난한 집안의 소년이

결국 어른들의 마음을 화해와 공존의식으로이끄는 내용을 통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명언이 입증되기도 하는

성장 애니메이션이라 부를만하다.

 

 

인간의 존재는 나(I)와 너(You)가 함께 있어야 가능하다.

 

 

 

 

'나'와 '너'를 거쳐서 '우리'를 인식하고자 할 때,

'나'와 '우리'의 연결고리는 '너'인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에서'너'에 대한 인식 없이

 '나'에서 '우리'로 즉각적 인식의 전이가 이루어졌을 때에 많은 문제가 일어났다.

 

 

개구리 왕눈이에서의 투투도 '너(주민들)'를 인식하지 않고

 '우리(연못의 평화)'만을 생각하다보니

무지개 연못에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잘못된

평화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닐까.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개인적 욕구와 타인의 욕구 및 열망과 만날 때

자유의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사람 사이에서 '차이가 있다'는 개인성과,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사회성은 당연히 윤리의 문제를 낳게 돼있다.

 

 

쉽게 말해 어느 정도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내 멋대로 할 수 있는지'를

무리 없이 보장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은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격동의 시대이다.

이 격동의 시대에도 인간은 누군가와 함께 산다.

인간은 어차피 서로 비비면 살게 되어 있는 동물이다.

만약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어 타행성에 터전을 잡으러 간다면

 ‘우주의 로빈슨크루소'를 원해 홀로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끝없이 변해도 ‘나'는 ‘너'가 있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변화와 변혁의 시대일수록 ‘함께 사는 삶'에 대한 비전을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길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되뇌어 봐야 할 것이다.

 

 

바로 개구리 왕눈이의 교훈을 상기하며

이제는 3D 입체영상으로 온 국민 앞에 많은 왕눈이들이 현실 속에서

 나타나주길 간절히 바란다.

 

 

박욱현 | 아레테승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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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살과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은 가족소풍을 부추깁니다.

 

칙칙했던 겨울옷을 벗어 던지고

알록달록 짧은옷과 챙달린 모자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도시락을 준비해야죠.

 

한 어머니가 아들을 위한 예쁜 도시락을 싸주고

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려

인기몰이를하고 있답니다!!

 

꽃처럼

화사하고 색감도 예쁜~

도시락 소풍 한번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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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Heather Sitarzewski)  제 아들의 점심 식사를 위해

매일 즐거운 도시락을 준비하고로 지난 여름 결정했어요

 

저는 아이디어를 얻고자 온라인을 검색하다 

다른사람이 만들지 않는 형태의 음식을 만드는 조리법이 안내되어있는

 재미있는 사이트를 발견했습니다.  


디즈니 캐릭터와 다른 재미있는 이미지을 연구해 준비했죠.  

페이스북 친구들의 

매일  도시락을 준비하는 과정과 사진을 보고싶다는 요청이 많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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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득이>에서 완득이 엄마로 나왔던

자스민씨가 헌정사상 첫 이주민 출신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자스민 당선자에게 쏟아진 인터넷상의 ‘외국인 차별·혐오’(제노포비아) 발언은

급속도로 다문화사회가 된  한국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요즘 '뽀뽀뽀'나' TV유치원'과 같은 유아 프로그램을 보면 

백인과 흑인 아이들이 종종 등장하다.

 

처음 봤을때 외국인 아이들인가 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말을 너무나 예쁘게도 잘하는 우리 아이들이다.

말 그대로 얼굴색만 약간 다를 뿐,

한국의 땅에서 뽀로로를 좋아하고, 한국음식을 잘 먹는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다.

 

현실적으로 다문화 인구가 140만명에 이르고

학교와 일터, 동네에서 ‘이웃’처럼 마주치고 있으나

우리의 다문화  수용성은 어떠한가?

 

'다문화 가정'

'세계화 시대'

  

거창한 말들은 많이 하지만...

아직도 뽀뽀뽀나 TV유치원에 등장하는

다른 인종처럼 보이는 아이들을 보면

외국인인가 하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는 어른들.

우리나라 국민의 인종-문화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

 

                  .

 

                  .

  

2011년도 여성가족부는 GH코리아에 의뢰해

우리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지수를 조사한 결과를

2012년 4월 18일 발표했다.

 

 

이번 지수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개발한 36개 항목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올 1월까지 전국 성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해 산출됐다.

 

 

우리 국민이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다문화수용성지수'는 100점 만점에 51.2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 문화 공존에 대해 찬성하는 비율은

유럽 18개국 평균 73.8%에 비해 37.5%나 낮은 36.2%를 기록했다.

 

국민 정체성 항목 비교에서도

비교대상 37개국 중 한국인은 필리핀, 베네주엘라 다음으로

혈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86.5%는 한국인 조상을 가지는 것이

국민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라고 답했으며,

90.7%가 '한국어 사용'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다문화 관련 교육이나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많을수록

다문화수용성이 높게 나왔으나

다문화 관련 교육경험이 없는 국민이 76.1%,

 행사참여 경험이 없는 국민이 82.4%로

많은 국민에게 관련 교육과 행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대중매체에서 다문화 관련 내용을

자주 접하는 국민 비율도 평균 17%에 불과했다.


 


다문화관련 교육이나 행사에 많이 참석한 사람들이

비교적 다문화 수용성이 높았다.

 

다문화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없는 집단(48.9점)의 수용성은 교

육을 자주 받아본 집단(56.6점)보다 낮았다.

 

 다문화 행사 참여 경험이 없는 집단(50.4점)보다

자주 참여한 집단(55.8점)이 더 높았다.

 

다문화 관련 교육을 거의 안 받아봤다는 응답(76.1%)과

다문화 관련 행사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다는 응답(82.4%)이 과반수였다.

 

한국의 결혼이민자 수는 점점 많아지고,

외국 이주민 친인척이 있는 집단의 다문화수용성지수도 51.8점에 불과해다.

 

 

이 집단에서는 이주민이 한국의 문화와 관심에

순응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정도가 강햇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젊고, 학력이 높으며, 소득이 높을수록 다문화 수용성이 높았다.

수용성은 20대(53.9점)에서 가장 높이 나타났고,

이가 많아질수록 점점 낮아져 60대 이상(47.6점)에서 최저를 기록했다.

 

 학력별로는 중학교 졸업이 45.3점으로 낮았고

고등학교(50.3점), 전문대(52.6점), 4년제 대학(54.3점), 대학원(62.5점)순으로 높았다.

소득별로는 월소득 100만원 미만(45.6점)에서 가장 낮았다.

 

다문화수용성이 낮은 집단과 높은 집단 사이는 격차가 컸다.

수용성이 가장 낮은 하위 20%집단의 평균지수는

30.9점이었지만 상위 20%집단의 평균지수는 70.9점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관계자는 "최초로 이뤄진 조사인 까닭에

다문화수용 정도가 어느 정도가 높고 낮은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그러나 수용성 상위 20%그룹도 70점 내외임을 감안하면

다문화수용성을 지키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것 같다"고 말했다.

 

 

'다문화 사회'

모두가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나는 다문화사회를 수용하고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또, 우리 아이들에게 '다문화 갈등'을 겪지 않도록 잘 교육시키고 있는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국가에서도 말뿐인 정책이 아니라

 ‘다문화 갈등’이 확산되지 않도록 중장기적인 대책 마련을 시급히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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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람은 이래서 안돼!"

 

 

 

나 또한 한국 사람이면서, 이런 말을 쉽게 내뱉습니다.

 

 

이기적이고, 물질만 밝히고, 여유없는 누군가의 모습과 행동.

 

 

어쩌면 나를 보는 것 같아 그 모습이 더 보기 싫고,

내가 아닌 누군가로 몰아야 조금은 홀가분해질것 같아

자주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국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긍정의 힘,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윤리의식,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는 지혜로움이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을 보면 알수 있죠.

이어령 교수가 강의 때 하시는 말을 요약해보겠습니다!!!

 

 

 


 

한국어는 모음 하나만 바꾸면 부정이 긍정이 되지요.

씨레기(표준어는 시래기)국이 그렇습니다.

세계 어느나라도 비틀어 말라 빠진 야채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그냥 버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국은 그 쓰레기를 씨레기로 만듭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그 어떤 음식보다 비타민이 풍부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누룽지도 마찬가지지요.

밥이 타버렸다는 그 '부정'을 누룽지라는

 '긍정'의 문화로 만들어 냅니다.

 

 

6.25때 미군이 들어왔을 때도

무질서한 한국인을 보며 미군은 경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그 경멸은 존경으로 바뀌었지요.

자기들이 버린 맥주병을 재활용해서집을 만들고

사람을 죽이는 포탄을 녹여 사랑의 종을 만들어 교회로 가져가고

총알자국이 남은 헬멧을 두레박으로 바꿔  

생명수를 길어 나르는 것을 본것입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이요

그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희망의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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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11년 대한민국은 갑자기 급식 문제로 들끓었다.

. . .

 

 교육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불거진 무상급식과 관련된 찬반 논쟁이 뜨거웠다.

 이른바 보수는 유상급식을, 진보는 무상급식을 지지했다.

 그 와중에 어떤 논객은 “아이들 급식 못 주겠다며 울먹이는 어른들은 처음 본다”며 혀를 찾다.

결국 무상급식을 반대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며

승부수를 띄었고 최종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주민투표에서 패배할 경우 시장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결국 시장직을 버려야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사건은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투표 참가로 박원순 시장을 새로 뽑았다.

 

단순히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끝난 게 아니라 정치에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했던 젊은 세대들이 자신의 투표권 행사 권리의 힘을 객관적으로 스스로 확인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어질 선거에 대한 관심과 각성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단순히 서울의 시장을 새로 뽑는 문제로 국한되지 않고 정치 전반에 대한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제 더 이상 무상급식 문제를 따지지 않는다.

무상급식 하면 나라가 절단 날 듯 떠들던 여당조차 자신들의 정책과

 선거 공약에 그 문제를 태연히 내세운다.

이전의 반대에 대한 자기비판은 물론 없다.

가히 ‘이미 끝난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건 끝난 문제가 결코 아니다. 끝난 문제여서도 안 된다.

그 논쟁의 과정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찬성과 반대의 논리가 난무했다.

 

그러나 그 논쟁의 과정을 보면 척박하고 천박한

우리 시대의 이성적 논리적 허약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문제는 반드시 되돌아봐야 한다.

정치사회적 문제에 대해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 따른 견해를 주장할 수 있다.

그건 건강한 시민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하지만 감정적이고 몰이해적인 판단 근거에 휘둘리지는 않았는가?

나는 정치적 스텐스나 경제적 태도 여하를 떠나 한 인문학자로서

이 문제를 지켜보면서 우리 시대의 사유와 소양이 부박하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소소한 주장과 그 논거는 우리가 익히 들었던 것들이니 여기에서는 재론하지 말자.

찬반 논리의 핵심만 다시 따져보자.

 

첫째,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무상급식을 해야 하는가?” 라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돈 있는 사람들이 밥값 내는 건 마땅해 보인다. 그렇다면 수업료도 내는가? 논리적으로 비일관적이다. 교육은 단순히 수업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교육은 학교에서의 일 전체를 뜻한다. 그게 최소화 의미로서의 교육이다.

 

이들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른바 선별복지 혹은 부분적 무상급식 논리다.

이 주장은 얼핏 그럴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매우 위험한 주장이며

단지 감성적 동조만 이끌어낼 뿐인 빈약한 논리다.

왜 그런가? 돈 있는 사람은 제 돈 내고 밥 먹도록 해야 한다는 걸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숨어있다.

첫째, 그런 주장을 펴던 사람들이 평소에 사회적으로 기여하고

자기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했다.

종합부동산세를 폐지시켰던 사람들이 국가재정 악화를 초래했다느니

하는 문제는 차치하자. 그들이 내세우는 이건희 회장이 제대로 상속세를 냈는가? 아니다.

탈세와 감세와 불법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제 새끼들 밥값은 내겠단다.

얼핏 보면 참 가상한 태도다.

하지만 ‘고작’ 몇 천 원 밥값 내는 일일 뿐이다.

이 논리가 설득력을 가지려면 건전한 부자들의 건전한 사회적 역할과 의무의 수행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보수 우파 진영에 속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논리는 과도한 복지가 국가 재정을 뒤흔들고 건강한 근로 의욕마저 타락시킨다는 것이다.

그들은 ‘과도한’ 복지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부분적 문제점만 침소봉대하여 자신의 논거로 삼았다.

그러나 수출 1조 달러를 돌파한 OECD 국가인 대한민국이

그 정도의 최소한의 복지마저 외면해야 하는 당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는 스웨덴과 핀란드 두 나라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사립학교까지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나라일 뿐이다.

 

 31개 OECD 회원국 가운데 20개 나라, 그러니까 65%의 나라가

공립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의 논거는 부분적인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또한 복지가 건강한 근로 의욕을 타락시킨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역사적으로 복지는 재정이 남아돌아서 퍼준 게 아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힘들 때 사회가 붕괴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해 실시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복지는 근로의욕을 상실시키거나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호신뢰와 인간에 대한 가치의 연대로 사회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된다.

 

 

. . .

거죽만 보는 눈들

. . .

 

둘째, “경제적 능력과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밥값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건 훨씬 더 심각한 위험을 안고 있다.

부자 아이는 돈 내고 먹는다는 게 그럴싸한 논리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자기는 제 돈 내고 밥 먹는다는 차별성과 자기합리화를 이끌어낸다.

고작(?) 제 새끼 밥값이나 내면서 자신은 사회적 책무에 아주 충실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게다가 자기는 밥값 냈으니 그 문제가 야기할 모든 사안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여길 수 있다.

모든 사회적 책무와 연대 의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자기합리화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우려했던 것은 이른바 진보세력이 내세운 논리의 한계였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눈칫밥을 먹이지 말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가난한 것도 서러운데, 그것도 죄 없고 애꿎은 아이들이 눈칫밥 먹게 하는 건 부끄러운 논리다.

하지만 이 주장의 근원적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이 아니다.

문제를 더 파고들면 본질과 핵심이 보인다.

그런데도 거죽만 보니 그 논리만 내세운다.

 

“부자 아이들에게도 공짜 밥을 먹여야 한다”라는 논리를 내세워야 했다.

이건 단순한 평등의 논리나 개념이 아니다.

물론 무상교육의 큰 틀 안에서 무상급식은 당연하게 따라하는 목록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교육은 단순히 수업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적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산 운운하는 자들의 논리는 오히려 정반대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수출 1조 달러에 세계 무역 순위 10위권이라고 선전만 해댈 게 아니라

그 정도의 경제력이면 이미 진작부터 무상급식이 시행되었어야 했던 일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돈 타령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자, 이제 이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자.

진보세력의 논리였던 ‘가난한 아이들 눈칫밥 먹이지 않기’가 아니라

‘부자 아이들 눈칫밥 먹이기’다. 이건 무슨 봉창 뜯는 소리냐고? 아니다.

부자 아이들에게도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

그 아이들이 공짜로 밥을 먹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쪽 팔린다고 여길까? 조금은 그럴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교육을 통해 바르게 생각할 수 있게 이끌 수 있다.

 

부자 아이들이 공짜 밥을 먹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바로 ‘사회적 연대감’이다.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만 공짜로 밥을 먹는다는 사실을 통해

 체득하게 되는 건 바로 사회적 비용으로 자신들도 무료로 밥을 먹는 걸 알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사회적 유기성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노블리세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가장 확실한 교육 방법이다.

지금의 시대에 계급이 있어서 귀족들이 전쟁터에 솔선해서 나가 전투하는 따위의 현실은 없다.

대신 사회적 직위와 경제적 능력 등에 따라 그런 역할이 수행되어야 한다.

 

‘왜 우리 할아버지와 아빠가 부자인데 내가 공짜 밥을 먹을까?’

 이렇게 스스로 자문하면서 ‘이게 바로 어른들의 세금으로 이뤄지는 것이구나.

 많이 벌면 많은 세금을 내서 이렇게 쓰이는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혹은 스스로 그런 자각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교육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적 효과요 의미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적 연대감과 책무를 깨닫게 되는데 그것을 마다 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진보 진영의 논리에서 이런 걸 찾기 어려웠다.

보수의 논리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혹은 그것을 포용하면서

 더 큰 것을 뱉어낼 수 있는 그릇을 보여줬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그만큼 우리의 사고가 좁다는 방증이다.

보수에게 필요한 건 용기고, 진보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부당한 이익을 포기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른 합법적인 결과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비도덕적인 기득권은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안을 보다 넓게 그리고 근원적으로 살피고 따지며 반대편도 수긍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그게 되지 않으니 아까운 100분을 전파 낭비할 뿐이다.

 

김창완의 <<인동일기>>에 나오는 시구 ‘만나서 재어보는 우리들의 거리감’이란

대목처럼 편협하게 자기편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천박함과 척박함이

무상급식에 관한 토론에서 그대로 보여졌다는 게 참 안타깝다.

 

. . .

그것 자체가 훌륭한 교육 과정이다

. . .

 

미술 시간마다 준비물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미술 시간에 개인이 따로 준비물을 마련하지 않는다.

미술실에 가서 그림을 그리는데, 거기에는 도화지, 물감, 붓, 크레파스, 종이 등

다양한 미술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다.

물론 공짜다.

 

공짜로 제공되는 미술 교육 재료들이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싶기도 할 것이다.

당연히 내 것 아니니 낭비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생각이 머물고 말면 이 프로그램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서 이것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하면

그야말로 가장 교육적인 훈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여러분, 이 모든 재료들은 결코 공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께서 세금으로 내신 겁니다. 공공의 자산입니다.

나 혼자 마구 쓰면 다른 사람이 쓸 수 없지요.

게다가 그냥 여러 장에 성의 없이 그린들 그게 제대로 된 그림이 되겠습니까?

 

오히려 한 장에 열과 성을 다해 그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여러분들은 세금을 낸 어른들에게 고마워하고,

최선을 다해 그림 그리면 그것이 가장 좋은 보답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함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면서

아껴 쓰면 허튼 세금 낭비 없을 것이고, 그러면 세금 부담도 줄어들겠지요?”

 

. . .

교육은 바로 그런 것이다.

. . .

 

그냥 책 읽고 칠판에 쓰고 그걸 공책에 받아 적고 달달 외는 게 교육이 아니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따지고 문제를 다양하게 풀어가는 방식을 터득해가는 과정이다.

미술 재료가 무료로 제공된 미술실이 그렇고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더 생각하고 엉뚱한 낭비 줄여서 제대로 교육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부분에

투자하면 훨씬 더 가치 있는 결실을 얻을 수 있다.

 

교육은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힌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며 미래의 사회를 만들어 갈 학생들을 길러내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핵심 사항은 쏙 빼먹고 공짜 밥을 먹이느니 마느니 하는 따위의

시시한 문제로 난리법석을 떨고 정치공학적으로만 이해하려는 자들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런 자들이 이른바 사회지도층 운운하며 권력과 재력을 움켜쥐고

 그것을 공유하려는 거짓 언론을 앞세워 한심한 논쟁을 일삼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리와 주장들이 얼마나 피상적이고

척박한 것인지 되돌아볼 때 우리가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무상급식 문제를 더 이상 떠들어대지 않는다고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그 과정에서 보인 우리들 자신을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 사족 하 나|

이건희 회장의 손자에게 무상 급식을 해야 하는가?”라는 말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아는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의 자녀들은 대부분 사립학교 다닌다.

애당초 무상급식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 논쟁을 보면서 과연 뭐라고 느꼈을까?

각자의 상상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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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많은 사건들...

그 사건들의 문제로 거론 되는 것, 바로  ‘교사의 자질’ 이었다.

 

. . . . .

왜 교사들은 문제를 제기한 학생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으며,

문제가 발생한 초기에 그 문제를 바로 잡지 못했을까?

. . . . .

 

교사, 그들이 학교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국민들은 처참한 사건 소식을 들으며 궁금해하고 있다.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의 업무 현장을 들여다봐야 한다.

고교 교사의 하루는 교육 연구보다 행정처리 업무에 비중이 더 크다.

 학급당 학생 수가 많을수록 잡무가 더 늘어나

 야간자율학습 지도에 전산입력까지 수업준비보다 잡다한 일에 시간을 더 많이 쓰는 것이 현실이다.

 

. . . . .

외국의 경우에는 학생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1차적으로 담임이 조사를 한다.

. . . . .

 

이후 해결 범위가 커질 우려가 있으면

교장이 나서서 학생과 개별 면담으로 일을 처리하는 시스템이다.

행정업무도 행정 담당자가 일괄 처리하며 우리나라처럼 야간자율학습도 없으니

교재연구와 충전의 시간이 허락된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교과서를 줄줄 읽고 밑줄 치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교과서 이외의 생활 지도까지 끌어낼 수 있어야

 진정한 교사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정책과 현장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것은 정책 입안자들의 책무이다.


. . . . .

공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해야한다.

. . . . .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부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주체가 움직여야 한다.

그 주체는 바로 정부다.

예산을 집행하고 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공교육에 정부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불편하고 껄끄러운 경우가 많다.

이런 두 주체들의 미묘한 갈등 구조에 ‘참여기회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학생 학부모가 교사를 비판하고 평가하는 구조로 바꾸려는 사이

 정부는 비판의 사각지대로 숨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까?

 

과연 교사 탓만 한다고 교육의 질이 향상될 수 있는가?

정부는 학생과 교사, 학무모와 교사 간의 문제 뒤에서 나와 해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  [최고의 학교] 중에서 -남승희 저

 

[최고의 학교] e-book 보기  http://www.viabook.net/promotion/b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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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많이 편해졌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대책 없이 버스 정류장에서 배차 간격 뜸한 버스를 기다리며 거위처럼 목을 길게 빼고 도로 왼쪽만 하염없이 바라봐야 했지만(물론 저는 아직도 그러고 있지만요), 요즘 젊은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자신이 기다리는 버스가 정확하게 몇 분 뒤에 정류장에 오는지 알기 때문에 허튼 시간 버리지도 추위와 더위에 시달리지도 않습니다. 갈수록 그렇게 편리함의 속도는 빨라지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게 마냥 부럽기만 한 건 아닙니다.

 

우리처럼 아날로그의 끝자락과 디지털의 첫 단추를 동시에 걸쳐 있는 세대는 아날로그의 온기와 디지털의 속도를 함께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특권도 있지요. 물론 아날로그에서 온기를 누리거나 품지 못하고 디지털에서 속도를 즐기거나 만들어내지 못하는 얼치기가 되지는 않아야 가능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랜 동안 청산통신도 접고 마감해야 할 원고들과 새롭게 펼치기 시작한 원고들에 치대어 보내다가 갑자기 해미로 떠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머지않아 그곳에서 움터를 마련해서 그저 읽고 쓰는 일에만 파묻혀 지내고 싶은 곳이기에 항상 마음 한 켠 자리 잡고 있는 곳이지요. 그러나 며칠 전 길을 떠난 건 해미가 아니라 운산의 마애석불 때문입니다.

 

흔히 ‘백제의 미소’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어서 정말 그게 백제인의 모습이려니 하고 각인될 만큼 소담한 마애불입니다. 그걸 보호한답시고 닫집을 만들어 자연 채광으로 드러내는 미소의 아름다움은 박제되고 어설픈 인공조명으로 비추는, 굳은돌이어서 마음이 시렸는데, 얼마 전 마침내 그 닫집을 걷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야지, 가마 하면서도 정작 쉽게 떠나진 못했습니다. 자동차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 길이 사실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늘 마음에만 담고 있다가 날 풀리는 봄날 몸살 하듯 내처 떠나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마침 고등학교 동창이 함께 가자 해서 그 친구 차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비는 추적추적 쉼 없이 내렸지만 자동차의 편리함은 그것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얼마쯤 지나 운산의 계곡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과연 쓸데없는 옷을 뒤집어쓴 채 어색하게 웃던 부처님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서 한걸음에 올랐습니다. 말끔하게 닫집을 벗고 마침내 본디 모습으로 잔잔하게 웃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이 얼마나 반갑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해마다 들러본 곳이면서도 사뭇 달랐습니다. 정작 제 모습을 왜곡한 채 보호라는 명목으로 감금되었던 부처님도 비로소 제대로 웃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벼르고 벼른 끝에 찾아간 마애불에서 머문 시간은 고작 20여 분에 불과했습니다. 방사능비가 무서워서도 아니고 눈맞춤했으니 그걸로 족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내친 김에 개심사와 해미읍성까지 둘러볼 마음으로, 아니 모처럼 떠난 길, 본디 꽃구경 좋아하지 않지만 비인 마량포구의 동백 숲까지 가볼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백 숲엔 가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저 마음만 바쁘고 시간만 축냈을 뿐입니다. 물론 풀밭에 뚝 떨어진 동백의 자태가 흠씬 아름답긴 했지만 말입니다.

 

동행한 벗이 함께 길 떠나기에 참 좋은 친구였기에, 그 덕에 편하게 가본 참에 좋아하는 개심사와 읍성까지 안내하고 싶었기 때문이긴 했습니다. 필요할 때는 서로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길을 걸을 수 있는 동행은 분명 고마운 복입니다. 그런 친구였기에 아마 어쩌면 더 많이 들러보게 하고 싶기도 했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쉽게 가지 못하는 길, 이왕이면 한 묶음으로 꿰고 올 생각이었습니다.

 

발단은 욕심에 동백 숲까지 간 데서 비롯되었던 것을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마애불까지 가려면 터미널에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내려 한참을 기다렸다가 하루에 서너 차례만 오가는 시골 버스를 타고서야 가능합니다. 어차피 다음 버스까진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까닭에 엎어진 김에 쉬었다 가는 심정으로 몇 시간이고 그 작은 계곡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니 좋든 싫든 내내 마애불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요. 그것만으로 하루를 다 보내거나 운 좋아 버스 시간 맞으면 개심사까지 들르곤 했습니다.

 

여행을 나타내는 낱말 travel의 어원인 라틴어 travail의 뜻이 ‘고생하다’ 라는 걸 불현 듯 깨달았습니다. 옛사람들은 힘들게 찾아간 곳에서 잠깐 일별하고 다시 길을 떠나지는 못했겠지요. 그저 그거 하나 찾아갈 일념으로 반나절이나 한나절 내내 걸어갔을 겁니다. 다른 건 들여다볼 생각일랑 아예 품지 못했기에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게 걸어가지는 않아도 몇 시간 동안 버스 갈아타며 찾아간 그곳에서 그렇게 짧은 방문으로 마감하진 못했겠지요.

 

참된 사랑은 오롯하고 직수굿하게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 그런 사랑은 효율도 떨어지고 다양성도 딸립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 하나에 대한 확실한 마음과 애틋함은 마음껏 누리고 채우겠지요. 그게 사람이건 사물이건 다르지 않겠지요. 이것저것 들쑤시고 욕심만 내면서 정작 하나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 돌아봅니다. 마음만 앞서고 조바심만 내면서 말입니다.

 

모처럼 떠난 길 서둘지 말고 욕심내지 말고 차분하게 누리고 오지 못했습니다. 마애불 초입의 산중턱 관리소 기와집 마루에서 무심하게 걸터앉아 아무 말 없이 그저 처마 끝에서 뚝뚝 떨어지는 낙수 소리에 취해서 맞은 편 산기슭의 나무들에도 눈길을 나눌 수 있어도 좋았을 것이고,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며 마음에 품었으면서 정작 잘 꺼내보지 않아서 조금은 낯설기도 할 이야기들도 두런두런 나누지 못하고 돌아온 게 아쉽고 동행한 벗에게도 미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건 쉽게 떠날 수 있는 편리한 자동차. 그러나 정작 한 곳에 집중할 마음을 상실한 게 그런 편리함 때문이라는 걸 미련스럽게도 돌아온 뒤에 확인합니다. 여행의 본디 뜻이 고생함이라는 걸 겸손하게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조금은 미련하게 느긋하게 다가서고 지켜볼 수 있는 고생스러운 넉넉함을 생각합니다. 정말 만나고 싶은 건 꽃도 아니고 멋진 날씨도 아니며 바로 시간이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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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0만명(통계다이어그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노예제는 먼 고대에서 부터 이어져 왔습니다.
합법적으로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노예상태에 처해있는 인구는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계 인권선언에 명기(노예제도 금지)되어 있는 내용이 무색할 정도로 반인권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화는 '승자 싹쓸이(winner take all)' 현상을 가져왔지요.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 싹쓸이하는 사회'를 읽어보면
세계화가 불균형 증대에 얼마나 큰 몫을 해내고 있는지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 반노예상태에서 인권탄압을 받으면서 일하는 이민노동자들..
감금노동
노예적 결혼제도.
아동노동 착취
성매매
인신매매................................................................


미국에서만 매년 평균 15,000명이상이 노예상태에 빠지고(늘어나고) 있으니..



27,000,000


아직 인간의 광기는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권교육. 너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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